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5일부터 시작된 알파 테스트를 통해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이 국내에 서비스되기 시작한 지 약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밸런스 조정에 주안점을 둔 패치가 네 차례 있었는데요, 패치마다 영웅 능력치 조정 및 특성 재편이 이루어져 주류 영웅의 자리가 끊임없이 바뀌어 왔습니다.

특히 국내외의 여러 히어로즈 대회에서는 이러한 패치에 빠르게 대응하여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영웅을 과감하게 픽하거나 전혀 새로운 조합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밸런스 패치 이후의 대회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어떤 픽과 조합을 보여줄지에 관심이 쏠리게 됐죠.


▲ 국내에서 현재 유행하는, 혹은 유행 예정인 조합들을 엿볼 수 있는 히어로즈 대회


가장 먼저 떠오른 영웅은 소위 트롤픽이라고 불리던 일리단이었습니다. 노바, 타이커스 등의 강력했던 암살자들이 하향되면서, 효율적인 팀파이트를 위해 영웅 조합이 2지원가 체제의 중장기전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따라 순간적인 화력보다는 꾸준히 전장에 남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일리단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자 전장을 헤집고 다니는 일리단을 견제하기 위해 아서스가 다시 쓰이기 시작합니다. 아서스는 3월 12일 패치를 통해 궁극기인 '사자의 군대'가 대폭 하향된 뒤로 대회는 물론 일반 게임에서도 모습을 감춘 영웅이었죠. 이어서 대세 영웅으로 떠오른 제이나 역시 3월 26일 패치에서의 상향 전까지는 hotslogs 승률 31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패치 직후 승률 10위로 도약하면서 대회에서 바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 패치 직후인 3월 31일의 유럽 ESL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제이나가 등장했다


이렇듯 대회 경기에서의 영웅 픽은 직전에 있었던 패치 방향성과 현재 히어로즈 플레이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3월 26일 밸런스 패치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히어로즈에서 주목받고 있는 영웅은 누구일까요?

4월 16일부터 진행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팀 리그'(이하 HTL)의 영웅 픽 경향을 봤더니, 여전히 일리단과 제이나가 선호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대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영웅도 포함되어 있었죠. 그는 다름 아닌 '자가라'입니다.

자가라는 원거리 전문가로, hotslogs에 따르면 승률 14위의 중위권 수준 영웅입니다. 하지만 통계와 달리 HTL에서는 밴픽률이 90%를 상회하며 거의 모든 경기에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3월 26일 패치에서 상향 조정이 되어 주목받게 된 제이나와 달리 자가라는 직접적인 능력치 조정이 없었음에도 선호됐습니다.

대회 경기에서는 영웅 조합이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선수들의 자가라 선택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특별한 변경점이 없던 자가라가 대회에서 주목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나지보, 해머 상사를 제치고 새로운 대세 전문가로 떠오른 자가라



▣ 깜짝 등장인가? HTL 필수 밴픽 자가라의 정체는?

자가라가 주요 픽으로 꼽히고 있는 HTL 이전의 국내 대회로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빅리그'(이하 HBL)가 있습니다. 2월 23일부터 3월 7일까지 치러진 HBL에서는 현재 대회 진행 중인 HTL과 달리 자가라의 픽률이 무척 낮았죠. 32강 경기에서는 밴픽률이 0%였고, 16강부터 결승전까지의 경기에서는 18.86%의 밴픽률을 보였습니다. 즉 2월부터 3월 초까지는 자가라가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당시 HBL에서 선호된 영웅은 누더기, 발라, 해머 상사 등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더기가 승률 43.8%로 최하위, 해머 상사는 47.2%로 31위에 자리하고 있죠. 이를 보면 자가라가 밴픽률 0%를 달성했던 HBL과, 밴픽률 90%를 상회하는 HTL의 영웅 간 밸런스 자체가 많이 달라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4월 28일 hotslogs 승률 통계. 누더기와 해머 상사가 하위권에 있다


그렇다면 HBL과 HTL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름 아닌 3월 26일의 밸런스 패치가 있었습니다. 무려 22명의 영웅에 대한 능력치 및 특성 조정이 있었고, 이 패치를 통해 제이나가 강력한 암살자로, 그리고 비주류 영웅이었던 머키가 '완벽한 암살자'로 다시 태어났죠. 이에 반해 전문가임에도 암살자 수준의 피해량을 보여주던 해머 상사와 나지보는 하향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점은 해머 상사와 나지보의 능력치 하향 조정입니다. 두 영웅이 하향되면서 이를 대체할 영웅이 필요해졌고, 자연스럽게 같은 전문가 역할이면서도 3월 26일 패치에서 하향되지 않은 자가라로 시선이 옮겨간 것이죠.


▲ 대표적인 전문가 영웅들이 하향되면서 상대적으로 자가라가 상향 효과를 봤다



■ 하지만 왜 하필 자가라였을까?

기존에 해머 상사와 나지보가 각광받았던 이유는 경기 조합에 전문가 영웅이 꼭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두 영웅의 경기 기여도가 암살자 영웅보다 더 높다고 평가됐기 때문이죠. 강력한 피해량과 더불어 공성에 유리한 기술 구성을 갖춘 두 영웅은, 적과의 교전 시에는 암살자 역할을 수행하고, 운영 단계에서는 전문가 특유의 공성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가 있었습니다. 즉, 운영과 팀파이트가 모두 가능한 만능형 영웅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3월 26일 패치 이후 해머 상사와 나지보의 대체제로 선택된 자가라는 어떨까요?

현재 HTL의 영웅 픽 경향을 살펴봤더니, 자가라 역시 앞서 언급한 두 전문가 영웅과 마찬가지로 암살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에 암살자 두 명을 기용하던 형태에서 암살자를 하나로 줄이고 자가라를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변화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암살자 없이 자가라 혼자 딜러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 암살자 대신 전문가 영웅인 자가라를 기용하는 모습


자가라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고유 능력인 '점막 종양'을 이용한 시야 확보입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경기력이 좋기 때문에 팀파이트보다도 운영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공격로 관리, 공성 등 운영을 펼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야 확보가 자가라의 점막 종양 하나로 해결이 되죠.

점막 종양은 길 위에 점막을 생성하는 투명 상태의 종양을 놓아, 점막이 퍼진 지역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점막 위에서는 자가라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므로 초반 공격로 대치에서는 일종의 생존기 역할을 하고, 중반 이후 본격적인 교전 시기에 돌입하면 전장 곳곳에 점막 종양을 뿌려두어 적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죠.

특히나 점막 종양은 4분이나 유지되는데다가 점막을 통한 시야 확보 반경이 상당히 넓으므로, 운영형 기술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점막 종양 이외의 시야 확보 기술로는 태사다르의 '계시'나 티란데의 '파수' 등이 있지만 지속 시간이 수 초로 짧고 범위 역시 넓지 않습니다.


▲ 요충지에 점막 종양을 설치해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궁극기인 '게걸 아귀'입니다. 인원 제한없이 4초 동안 범위 안의 적을 모두 구속하기 때문에 팀파이트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데요, 실제로 HTL에서는 자가라가 픽됐던 경기에서 게걸 아귀를 활용한 인상적인 플레이가 많이 연출됐습니다.

특히 게걸 아귀 시전 중에도 자가라는 자유롭게 기술을 사용하거나 움직일 수 있어, 적의 주요 딜러나 탱커를 이탈시켜놓고 자신은 교전에 즉시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광역군중제어기인 정예 타우렌 족장의 '광란의 도가니'나 우서의 '천상의 폭풍'과 차별화되는 점이죠.


▲ 범위 내 모든 적을 구속하는 게걸 아귀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자가라의 일반 기술인 '추적 도살자'입니다. 상대를 직접 지정하는 타겟팅 기술로, 추적 도살자가 소환되어 8초의 지속시간이 다하거나 대상이 사망할 때까지 공격합니다. 자가라가 암살자 역할을 겸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13레벨과 16레벨 특성을 통해 기술 강화를 하면 기대 이상의 피해량을 보여 1:1 상황에서는 자가라를 이길 수 있는 영웅이 얼마 없을 정도죠.

게다가 추적 도살자는 소환체이므로 대상의 반격이 어렵다는 장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소환체를 공격할 경우 자가라의 직접 공격을 무시할 수 없고, 자가라를 공격하려고 하면 반대로 소환체의 말뚝 공격을 감수해야만 하죠. 일단 추적 도살자가 소환되면 자가라의 위치에 관계없이 대상을 쫓기 때문에, 자가라는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고 추적 도살자를 통한 피해를 입힐 수가 있게 됩니다.


▲ 특성을 통해 추적 도살자를 뮤탈리스크로 강화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자가라는 운영 싸움에서 필수적인 시야 확보, 팀파이트에서 유용한 광역군중제어기, 그리고 암살자 수준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공격 기술까지 갖춘 만능형 영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쓰이지 않았던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요, 사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만능으로 보이는 자가라에게는 도주기가 전무하다는 점 때문이죠. 현재 2지원가를 위주로 하는 영웅 조합에서는 적의 암살자가 대개 중장기 교전에 유리한 영웅이기에 도주기가 없는 자가라의 생존이 어느 정도 보장됐습니다. 이를테면 발라가 자가라에게 접근하여 공격을 해올 경우, 자가라 역시 추적 도살자와 일반 공격을 통해 역공을 시도할 수 있죠.

하지만 2지원가 메타 이전에는 제라툴, 노바같이 짧은 시간에 강력한 피해를 입히고 전장을 이탈하는 암살자들이 주를 이루었으므로 자가라가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일이 잦았습니다. 자가라 역시 지속적인 피해 누적을 통해 적을 쓰러뜨리는 영웅이므로 과거의 빠른 교전형 조합에는 어울리지 않는 영웅이었던 것이죠.


▲ 태생이 전문가인 만큼 순간적인 화력을 퍼붓는 영웅은 아니다



▣ HTL 대세 영웅 자가라, 해외에서의 평가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가라는 도주기가 없다는 점 외에는 사실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좋은 영웅입니다. HTL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밴을 당할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경계하는 영웅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해외에서의 자가라 위치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현재 세계 2위 팀인 'C9 Maelstrom'의 iDream 선수는 자가라를 2티어 영웅으로 분류해놓고 있습니다. 그가 추천하는 특성은 1레벨을 '철거 전문가'로 시작해서 추적 도살자 강화를 하는 형태인데요, 1레벨에 점막 종양 강화를 선택해 공격로 유지에 무게를 싣는 국내의 자가라 유저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7레벨 특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전투 탄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저에 따라서는 '끝없는 점막'을 선택해 추가적인 시야 확보를 노리는 경우도 있죠. iDream 선수는 '전투 탄력'을 선택해 교전력을 증가시키는 형태를 추천했습니다.


▲ iDream 선수는 1레벨 특성으로 철거 전문가를 선택해 공성에 조금 더 비중을 뒀다

▲ 자가라를 2티어 영웅으로 평가한 iDream

▲ 해외 게임 포럼인 "TEN TON HAMMER"에서도 자가라를 2티어로 분류하고 있다


이외에도 북미나 유럽의 게임 포럼에서도 자가라를 2티어 영웅으로 꼽고 있었습니다. 주된 추천 이유는 다루기 쉽고 시야 확보라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크고 작은 해외 대회에서도 자가라를 자주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주요 전문가 영웅에 대한 하향이 있었던 3월 26일 패치 이전부터 자가라를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3월에 있었던 타이탄 아레나 시즌2나 ESL 유럽 메이저 리그 등에서 자가라 픽을 자주 볼 수 있었죠. 특히 3월 17일에 있었던 ESL 메이저 리그에서 Team Acer가 SK Gaming을 상대로 자가라를 두 번 연속 픽하기도 했습니다.

Team Acer는 앞선 3월 5일의 경기에서 WELL MET을 상대로 자가라 픽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요, 이는 메이저 리그 경기를 위해 한참 전부터 자가라에 대한 연구를 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같은 대회에서 Tempo Storm 역시 Barrel Boys를 상대로 자가라를 선택했는데요, 일리단을 유일한 암살자로 둔 1지원가 2전사 조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이미 자가라를 원거리 딜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 3월 17일에 있었던 ESL 유럽 메이저 리그. SK Gaming vs Team Acer

▲ 자가라를 유일한 원거리 딜러로 기용한 Tempo Storm



▣ 자가라 선호 경향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금까지 HTL에서 압도적인 밴픽률을 자랑하고 있는 자가라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아직까지는 hotslogs 승률이나 픽률 통계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전문적으로 히어로즈 플레이를 해온 국내 대회 참가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무서운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자가라를 2티어 영웅으로 추천하고 있지만, 최근의 대회에서는 1티어 영웅들 못지 않은 밴픽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HTL에서의 자가라 선호 경향과 마찬가지로, 팀원과의 호흡이 맞고 게임의 흐름을 잘 짚어내는 플레이어일 수록 자가라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가라의 최대 장점인 '점막 종양'을 이용한 시야 확보는 다른 영웅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능력입니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록 자가라의 선호 경향 역시 더 짙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 도주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을 갖춘 자가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