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은 일찌감치 버렸다.


라고 말해도 별로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2007년 시작부터 추석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별 다른 흥분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게임불감증'하고는 좀 다르다. 옳지. '신작' 불감증이라는 게 맞겠다.


이 증상은 나 뿐만 아니라 다들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할 테니 별다른 추가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굳이 언급하게 된 이유는 최근 대거 등장한 요상한(?) 스크린샷들 때문이다. 왜? 그 녀석들이 불감증을 깨고 다시 한번 가슴을 두드리고 있어서 말이다. 왠지 물건 하나가 나온 것 같다는 유저의 댓글들은 악몽과도 같던 올해 초를 기억나게 하지만, 내가 봐도 그 포스가 심상치가 않다.





누구는 대박 느낌은 오는데 웹젠이라서 안된다고 한다. 또, 누구는 웹젠이니까 한국에서 이 정도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상반된 기대와 평가가 둘러싸고 있는 헉슬리. 헉슬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MMOFPS라는 타이틀까지 첨가해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든다.


궁금한 건 여러분도 그렇지만 나도 절대로 못 참는다. 바로, 서울 강남에 위치한 웹젠으로 뛰어가 강기종 PD를 만난 후에 예사롭지 않은 심문을 시작해 버렸다.



[ 헉슬리 개발을 총괄하는 강기종 PD ]




= 공개된 스크린샷이 여물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퀄리티가 대단히 높다. 일단, 헉슬리 개발 스펙부터 말해달라.

헉슬리 프로젝트의 전체 개발비는 130억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들어간 것이 100억 정도고 추가적으로 30억 정도가 더 들어갈 것 같다. 2004년 8월에 23명으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고, 현재는 개발팀 규모가 100명에 이른다.


= 헉슬리 개발팀에는 에픽사(Epic)사에서 유명한 개발자가 와서 일한다고 들었다. 그 소문이 정말인지?

처음에는 외국인 개발자가 3명 정도가 있었는데, 현재는 외부 개발팀의 10%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유명한 개발자라고 하면 '세드릭 피오렌티노'를 말하는 것 같다. 에픽에서 10년 동안 시니어 맵 디자이너로 에픽사의 대작 FPS '언리얼 토너먼트'에서 명성이 자자한 FACE 맵을 제작했었다.


웹젠 혹은 헉슬리 개발팀이 그를 일부러 모시고(?) 온 것은 아니고, 직접 와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헉슬리 개발 초반에 언리얼 엔진3 베타버전 때 라이센싱을 결정했고, 에픽 부사장인 마크레인에게 좋은 엔지니어 있으면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전부였다. 사실, 외국인 개발자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언어적, 문화적 격차를 해결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 현재 헉슬리의 완성도를 보면(기자는 스크린샷 뿐 아니라 실제 헉슬리 베타버전을 3시간 정도 플레이했었다.) 별다른 홍보나 대외활동 없이 잠수 중인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것 같다. 웹젠의 MMORPG SUN의 부진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나?

SUN과 관련 있다기 보다는 헉슬리가 워낙 새로운 게임이면서 혁신적인 개념을 담고 있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헉슬리 개발 초반은 혼란스러웠다. 개발을 시작한지 1년 반이 되어도 개발팀 내부에서는 어떤 게임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만큼 개별적인 시선으로는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 게임이었다.






= 그렇다면 강기종 PD는 헉슬리 개발에서 어떤 일을 주로 했나? 사실 국내에서는 PD의 의미가 회사 또는 게임마다 달라서 말이다.

당연히 전체적인 기획을 담당했다. 사실 내가 지휘하거나 지시하기 보다는 담당 또는 파트별로 결과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작업을 자율적으로 진행해 왔다.


= 최근 헬게이트나 타뷸라라사 같은 FPS 장르와 MMO 장르를 혼합한 형태의 게임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MMOFPS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내가 보기엔 헬게이트: 런던이나 타뷸라라사는 시작이 RPG다. 하지만 헉슬리는 FPS에서 시작했고 '더 재미있는' '더 미래지향적인' FPS는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다가 MMO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FPS에 한정했는데, 그 때가 되니 아쉽기도 하더라. 개발 중에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갔다.






= 언리얼3 엔진을 보유한 에픽사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다고 들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작년 E3에서 처음으로 헉슬리 실시간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 방법이 신선하다며 에픽사 직원들이 너무 좋아했다. "야~ 우리 엔진으로 이런 것까지 만드네." 라면서. (웃음) 아직 국내는 많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에픽사 등 파트너 관계를 맺은 외국 회사들은 직접 와서 구경하고 그래픽이 미국풍도 아니고 일본풍도 아닌 것 같다며 개성적인 면에 대해서 많이 칭찬하는 편이다.


= 그래픽 디자인 쪽은 어떻게 꾸려졌나?

XBOX용으로 개발된 국내 게임 '킹덤 언더 파이어 더 크루세이더아트'에 참여한 박정식 아트디렉터를 비롯해서 게임 뿐 아니라 영화, CG 다양한 방면의 인재들로 구성되었다.



= 문뜩 드는 생각이지만, 너무 다방면이라 처음에는 많이 다퉜을 것 같다.


실제로 처음에는 이견들이 많았다. 특히나, 하이퍼 기반 게임이기 때문에 각 방면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조율하기가 힘들었다. 예를 들어, 보통 게임에서 캐릭터 하나당 150개의 폴리곤을 사용하는데, 왜 헉슬리는 백만개 정도의 폴리곤을 사용하냐에 관한 다양하고 수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 헉슬리는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 해보니 물리엔진도 상당한 듯 하더라.

기본적인 언리얼 엔진에 포함되어 있는 노보덱스(Novodex)를 사용했다. 차량과 캐릭터 충돌 부분에서 사용했으며,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아니고 최대한 리얼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정도까지 구현했다.


= 기자가 보유한 MMOFPS의 짧은 개념 가지고는 헉슬리의 전체적인 게임 진행방식이 도저히 예측 불가다. 만레벨 개념도 있나?

일단 초반은 나뉠 것 같다. 퀘스트 파밍과 PvP로 말이다. 계속 나뉘어서 레벨업도 하고 장비도 갖추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 시점인 레벨 30에서는 모일 것 같다. 그 이후는 차량 라이센스를 다량 확보한 사람, 배틀존에서 지휘를 잘 하는 사람, 등 꼭 FPS를 못하더라도 특정 성과를 낼 수 있는 유닛들이 대거 포함된 클랜전 혹은 공성전이 주가 될 것 같다.


라이센스 포인트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그 유저가 하게 될 일이 달라진다. 만레벨은 일단 50레벨로 정해 두었다.






= FPS에서 공성전이라니 선뜻 이해가 안된다.

일반 RPG에서의 공성과는 약간 다르다. 즉, 맵 개념의 공성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플레이의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대도시 앞 바다에 있는 섬을 두고 클랜간에 공성전을 펼치는 거다. 전투에 이겨 섬을 획득하게 되면, 클랜은 자원을 얻게 되며, 이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섬에 헬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도 돈이 좀 들겠지만 말이다.



= 취향에 따라서 한쪽에 올인하는 유저들도 많을텐데 PVE, PVP의 각 장단점은 없나?


어떤 방식으로 해도 캐릭터를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다. 자기가 잘하는 방향에 맞추면 된다. PVE는 장비 확보가 쉬울 것이고, PvP는 실전감각을 익힐 수 있다는 차이 정도다.






= 국내 대부분의 유저들이 즐기고 있는 기존 밀리터리 FPS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캐릭터 크기, 능력 그리고 스킬과 레벨차로 인한 불균형을 미리 걱정하는 유저들이 많다. 하이퍼라는 타이틀이 생소하지는 않을까?

스포츠 같은 FPS를 추구하지 않았다. 헉슬리의 세계에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물론, 전투에서의 승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투가 '메인테마'이긴 하다.


개발팀 자체가 남 못지 않은 FPS 하드코어 유저기 때문에, 무작정 만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해서 헉슬리 디자인을 짰다. 기존 FPS를 즐기던 유저들은 배틀존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즐기면 된다. 전투만 볼 때는 일반 FPS와 유사하다.


사실 고민도 많이 됐다. 한국에는 만든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돌려보니 그만큼 유니크한 장점도 있겠더라. 레벨 디자이너인 세드릭의 무수한 고민이 그대로 레벨에 반영된 만큼 기존 FPS 유저들도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전장을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1차 CBT 배틀존 7개, 퀘스트는 50개 정도를 선보인다고 했다. 상용화 시점은 어떤가?

상용화 시점에는 배틀존 50개에 퀘스트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 현재 개발 완료된 배틀존만 40개가 된다. 1차 CBT에서는 테스트를 위해서 7개만 공개하는 것이다.


또한 1차 CBT에는 1레벨 뿐 아니라 19레벨 캐릭터가 지급될 것이다. 21레벨이 되면 새로운 클래스가 생기는데, 그 것까지 체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 헉슬리에서 나는 탈 것이 구현된다는데, 전투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이미 구현은 되어 있다. (웃음) 4인용 캐리어는 돌아가야 할 길을 짧은 시간에 급습하게 해줄 것이며, 1인용 파이터는 매복했다가 순간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역할 쯤을 하게 될 것이다.


= 정말 솔직히 말해달라. 정말 100:100 전투가 렉없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주위에서 주로 오해하는 것처럼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4인 파티 개념인 스쿼드도 100:100 전투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물론, 한 화면에 200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전투는 만들지 않겠지만 넓은 배틀존에서 각자의 할 일을 부여 받는 형태가 될 것이다. 스펙타클한 요소 또한 넣을 생각이다.


= FPS 뿐 아니라 모든 대전 게임에서 어뷰징은 꼭 따라다니더라.

일단, 캐릭터 이름이 보이지 않고, 랜덤 입장 방식이기 때문에 쉽게 어뷰징은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치를 고려 중이다.






= 현재 헉슬리는 FPS적인 측면이 RPG보다 주를 이룬다. 상용화 이후에는 어떤 요소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상용화 이후에는 아무래도 RPG 같다. 월드를 확장하고 이벤트, 세계관을 넓혀가는. 물론 FPS도 끊임없이 추가되겠지만.


= 국내 시장은 밀리터리 FPS가 일색이고, 올 해 FPS 게임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어가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국내 FPS 시장에 대한 견해를 말해본다면?

똑 같은 게임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 자체가 좀 아니다 싶다. 유저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말이다. 개발자의 1차 목표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지만, 2차 목표는 실패하지 않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밖에 없었다.


= 새로운 시도인 만큼 회사와의 마찰도 많았을 듯 하다.

개발팀 전체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헉슬리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마음 놓고 혁신적인 것을 개발하라고 지원해줬다. 물론, 글로벌 전략을 염두에 두고. 운이 좋은 케이스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헉슬리를 기다리고, 또 우려하는 유저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헉슬리를 만든 나 조차도 우려가 된다. 개발하다 보면 원하는 대로 안될 때가 많더라. 내가 봐도 솔직히 부족하다. 하지만 게임 그 자체가 재미있다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게임을 만든다는 목표로 지금까지 왔다. 많이 기대해달라.






돌아오는 길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


사실이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거나 걱정은 아니었다. 솔직히, 기자는 헉슬리 베타버전을 이전에 몇 시간 정도 플레이해봤기 때문에, 헉슬리의 현재 완성도와 기본적인 재미를 알고 있다. 그래서 국내 게임계와 관련한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 생긴거다.


하이퍼 FPS라는 생소한 장르에 과연 유저들이 호응하고, 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갈까? 이 것은 온라인 FPS를 제작하는 대부분 국내 개발사들의 바람이기도 하며, 새로운 세계를 진정으로 원하는 유저들도 갈망하는 바다.


한가지, 더 생각나는 것은 "드디어 나도 외국 친구들에게 추천할만한 국산 게임이 탄생했구나."라는 거다. 그 생각과 동시에 올해의 악몽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잊혀져 버렸다.


MMO + FPS 헉슬리,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