세계 무대의 벽은 높았다. 월드오브탱크 한국 리그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두 개의 기둥과도 같았던 ARETE와 NOA지만, 결국 WGL 그랜드 파이널에서 4강 진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얻은 것은 있었다. 그동안 ARETE와 NOA는 서로 경쟁하며 상당한 수준의 성장을 이루어냈고, 준비한 바를 충분히 시험해볼 수 있었다. 수많은 강팀과 경쟁한다는 것은 단순히 해당 경기의 승패만 놓고 보면 위협이 되지만, 팀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경험이 된다.

전술을 검증할 연습 상대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월드오브탱크 한국 리그에서 이만큼의 성장을 일구어낸 것조차 대견할 정도다.

WGL 그랜드 파이널 이튿날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만난 NOA와 ARETE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차분한 모습이었다. 경기에 대한 자신감 은 언제나 넘졌지만, 그 누구보다 한국 리그와 자신들의 실력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던 그들이기도 했다.




▲(왼쪽부터) 아레테 '투수' 최민수, 노아 '이븐폴' 송호성,
아레테 '소도둑놈' 송준협, 아레테 'TOGII' 강정모


Q. WGL 첫 날, 노아 팀을 비롯한 첫 날 경기를 지켜본 소감을 들려달라.

아레테: 대회 준비 후반부엔 노아하고만 연습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것이 실제로 국제 대회에서 유효한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제 노아가 이 부분을 상당 부분 증명했다고 본다.

노아: 연습 당시 성공했던 전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전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레테가 노아와 연습했을 때 승률이 높은 편이다. 우리가 어제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면 그 전술들을 증명할 길이 없었겠지만, 다른 팀을 상대로 그 전술들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Q. 스타나 리그오브레전드와는 팀 구성이나 연령대도 제법 다르다. 팀원 구성이 어떻게 되나?

아레테: 월드오브탱크는 7명이 선수로 뛰게 된다. 우리 팀은 예비 선수를 포함해서 7명, 그리고 예비 2명의 편제다. 하지만 군 입대 등의 문제로 WGL에 참가한 선수는 7명이다. 선수들의 연령대를 보면 많게는 36살, 적게는 21살까지 분포되어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은 편이다.

나(투수: 최민수)와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팀원은 16살 차이다. 그 선수가 나를 가끔 '아빠'로 부르기도 한다. 자기보다 16살이 많은 상대에게 격하게 화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거침없이 화도 잘 내는 것을 보면 진짜 아빠처럼 생각하나, 싶기도 하다. (웃음)


노아: 우리 팀도 7명에 2명을 더해 9명이다. 우리는 아레테와 달리 전부 20대다. 20살에서 29살 사이의 분포를 보인다.

다른 게임에 비하면 게임의 매커니즘 만큼이나 전술의 이해를 더 요구하다 보니, 연령이 높아도 피지컬보다는 경험이나 숙련도가 더 큰 장점이 되기에 연령층이 높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부분 학생이나 회사원 위주의 구성이다. 그런 만큼, 이번 참가에도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래 전부터 바라왔고 준비해 왔던 부분이라 전원 참가할 수 있었다.



Q. 세계 대회를 여는 다른 게임들은 대부분 대형 대회가 하나씩 자리잡고 있다. 아레테나 노아와 같은 팀에게 세계 대회가 늘어난다는 점은 팀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레테: 러시아나 유럽 팀에게 우리는 아직 약소 팀이다. 유수의 팀들과 함께 경기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노아: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월탱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연습하는 우리, 선수 층이 넓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리그를 즐기는 관객층도 크게 늘거나 줄기 어렵다. 엔비디아, WGC, WGL과 같은 세계 대회를 경험하면서 해외의 팀과 겨루는 과정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






Q. 세계대회 투자가 늘어나는데, 한국에서 게임 팀을 꾸려가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아레테: 역시 가장 아쉬운건 돈이다. 1등이 언제나 돈을 다 가져간다. 3, 4위는 본전치기도 안 된다. 수많은 연습에 들이는 시간에 비해 결과적으로 얻는 것이 없다보니 리그 자체를 포기하는 팀이 상당히 많다. 게임에 집중해서 먹고 살 만 하면 모두들 했을거다. 그럴 수 없으니까 쉽게 리그 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거고.

노아: 프로 게임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돈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는 지금 프로 반, 아마추어의 성격이다. 후보까지 9명의 멤버를 운영하고 있다. 리그에 걸린 상금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2, 3위를 달성하더라도 실제 선수당 분배되는 상금은 크지 않다. WTKL만 보더라도 1등에게 상당한 상금이 주어진다. 오프라인 무대인지라 지방에서 왕복하는 차비나 숙박비 등이 개인 비용이 상당하다.

준우승을 하더라도 리그 종료 후 상금적 이득은 전혀 없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느낀다.



Q. 월드오브탱크 리그가 다른 대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레테: 리그오브레전드의 국제 대회를 보면, 큰 체육관에서 콘서트마냥 둘러앉아 있더라. 어제(4일)는 첫 날이라서 그런지 크게 인파가 몰리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팬들이 아무리 많다한들 모두 폴란드까지 와서 볼 수는 없지 않나? 생중계가 되는 경기이니만큼 트위치 뷰가 중요한데, 리그오브레전드가 보통 7만뷰인 반면 WGL이 4만뷰 정도 되더라. 세계 각지에서 이만큼 관심깊게 봐 준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Q. 월드오브탱크라는 게임은 다른 게임과는 달리 다른 게임의 프로들이 전향해 넘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아레테: 게임의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리그를 준비하는 수준이 되려면 공방이나 기타 게임 경력이 못해도 5천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만큼의 경험을 쌓기까지 약 3달 가까운 시일이 소요된다. 예전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를 하던 분이 대회를 시작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이런 준비 과정에서 무산되었다는 사례도 들었다. 이런 부분 때문에 다른 게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지 않은것 같다.

FPS, RPG, 시뮬레이션 등 여러 장르의 요소들이 혼합된 느낌이다. 다양한 게임의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 잘 하는것 같다.





Q. 합숙과 함께 연습 스퍼트를 끌어올렸을텐데, 합숙 연습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

아레테: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모여서 하는것과 온라인에서만 연습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합숙을 시작한 직후에는 의외로 노아에게 많이 졌다. 노아가 그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우리가 자꾸 이기더라.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 우리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음이 느껴지더라.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간 느낌랄까? 왜 프로팀들이 숙소생활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노아: 직장 등의 문제로 합숙에 참가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었던데다, WGL을 앞두고 숙소가 생겨서 좋은 연습 환경이 제공된 것이 도움이 되더라. 온라인에서 말만 주고받는것과 실제 얼굴을 맞대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Q. WGL은 국내 리그인 WTKL 룰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 무승부가 자주 발생하고, 무승부가 되어도 스코어를 가져가는 등 적잖은 차이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 장단점이 있다면?

아레테: 장점은 경기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한 쪽이 무조건 공격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온다는 점이다. 하지만 첫 번째 공격 포인트를 가져가는 팀이 너무 유리해진다. 우리도 간혹 7/42 룰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이런 세부적인 룰은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경기 템포가 빨라지다 보니까 그 뒤에 이어질 다른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Q. WGL 경기를 보면서 동계올림픽의 컬링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로 팀을 지원하려는 스폰서가 월드오브탱크의 어떤 부분에 집중했으면 하는지?

아레테: 손이 빠르지 않아도 경험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게임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해 본 게임 중에 순간 긴장감과 순간 쾌감이 가장 큰 게임이다. 오더를 보는 입장에서는 (최민수 선수) 장기, 바둑같은 요소도 강해서 전차 배치 하나하나를 지시할 때마다 바둑돌을 놓는 느낌이었다.

'판을 만들어가는' 재미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각 팀의 경기를 연달아 지켜보면, 어떤 식으로 스토리가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에 집중한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즐길 수 있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게임이다. 최정상급의 피지컬 싸움 뿐만 아니라 단순한 전차 컬렉팅을 즐기거나 하루 한 두판씩 가볍게 할 수도 있는 게임이다. 한국은 특히 군필자도 많은 만큼, 잠재적인 팬 베이스가 넓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노아: 유달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게임하는 경우을 자주 볼 수 있는 게임이다. 또한 병과마다 요구하는 롤이 다르다. 다른 게임에 비해 템포도 빠르지 않고. 경험적 측면과 정교함, 선택의 중요성이 매우 큰 게임이기에 빠른 경기 템포에 허덕이지 않고도 큰 활약을 보일 수 있다.

머리를 써야 하고, 수 싸움도 하고 싶고, 복잡미묘한 게임 매카니즘도 즐기고 싶다면 (월드오브탱크에서)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관객들의 게임 이해도를 높일 필요성이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다. 어떤 방안을 제시하고 싶은지?

아레테: 리그를 보면서 진행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룰에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관객 잘못이 아니다. 유럽이나 러시아에서도 적은 수지만 그런 항의가 꾸준하게 있어왔다.

우리나라는 서비스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고, 그만큼 관객들의 눈도 초보 단계에 속한다. 시간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좀 더 친절하게 설명이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7/42는 15:15 공방과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다. 공방 콘텐츠 기준으로 대회 콘텐츠를 바라보는 것에는 분명한 오류가 있는거다.

유저들이 많이 하게 되는건 아무래도 15:15 공방이다. 월드오브탱크가 개발 당시부터 e스포츠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리그도 재밌으니 알아서 공부한 뒤, 보라는 것은 주객전도다.

한 가지 방안으로는 팀 배틀의 활성화를 들 수 있겠다. 티어업을 위해 팀배틀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하는. 7/42룰에 대한 홍보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노아: 와우도 콘텐츠가 PVE, PVP 두 개가 있다. 사용하는 스킬은 같지만 목표가 다르다. 월탱도 공방과 리그는 목표하는 바가 다르다. 리그를 어떻게 즐기느냐는 점도 중요하지만, 왜 7/42가 만들어졌고, 왜 이게 재밌느냐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왜 1티어가 들어가는게 합리적인지, 왜 종합 42티어가 8티어 7대보다 더 공격적인 부분을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어제 경기 중 '노아의 승리는 이변'이라는 해설이 계속 들리더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나?

노아: 일단, 중국 팀과는 수준이 비슷할거라고 생각했다.

아레테: 비슷하다니? 우리 평가로는 중국 팀은 충분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노아: 첫 세트를 퍼펙트로 이겼고, 두 번째 세트 또한 비기기만 해도 진출하는 상황이라 상대 T1 한 대를 살려두고 올라갔다. 중국이나 동남아에 비해서는 우리가 제법 앞서 있다는 점을 느꼈다. 러시아 팀의 경우는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보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격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한 세트를 이겨본 시점에서 완전히 넘을 수 없는 상대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Q. 노아 팀은 엔비디아 토너먼트 당시 컨디션 난조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번엔 어땠나? 준비한 전략은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지?

노아: 엔비디아 토너먼트는 당시, 준비했던 것의 절반도 쓰지 못했다. 평소 실력 이상을 끌어내야 한다며 스스로 압박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엔 오히려 평소에 하던 것들만 100% 보여주자는 마음가짐이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후회없이 잘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연습량을 많이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맵 밴이나 전략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는데, 생각보다 잘 풀렸다. 연습했던 세트 플레이도 잘 먹혀들었던 것 같다.



Q. 앞으로 어느 정도 해야 정상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레테: 합숙 가능한 숙소가 확보된 상황에서 우리와 실력이 비슷한 팀과 연습이 가능하다면 수 개월 정도면 될 것 같다.

노아: 우리의 실력 향상 속도가 매우 빠른 것 같다. 오픈 시즌만 해도 의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시간이나 여건만 된다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Q. 월드오브탱크 리그를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생각인가?

아레테: 리그가 없어질 때까지 하고 싶다.





ARETE와 NOA 두 팀에게 있어, 단순히 한국 리그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팀이라는 수식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들은 월드오브탱크 한국 서버에서 그 누구보다 7/42 룰 기반의 팀 전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e스포츠 리그가 더욱 더 활성화 되기를 바라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WTKL이 진행될 당시에도 리그의 활성화와 함께 더 많은 팀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기도 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리그를 포기하는 팀들이 너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지만, 자신보다 더욱 강력한 팀이 등장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e스포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워게이밍이지만, 어떤 면에서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이다. 이들의 임무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세계 무대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그만큼 성장해 더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