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이 뜨거웠다. 강연 내내 웃음이 터졌다. 민용재 대표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밖에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운도 실력이라는 것. 개인적인 느낌이 아니다. 강연을 들으면 들을수록 진해지는 생각이었으니까.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업계 입성 초기 결과물은 '포트리스'. YJM 엔터테인먼트 민용재 대표는 첫 발자국부터 굵직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 사업을 견인한 '포트리스' 개발 경력은 지금의 민용재 대표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에 뛰어든 그는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의 흥행도 이끌었다. 넥슨이 지금처럼 공룡급 규모를 갖추는 데 민용재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후 그는 회사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YJ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주 종목은 투자. 게임 개발회사에 투자하는 동시에 개발 및 마케팅에도 지원 포격을 한다. 지난 2012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선 "제 2의 넥슨을 만들겠다."고 말하며 숨겨왔던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넥슨이 주최한 NDC 2014에 참석한 민용재 대표. 강단에 오른 그의 표정엔 장난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한 번 제대로 웃겨주고 가겠다.'는 바로 그 표정.

그가 발표한 '게임 사업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뒷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다.


▲ YJM 엔터테인먼트 민용재 대표





■ 저희, 연예기획사 아닙니다.

오프닝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집사람이 방송국에서 일하거든요.(민용재 대표의 아내는 KBS의 박사임 아나운서입니다) 어느날 국장님이 제 집사람 불러서 말하더래요. 자신의 딸이 아이돌이 꿈이라고. 사임씨 남편 분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시니까 소개해줄 수 없나고요. 몇달 전 실화입니다.

저희 회사 연예기획사 아닙니다. 회사 이름 갖고 JYP랑 YG랑 SM에서 한글자 씩 따온 거 아니냐고 누가 묻기도 하는데 진짜 아니에요. 제 이니셜 붙인겁니다.

가끔 가다 벤처캐피탈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 회사는 게임회사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게임회사예요. 회사 내 4개의 스튜디오가 있고, 같이 일하는 자회사도 있습니다. '다함께 붕붕붕' 만드는 지피스튜디오, '학교 2014' 만든 라쿤소프트 등이 있어요. 전형적인 게임회사라는 것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이제 강연 시작할게요.







■ CCR 시절

전 사실 아직 제가 어리다고 생각하는데요. 업계 15년 종사자라는 게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닌가봐요. 다들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아무튼 그 15년 간 사업, 마케팅 부분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봤는데 오늘 이자리에서 한 번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개발자 분들처럼 컴퓨터공학과도 아닙니다. 서울대 경영 대학원 다니던 중 '포트리스'를 개발해 게임업계에 몸담게 됐어요. 2003년까지 CCR에 있었고,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넥슨에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연예기획사같은 회사 만들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주변 분들께 민폐 끼쳐가면서요.(웃음) 아무튼, 지난 15년 돌아보고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게 뭔가 생각해봤어요.

운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이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멋있게 '이러이러 했어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솔직히 저 같은 경우는 이게 정답 같습니다.

제가 이 업계 뛰어든 게 나름 초기였어요. 그 때는 정말 게임 붐이었어요. '스타크래프트' 필두로 PC방 막 떠오르고 있을 때였고요. 그 밀물 타고 '포트리스' 만들어서 꽤 잘 되었어요. 그 다음에 넥슨 와서 이미 성공할 만한 좋은 게임들, 그러니까 '카트라이더'나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이 펑펑 터질 때 몸담아서 좋은 경험 했죠. 나중에 넥슨 나와서 따로 회사 차릴 때도 운이 따랐어요. 좋은 분들 합류해 주셨으니까요. 줄 잘서야 편하다는 말이 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여러분, 운 진짜 중요합니다.



옛날을 한 번 돌아보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99년, 2000년 게임 시장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 판교 보면 정말 큰 게임회사 많이 있지만, 이때만 해도 그런 거 없었어요. 게임의 문화적 입지가 정말 작았고, 덕분에 서러운 일도 많았어요. '포트리스'라는 게임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2000년, 2001년과 2002년에 상이란 상은 다 받았어요. 이런 게임을 갖고 사업이나 마케팅 해보려고 해도 주변인식은 이랬어요. '게임 가지고 무슨 사업을 해?'

제휴 이야기를 꺼내는 것부터 되게 어려웠어요. 전 참... 여기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게, 제가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한 건 아니거든요. 당시 넥슨과 엔씨소프트에는 훌륭한 개발자가 많았고, 저희는 아무래도 인적 자원이 부족하니까 '쉬운 게임 만들어서 게이머 아닌 인터넷 유저를 목표로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했고, 그 땐 아무것도 몰랐으니 당시 게임사들이 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시도를 많이 했어요. 그게 다 잘서 성공했다기보단, 당시 시대가 게임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시류를 탄 것입니다. 몇 번째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진짜 운이 좋았어요.



이게 당시에는 되게 새로운 시도였어요. 게임 마케팅이 당시에는 별로 없었거든요. 일단 콜라캔에 바코드같은 것을 넣고 이걸 직으면 게임 내 상품과 교환하는 개념이었어요.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코카콜라 처음 찾아갔을 때 기억... 흠, 1층 데스크에 여성 세 분이 계셨는데 한결같이 예뻤다는 거 기억나네요. 그리고 외국계 기업답게 회의실이 엄청 크다는 것 정도?

이야기가 샜네요. 아무튼, 당시 코카콜라 제휴 담당자분이 되게 긴가민가 하셨어요. 이게 전례가 없으니까요. 나중에 그 분이 해주시는 말이, 코카콜라가 세계적으로 컨퍼런스를 하는데, 자신들에게 맨 처음 광고 제휴한 곳이 일본이었대요. '파이널판타지' 캐릭터들이 콜라먹고 하는 TV CF가 나왔는데, 젊은 사람들 상대로 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박수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포트리스'도 코카콜라와 연결하는 데 성공했고, TV에도 많이 나가는 등 도움 많이 받았어요. 하나 잘 되니까 다음 것도 술술 됐죠. 게임 내 헬기에서 이벤트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걸 받으면 실제 영화 관람권을 주는 것처럼 재밌는 시도도 했고요.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게 과자 치토스에 들어있는 '따조'였거든요. 그것도 제휴해서 포트리스 따조 프로모션 행사도 진행했고요. 나중에는 애니메이션도 제작했습니다. 롯데리아에서 세트 메뉴 먹으면 주는 완구 제품도 내놓았고요. 당시 게임은 엄연히 언더 문화였던 만큼, 나름 새로운 시도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휴 과정이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제휴하려는 업체 담당자 분들이 게임을 전혀 모르시니 일단 설명부터가 안되는 거예요. 그러다 '코카콜라' 뚫고 나서 조금 편해졌어요. "우리 코카콜라랑 했어요." 하면, "어, 그럼 우리도 할래요." 이러시더라고요.

처음에 어떤 길 가려고 하면 나름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사업 관련 미팅이 1시간 잡혀있으면 그 중 30분을 게임 소개하는데 투자했어요. 그 시간 안에 이해시키는 걸 성공하면, 20분을 '포트리스' 설명에 쏟았고요. 탱크를 타고 어쩌고 저쩌고. 그 때 '포트리스'가 동시접속자 22만 명 갔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해도 대기업 부장님들은 게임 잘 안하시니 이런 설명이 꼭 필요했습니다.

미팅 시간 설명에 다 쏟아붓고 다음에 또 만나요, 하고 다시 만나면... 다른 부장님 와 계시고(웃음). 그 쪽도 채널이 많다보니...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곤 했어요.

"온라인 게임이 뭐냐면요. 어쩌고 저쩌고..."
"아, 스타크래프트 같은 건가요?"
"아뇨. 스타크래프트는 CD 필요한 거고요."
"어? 우리 집에서는 CD 없이 스타 하는데요."
"그...건 미리 깔아서 하는 거고요"

힘들긴 하지만, 일단 뚫어 놓으면 나중에 레퍼런스가 생기는 만큼 분명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안 간 새로운 길 개척하는게 좋냐고 물으신다면... 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처음 길 닦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바로 다음 주자가 제가 하던데서 힌트 얻은 다음, 씽! 하고 앞질러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황 잘 봐가면서 해야죠.

99년, 2000년도... 투니버스에서 게임 쪽 방송도 할 때였는데, 그 때 국산 게임 중 가장 리그 활발히 했던 게 '포트리스'였어요. PC방 리그도 많이 돌고 그랬죠. '투니버스 비비큐 포트리스 대회' 이런 것도 했고요. 여기 안경 끼고 치킨 들고 해맑게 웃고 계신 분 보이시죠? 왕년의 '포트리스' 프로게이머 백경진 씨라고 해요. 이분 나중에는 엔씨 가셔서 게임 만드시다가 지금은 저희 회사 와서 저랑 같이 놀고 있어요. 이 사진 그래서 꼭 넣었어요.



이후 온게임넷과 제휴해서 '포트리스' 리그도 진행했어요. 전국 돌면서 마스터쉽 대회도 개최했고요.

여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반다이와 손잡고 일본에서 e스포츠 해보려고 '도쿄게임쇼'에도 갔어요. 그 쪽에서 지원 많이 해줬죠. 지금은 게임회사들이 다들 큼직하니 해외사업부도 많고, 네트워크도 쫙 깔려 있잖아요. 2000년도에는 홀홀 단신으로 일본 가서 멀뚱멀뚱 불쌍하게 서있는 한국 게임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기억해보면, 저희가 나름 빨리 해외 갈 것을 생각한 것 같아요.

아무튼 일본 목표로 했을 때 저희 계획은 간단했습니다. '일본은 통신 속도가 별로니까 포트리스가 가면 잘 될거야.' 해서 간 거예요. 그런데 도쿄에 사무실까지 차릴 수는 없었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일본어 잘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래서 일본 게임회사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일본 게임회사들이 하나같이 너무 커서 쉽게 만나기가 어려운 거예요. 머리를 막 굴렸죠. 일본 게임회사들은 완구회사, 만화회사랑 친하니까 우선 그 쪽하고 말을 터야겠다고 결론을 냈죠. 대원, 학산문화사 분들이랑 친해지고 일본의 완구 회사랑 친해지고... 그렇게 넘고 넘어서 일본 게임회사 반다이와 친해지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반다이가 이런 고민 털어놓더라고요. '어린이 줄어들면 매출 줄어드는 거 아니냐'고 했죠. 그래서 저희가 그랬어요. '한국 아이들은 장난감 갖고 안논다. 다 게임하지'라고요. 그러니까 환해지더군요. 이렇게 의기투합해서 반다이 도움을 많이 받았고, 반다이가 일본의 여러 회사들을 소개해줘서 이후부터는 편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보죠. 2000년도는 정말 PC방 황금기였어요. 점포만 해도 2만 개 이상 있었을 때라 연계 사업도 활발히 했죠. PC방에 코카콜라 냉장고 설치해주고 그랬어요. PC방은 냉장고 공짜로 생겨서 좋고, 코카콜라는 거기서 계속 음료수 팔 수 있으니 좋고, 우리는 홍보 되니 좋았죠. 게임 갖고 사업하는 방법을 몰라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이게 운이 좋아 다 맞으면서 뻥 터지게 된 겁니다.

'포트리스'는 국방부와 연계해서 군대에도 납품(?)했어요. 포병대에서 특히 반응이 좋았어요. '포트리스'가 포 쏘는 게임이라고 하니 장군님께서 "으흠! 이걸 하면 병사들 포 쏘는 실력이 향상되겠는걸?"라고 반응하시더라고요. "응당 옳으신 말씀입니다."했죠. 군인들은 '포트리스' 애인 만나는 메신저로 썼대요.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군대에서 게임하는데.




지금이야 게임 홍보에 실제 모델 쓰는거 일반적으로 받아들입니다만... 2000년도는 그런 거 잘 이해 못할 때였어요. '아니, 게임에 게임 캐릭터 나와야지 다른게 왜나와? 무슨 덜떨어진 게임 아냐?' 이런 인식이 있었죠. 우린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였던 만큼 실제 모델 적극적으로 썼어요. 게임자키 선발대회도 했습니다. 여기서 뽑히신 분들 중 나중에 공중파로 진출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2002년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가 완전 대박이 났어요. 장나라 씨도 엄청 떴는데, 그 때 장나라 씨를 모델로 써서 포스터도 많이 만들었어요. 이걸 회원사 PC방 점주 분들께 나눠드렸는데... 당시 분위기 덕분에 레어 아이템이 되더라고요. 포스터가 초등학교 앞에서 거래가 되었대요. 장당 900원, 500원 해서.

아, '포트리스'가 PC방 상대로 영업한 방식도 거의 신모델이었어요. '스타크래프트'는 CD 사야 했고, 리니지는 정량제로 운영했잖아요. 저희는 개인 사용자에겐 무료로 풀었고, PC방한테는 정액제로 서비스했어요. 안내면 그 PC방 IP 막았고요. 그 때는 PC방 10개 씩 체인 형식으로 운영하는 분들도 많았고,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가입률은 90%였어요. 혜택도 드렸고요.

넥슨은 저 오기 전부터 PC방 사업 잘하는 상태였고, 저는 넥슨이 더 잘하려고 할 때 온 것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혜택을 받은 거죠. PC방 업주분들이 넥슨 상대로 막 데모하는데 저를 본딴 나무 인형 만들어서 화형식하고 그랬대요. 그걸 그 때 알았더라면...(웃음)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말이 있는데요. 사실 전 이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멀티 유즈 하려면 원소스가 터져야 되잖아요. 영화나 애니, 캐릭터 중심으로는 그런게 많았는데 게임 주인공을 소재로 한 경우는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시도해봤죠.

2003년에 방영한 '포트리스' 애니메이션입니다. 보통 애니메이션은 13편 단위로 끊어지거든요. 13, 26, 39 등으로 말이죠. 52편 넘어가면 장편이라고 해요. 일반적으론 26편 정도 방영하고요. 일본 쪽 분들이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한국 온라인게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단편도 아닌 장편으로 52편 찍은 것은 '포트리스'가 최초로 한 시도라고요. 아까 제가 완구회사 여기저기 뚫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다 보면 언젠가 꽃피운다는게 이 말입니다.

애니메이션은 CCR, 반다이, 반프레스토, 선라이즈, SBS 등이 연합해서 제작했어요. 일본에서 유명한 분들도 많이 참여하셨고요. 이 때는 비디오테이프로도 팔았어요. 사운드트랙이랑 '포트리스' 공략집 등 관련 서적도 출시했고요. 사운드트랙은 잘 안팔려서 나중에 행사 때 많이 나눠드리곤 했어요.

그리고 전문 업체랑 협력으로 완구도 출시했어요. 한국보다는 일본에 좋은게 많았습니다. 막 무선으로 조종되고, 발사도 되고. 지금도 거래되요. 5월 12일에 옥션에서 봤어요. 중고품 깨끗하다면서 거래되는 거요.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CCR 시절을 정리해볼게요. 이것저것 마구 할 때였고, 운좋게도 PC방 열풍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포트리스'는 국민 게임이 됐고, 캐릭터 쪽도 키웠죠. 하지만 사업적인 시도 과정은 아직 어설픈 점이 많았습니다. 그 때 부딪혀 가면서 여러가지 공부를 많이 했죠. 여기서 공부했던 거 갖고 넥슨 갔어요. 거기에 있는 좋은 게임들과 함께 훨씬 체계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죠.






■ 넥슨 시절

코카콜라와 한 번 친해지니 다음에 또 하기 편하더라고요. '이거 한 번 하시죠' 하니, 바로 '땡큐' 나오고. 그 때 사업본부 한켠에는 콜라캔이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야근할 때 막 먹고. 이거 질리는데요 하면 환타로 바꿔주고(웃음).

이번에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했죠. 게임에 콜라도 넣고. 이것으로 코카콜라 홍보담당자는 사내에서 최고 마케팅 상도 받고 그랬대요. 이땐 온라인 게임이 어느정도 알려진 때라 '게임이 뭐다' 이런 것 다 생략했어요. '우리는 뭡니다'로 바로 갔죠. 이거 진짜 편해진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처음 뚫는게 중요합니다. 회사가 작으면 비슷한 사이즈부터 하나씩 하나씩 올라가는 거죠.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반대로 규모가 크면, 굵직한 곳 하나 확 뚫어서 나중에 쭉 혜택 받는 겁니다. '카트라이더' 뚫었는데 '메이플스토리'라고 못하겠어요. '메이플스토리'도 했죠. '마비노기'도 했고요.




하이라이트는 자동차 브랜드 제휴였어요. 이 쪽은 라이센스 규모가 크거든요. 그나마 다행이었던게 이 시기는 게임업계가 목소리가 커질 때였어요. 우기는 것도 가능했죠. "우리는 게임사가 아니라 미디어라니까요? 게임으로 홍보해드리는데, 홍보비는 주셔야지요!"라고 할 수 있었죠. '포트리스' 시절에 이 말 했으면 아마 "미친거 아냐?"라는 소리 들었겠죠(웃음).

사실 '현대기아'는 광고비가 되게 비싸요. 이미 TV광고 대중적으로 쓰는 데였으니까. 반면, 외국 자동차회사는 잡지 광고 위주였어요. 생각만큼 홍보 예산을 많이 안두더라고요. 국내에 '미니' 열풍이 불 때 접촉해서 게임에 넣은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미니'가 들어가고 난 뒤, '현대기아'와도 연결이 됐고, 게임 내 적용할 수 있었어요. 원래는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후 '후시딘'도 들어오고 '피자헛', '소울' 등도 제휴했어요.

마케팅할 때 돈을 써야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아이디어 내면 공짜로도 가능해요. 다른 업체에서 돈 내고 우리는 광고해주는 거죠. 콜라도 받고 게임에 공짜로 넣고, 대회하면 운영비도 지원받고. "카트라이더 대회하는데 협찬해 주셔야 됩니다."해서 경품 자동차도 받고요(웃음).




이후 KTF, 훼미리마트와도 제휴했어요. 삼각김밥에도 광고 넣고요. 게임 아이템 가치를 모른다면 좀 세게 이야기 했어요. 그래도 될 때였죠. "게임아이템 가치를 정말 모르시는거예요? 이게 삼각김밥 몇 십개 가치라고요!"라고 말했죠. 사실... 말하면서 조금 미안하긴 했어요. 무형가치니까. 명품 브랜드가 비즈니스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맥도날드와도 제휴했는데 학부모들이 싫어하시더라고요. 아이템 얻기 위해 햄버거, 콜라, 삼단 콤보도 먹어야 하니 말이죠. 물론, 이건 농담입니다. 얼마나 건전한 게임인데요... 음, 햄버거가 건강에 좋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네요. 콜라는... 술보다는 낫잖아요?(웃음)



e스포츠는 규모를 더 늘렸습니다. 코카콜라 쪽에서 스폰서 해주고, 우린 그걸로 대회 열고.

네. 강연 시간이 9분 남았다고 말씀하시네요. 얼른얼른 할게요. 우린 '카트라이더'가 전국민이 즐기는 게임이 되길 바랐어요. 마케팅도 그런 쪽으로 잡고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혜성같이 나타난 초등학생 분이 계속 리그 우승하는 바람에 어린 친구들을 위한 게임이라는 인식이 굳혀졌어요. 애증의 문호준군... 이 친구 천재예요, 진짜(웃음).

2004년부터는 홍보 모델로 연예인을 기용했는데요. '마비노기' 광고가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이때부터 퀄리티에도 특히 신경썼습니다. 이 광고 나갔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뭔지 아세요? "저기 런닝입은 사람 개발자냐?" 였어요. 진짜 아니에요. 모델이에요.




그간 꾸준히 선보였던 메이플걸 역시 '이번에는 단체 세일러문 콘셉트로 가자'고 결론 내린 뒤, 여러 명 투입해 찍기도 했습니다. 오글거리세요?... 저도 오글거립니다. 여기 있는 분들 다 떴어요. '학교'에도 나오고, 예전에 '해신'인가? 거기 주연으로 나온 분도 계시고요.

나중엔 '소녀시대'를 메이플걸로 선보였어요. 당연스럽게도 똑같이 오글거립니다. 소녀시대는 '버블파이터'와 '던전앤파이터' 광고에도 투입되었습니다. '테일즈위버'에선 카라를 출동시켰죠.

'카트라이더' 애니메이션도 제작했습니다. '메이플스토리' 애니메이션도 만든 뒤 일본에서 방영도 했었고요. 원소스 멀티유즈. 이거 넥슨이 잘하는거 아시죠?






■ 결론은 '?' 아직은 현재 진행형.

시간상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음... 사실 모바일 게임시장의 미래 말하려고 했는데, 운으로 15년 버텨온 제가 뭘 안다고 말하겠습니까. 지금도 이런저런 일하면서 놀고 있습니다. 디즈니 IP 써서 게임 제작한 '다함께 붕붕붕' 출시하고... 홍보모델로 여자 많이 써봤으니까 이젠 남자 한 번 써보자 해서 'EXO'도 써 보고요.

모바일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냐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렵습니다.
사업 운영하는 방법요.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해진 플랫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유저가 모여있는 게 곧 플랫폼 같은데... 계속 유저들이 페달 밟듯, 자전적으로 가게 만들어야 하는지, MMA로 지금 위치를 굳혀나가야 되는건지... 아직 정답을 못 냈어요. 지금도 공부 중이고요. 중국, 일본이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것도 살펴봐야 하고요.

결론이요. 이 부분은 아직 'ING'인 것 같아요. '차차차', '퐁퐁퐁' 이런 쪽이 너무 떴습니다. 옛날에 온라인 게임 몇개가 팍 하고 치고나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고민 많이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한 뒤 의견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시간 다 되어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없는 제 강의 끝까지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