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AOS. 다른 말로 MOBA라고도 하는 장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의 부록처럼 튀어나와, 어느새 현 게임시장의 '대세'로 자리매김한 장르다. 생각해보면 매력 포인트도 많다. 팀을 이뤄 한다는 점, 내가 활약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다는 점. AOS는 성공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계승한 장르다.

하지만 그도 PC에 한정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과거 PS1시절, 콘솔로 즐겼던 'KKND'는 너무나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마우스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익숙해진 내 손놀림을 패드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RTS, 그리고 RTS에서 파생된 장르는 키보드와 마우스에 최적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베인글로리'를 처음 보았을때 앞서 말했듯 '이게 재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AOS'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가 내 컨트롤과 캐릭터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대응성'이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캐릭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게임의 승패를 떠나 분노가 끓는다. 베인글로리는 AOS 게임이다. 그리고 입력장치는 바로 '터치패드'뿐이다.

GDC2015 취재차 방문한 샌프란시스코. 시 외곽으로 나선지 30분쯤 지나, '베인글로리'를 제작중인 '슈퍼이블메가콥스'에 도착했다. 궁금했다. 모바일게임의 '레드오션'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시장에, 야심차게 자체 서비스를 시작할 정도의 자신감이, 그리고 '베인글로리'가 갖고 있는 매력이 말이다.

▲ 한적한 'San Mateo'에 위치한 '슈퍼 이블 메가콥스(Super Evil Megacorps)'



아직은 어색한 '패드'의 터치감


응접실에 앉아 동료 기자와 한담을 나누던 중, COO인 '크리스찬 세거스트레일'이 직접 패드를 공수해 왔다. IOS에서만 구동되기 때문에 당연히 기종은 아이패드, 참고로 난 IOS는 전혀 쓸줄을 모른다. 그러면 뭐 어떤가 그냥 손가락으로 찍으면 그만이지.

▲ 물건너 온 우리를 위해 직접 패드를 공수해준 COO '크리스찬 세거스트레일'

일단 앉아서 혼자 튜토리얼을 진행해 보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패드가 큼지막해서 포인팅이 어렵지는 않다는 것. 게다가 이 게임, 생각보다 그래픽이 걸물이다. 모바일 게임이라고 우습게 보고 있었건만, 웬만한 PC게임 뺨치는 수준의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AOS게임에서 좋은 그래픽이 꼭 성공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준높은 컨트롤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게임일수록 화려함보단 직관성이 어필하기 마련이다.

캐릭터는 귀여웠다. 튜토리얼에서 고른 캐릭터는 '스카프(Skaarf)'라는 이름의 요정용(?)비스무레한 파충류였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베인글로리의 모든 캐릭터가 그렇지만 기본 스킬이 그간의 AOS와 다르게 오직 두 종류라는 것이다. 거기에 궁극기까지 합치면 총 세 종류. 얼핏 플레이의 다양성을 해칠까 우려되었지만, 실제 게임에 돌입하고 나니 그런 걱정은 금방 쓰잘데기없이 변했다.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게임의 특성 상, 스킬이 세개였으면 손가락이 모자랄뻔 했다.

▲ 솔직히 날개달린 애벌레같은 '스카프(Skaarf)'

스마트캐스팅? 그런거 없다. 한번에 스킬을 다다닥 눌러줄 약지, 중지도 아이패드 위에서는 임시 휴업이다. 동시입력을 배제한 베인글로리의 특성 상, 화면 중앙에 위치한 스킬 클릭 - 목표 클릭만 해도 손이 상당히 많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 상황에 스킬 네개? 어불성설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조금 할만해지겠지만, 그래도 키보드랑 마우스로 컨트롤하는 것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스킬을 간소화시킨게 더 나아 보이긴 했다.

문제는 스킬창이 화면 중앙에 떡하니 위치해있다는 것이다. 게임 중 가장 거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화면 앞으로 뭔가가 지나가는 것이다. 어릴적 콘솔게임을 할 때 동생이 TV앞으로 지나가면 짜증을 냈던 것도 그 이유다. 숨가쁜 컨트롤이 필요할땐 더 그렇다. 근데 베인글로리의 경우, 모바일이라는 특성 상 게임 중 '내 손'이 화면 위를 바쁘게 돌아다닌다. 결국 손이 화면을 가리는 꼴인데, 스킬을 쓸 때마다 손이 화면을 가려대면 정작 스킬을 써야 할 '급박한 순간'에 대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스킬창을 비롯한 UI를 화면 외곽에 돌아가며 배치하는게 어땠을까 싶었다.

▲ 컨트롤 중 손이 자꾸 화면을 가리게 되는 UI 구성

반면, 캐릭터의 디자인이나 스킬간의 연계 등은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딱 보면 '아 이녀석은 어딜 가면 되겠구나'하는 직관적인 비주얼 디자인도 인상깊었고, 첫 스킬로 기름을 뿌리고 두번째, 혹은 궁극기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 등의 스킬 연계성은 기존의 AOS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즉, 숙련도에 따라 같은 캐릭터라 해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의 생명을 늘릴 수 있는 좋은 요소다.


PC AOS에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 모바일에서?


가볍게 튜토리얼을 끝낸 후, 직접 온라인 상에서 다른 유저들과 대전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편이 좀 강하긴 했다. 프로 게임팀 '커스 게이밍' 출신의 직원 'George "ZEkent" LIU', 그리고 슈퍼이블메가콥스의 COO인 '크리스찬 세거스트레일'. 한명은 전직 프로요, 다른 하나는 게임을 만든 사람중 하나다. 생전 처음 게임을 해보는 내가 껴 있다고 해도 그다지 걱정은 안됐다.

그래도 조금은 긴장이 됐다. 괜히 몸 약한 대미지 딜러 하겠다고 까불거리다 한국 망신 다 시키긴 싫어서 '탱커'태그가 붙은 녀석 중 하나를 골랐다. 이쁘장하게 생겨서 흉악한 방패를 들고 있는 '캐서린'. 그래 너로 정했다.

▲ 진짜 솔직히 말하면 생긴거 보고 고른 '캐서린'

'베인글로리'의 맵은 상당히 단순했다. 보통 3개 라인이 주가 되는 타 AOS와 다르게 공격로는 오직 하나. 그리고 밑으로 넓게 펼쳐진 '정글'로 구성되는 단순한 구조다. 팀당 세 명의 인원이 들어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2라인 1정글, 혹은 1라인 2정글의 구도로 나뉘어진다. 내 영웅인 '캐서린'역시 정글러였지만, 괜히 정글에서 처형당해 나라망신을 시킬 수는 없었다. 초보니 초보답게 라인으로 가서 우리편을 도와야지. 어차피 정글은 '코쉬카(Koshka)'를 선택한 'ZEkent'가 갔으니 내 도움까진 필요 없을 듯 싶었다.

베인글로리의 '정글'은 '리그오브레전드'과 '히어로즈오브더스톰'의 미묘한 중간 정도에 있었다. 정글을 사냥했을 때, 단순히 골드와 경험치를 얻고 끝나지 않고, 굴복한 정글몹이 열심히 노동을 통해 아군 미니언을 강화시키게 된다. '정글'에서의 성과가 '정글러'의 활약이 없다 해도 직접적으로 라인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디자인이다. 이는 정글러의 존재감을 확실히 높여줄 뿐만 아니라, 게임 중에도 전략적으로 정글과 공격로에 대한 화력의 배분을 조절하게 만든다.

▲ 전장인 'Halcyon Fold'는 이렇게 생겼다.

플레이는 예상대로였다. 'ZEkent'의 코쉬카는 정글을 피바다로 만들며 상대 정글러를 산산히 뭉개놓았고, 이를 보다 못해 정글로 향한 다른 적까지 동시에 형상이 없는 땅으로 방출해버렸다. 정글이 쉽게 풀리니 우리 미니언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게임은 점점 더 쉬워졌다.

베인글로리는 3:3으로 팀이 배분된다. 이 말은 곧, 그간 흔히 보았던 5:5 AOS 게임에 비해 팀원 한 명의 무게감이 더욱 크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베인글로리에서는 다른 두 명이 열심히 삽을 푸고 있다 해도, 내 실력이 굉장히 좋다면 승리를 쟁취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상대적이긴 하지만, 기존의 5:5 AOS게임에서 '캐리하는 1인'이 나머지 네 명의 머리채를 끌어잡고 승리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게이머들에게 이는 반길만한 요소다. 설사 내가 그 네 명중 하나라 해도 한결 낫다. 잘하는 우리편이 끌고갈 사람이 나 말고 한명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 좌측부터 현직 프로, 개발사 CEO, COO, 그리고 게임기자...

그렇게 게임은 약 20분의 플레이타임 끝에 마무리되었다. 개발사 측에서 말한 예상 플레이시간 역시 20분. 모범적인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게임 내에서 내가 한 일은 적당히 보호막을 두르고 뛰어가서 적을 기절시킨게 끝이었지만, 이 나름대로도 재미가 있었다. 각자가 하는 일은 '일부'이지만, 팀원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을 이뤄내는 AOS에서의 '한타의 법칙'은 베인글로리 안에도 잘 살아있었다. 솔직히 놀라웠다. 모바일로 즐기는 게임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될 줄이야.


시작은 어려워도 '잠재력'은 충만한 게임


물론 아직 개선이 필요한 점은 존재한다. 비교적 적은 숫자의 영웅이라던지, 조금은 불편한 UI배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다르게,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가령 '터치패드'라는 입력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편 오오라', 그리고 IOS라는 한정적인 플랫폼 때문에 빚어질 안드로이드 유저들의 울부짖음까지 말이다.

▲ 정신없이 두들기다 보면 손이 아픈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베인글로리를 플레이 한다는 것은 재미있었다. 처음 말했다시피, 솔직히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던 내 의문은 몇 번의 플레이를 통해 옛 생각으로 남았다. PC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던 AOS 본연의 매력, 그리고 협동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모바일에서 느낀다는 것은 분명 신선한 감정이었다. 모바일로는 보이지 않는 고퀄리티의 그래픽도 그 느낌에 한몫을 더 했고 말이다.

야심차게 우리 앞에 나설 '베인글로리'. 분명 게임의 잠재력은 여태 보아온 그 어떤 모바일 게임보다도 뛰어났다. '자동사냥', '원터치 컨트롤'등 점점 간소화의 길로만 가는 모바일 게임 시장이지만, 고난도의 컨트롤과 긴 플레이타임을 원하는 '하드코어 게임'의 수요층은 분명 존재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베인글로리는 아마 그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좋은 게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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