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철권'이라는 게임이 대중 앞에 첫 모습을 드러낸 후 강산이 두번이나 변한다는 세월이 지났다. 첫 모습은 지금 보기엔 어설플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3D 격투게임이었지만, 뛰어난 그래픽으로 무장한 작품들로 눈이 높아진 지금은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싶은 정도라고 할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철권은 진화를 거듭했다. 머리스타일과 옷만 다르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갖추었고, 단순한 부자갈등에서 시작한 스토리는 4대째 이어져 내려온는 콩가루 집안의 일대기를 그려냈다. 동네 형들의 의자를 두려워하지 않던 오락실의 소년들은 '프로 게이머'가 될 수 있었고, 한 기판에 둘이 옹기종기 모여 플레이하던 모습은 이제 전국구로 이어지는 온라인 대전에 밀려 옛일이 되었다.

2015년 1월 28일. 서울 강남 넥슨 아레나에서 진행된 철권 20주년 및 신작 기념 행사. '매니악한 게임', '하는 이만 하는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무색하게끔 엄청난 인파가 넥슨 아레나를 가득 채웠다. 그저 어릴적 한 번쯤 스쳐지나가는 게임이라 여길 수도 있었던 '철권'이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주인공이었다.


행사는 각계각층에서 초청받은 유명인들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걸그룹 '달샤벳'과 '나인뮤지스', 그리고 소녀시대의 '효연'과 2PM의 '조권'을 비롯해 유명 배우들과 모델 등,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행사에 참여해 유저들의 환호를 받았다.

▲ 현장을 찾은 걸그룹 '나인뮤지스'

▲ 몸매를 죄다 종결지으신다는 유승옥 씨도 특별 출연

관련 기사 바로가기 : [취재] 포토타임만 1시간 반, '철권'은 위대했다! 기념행사 현장

이후, 철권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나이. '하라다 가츠히로' PD와 '유치 유네모리' 디렉터가 무대에 올라 신작인 철권7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하라다 가츠히로 PD와 유치 유네모리 디렉터가 말하는 철권7의 주요 코드는 바로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뒤에서 구경하는 관객들 또한 재미있는 게임." 이하 내용은 하라다 가츠히로 PD와 유치 유네모리 디렉터의 소개사를 정리한 내용이다.

그간 철권 경기는 꾸준히 존재해왔지만, 다른 게임 종목들에 비해 큰 인기를 끌었다고는 하기 힘들다.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화면 구성은 나쁘지 않았지만, 게임을 아는 만큼 보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경기에 나와 대결을 펼치는 실력자들은 게임을 프레임 단위로 쪼갤 정도로 이해도가 깊기 때문에 효율적인 기술과 비효율적인 기술을 냉정하게 가려냈다.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는 자잘한 기술들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를 보며 썩 만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추가된 시스템은 이런 점을 해소하기 충분해 보였다. 상대의 공격을 순간적으로 견디면서 묵직한 반격을 가하는 '파워 크래시'는 철권 특유의 묵직한 타격감과 긴박한 공방을 최대한 느낄 수 있었다.

체력이 낮아질 때 발동되는 최후의 역전 찬스 '레이지'에만 사용할 수 있는 '레이지 아츠'는 그간 철권에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일종의 '연계성 필살기'였다. 철권의 필살기는 예전에도 존재했지만, 큰 딜레이를 가지고 강력한 '한 방'을 때려넣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기술이 아닌, 제대로 된 반격의 수단이 등장한 것이다. 이 '레이지 아츠'역시 굉장히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충분했다.

또한 새로운 연출인 '카운터 히트'를 통해 게임의 마지막 장면을 더욱 알기 쉽게 만들었다. 상대를 완전히 끝장내는 이른바 '마무리 타격'에 대한 별도의 연출을 만들어냄으로서, 게임 이해도가 낮은 관객들도 누가 어떤 타격으로 마무리를 지었는지 알기 편하게 만들었다.

▲ 프랑스 격투술 '사바트'를 사용하는 신규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

한가지 더 눈여겨볼 점은 전국 단위로 이어지는 온라인 대전 모드였다. 놀라운 것은 콘솔이 아닌, 아케이드 기판을 통해서도 다른 지역의 유저들과 온라인 매칭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더이상 실력차가 크게 나는 유저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갖춘 유저와 어디서도 대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여전히 철권은 진화하고 있었다.


이어 그간 국내 철권 시장에 크게 이바지한 전국 유명 오락실 대표들에게 감사의 상패를 전달하며, 1부 행사는 막을 내렸다.



잠깐의 휴식 시간 이후 시작된 2부 행사는 과거 MBC게임에서 진행했던 '텍켄 크래쉬'의 재림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슈퍼스타, Whyworks, 썬더치킨 리턴즈, 스페셜리스트의 네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진 첫 철권7 국내 대회는, 아직 개발중인 빌드를 사용했음에도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로 가득 찼다.


슈퍼스타와 Whyworks의 대결로 시작된 4강 첫 경기, '지삼문에이스' 김광현, '헬프미' 정원준, '말구' 박일권으로 이뤄진 슈퍼스타 팀은 '나락호프' 주정중, '냉면성인' 김제우, '무릎' 배재민으로 구성된 whyworks를 상대로 선전했지만, 끝내 '무릎' 배재민의 브라이언이 뿜어내는 마하킥에 '말구' 박일권의 마샬 로우가 기절하면서 결승 진출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어진 4강 2경기 역시 유명한 철권 네임드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모았다 '트리플 H' 박민국, 'CHANEL 강성국, 'HAO' 이진우가 포진한 썬더치킨 리턴즈와 'Saint' 최진우, '한쿠마' 한동욱, 'JDCR' 김현진 등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하는 Specialist의 경기. 썬더치킨 리턴즈는 첫 세트를 내줬으나, 'CHANEL' 강성국 무려 두 세트를 연달아 따내며 대장인 'JDCR' 이현진을 끌어냈다. 'CHANEL'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JDCR' 이현진마저 3:1의 스코어로 잡아낸 썬더치킨 리턴즈는 그대로 결승전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어진 결승...인줄 알았으나 이어진 순서는 다소 특별한 대결이었다. '별기린'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가수이자 배우 '남규리'와 세계 최고의 브라이언 플레이어 '무릎' 배재민이 펼치는 특별 대전. 무려 20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남규리는 오락실에서도 여러 유저들의 증언(?)이 따르는 만큼 쟁쟁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이에 맞서는 '무릎' 배재민 역시 나름대로의 패널티를 가지고 게임에 임했다. 다뤄본 적이 없는 신규 캐릭터 '클라우디오'로 게임에 임한 것.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아직 캐릭터가 손에 익지 않은 듯 조금 어색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을 이어간 배재민에게 한 라운드를 내준 남규리는 2, 3라운드에서 필살기까지 적중시키는 진기를 보이며 승리를 따냈다. 2:2 상황에서 펼쳐진 마지막 라운드. 한 대 정도 견딜 체력만을 남겨둔 남규리의 '레이지 아츠'를 허용한 배재민은 5라운드 패배라는 대참사를 겪었고, 이런 예상 외의 전개에 팬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다.

▲ '무릎' 배재민을 대참사로 몰고간 방송인 '남규리'

이어 마침내 시작된 결승 무대. 결승전의 초반 키 플레이어는 whyworks의 선봉인 '나락호프' 주정웅이었다. 첫 세트에서 '트리플H' 박민국을 가볍게 꺾은 주정웅은 4강에서 무려 3승을 기록한 'CHANEL'마저 꺾고 연승을 달성했다. 이제 썬더치킨 리턴즈의 마지막 희망은 'HAO' 이진우만 남은 상황. 나락호프의 기세는 HAO의 펭 앞에 무너졌다. 중국 무술 만년의 전통을 제대로 보여준 펭 웨이 덕분에 썬더치킨 리턴즈는 올킬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일어섰다.

그러나 나락호프의 폴을 막는데 너무 큰 힘을 쓴 탓일까? 'HAO'는 whyworks의 중견인 '냉면성인' 김제우의 카타리나에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은 끝에 패배, 결국 첫 철권7 국내대회의 우승은 whyworks의 차지가 되었다.

▲ 우승을 거둔 whyworks팀('나락호프' 주정웅, '무릎' 배재민, '냉면성인' 김제우)

20주년, 그리고 신작 철권7을 기념하는 이번 행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부터 경기의 마지막까지, 사실 너무나도 많은 요소를 포함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행사가 마무리될 시점에 와서는 달랐다. 행사 자체도 나름 즐거웠으나, 가장 중요한 '철권7'이라는 게임이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면서도, 진화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