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쓴 도타2 최고의 축제 디 인터내셔널 4(이하 TI4)의 무대가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총 상금 규모는 3일 기준 약 103억 6천만 원을 기록 중이며, 참가 팀 규모 역시 지난 해의 2배인 16개팀-정확하게는 본선 확정 15개팀과 와일드카드전 4개팀-으로 늘어났다.

대회의 규모가 커진 만큼 TI4와 관련된 해프닝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북미 도타 2의 자존심인 이블 지니어스 소속 'Fear' 클린턴 루미스가 팔꿈치 부상으로 TI4에 불참하게 됐으며, 애로우 게이밍과 CIS 게임은 미국 비자 발급을 받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TI4 지역 선발전에서 탈락한 팀들의 해체 소식도 연달아 이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해프닝은 'Era' 아드리안 크리예지우를 놓고 펼쳐진 프나틱과 밸브의 대립 구도였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팀(혹은 성적)이 우선이냐, 선수가 우선이냐를 놓고 펼쳐진 프나틱과 밸브의 입장 대립이었다. 완벽한 컨디션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선수(Era)를 제외하고 안정된 성적을 도모하고 싶은 프나틱과 1년에 단 한 번 주어지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던 선수에게 대회 참가라는 정당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는 밸브의 입장은 양쪽 모두 일리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Era 본인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밸브에 적극적으로 표명하면서, Era와 밸브의 고집(?)으로 인해 프나틱은 기존 로스터대로 TI4에 참가하게 됐다.

▲ 슈퍼매치 참가를 위해 방한했던 프나틱(가운데 선수가 Era)

프나틱과 밸브의 대립은 수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5월, 프나틱 COO인 패트릭 새터몬이 밸브에 보낸 메일에 따르면 프나틱의 팀원인 Era가 심각한 불안 증세와 공황 장애를 일으켰고, 우울증 확진을 받으면서 팀 훈련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이에 프나틱은 직면한 대회인 더 서밋을 비롯해 ESL One, TI4 등에 Era를 포함시키기 어렵다고 판단, 그를 대신해 'Excalibur' 스티브 이를 팀에 합류시켰다. 하지만 Era 본인이 밸브에 보낸 메일의 내용은 프나틱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았다.

이전에도 Era는 불안 증세를 겪은 적이 있었고, 이와 관련해 의사 및 상담사와 상담을 진행한 결과 자신의 상태가 긍정적이며 TI4는 물론, 드림핵 서머, ESL One 출전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만 일주일 가량 휴식이 필요하다는 권고에 따라 팀과 함께 합숙소로 복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팀원들은 이러한 Era의 말을 믿지 못했고, 그와 함께 대회에 출전하기 보다는 예비 선수인 Excalibur와 함께 하기로 선택했다. 결국, 팀의 일방적인 제명 통지를 받은 Era는 밸브 측에 직접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 셈이다.

프나틱과 Era 양측의 입장을 확인한 밸브는 Era 본인에게는 정확한 진단서를 요구하는 한편, 프나틱에게 Era를 제외하고는 TI4에 출전할 수 없다고 단호히 못 박았다. 밸브가 패트릭 새터몬에게 보낸 메일에 따르면 TI4 초대는 '팀'이 아닌 그 팀을 구성하는 '선수' 각자에게 해당하는 것이며, 대회 참가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은 팀이나 구단 측이 아닌 선수 개개인에게 주어진 권한이다.

이러한 밸브의 통보에 프나틱은 TI4에서 성적을 내서 상금을 획득할 경우 그 일부를 Era에게 보상하겠다고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밸브는 Era가 제출한 건강 상태와 그의 참가 의지를 고려해 이는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Era를 제외할 경우 프나틱의 대회 초대 권한 역시 박탈될 것이라는 밸브의 최후 통첩에 프나틱은 Era를 그대로 팀원으로 유지, Excalibur는 팀 코치로 TI4에 참가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 밸브와 프나틱, Era가 주고받은 메일 전문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팔꿈치 부상으로 TI4 출전이 좌절된 Fear의 경우에는 밸브 측이 초대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해당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밸브는 Fear를 대체해 'Mason' 메이슨 밴을 영입한 EG가 여전히 TI4에 초대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내렸다. 실제로 EG는 로스터 변경에도 불구하고, 서밋과 D2L 웨스턴 챌린지 우승, ESL One 준우승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한편, Fear는 TI4에 코치 자격으로 팀원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이번 프나틱과 밸브가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는 선수와 팀의 관계에 있어 '주체'가 누구인지 되짚어 볼 계기가 됐다. 다수의 프나틱과 도타 2 팬들은 밸브의 결정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결국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장의 성적을 위해서 선수들에게 탈퇴, 이적과 같은 희생을 요구하는 팀이 아니라, 그 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