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T1(이하 SKT)과 CJ 엔투스 간의 플레이오프가 끝났다. 경기는 롤챔스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최고의 경기를 본 팬들은 만족했다. 흡사, 최종전에 어울릴 법한 최고의 경기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가 끝이 아니다. 왕좌의 주인을 가릴 최후의 승부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경기는 5월 2일, 서울 코엑스에서 펼쳐진다.

결승 대진은 흥미롭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1라운드 전승을 달성한 GE 타이거즈(이하 GE)와, '패패승승승'이라는 드라마틱한 스코어로 결승에 진출한 SKT T1이 맞붙는다. 양 팀 모두 최고의 팀이기에, 기량의 우열을 가리긴 힘들다. 어느 한 곳이 기량 차이로 무너진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결승전의 핵심은 양 팀 정글러의 어깨에 달려있다. 용호상박의 승부가 예측되는 만큼, 초반부터 변수를 만드는 포지션인 정글러의 역할이 크다. 그리고 게임의 판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하며, 양 팀 모두 잘 다루는 챔피언이 존재한다. 결승전 핵심 카드로 떠오른 챔피언, 렉사이다.


▲ 스프링 시즌 결승전 핵심 카드, 렉사이!



■ 1티어를 넘어 0티어로 올라선 챔피언, 렉사이

렉사이는 성장했을 때 압도적인 캐리력을 보여주는 챔피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1급 이니시에이팅 스킬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렉사이가 가진 뛰어난 유틸성은 보통을 넘어섰다. '다재다능'이라는 말은 렉사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스킬 하나하나마다 유용한 기능들이 깨알같이 붙어있다.

렉사이는 '진동 감지'를 통해 시야 밖에 있는 상대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땅굴을 통해 빠른 기동력을 갖춘 것은 물론, 창의적인 루트의 갱킹까지 설계할 수 있다. 그렇다고 CC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광역 에어본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대인전 능력은 덤이다. 그야말로 빈틈이 없는 챔피언이다.

장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렉사이는 프로 레벨에서 가장 중요한 '운영 능력'을 갖춘 챔피언이다. 렉사이의 궁극기는 땅굴이 있는 지점으로 순간 이동을 가능케 한다. 궁극기를 통해 스플릿 운영을 펼치는 도중에도 교전 지역에 합류할 수 있다. 소환사 주문 '순간 이동'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라인 푸시 능력과 대인전 능력이 뛰어난 렉사이기에 궁극기가 지닌 가치는 더욱 커진다.

▲ 탱킹, 기동성, 운영, CC! 다재다능은 렉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영상 캡쳐: 온게임넷)


렉사이의 장점인 높은 유틸성과 운영 능력은 프로 무대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렉사이는 롤챔스에서 OP 챔피언 성적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렉사이가 리그에 합류했을 당시, 렉사이는 너무나도 강력하여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언제나 밴 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프되어 렉사이가 등장하게 되었을 때, 렉사이는 자신의 강력함을 롤챔스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었다. 렉사이는 스프링 시즌 동안 전체 챔피언 밴픽률 2위, 밴픽률 10권 내 챔피언 중 승률 1위를 기록한다.

'밴하지 않으면 가져오고, 그것은 대부분 승리로 이어진다' OP 챔피언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렉사이의 이야기다. 이런 렉사이는 뛰어난 챔피언 성능만으로도 롤챔스 결승전의 핵심 카드가 되기 충분하다.

▲ 통계가 증명하는 렉사이의 OP성



■ 리와 벵기, 렉사이의 달인이 맞붙는다!

렉사이가 결승전 핵심 카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단순히 렉사이가 좋은 챔피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GE의 정글러 '리' 이호진과 SKT의 정글러 '벵기' 배성웅 모두 렉사이의 달인이다. 사실 양 팀 모두 정규 시즌 1, 2위를 기록한 만큼, 대부분의 챔피언 성적이 좋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두 선수가 렉사이로 올린 호성적은 유난히 눈에 띈다.

리는 정규 시즌 내내 렉사이를 활용해왔다. 리는 현재 롤챔스에서 가장 완성된 정글러에 가까운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가 보여준 전반기 활약은 대단했다. 롤챔스의 전반기는 리 신과 자르반 4세가 지배했는데, 리는 그 두 챔피언을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능숙하게 다루었다.

렉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렉사이를 꺼내 들었고, 대부분의 경기에서 승리한다. 2라운드에서 KT 롤스터와 맞붙기 전까지, 리는 렉사이로 5연승을 거두었다.


▲ 리는 렉사이를 가장 잘 다루는 선수 중 하나다. (영상 캡쳐: 온게임넷)


벵기의 렉사이는 말이 필요 없다. SKT T1이 만든 플레이오프의 기적은 벵기의 렉사이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벵기는 렉사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오프에서 벵기가 꺼낸 렉사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좋은 카드를 풀리그 기간 꺼내지 않았던 것은, 플레이오프에서 사용하기 위해 숨겨놓았다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경기 내용도 좋았다. 벵기가 기록한 렉사이의 KDA는 8.4. '안죽으면서 다 죽였다'라는 말이다. 실제 벵기는 게임 초반부터 갱킹을 통해 라인전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한타, 운영면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벵기가 원래 잘 다루었던 챔피언인 자르반 4세, 누누와 더불어 렉사이라는 선택지가 추가되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 벵기가 숨겨두었던 깜짝 카드, 렉사이 (영상 출처: 온게임넷)


이렇듯 리와 벵기, 두 선수 모두 국내 최고의 렉사이 플레이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보여준 것이 있는 만큼, 양 팀 모두 렉사이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이다. '필승 카드' 렉사이 쟁탈전은 결승 밴픽전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필승 카드' 렉사이. 결승 밴픽전의 핵심 카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렉사이를 둘러싼 밴픽전의 변수, '톰' 임재현

최강의 정글 챔피언 렉사이. 그리고 양 팀 모두 렉사이를 잘 다루는 현 상황. 이 상황은 양 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엔 큰 변수가 하나 더 남아있다. 바로 SKT T1의 또 한명의 정글러, '톰' 임재현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톰은 SKT T1의 후반기 상승세를 이끌었던 선수다. 그의 기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SKT T1이 보여준 놀라운 후반 뒷심은 톰의 합류가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톰은 GE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GE 입장에선 어쩌면 벵기보다 더 경계해야할 선수가 톰이다.


▲ 톰의 출전 가능성은 GE의 입장에선 골치덩어리다.


톰은 현 대세 정글러라고 할 수 있는 세주아니와 누누를 활용하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렉사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벵기와는 사뭇 다른 챔피언 풀을 가진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점은 GE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

렉사이는 분명 매력적인 카드다. 그렇기 때문에 GE 입장에선 렉사이를 무조건 밴할 수도 없다. 게다가 풀렸을 경우 반드시 가져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벵기가 선점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여기까지 생각했는데, 벵기가 아닌 톰이 출전한다면? 그리고 톰이 결승전을 위해 렉사이를 준비해왔다면? 경우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게 된다. 결승을 준비하는 GE의 입장에선, 이 모든 것을 대비해야하는 상황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조건적으로 GE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는 볼 수 없다. SKT T1이 리그 1위로 결승전에 선착하여 GE를 기다리는 입장이라면 이 점은 SKT T1에게 있어 엄청난 무기가 된다. 하지만 SKT T1은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자신들의 패를 GE에 공개한 입장이다. 수많은 변수에 하나하나 대응하기에 앞서, 상대보다 한 발 빠르게 움직이고 보다 강력한 새카드를 준비한다면 SKT T1은 상상치도 못한 불의의 일격을 허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고의 정글 챔피언 렉사이와 이 구도를 흔드는 톰의 존재. 그리고 공개된 SKT T1의 손 패. 결승전의 밴픽 단계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 치열한 두뇌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결승에 진출한 양 팀은 이 핫한 챔피언 렉사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고 결승전에 임할까? 결승전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 렉사이, 그리고 톰. 결승전의 밴픽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영상 캡쳐: 온게임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