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스스로를 마이크로스타트업이라 칭하던 아이봉크리에이티브에서 출시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퍼즐 게임 '내 여친이 된장녀 일리 없어'가 구글플레이에 등장했다.

회사가 밝힌 '여자 친구에게 36개월 할부로 차를 선물하고 할부 8개월째 이별통보를 받았으나 그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면서 남은 28개월의 할부를 묵묵히 갚아나가고 있는 지인의 안타까움' 이란 개발동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다. 비록 게임의 규모는 굉장히 작고 게임 방식 역시 간단하기 그지 없었지만, 헤어짐의 아픔과 할부의 슬픔을 아는 많은 유저들이 다운로드 버튼에 따뜻한 위로를 담아 주었다.

많은 관심을 받은 결과, 슬프게 시작한 이 게임은 어느덧 구글플레이 피쳐드 '세상에 이런 게임이!' 코너에 까지 걸리며 더 많은 화제를 낳았다. 더불어 개발사에게도 관심이 쏟아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게임을 만들어 내는 건지, 앞으로는 무슨 게임을 만들어 낼 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 했다.

그리하여 추운 겨울,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게임을 개발 중이었던 '아이봉 크리에이티브' 정봉재 대표이사를 만나 '내 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부터 신규 게임 '땅콩전쟁', 그리고 스타트업 대표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 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아이봉 크리에이티브 정봉재 대표



자기소개와 함께 '아이봉 크리에이티브'가 어떤 회사인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아이봉 크리에이티브 대표 정봉재라고 한다. 드라마라던지 영화, 소설 등의 창작물처럼 사회를 반영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게임에 담고 싶은 사람이다. 그 소망을 가지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지난 3월 지인과 함께 회사를 설립해 '공공의 적', '폴라 베어 라이브'와 최근 출시한 '내 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 같은 게임을 개발했다.


단 두 명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게임을 만들기 힘들었을 터, 초반엔 어떻게 생활했나?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를 무시하긴 힘들었다. 특히 함께 하게 된 지인, 개발이사의 경우 회사 설립 때 이미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사람에게 열정만 가지고 무급으로 일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무리 스타트업이라 해도, 2인 기업이라 해도 월급을 주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고, 어쩔 수 없이 개발외주 같은 용역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간 출시했던 게임들은 업무 중간중간 짬내서 개발했던 거다.

그래도 2014년 한 해 동안 자본을 많이 모아둬서 이제는 게임 개발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대단히 화제가 됐던 드라마 '미생'처럼, 생활과 삶 속에서 테마를 찾은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 앞으로도 '내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만한 게임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

▲ 정 대표가 직접 보내준 사진. 든든한 파트너,배경윤 개발이사와의 돈독한(?) 모습을 담았다


'내 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가 언급된 만큼, 이를 먼저 물어보겠다. 간단한 퍼즐방식이지만 스토리 컨셉이 참으로 독특하더라. 개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하, 게임 출시 때 공개했던 개발 동기, '외제차를 선물해주고 여자친구랑 헤어졌으나 할부는 계속 갚아나가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를 두고 당사자가 본인 아니냐며 날 지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확실히 얘기하건데, 그건 내가 아는 후배의 이야기다. "남자가 쫀쫀하게!"라며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후배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담은 게임을 내고 싶었다.

마침 용역했던 일이 끝나고 시간이 좀 남았다. 그래픽은 이전에 다른 게임에 쓰려고 준비한 캐릭터가 있었고, 스토리는 이미 정해뒀으니 장르만 선정하면 됐다. 짧은 기간동안 빠르게 낼 수 있는 장르하면 3매칭 퍼즐이 제격이라 생각해 바로 개발에 착수...뭐 실제로는 3일 걸렸지만, 아무튼 그렇게 게임을 출시하게 됐다.

사실 뭐 이걸로 수익을 낼 생각도 없었고, 홍보할 생각도 딱히 없었다. 그냥 내가 추구한 '공감가는 스토리'가 정말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근데 개발 동기가 여러 사이트에 퍼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구글플레이의 '세상에 이런 게임이!'라는 코너에도 등록되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시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업데이트를 부랴부랴 준비해야 할 정도였다.

▲ 너무나도 슬픈 개발동기로 화제가 된 전작 '내 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


'공감가는 스토리'가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 아닌가. 목표 달성을 기념해 소감 한 마디 부탁한다.

물론 정말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았고, 너무 감사드린다. '나도 할부 갚고 있는데!'같은 리뷰도 올라오고, '대한민국 게임 개발자의 흔한 개발 동기_txt'와 같은 글로 입소문도 많이 퍼지고...근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 없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는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다. 그런 기회를 아무 생각없이 내놓은 게임으로 얻게 되어 좀 후회스럽다. 콘텐츠도 좀 더 다듬고 비즈니스 모델도 잘 설계해서 더 많은 검증을 거쳐 볼 걸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회사 규모나 성격을 고려한다면 당분간은 비슷한 분량의 콘텐츠를, 그러나 확실히 공감되는 스토리를 담은 게임을 좀 더 내야될 듯 싶다.


그럼 후속작도 '내 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와 비슷한 컨셉과 규모로 선보일 예정인가?

그렇다. 요즈음 내기 딱 좋은 스토리를 미리 잡아두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직장인 및 사회인이라면 이맘때쯤 엄청나게 신경쓸 이슈다.

나 역시도 회사를 다녀본 사람으로서, 그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봐 왔다. 최근 이슈가 된 비행기 리턴 사건처럼, 직원을 노비처럼 바라보는 몇몇 회사도 분명히 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처한 직장인과 사회인에게 대리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담을 계획이다.

▲ '내여친 된장녀'의 뒤를 이은 참신한 아이디어 작품 '땅콩 전쟁' 역시 사회의 이슈를 다뤘다


음…그럼 연봉 협상 상황에 처한 직장인을 위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인가?

아니, 정확히 설명하자면 게임의 대상이 ‘부당한 상황에 처한 직장인’이고, 그들에게 희열을 줄 수 있는 액션게임이다. 최근 재벌3세의 그릇된 행태에 많은 분들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이런 분들을 위해 나쁜 재벌3세를 대상으로 잽,훅,어퍼컷 등의 기술을 구사하며 게임에서만큼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후속작의 목적이다. 여기에 깨알처럼 예상 로또 당첨 번호도 뽑을 수 있는 미니게임도 마련해 두었다.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비슷할 정도로 콘텐츠 규모가 작다. 작은 규모의 게임에 남다른 고집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볼륨이 꽤 큰 게임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고집이라 할 건 없고, 아직 1년도 안 된 스타트업이다 보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이젠 가볍지만은 않은 게임도 준비하려 한다.

아이봉 크리에이티브라는 회사가 추구하는 모습은 단순히 ‘게임’을 생산해내는 회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감이 가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게임 유저는 대체로 10~20대가 많지만, 그 분들도 결국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지금의 내 나이쯤 된 유저분들이 아이봉의 콘텐츠에 공감해 주는 것이 내가, 그리고 아이봉 크리에이티브가 꿈꾸는 모습이다.

처음엔 회사를 운영하면서 진짜 큰 게임 하나 만들어서 인생역전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당시 만난 모 게임사 대표의 충고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사업, 평생 한다고 생각해.” 그래, 나는 이 사업에 평생을 걸지 않았던 거다. 몇 년 하고 말거라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거였다. 그래서 평생, 죽 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그만 것부터 하나씩 밟아 나갈 계획이다.


▲ 이번 게임도 볼륨은 작지만,아이봉 크리에이티브의 발전에 한층 다가가는 작품이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원대한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스타트업을 많이 창업했는데, 요즈음은 불황이다 보니 사업을 많이들 접었다. 허나 아직도 꿈을 꾸는 사람들은 많다. 이 들을 위해 최근 창업한 장본인으로서 충고나 조언해 줄 게 있다면?

나 역시 큰 조직을 경험했고, 그 동안 회사를 떠나 스타트업을 설립한 친구들만 30~40명은 봐왔다. 대부분 항상 어려워 한다. 나 조차도 지금과 회사 다닐 때, 언제가 더 편했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후자를 고를 것이다. 신경써야 할 일도,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도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예비 창업자의 소양을 생각해 봤다.

맨 먼저 조언하고 싶은 건 ‘경험을 쌓으라는 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말이지만, 조직생활을 충분히 경험해야 회사를 운영하고 이끌 수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딱 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향후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은 괜찮다, 이 기간 동안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창업에 필요한 1순위 요소다.

두 번째, 하기로 했으면 저돌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성격이 필요하다. 이걸 추진하면 다음 달 회사가 망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 끝도 없이 들지만, 일단 지금 해야겠다 마음 먹으면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고민마저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소규모 스타트업으로서 오래 살아 남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모으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예전에야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비전’이라는 명칭 하에 달콤한 몇 마디만으로도 사람을 모을 수 있었다. 근데 이건 공허한 이야기이다. 함께 할 사람을 모으고 싶다면 정확히 계획을 짜고 그것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본과 임금, 업무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초반에는 어떻게 사업을 진행할 건지, 이 때 매출은 얼마 정도 낼 건지… 솔직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예비 창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이야기였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아이봉 크리에이티브 대표로서 앞으로의 꿈과 하고 싶은 말을 부탁한다.

일단 ‘내 여친이 된장녀일 리 없어’에 쏟아진, 예상치 못한 많은 사랑에 감사 드린다. 덕분에 공감가는 스토리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 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생각 없이 가볍게 내 본 게임이라 많이 아쉽고, 본질이 되는 ‘재미’가 없어 스스로도 부끄럽다. 그래서 더 플레이해 달라는 말도 염치 없어서 못 하겠다. 업데이트도 원랜 예정에 없던 거라…앞으로도 할 계획은 없으나, 후속작을 하나 둘 내며 더 큰 공감을 나누고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앞서 말했지만 ‘한 방에 대박’ 같은 꿈은 꾸지 않는다. 천천히, 우리만의 콘텐츠를 가볍게 보여주며 ‘아이봉은 이런 생각을 담은 게임을 만드는 회사구나!’ 라고 유저분들이 인식하게끔 만들고 싶다. 당장의 수익만 보고 회사를 바로 넓히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이 필요할 때, 비전과 수익상황에 맞는 인재를 하나하나 영입할 계획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회사를 키워나가는 게 꿈이다. 잘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