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전쟁: 절망의 유산'이 14일 오픈한다. 사실, 이번 오픈을 향한 개념 정리부터 까다로웠다. 단순히 업데이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신작은 물론 아니다. 그럼 리뉴얼? 모든 부분이 바뀐 것은 아니다. '한 파트의 완성'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일단 정의해야겠다.

엘엔케이와는 무슨 인연일까. 옛날 '거울전쟁:은의 여인' 시절부터 게임을 즐겼고, 회사가 가깝다는 이유로 바로 걸어가 '절망의 유산'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번에도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엘엔케이 사무실에 난입(?)해 오픈 직전 미리 게임을 체험한 것.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마치 이번 변화를 위해 오픈 이후 2년 동안 잠잠했던 것처럼.

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게임의 이름은 아직까지 '거울전쟁-신성부활'이다. 그러니 이전 '거울전쟁'을 총평하면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우리에게 할 것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분명 새로웠다. 온라인 탄막액션RPG라니, 쉽게 상상이나 했을까. 그 공상 같은 일을 실제로 옮기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흥행한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결코 '아니오'다. 하지만 "잘 만든 게임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런 편'이라고 대답하겠다. 여기에 토핑을 조금 얹으면 되겠다. '새롭고 재미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었으니까.

그래픽은 평가가 엇갈린다. 지금 기준에서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계열 게임에서 화려한 고사양 그래픽보다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끊기지 말 것'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에 따르면, 1프레임 차이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장르가 셋 있다. 대전 격투게임, 리듬게임, 그리고 마지막이 탄막 슈팅액션이다.

그런 이유로 '거울전쟁'의 그래픽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낮은 사양에서도 불편함 없이 게임을 즐기면서, 특유의 색감과 디자인은 잃지 않았다. 스토리와 음악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이것이었다. "유저들을 계속 잡아끌 만한 방법은?"

결과적으로 그동안의 '거울전쟁-신성부활'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좁은 국내 시장, 그리고 마이너 장르. 더군다나 온라인게임이다. 유저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고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스테이지 기반의 온라인 액션RPG들은 언제나 콘텐츠가 고질적 문제였다.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최대 레벨이었던 30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 군데 진영을 모두 진행해야 진정한 스토리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부캐 육성의 동기부여가 되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스토리가 아닌 성장에 중점을 두는 유저가 흥미를 잃는 현상도 어쩔 수 없었다. 콘텐츠와 성장의 다양성은 거울전쟁이 가진 큰 숙제였다.

참신함은 여전하다. 여기에서 할 것이 많아지면 큰 퍼즐이 맞아들어가는 셈. '절망의 유산'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 20레벨 레이드 영상. 혼자였으므로 물론 죽었다





■ '무한 사냥터', 전천후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다



피로도를 삭제했다. 무슨 배짱인지 궁금했다. 피로도를 팍팍하게 집어넣어도 콘텐츠 소모를 감당하기 어려운 게 보통이다. 이번 체험에서 제일 눈여겨본 점도 이것이었다. '절망의 유산'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개선점은 바로 사냥터의 추가였다.

오랜 공백을 깨고 최대 레벨이 오른 만큼, 고레벨 구간 사냥터가 늘어난 것은 당연했다. 그밖에 다양한 유형의 스테이지가 새로 생겼다. 중심에는 '무한 사냥터'가 있다. 마을에서 신청하면 곧바로 입장할 수 있고, 게임 내 존재하는 모든 지역 중 비슷한 레벨의 스테이지 세 곳을 연달아 플레이하게 된다.

'디아블로3' 확장팩에 추가된 모험 모드가 얼핏 겹치기도 한다. 차원 균열 같은 추가 맵과 연결되진 않고, 변수가 적은 점은 아쉽기도 하다. 대신 스테이지는 훨씬 다양하다. 두 시스템이 서로 장단점을 가졌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타 진영의 스테이지까지 입장할 수 있는 점은 매력적이다.

▲ "당장 목숨을 잃더라도 나는 한 장의 스크린샷을 찍겠다" - 다잉 메시지


기존 단점 중에 사소하지만 크게 작용한 것이 하나 있다. 스테이지와 마을을 왕복하는 일이 은근히 번거롭다는 점이다. 마을이 대부분 큰 편이라, 빠른 성장을 원하는 유저들에게 불만점이었다. 무한 사냥터는 이런 불편을 해결했다. 바로 입장해서 클리어하면 또 바로 입장한다. 이제는 피로도도 없다. 그냥 달리는 거다.

입장이 편해서였을까, 체험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가장 많이 즐긴 곳이기도 했다. 40레벨 캐릭터로 입장한 무한사냥터는 절대 편한 수준이 아니었다. 후반 난이도를 확 올렸다는 개발진의 말이 사실이었다.

보상은 메인퀘스트보다 적고 서브퀘스트와 비슷한 수준인 듯했다. 13레벨부터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가끔씩 퀘스트가 비어서 레벨업이 공허해지던 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물기둥 돌아다니고 물방울 흩날리고... 하, 인생 살기 힘들다



■ '레이드'와 '보스 퍼레이드', 그리고 '버라주 필드'... "어머나, 이거 진짜 하드해!"



"어, 아직 버그 있나요? 스킬이 안 나가는데."
"이게 맞아요. 여기는 평타만 치시는 거예요"
"혹시 레벨 세팅이 잘못된 건 아닌가요? 보스 체력이 요만큼 깎였는데..."
"에이, 아직 3분밖에 안 지났는데요^^"
"네?"

비록 발컨으로 정평이 난 기자였지만, 그래도 게이머의 자존심이 있지 무언가를 쉽게 포기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건 무리다. "지금 내 실력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단박에 깨달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버라주 필드'는 하드코어 끝판왕이었다. 스킬을 쓸 수 없다. 모든 대미지는 1로 고정된다. 한 대라도 맞으면 죽는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탄막을 피하고 단계를 올라가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장비가 약한 유저라도 탄막 액션에 깊은 내공을 가졌다면 대박을 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버라주 필드 7층, 영상 촬영 플레이는 오랜 경력의 홍보팀 직원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역시 3분컷으로 죽었다는 건 함정.



보스 퍼레이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슷한 레벨의 다양한 보스들을 랜덤으로 만날 수 있었다. 1층은 어렵잖게 클리어했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무시무시했다. 레이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혼자서는 클리어가 불가능에 가깝다. 파티 매칭이 아직 지원되지 않는 점은 아쉬웠지만, 유저들의 필요가 생긴다면 추가되는 것은 수월하지 않을까.

어려운 동시에 다채롭다. 코어 유저와 장르 마니아를 잡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지 싶다. 기왕 어렵자면 '점프'가 불가능한 스테이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 공들인 것들, 그리고 불안 요소



새로 선보인 후반 콘텐츠의 질은 모두 훌륭하다. 신규 지역들도 아름답고, 패턴도 다양해졌다. 난이도도 '이제 진짜 제대로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높아졌다.

시나리오 컷씬 역시 연출의 질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내가 알던 그 게임 맞나" 싶을 정도. 전부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스코어 어택으로 또 하나의 동기부여를 마련한 것도 좋다.

▲ 이전 2% 부족했던 손맛은 꽤 채워졌다. 터져라!


근본적인 불안 요소가 있다. 이렇게 좋아진 퀄리티를 초반부터 체험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게임이 오픈하거나 리뉴얼하면 가장 비중이 높은 접속자는 신규 유저와 복귀한 라이트 유저다. 그들이 다채로운 후반을 즐기려면 좀 걸린다. 그때까지 어느 정도의 비율을 잡아두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이 점을 이벤트와 프로모션에서 집중 공략해야 하지 않을까.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점으로 '강화 시스템 개선'이 눈에 띈다. 강화 초반은 쉽게, 후반은 어렵게. 여러 유저를 아우를 수 있는 정석 판단이다. 변수는 파워스톤 시스템이다. 장비에 성장 요소를 추가해 대성공을 거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오래도록 침체된 게임도 있다. 이 파워스톤이 어떤 현상을 불러오느냐를 지켜보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 관건 하나, 바로 '커뮤니티 플레이'다. 후반 콘텐츠의 상당 부분에 레이드와 고난이도 던전이 투입되었다. 탄막 액션으로 온라인까지는 충분히 구현했다. 하지만 파티 플레이는 어떨까?

이전 버전에서도 파티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다. 아직 성공 사례가 없고, 장르 특성상 어떤 식으로 협력 레이드가 이루어질지 쉽사리 감이 잡히진 않는다. 기자 역시 레이드 던전을 제대로 들여다보진 못했다. '절망의 유산'은 커뮤니티 요소를 집중적으로 추가했다. 반대로 말하면 파티가 얼마나 활발해지느냐가 후반 콘텐츠의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 마법전사는 용도 탄다, 너 이녀석 나와 계약하자



■ 궤도에 들어선 '마라토너'에게 보내는 응원



'거울전쟁-신성부활'의 시나리오는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절망의 유산'을 통해 이제 파트 1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완결까지 25퍼센트 진행된 셈이다. 처음부터 길게 보고 만든 장르였고, 그만큼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한국 게임사에서 이 시리즈가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렇다고 역사적 가치 하나로 먹고사는 게임은 아니다. '거울전쟁-신성부활'은 신선했다. 누구도 해보지 못한 장르를 구현한 것도 그렇지만, 사실은 국내 시장 상황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시도했다는 그 도전이 놀라운 일이다.

'절망의 유산'은 이제 정비가 좀 됐다는 느낌이다. 라이트 유저와 하드코어 유저, 그들이 각각 놀 수 있는 방법을 드디어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동방프로젝트 등 탄막 액션 수요가 많은 일본에서 오픈 작업이 한창인 만큼, 해외 성공을 통해 게임 전체가 동력을 더 얻을 수 있을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100미터 달리기에 어울리는 게임이 있고, 오래도록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게임이 있다. 후자는 스펙터클하지도 않고 스타덤에 오르기도 힘들다. 하지만, 응원하고 조명해줄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그래줘야만 한다.

그것이 '거울전쟁: 절망의 유산' 리뷰를 남기는 이유다.

▲ 40레벨 신규 지역, 서틀라 섬 일대의 운터라프 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