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기존의 잘못된 습관들을 버려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스포츠에서도 종목을 변경한 선수가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팀이 있다. 바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팀리그(이하 HTL) 전승 우승의 기록을 세운 Team No Limit(이하 TNL)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출신인 TNL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에 도전했다. 지난 히어로즈 인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기수는 “히어로즈가 게이머 인생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사의 각오를 다짐한 TNL의 도전은 종목 변경에서 그치지 않았다. 경기마다 상대의 편견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안정적으로 방어하기 보다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히어로즈에 대한 남다른 해석을 바탕으로 HTL을 정복한 TNL의 승리 요인을 분석해 보겠다.


■ 맵의 컨셉을 뒤엎는 TNL의 운영



히어로즈는 맵 별로 활용할 수 있는 특징이 다양하다. 강력한 용기사와 거미 시종, 정원 공포 등이 용병처럼 활약하고 상대의 건물을 대신 파괴해주기도 한다. 이런 특징을 잘만 활용하면 유리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게 히어로즈 맵의 컨셉이다. 대부분 팀은 어떻게 맵의 용병과 특징을 독차지할지 고민한다.

그런데 TNL은 다른 팀들의 맵에 대한 고민을 역으로 활용했다. 상대 팀이 오브젝트 활용에 집착할 것을 예상한 TNL은 그 사이에 다른 라인에서 경험치를 획득하고 공성 피해를 줬다. 그 중심에는 스플릿 푸쉬가 가능한 빛나래와 아바투르가 있었다.

▲ 빛나래의 적절한 합류


TNL은 FF 블랙홀과의 저주받은 골짜기 경기에서 빛나래를 중심으로 원거리 딜러들로 조합을 구성했다. 빛나래는 라인을 푸쉬하면서 언제든지 합류할 수 있는 영웅이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영웅들이 FF 블랙홀의 공물 수집을 방해하면서 시간을 벌었고, 그동안 빛나래가 다른 라인에서 경험치와 공성 이득을 챙긴 것이다.

게다가 TNL은 빛나래의 합류로 교전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이어갔다. 점멸 치유로 위험한 아군 영웅을 살려내며 합류했다. 그리고 발라와 노바를 활용한 원거리 딜러 조합의 일점사로 상대 영웅을 잡아내며 이득만 취하고 빠지는 교전을 이어갔다. 결국, 빛나래의 적절한 합류로 라인 관리와 교전에서 모두 승리한 것이다.

▲ 홀로 반전을 만들어낸 아바투르


MVP 블랙과의 결승전 1세트에서도 TNL의 운영은 통했다. MVP 블랙이 상대에게 공성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원 활성화를 위해 탑으로 향했다. 그러자 TNL의 아바투르가 봇에서 서서히 라인을 잠식했다. 사원을 활성화에 모든 영웅을 동원하기보다 아바투르로 직접 태러를 선택한 것이다. 사원 활성화 시간이 끝나고도 TNL은 탱킹 특성을 찍은 첸과 일리단으로 교전하면서 아바투르가 활약할 시간을 벌었다.

봇 라인을 집요하게 밀어낸 아바투르는 식충 둥지를 적진 깊숙한 곳에 심었다. 특히, 포탑보다 사거리가 긴 식충의 특성을 살려 요새를 밀어내고 핵까지 직접 타격했다. 마지막 한타 교전에서 TNL이 패하고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미리 핵을 공격하고 있던 아바투르는 상대보다 빠르게 핵을 파괴했다.


■ 2인 1역? TNL의 색다른 영웅 활용

▲ TNL의 두 가지 일리단 특성


히어로즈에서는 레벨이 오르면 다양한 특성을 선택할 수 있어 같은 영웅도 다르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다룰 수 있는 영웅이 많은 TNL 선수들은 특성을 활용해 변수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는 TNL의 채도준과 권태훈이 활용하는 ‘일리단'이 있다. 밴픽 단계에서 TNL이 일리단을 선택하면 상대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두 선수의 다른 스타일과 운영법에 모두 대비해야 했다.

채도준의 일리단은 적진을 파고드는 공격적인 운영의 핵심 영웅이다. 지난 FF 썬과의 경기에서 일리단은 특성으로 ‘전투의 전율’과 궁극기로 ‘사냥’을 선택하고 상대 영웅이 홀로 떨어져 있으면 제라툴과 함께 파고들어 끊어냈다. 한타에서도 끈질기게 상대의 핵심 딜러를 추격하며 잡아내 승리를 이끌었다. 게다가 레가르와 우서와 같은 힐러의 지원을 받으면 쉽게 죽지도 않아 상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반면, 권태훈의 일리단은 스플릿 푸쉬 운영의 핵심이었다. 서포터 역할을 주로 맡아온 권태훈이 일리단을 잡았고 생존에 좋은 특성을 선택해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단단한 맷집을 바탕으로 교전에서 시간을 벌었고 그 사이 아군 영웅이 다른 라인을 푸쉬할 수 있다. 게다가 상대 포탑의 공격을 몸을 받아내며 공성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두 가지 스타일의 일리단 운영을 할 수 있는 TNL은 결승전 1세트의 밴픽에서 상대를 완벽히 속였다. TNL은 일리단과 해머 상사, 첸 등을 선택하며 한타 조합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바투르를 선택한 TNL은 공성전 위주의 조합으로 선회했다. 권태훈이 탱킹 특성을 선택한 일리단을 잡았고 교전보다 스플릿 푸쉬에 집중했다. 한타 조합을 구성하고 있던 MVP 블랙은 TNL의 바뀐 조합에 대처하지 못했고 나머지 세트 밴픽에서 일리단을 모두 밴했다.


■ 한치의 망설임 없는 TNL의 오더

▲ 2차 요새를 급습하는 TNL


다른 팀과 구별되는 TNL만의 장점 중 하나는 과감한 오더였다. TNL은 지난 4월 27일 FF 블랙홀과의 2세트에서 일반적인 편견을 깨는 판단으로 승리했다. 대부분 팀은 공성을 할 때 1차 요새부터 파괴한다. 하지만 TNL은 저주받은 골짜기에서 3개의 공물을 챙기자마자 거침없이 2차 성채를 공략했다. 먼저 10레벨을 달성한 TNL은 FF 블랙홀이 봇 라인에서 골렘 사냥에 집중하는 틈을 정확히 노렸으며, 한 번의 판단으로 공성에서 확실한 이득을 챙겼다.

▲ TNL의 분위기를 바꾸는 자가라의 게걸아귀


결승전 마지막 세트에서도 TNL은 거침없었다. MVP 블랙이 거미 시종을 소환해 공세를 취하는 입장이었지만, TNL은 오히려 상대를 끌어들여 한타를 열었다. 갑자기 돌격한 TNL은 자가라의 ‘게걸아귀’로 후퇴하는 MVP 블랙의 영웅들을 끊어냈다. 좁은 지형을 활용해 광역 범위 마법인 게걸아귀를 극대화시키며 이득을 챙긴 TNL은 거미 시종 타이밍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 적진으로 향하는 아서스와 자가라, 그리고 대반전


TNL은 다시 찾아온 위기에서도 과감한 플레이로 역전에 성공했다. 교전에서 대패하며 수세에 몰린 TNL은 위기의 상황에서 아서스와 자가라가 적진으로 도망치고 상대가 딜을 넣을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 당시 큰 의미가 없어 보였던 오더는 3세트 역전승의 발판이 됐다.

상대 영웅은 일점사와 화력이 좋은 발라와 제이나, 티란데였다. 조금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방어하는 영웅을 일점사해서 끊어내고 핵까지 파괴할 수 있었다. 반면, TNL은 딜보다 탱킹력이 강한 아서스와 티리엘, 레가르 조합이었고 들어오는 MVP 블랙의 영웅을 끊기 힘들었다. 적진으로 돌진하는 것이 무리한 판단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서스라는 탱커의 특징을 활용한 최고의 방어였던 것이다. 결국, TNL의 영웅들이 기적같이 살아날 시간을 벌었고 가까스로 MVP 블랙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TNL은 역전을 위한 작은 가능성이라도 잡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끈질기게 도전하는 자세가 있었기에 전승 우승을 기록한 것 같다. HTL을 정복한 TNL의 도전은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더 큰 세계 무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TNL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