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공개된 영상을 한 번 봤다. 20분 가까운 시간이 훌쩍 흘렀다. 잡혀있던 스케줄을 소화하고 돌아와 한 번을 더 봤다. 또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볼 때마다 매번 다른 요소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동료 기자가 배포 시간을 기다리며 영상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가 임시로 붙여둔 제목을 봤다. "이대로만 나와줘." 격하게 공감하고 싶은 말이다. 개발팀 내부에서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정말 이대로만 나와준다고 해도 한동안 욕심은 없을 듯하다.

지난번 데뷔 영상의 두 배 가량 길이. 훨씬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담아낸 20분 가까이의 영상이었다. 이것을 몇 번씩 돌려보면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뇌리에 새겼다. 묻고 싶은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오르는 바로 그 상태로 지원길 대표와 다시 한 번 마주앉았다.

스마일게이트RPG 트라이포드 스튜디오 지원길 대표

영상은 재미있게 잘 봤다. 액션과 핵앤슬래시를 강조한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캐릭터 이동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생각이 든다. 속도감에 대한 개발팀 내부의 의견은 어떤가?

- 표준 속도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많으실 거다.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가 될지는 아직 조율 중이다. 실제 게임 안에 여러 탈것도 존재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동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기준이 되는 속도를 어느 정도로 할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일단 방향성만 이야기하자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일이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탈것을 이용하든, 포탈을 이용하든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쿼터뷰 시점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서 카메라 워크의 변경 등을 도입했는데, 정작 땅 쳐다보면서 뛰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러한 노력들이 의미가 없을 테니까.


'트라이포드 시스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다. 선택지에 따라 스킬을 강화, 변형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보다 좀 더 세세한 부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 트라이포드 시스템에는 세 가지 축이 있다. 그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하나씩의 요소를 선택해 그것들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구조이기 때문에 트라이포드(Tripod, 삼각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상에 들어있는 설명을 보면 어느 정도 아실 수 있겠지만, 각 스킬마다 주어지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서로 다르다. 어떤 스킬은 속성을 선택하게끔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스킬은 다른 선택지가 주어질 수도 있다. 모든 스킬이 같은 카테고리를 따라 강화, 변형된다면 사실상 트라이포드 시스템 자체가 별 의미가 없지 않겠나.

트라이포드 시스템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맞춰 바꿔가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스킬마다 선택했던 부가특성을 초기화한다거나 할 때 페널티를 주려는 계획은 없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도에 좀 더 부합하는, 더 나은 시스템이 발견된다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필요한 특성을 선택'한다는 컨셉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클래스의 다양화'를 더욱 보강해줄 트라이포드 시스템

영상에서 보여준 모험모드 등을 보면, 유저 스스로 분기를 선택해 퀘스트를 진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군중 사이에 숨어들어 대화를 엿듣는다거나 파쿠르(Pakour)를 하듯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대상을 추적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퀘스트들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가 있다면?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피드백과 그에 따른 경험이라고 하겠다. 나 자신이 이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는 뜻이다.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유저는 재미를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 게임 속 세계에 동화되어갈 수 있다고 본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도 직접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쪽이 훨씬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텍스트만 죽죽 보여주는 식의 스토리 전달은 솔직히 개발하는 우리도 잘 보지 않게 되더라(웃음). '살아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은 게임 속 세계를 만들어내는 모든 개발자들의 꿈이 아닐까. 영상에서 보여준 요소들은 '살아있는 세계'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각각의 컨텐츠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항해를 통한 탐험이나 인양이라든가 술집에서 이루어지는 미니게임 등은 그 자체를 하나의 게임으로 떼어놓고 봐도 될 정도라는 생각이다. 각각의 개성이 뛰어난 컨텐츠일수록 하나의 타이틀 아래 결합하기는 쉽지 않을텐데. 뚜렷한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하나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기보다는, 이 컨텐츠와 저 컨텐츠가 서로 그물처럼 얽혀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컨텐츠에서는 제작을 위한 재료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또 어떤 컨텐츠에서는 숨겨진 지역으로 갈 수 있는 보물지도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식이다.

MMORPG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유저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가는 장르다. 게임 내 모든 컨텐츠를 즐기는 유저도 분명 있겠지만, 어느 특정 컨텐츠만 집중적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플레이를 하는 유저든 서로 간의 교류와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A 컨텐츠를 주로 즐기는 유저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이 있는데, 이것이 B 컨텐츠로부터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여러 성향의 유저들 간에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하던 유저일지라도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나마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겠다. 로스트아크에서 내세웠던 시스템 중에 '생활레벨'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생활레벨 올리는 것에 별 관심이 없지만, 거기서 생산되는 재화는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활레벨을 즐기는 다른 유저로부터 필요한 재화를 구입하면 된다. 특정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 어떤 컨텐츠를 직접 즐기는 것보다 거래로 구하는 편이 나을 수 있으니까. 각각의 컨텐츠를 통해 발생하는 우연성과 교류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

또,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각각의 컨텐츠들에는 게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어떤 요소와 연결되는 장치 같은 것들도 배치되어 있다.

미니 게임으로 준비된 컨텐츠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엿볼 수 있다

항해 컨텐츠에서 빙하를 뚫고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 뒤에 유령선을 마주한다든가, 숨겨진 지역을 발견해 탐험하는 모습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러한 지역들은 발견한 본인만 갈 수 있게 되는 건가? 이를테면 '위상 변화'라 불리는 시스템이 적용될지를 묻고 싶다.

- 숨겨진 지역과 같은 컨텐츠를 이야기하자면, 위상 차이가 적용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른 게임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월드 퀘스트처럼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 형식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지역이 될 수도 있다.


영상에서 보여준 컨텐츠들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다. 솔직히,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상 퀄리티가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가?

- 이번에 보여드린 영상은 실제 게임플레이 화면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지금 되고 있지 않느냐'고 답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구현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의 문제보다 그것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 과연 재미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또 다른 시각에서, '정말 가능한 퀄리티냐'라고 묻는다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적당히 답습해서 만든다고 하면 과연 그걸 게이머들이 재미있게 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면 답은 정해져 있지 않나. 어찌됐건 게이머들이 기대하는 것이라면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어야만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테니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건, 실제 개발에 들어간 기간에 비해 결과물이 기대 이상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개발 단위의 이야기이긴 한데, 우리는 초창기에 기획했던 의도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처음부터 우리 스스로 만족할 만큼 탄탄한 설계를 갖췄고, 중간에 그것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꾸준히 밀어붙여왔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제발 이대로만 나와다오"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향후 서비스를 하면서 살을 붙여간다고 해도, 첫 버전이 이 정도로 나온다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대규모의 유저들이 게임에 접속하기 시작하면 예측하지 못한 여러 변수들이 발생할 수도 있을텐데?

- 기획 측면에서의 분산과 기술 측면에서의 분산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 이를테면 기획 단계에서는 A라는 컨텐츠에 유저가 많이 몰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B라는 컨텐츠에 더 많은 유저가 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유저가 많이 몰리는 특정 공간을 인스턴스 방식으로 전환해버린다든가 하는 식의 기술적인 분산이 필요해진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떠올리면서 대안을 갖춰나가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단위 공간 안의 개체 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한 와중에 우리가 제공하고자 했던 재미를 놓치지 않는 선을 그어두고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다.


제작발표회 영상과 이번 지스타 트레일러 공개 이후, 유저들 반응을 살피면서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답변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 개발 초기 단계의 조심스러움 때문이라는 점이 제일 크다. '로스트아크'는 지난 제작발표회가 첫 공개였다. 이제 일주일 정도 넘긴 시점에서 영상 두 개, 합쳐서 30분 가까이 되는 플레이 영상을 공개한 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오픈한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여기에 디테일한 설명까지 붙인다는 건 거의 서비스 일정이 확정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일단 회사 내부의 전략과 연관되어서 부득이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또, 개발이 많이 진행된 건 사실이지만, 실제 플레이가 가능한 버전이 되기까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야기했다가 개발 과정에서 바뀌어버리는 부분이 생긴다면, 이미 내뱉은 이야기들은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나.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처음에 세웠던 큰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디테일한 부분들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이번에 보여드린 영상을 위해 플레이 버전을 녹화하면서도, 플레이할 때는 안 보였던 문제점이 발견돼 튜닝을 하곤 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디테일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잘못하면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섣불리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것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가급적 말을 아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셔서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아무쪼록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관련기사] '로스트아크' 지원길 대표, "액션 손맛이 끊기지 않는 MMO가 목표"
[관련기사] 이대로만 나오면 GOTY도 가능하다! '로스트아크' 신규 영상 공개

박력마저 느껴지는 가디언 몬스터

독특함이 느껴지는 '아르카나' 클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