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콘솔 시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PS Vita(이하 PS비타) 타이틀의 한국어화는 특별한 이슈였다. 굵직한 대작 위주로 로컬라이징이 이루어져 왔으며, 다소 마이너한 장르나 국내에서 크게 유명하지 않은 IP 타이틀은 한국어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PS4 발매 이후 국내 콘솔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지금껏 비주류로 분류됐던 장르나 IP가 여러 업체를 통해 한국어화로 정식 발매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특히 예전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호러 장르에 대한 현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바이오하자드 급의 타이틀은 꾸준히 언어 대응이 됐지만, 국내에서 인지도가 다소 낮은 IP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디지털터치가 메이지스社의 '장기'자랑 타이틀로 불리는 '콥스파티'의 한국어화 출시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트라게임즈는 니혼이치의 호러 어드벤처인 '신 하야리가미'를 오는 30일 선보인다.

니혼이치 소프트웨어의 호러 어드벤처인 '신 하야리가미'는 하야리가미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2004년 발매된 '하야리가미 경시청괴이사건파일'로 시작해, '하야리가미2', '하야리가미3'를 차례로 출시하면서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최신작인 '신 하야리가미'는 지난 8월 일본서 출시되었으며, 유저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2009년 발매된 '하야리가미3 경시청괴이사건파일' 이후 5년간의 침묵을 깨고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온 '신 하야리가미'는 시리즈 타이틀 중 최초로 한국어화 되어 국내에 정식 발매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야리가미(流行神).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이 단어는 일본어로 유행신을 뜻한다. 제목에서 말하듯 하야리가미에서는 시리즈 대대로 '도시 괴담'을 메인 테마로 삼고 있다. 이번 타이틀에서는 도시에 퍼지는 괴담을 소재로 삼은 사건과 각종 엽기적인 수법의 범행들이 펼쳐지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수경라과의 수사과정이 담겨 있다.



■ 스토리: "너의 눈을 내놔라" 블라인드맨의 정체는?



이 게임의 주인공인 '호죠 사키'는 25살의 여형사이며, S현경 C마을 소속으로 특수경라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양쪽 눈이 커다란 가위로 꿰뚫려 있는 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전라로 발견된 그는 어떠한 유류품도 없었으며 치아는 하나도 남김 없이 뽑힌 상태였다.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용의자로 한 남자가 지목된다. 그는 민속학과 도시 괴담을 연구하던 전직 대학교수 '세키모토 소지로'로, 자신의 연구실에 소속된 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체포 이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며 묵비권을 행사하던 그는 주인공을 만나면서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 자료를 훑어보고는 "블라인드맨의 소행"이라고 답한다.


블라인드맨은 도시 괴담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로, 늦은 밤 홀로 걷고 있는 사람을 잡아 두 눈을 가위로 꿰뚫는다. 눈을 빼앗아 가는 범행 수법의 특이성으로 세간에서는 '빛을 빼앗은 자'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의 피해자 모두 이러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블라인드맨은 도시 괴담에나 나오는 가상의 인물. 실존하는 이가 아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던 주인공 일행에게 세키모토 교수는 "자신이 블라인드맨 괴담을 만들었으며, 시나리오대로 범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누군가 괴담을 이용해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기는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판단한 주인공 일행은 세키모토 교수의 증언을 토대로 현장 수색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신 하야리가미'의 첫 시나리오인 '블라인드맨' 편의 이야기의 막이 오른다.



■ 게임 시스템: 옴니버스식 전개, 커리지 포인트 그리고 '라이어즈 아트'


하야리가미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옴니버스 방식을 채택해왔다. 그러나 이번 '신 하야리가미'에서는 1개의 메인 스토리가 있고, 플레이 방식에 따라 여러 개의 이야기로 파생되는 식으로 구성됐다. 이야기에 따라 다른 사건이 발생하며, 서로 다른 공포가 연출된다.

게임 진행은 주인공의 독백, 그리고 등장인물과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특정 구간에서 대답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 창이 뜨며, 2개 혹은 3개의 선택지 중 최적의 답변으로 판단되는 것을 눌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에 따라 이후의 스토리 전개가 달라진다.

이번 타이틀에서 핵심 요소는 시리즈 처음으로 도입된 '라이어즈 아트'이다. '라이어즈 아트'는 주인공 사키와 상대와의 1:1 대화로, 일반적인 선택과는 다르게 '라이어즈 아트'에서는 시간제한이 존재한다.


질문을 듣고 나면 선택 답변이 뜨며, 약 5초 정도의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한다. 시간 내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 '무응답'으로 판별된다. 주인공의 특기인 거짓말 또는 연기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빼내거나 그 자리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

라이어즈 아트의 선택에 따라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 '신뢰'로 돌아가기도 하고, '의심'으로 치닫기도 한다. 라이어즈 아트가 발동되면 수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질문에 답해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커리지 포인트'의 회복량이 달라진다.

'커리지 포인트(Courage Meter)'는 제시되는 대답 중 별도로 표시된 항목을 선택할 때 소진되는 포인트이다. 해당 포인트를 사용한 선택으로만 볼 수 있는 전개나 결말도 존재한다. 총 7개까지 축적되며, 0이 되면 포인트 선택지는 채택할 수 없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라이어즈 아트'의 평가에 따라 회복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용기 포인트'를 쓰는 선택지가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자 역시 플레이를 하면서 '형사라면 자고로 용기가 있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선택지보다는 커리지 포인트 선택지를 택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용기있는 선택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상한 소리가 났지만, 용기를 내서 '숨지않고 걸어 나온다'는 항목을 선택했고, 바로 게임오버 화면을 띄웠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판단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추리로직'은 사건의 전체 흐름을 정리하는 로직의 도식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대화 중간마다 초록색 단어가 뜨는데,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이를 이용해 인간관계나 사건의 개요를 상관도를 사용해 논리적으로 표시해 둘 수 있다.

일일이 어떤 키워드를 어디에 써넣느냐에 따라 이후의 전개가 달라지기도 하니 명확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만 체크하는 것이 좋다.

게임 내용이 사건과 범죄, 수사와 판결과 관련되어 있다 보니 가끔 전문용어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신 하야리가미'에는 'F.O.A.F 데이터베이스'라는 별도 코너가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 버튼을 눌러 용어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게임 내에는 '분기 트리'가 존재해 지금까지 진행한 스토리의 루트를 트리 형태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엔딩을 본 이후에 다시 특정 지점으로 돌아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를 확인하여 새로운 스토리를 즐기거나 루트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






■ 신 하야리가미: 아쉬운 점은 보이스 미지원, 그러나 이를 보완하는 게임 시스템


'신 하야리가미'는 시리즈 최초 한국어화 타이틀인 만큼 인트라게임즈에서 대사 번역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사량이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범죄나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자칫 딱딱한 내용으로 표현될 수도 있었을 법한 텍스트를 쉽게 풀어썼다. 그래서 술술 읽으면서 텍스트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요소는 '사운드'였다. 썩은 시체에서 날아다니는 벌레 소리나 무전기 소리, 숲 속 배경음, 화이트보드에 끄적이는 소리 등 현장 사운드가 상당히 사실적이다. 텍스트로만 보면 밋밋할 수도 있는 배경묘사에 리얼한 소리를 가미해 현장감을 더했다.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BGM 역시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일등 공신 중 하나다.

특히 '신 하야리가미'에는 '피(Blood)'에 얽힌 사운드가 굉장히 다양하다. 피에 관련된 효과음만 40종 이상이 수록되어 있고, 다른 소리들과 어우러지면서 더욱 진한 공포감을 맛볼 수 있다. 게임 전반에 걸쳐 가미되어 있는 환경 사운드와 공포감을 자극하는 배경음악은 일품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보이스 지원이 없다는 부분이었다. 다른 장르보다 텍스트 양이 많은 타이틀이기에 보이스 지원이 더욱 절실했는 지도 모른다. 특히, 대사를 소리로 듣는 걸 좋아하는 유저로써 더욱 아쉽게 다가왔다.


특히 일부 장면에서는 환경 사운드도 없고 BGM도 없어 적막만이 흐르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이 이어질 때는 게임 진행 자체가 루즈해지면서 지루하기까지 했다. 소리가 일절 없어 텍스트에만 의존해 게임에 몰입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구간이 길어질 수록 게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부분을 잡아주는 요인이 있으니 바로 '라이어즈 아트'였다. 5초라는 짧은 시간 내에 3개의 선택지를 읽고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 전개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다. 집중해서 몰입하다보면 루즈해졌던 게임 흐름이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라이어즈 아트'는 루즈해질 수 있는 게임의 흐름을 스피디한 상태로 잡아주는 '신 하야리가미'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 총평: '공포'라는 감정에 충실하게 다가간 수작



'신 하야리가미'는 순수하게 '공포'라는 감정에 중점을 둔 타이틀이다. 군더더기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감동 요소는 배제됐다. 시나리오와 그래픽, 사운드, 연출 등 모든 부분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도록 구현됐다.

누구나 학생 시절 한 번쯤 들어봤을법한 '도시괴담'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어, 하야리가미 시리즈를 해보지 않은 유저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새로운 등장인물과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도 기존 시리즈의 테마를 그대로 답습해 기존 하야리가미 유저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보이스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 하야리가미'의 특징이자 강점인 환경 효과음과 BGM조차 나오지 않는 구간에서는 게임이 아니라 비타 기기로 소설을 읽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가 루즈해지고 몰입도가 다소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하야리가미'는 공포 어드벤처로서의 기본 법칙을 충실히 따른 타이틀이다. 현장감 있는 사운드와 배경음은 플레이어에게 깊은 공포감을 선사하며 몰입도 역시 한층 끌어올려 준다.

'신 하야리가미'에서는 도시괴담의 괴물과 엽기스러운 사건, 저주와 관련된 일화, 감염과 감금, 고문 등 현대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소재를 채택해 쉽게 공감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엄청난 대작은 아니라도 '공포'라는 감정에 충실하게 다가간 수작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