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겠다.

'시드 마이어의 스타쉽'은 '문명'이나 '알파 센타우리'의 입문용에 가깝다. 턴제라고는 장기나 바둑 정도밖에 모르는 PC 전략 게임 초보라도 이 게임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시드 마이어 류 게임보다도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은 '스타쉽'이 내세우는, 아니 꼭 내세워야만 하는 장점이다. 왜냐면 그것이 이 게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14.99달러라는 스팀 구매가에서 스멀스멀 느낌이 올라오는데, 게임 설치 용량은 심증이 확증으로 변하는 데 일조한다. 639메가라니!? 학교 앞에서 CD 구워주던 형이 지금까지 장사하고 있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용량이 아닌가. 똑같이 우주를 소재로 한 '스타 시티즌'은 설치에 100기가가 필요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목을 사로잡는 시대에 CD 한 장짜리 게임이라니?

물론, 용량 대비 재미가 평행선을 그리지 않는다는 건 기자도 잘 안다. 하지만 문명5 데모보다도 작은 용량은 게임의 깊이에 대한 막연한 우려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이 걱정은 적중하고 말았다.



저용량의 이유는 스타쉽을 켜는 순간 알게 된다. 잡티 하나 없는 말끔한 로우 폴리곤이 플레이어를 반겨주니까. 꺼먹한 우주, 띄엄띄엄 배치된 함대와 행성은 절대 플레이어 컴퓨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 거의 고전 게임에 가까운 요구사양을 갖춘 덕에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했으며, 덕분에 PC 유저가 아이패드 버전 스타쉽으로 넘어갈 때 별다른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래픽 못지 않게 게임의 전반적인 깊이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교가 있다고는 하나 말 그대로 '싸울래 말래' 수준이며, 자원 체계 및 전투 시스템 역시 간소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턴제 전략 게임 초보자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문명' 시리즈에 익숙한 유저에게 만족감을 주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당장 '문명4' 유저들 일부가 '문명5'를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단조로워졌다'고 아쉬워한 것만 봐도.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게임의 수명이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함 파츠도 제법 다양하고 전투 시 지형적 변수가 있기는 하나, 이것이 전략적 갈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 전투, 외교, 지리적 이점, 불가사의 건설 타이밍 등 게임의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승리를 쟁취하도록 만들어진 '문명'과 비교되는 부분. 즉, 스타쉽은 문명이나 알파 센타우리처럼 수년, 혹은 몇 개월 이상 즐길 만한 게임은 아니다.

다만 전투의 재미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편의성을 비롯한 조작 면에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고, 무엇보다 걸출한 효과음이 전투에 맛을 더해준다. 단평 맨 아래 첨부한 전투 영상에서 느낄 수 있겠지만, '스타쉽'의 효과음은 좀 투박하긴 해도 박진감은 상당하다.



'스타쉽'은 문명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자원 시스템을 채용했지만, 이를 이용하여 얻게 되는 것의 7할 이상은 함대 '전투력'에 집중되어 있다. 이 부분은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또 다른 명작 '엑스컴'과 닮았다.

다른 승리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기한 것처럼 전투의 재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무엇보다 전투를 이용한 승리가 가장 효율적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승리 조건은 우주 점유율을 50% 이상 확보하는 것으로, 이는 상대 AI와의 직접 대전을 통해 빼앗아 오는 게 지름길이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당신이 이렇게 강한데, 안 싸우려고요?'라고 묻는 셈인데, 이게 그렇게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 특징.

게임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플레이어가 조작할 유닛이 적다'는 데 있다. '스타쉽'은 전략 모드와 전술 모드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데, 전술 모드에서는 여러 함선을 각자 조작할 수 있지만, 전략 모드에서는 오직 한 유닛만을 운영해야 한다. 정확히는 함대가 한 데 뭉쳐 한 유닛처럼 보이는 거지만.

'문명'은 일꾼, 병사, 영웅 등이 각자의 쓰임새를 가지며 플레이어에게 입체적인 사고를 요구했지만, '스타쉽'은 이러한 특징 덕분에 게임 중 만나게 되는 고민의 종류가 적은 편이다. 물론, 더 큰 맵에 게임 난이도를 높게 설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이동 노선이 행성에서 행성 간으로 규정되어 있어 극적인 차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이트 앤 매직 히어로즈'의 개념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스타쉽'은 PC 버전과 아이패드 버전이 함께 출시됐다. 인벤 모바일 웹진 팀의 이현수 기자가 아이패드 버전을 체험한 후 느낀 점을 아래 첨부한다.



아이패드 버전은 터치, 스와이프, 핀치아웃, 핀치인 등을 활용해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합니다. 또, '스타쉽'의 특징 중 하나인 '스페이스 오페디아'도 아이패드 버전에서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이스 오페디아는 쉽게 말해 도움말 개념입니다. PC와 비교하면 라이트한 유저가 많은 모바일 게임에 어울리는 상세한 도움말이 제공된다는 의미인데요. 이는, 안 그래도 낮은 '스타쉽'의 진입 장벽을 아예 완전히 허물어 버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혼자 하는 패키지 게임처럼 보이지만, 게임센터에서 제공하는 리더보드로 유저 간 순위를 경쟁할 수 있어 소셜성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31개의 도전과제를 제공, 이를 달성해나가는 즐거움은 덤입니다.

결과적으로 '스타쉽'의 라이트한 게임성은, 휴대할 수 있는 아이패드에서 더 큰 효율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한 내용만 보면 '스타쉽'은 '문명'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운그레이드가 아닌 시드 마이어 전략 세계의 입문용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깊이는 조금 얕지만, 특유의 몰입도는 여전했으니까.

머리를 쥐어짜지 않더라도 시드 마이어 풍 전략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큰 장점이다.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이냐고 물어본다면 어깨를 으쓱하겠지만, 적어도 자투리 시간에 알짜배기 재미를 주는 게임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인벤이 직접 플레이한 '스타쉽' 영상을 첨부했습니다.

[▲ '시드 마이어의 스타쉽' 플레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