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었다. 나름 재미있던 레벨업, 레벨업보다 힘들던 접속, 더 높은 공격력의 무기를 얻기 위한 몸부림, 경매장 상시 시찰, 불지옥 말벌의 공포, 그리고 내 캐릭터는 왜 약한가에 대한 끝없는 고찰... 2012년 게임업계를 강타한 '디아블로3'는 등장과 동시에 폭풍 같은 반향을 끌고 왔다. 디아블로2의 향수에 촉촉히 젖어 있던 '연식 좀 된' 게이머들의 마음을 채워주기에는 이만한 녀석도 없었다.

그러나 출시 이후, 모든 능력치가 랜덤으로 튀어나오는 드랍 테이블의 압박 속에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더 높은 단계에 도전하기 위해 경매장을 주시하던 이들도 지쳐갔고, 그보다 더 전에, '왜 이걸 굳이 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심이 생겨났다. '디아블로3'의 미덕은 빠르고 통쾌하게 악마를 쓸어나가는 그 쾌감에 있었다. 어디까지나 더 좋은 아이템은 그걸 이루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었고. 하지만 어느새 그 관계가 도치되었다. 그러니 지루해질 수밖에.

블리자드 측도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2년이 지난,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2014년 3월 25일, 디아블로3의 확장팩인 '영혼을 거두는 자'와 함께 디아블로3는 말 그대로 대격변을 맞이했다. 직업에 따라 아이템의 능력치가 정해지는 '스마트 드랍',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 '모험 모드'와 '차원 균열', 그리고 경매장의 과감한 삭제로 무장한 디아블로3는 더 이상 유저들이 말하던 '노답 노가다 게임'이 아니었다.

▲ '대격변'을 불러온 '영혼을 거두는 자'


이후 디아블로3는 한 번의 대규모 패치를 진행했고, 현재에 이르러 두 번째 대규모 패치인 2.2.0 패치를 몇 달 앞으로 두고 있다. GDC2015가 진행되던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조금 걸어가 도착한 세인트 레기스 호텔에서 블리자드 본사의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2.2.0에서 달라질 디아블로3의 모습들을 살펴보고, 몇몇 질문을 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 매튜 버거(Matthew Berger)


디아블로3의 디자이너 중 한명이자, 콘솔 판인 '대악마판'의 이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매튜 버거'는 굉장히 유쾌한 남자였다. 대화 도중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시연 중간에도 짓궂은 농담을 던지며 우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얼굴을 오래 볼 수는 없었다. 그가 앉아 있는 자리 앞에 놓인 모니터에, 상상 이상의 장면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한 수도사였다. 매튜가 가장 좋아한다는 여성 수도사의 모습인데, 중요한 건 무기였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은 무기를 들고 있는 수도사의 모습. 내가 무기에 관심을 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오 맞아요! 파멸의 인도자. 알아보는 분이 있었네요. 우리 게임을 많이 즐기는군요?" 그래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알렉산드로스 모그레인'의 손에 들려 수많은 스컬지를 결딴내고, 끝내 타락했다가 '티리온 폴드링'에 의해 다시 빛을 찾은 그 무기다.

▲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오리지널 시절 '낙스라마스'에서 얻을 수 있었던 '타락한 파멸의 인도자'


사실 전에도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무기가 디아블로3에 등장한 적은 있었다. 이름 하야 우레 폭풍.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3를 모두 즐긴 플레이어들에게는 친숙함을, 구하고자 하는 자들에겐 절망을 안겨주었던 그 칼 맞다. 우레 폭풍만 해도 좋았건만 파멸의 인도자라니. 블리자드 게임 팬으로서 감격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매튜는 수도사와 야만용사의 새로운 세트 효과를 보여주었다. 최근 손오공 세트에 조금 밀리는 감이 있었던 전통의 세트 '인나' 세트를 찬 수도사는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반달 차기와 칠면 공격을 쓸 때마다 함께 스킬을 써주는 벗들이라니. 멋지기 이를 데 없었다.

▲ 신비주의를 깨고 대놓고 세진 '신비한 벗'


야만용사는 또 어떠한가. 레코르 쿵쿵이로 가득한 야만용사의 옷장에 '불멸왕'이라는 전통의 세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선조, 그리고 그들이 한 대씩 때릴 때마다 줄어드는 광전사의 진노와 선조의 귀환의 쿨다운. 이제 대세는 패거리의 시대다. 자동 쇠뇌 덕분에 남들 한 대 때릴 때 넉 대를 때리던 악마 사냥꾼 부럽지 않은 변화였다.

짧은 시연이 마무리된 후, 우리는 차후 패치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최대한 간추려서 궁금한 점을 꼽아 보았다.


Q. 2.2.0에서 유저들이 마주하게 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일단 15종 이상의 전설 아이템을 추가했다. 일부는 아예 새로 등장하고, 또 일부는 기존의 전설 아이템이 바뀌는 식이다. 우리는 유저가 땅에 떨어지는 주황색 별을 보면서, "아 또 다른 주황색 똥이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아이템들에도 변화를 주었다. 예를 들어 수도사의 '인나의 진언' 세트를 보면, 기존에는 다른 세트 아이템과 섞어 쓰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인나 세트만 가지고도 굉장히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다.

▲ 아. 또 다른 주황색 똥이군...


동시에 우리는 다 같이 새로운 전설 아이템으로 어떤 것을 추가하면 좋을지 구상했다. 우리 중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즐긴 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들 중 '파멸의 인도자'를 손에 쥐었던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때문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보지 못한 파멸의 인도자를 디아블로3에서라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Q. 다른 블리자드 IP의 아이템들이 디아블로3에 구현되는 모습을 더 볼 수 있는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생각은 하고 있다. 반응이 좋으면 더 추가할 생각이 있다. 여러분의 많은 피드백이 있었으면 좋겠다.

▲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따온 '우레폭풍'



Q. 매번 아이템이 변경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디아블로3에는 암묵적인 '정답'이 있다. 다양한 아이템이 존재하지만, 고단 균열이나 최상위 콘텐츠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세팅이 필요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또한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최종 테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할 예정이며, 기존에 쓰이던 세팅들 또한 밸런스 상으로 밀리지 않고 사용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추가될 야만용사의 '불멸왕'세팅은 굉장히 강력하지만, 기존에 쓰이던 레코르 돌진 세팅도 선택지가 될 수 있으며, 루트 신발을 사용하는 '대지' 세트를 선택할 수도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Q. 악마 사냥꾼의 '자동 쇠뇌'는 항상 게이머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소재 중 하나다. 내가 직접 조작하지 않고, 알아서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입히는 설치형 기술(ex : '자동 쇠뇌', 마법사의 '히드라')이 다른 세팅에 비해 위험 부담이 적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관찰하고 있다.

일단 우리가 주력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 유저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길 '선택지'에 대한 폭을 넓히는 것이다. '자동 쇠뇌'를 이용한 사냥이 따분하고 너무 쉽다고 느껴진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수호물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존재한다. 이 역시 유저들의 의견이며, 우리도 일부 이해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동 쇠뇌나 수호물들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을 갖춘 몬스터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저들이 자동 사냥 세팅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들을 벌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중간에 다양한 위험 요소를 포함해 난이도를 조금 높일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적은 유저들이 더욱 신이 나게 악마들을 사냥하고, 썰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저들의 아이템 성향을 편향된 쪽으로 강요하고 싶지 않다. 최대한 자유롭게 만들 생각이다.

▲ 다양한 장치를 통해 '자동화 사냥'의 난이도를 높일 예정



Q. 현재 약체로 꼽히는 직업들이 바로 '마법사'와 부두술사'다. 부두술사의 경우 '대재앙의 부두술'을 비롯한 각종 버프 덕에 고단에서 한 자리 정도는 잡을 수 있지만, 마법사는 최상위 콘텐츠의 진입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질문은 이거다. '마법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당연히 바뀔 예정이다. 바뀌게 될 아이템들을 살펴보면, 마법사가 다시 힘을 얻게 되리란 걸 알 수 있다. 물론 마법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들의 아이템도 변화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템을 주는 것도 또 다른 상향의 방법이다.

또한, 같은 사냥 효율을 보이지 못하는 특정 직업에 대해서도 또 다른 보상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각각의 직업들이,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플레이를 하게끔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 그래!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