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틈' 지국환 대표


유니티 에반젤리스트이자 현업 1인 게임 개발자로 활동 중인 지국환 대표. 예전에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그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오늘 NDC 강연을 듣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강연이 빵빵 터졌습니다. 시종일관 농담으로 무쌍을 펼쳤고, 청중들은 웃기 바빴습니다. 강연이 주업무라고는 들었는데, 유머감각 면에서 많이 숙련되었다는 게 보였어요.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정리하지 생각하다가 그냥 있는 그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농담도 다 적었어요. 강연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조금이나마 전달되기를 바라 봅니다.





■ 유니티 에반젤리스트 지국환

- 1인 인디게임 개발자이자 유니티 에반젤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유니티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테크 데모 갖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다. 현업 개발자들 만나서 유니티 엔진 세일즈 비슷한 것도 한다. 물론 직접 파는 일은 아니다. 개발자들이 나 싫어한다. 나 만났다가 낚여서 유니티 살까 봐.

- 유니티 관련 서적도 하나 냈다. 사실 회사 업무상으로 한 일이다. 입사하려면 책 한 권 쓰라고 해서 그랬다.

- 그런데 책 인세는 유니티가 아니라 문틈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표님과 합의를 했다.

- 지금까지 만든 게임들 대부분 망했는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그래픽 소스 분해한 뒤 팔았다. 그리고 유니티에서 쌓은 인맥으로 인력 알선도 했다.

- 멀쩡히 회사 다니고 있는데 왜 이 고생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원래 네이버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런데 적성에도 안 맞고, 디자인도 별로 못 하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나가야지 했다. 그러다 게임에 빠져서 덜컥 창업했다. 잘 될 줄 알았는데 망했다. 공자님이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해서, 아무도 나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망했다.

- 첫 회사 망했을 때 느낀 경험을 토대로 한 번 더 창업했는데 또 망했다.

- 이번에는 외부에서 투자도 많이 받고 창업했는데 다시 한 번 망했다. 3번째 망한 거다.

- 네 번째로 지금 개발사, '문틈'을 창업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재수 좋게 유니티에 취직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 유니티에서 공모전을 열었는데 상품이 하와이 여행권이었다. 이거 받으려고 신청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게 취업 공모전이었다. 하와이 가려면 입사하라고 하더라. 하와이 여행권만 받고 튀려고 했는데, 6개월 간 안 줬다. 나중에 괌으로 바꾸고 수용 인원을 늘렸다. 그래서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다. 6개월 간 회사에서 일했더니 적응을 해버려서 퇴사 못하고 있다.

- 공모전에서 우승해서 좋아했는데, 당시 참가자가 3명이었다는 거 나중에 알았다.

- 외국계 회사는 철두철미하다. 절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밤 12시에 메일이 오기도 한다. 일찍 퇴근한 다음날에는 반드시 일거리가 쌓여있다. 회사가 참 문제가 많... 지는 않고, 음... 이럴 수밖에 없을 거다.



■ 던전999F 개발 과정 : "양산하기 쉬워서 슬라임으로 결정했다"

- 던전999F 다운로드한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많이 안 오길 바랐다. 안 받은 사람이 강연 듣고 나가실 때 다 받으셨으면 좋겠다.

- 이전까지는 웨딩런이 최고로 뜬 작품이었다. 사실 이거 청첩장 개념으로 만든 거라... 솔직히 어디 가서 자랑하기 창피했다.

- 던전999F는 출시하자마자 양대 마켓 롤플레잉 카테고리 1위를 찍었다. 내가 밥값 한 번 했구나 싶었다. 이러면 지갑도 불어야 되는데, 날려먹은 돈이 워낙 많아 메꾸는 데 쓰고 있다.

- 김정주라는 유명한 분도 별점 댓글 남겨 주셨다. 동명이인 같다.



- 나 같은 소규모 개발자가 네임드 개발사와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00번 싸워도 못 이긴다. 이번에는 솔직히 지인 버프 많이 받았다. 유료 버전으로 출시하고 개발 일지 공유한 것도 도움이 됐다. 게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이 게임이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이 많다. 일지를 공유하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 모든 걸 다 혼자 한다는 거, 정말 어렵다. 할 것도 정말 많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혼자서 다 한다'에서 '그냥 무조건 다 한다'로. 이건 큰 차이가 있다. 외주 줄 수 있는 부분은 외주 주고, 에셋 스토어에서 소스 사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개발 리소스를 줄이는 거다.



- 개발해놓은 리소스는 사골 우러나올 때까지 재활용했다. 절대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썼다. 정 필요 없다면 이스터에그 형식으로 넣었다.

- 1인 개발자라면 본인이 잘 하는 것부터 만드는 게 좋다. 나는 캐릭터 작업부터 했다.

- 몬스터는 공정 최소화에 주안점을 뒀다. 키 애니메이션을 다 똑같이 해도 되도록. 사실 던전999F에 슬라임만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산이 쉬우니까. 가장 많이 찍어낼 수 있으니까.



- 배경도 만들어야 하는데, 굳이 혼자 다 만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유니티 에셋 스토어에 유명한 배경 소스가 있다. 이거 3만 원 주고 사서 활용했다. 어디 가서 3만 원 주고 이 그림 그려달라고 하면 뺨 맞는다. 에셋 스토어에서 구매하는 게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 모든 걸 혼자 한다는 생각을 버릴 때, 게임의 퀄리티가 올라간다.

- UI는 직접 만들었다.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9 Slice 기법을 사용했다. 이미지 2개 주워와 늘리고 줄이고 잘라내고 하는 방식으로 게임 내 프레임 대부분을 만들었다.



■ 던전999F 사전 테스트 : "국환아, 네 게임 더럽게 재미 없어, 핵노잼"

- 프로토타입 만들고 나서 주변 사람들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다. '와, 잘 만들었네. 그런데 재미가 없다', '핵노잼', '이 게임을 내가 왜 해야 돼?'라고 그랬다. 그 얘기 들으니 기분이 나빠졌다. 밥상 뒤집어엎었다.

- 난 재밌는데 남들은 하나같이 재미없다고 하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10명 중 8명 이상 재미없다고 느낀다면 그 게임은 고치는 게 좋다. 어차피 나중에 고쳐야 될 테니까.

- 이 게임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제일 많았다. 목표가 없다더라. '슬라임을 없앨 때마다 점프하게 만들자', '점프용 가스를 획득하게 하자' 등등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모두 참 좋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그냥 새로 만들었다. 자존심 상해서. 1인 개발자 장점이 이런 거다.



- 점프 방식에서 스테이지 클리어 방식으로 바꿨다.

- 난 캐릭터 두 명 나오는 버디무비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안을 짰다. 서로의 등짝을 사수하는 개념도 넣고, 듀얼스틱으로 두 캐릭터를 동시에 조작하는 방식도 채용했다. 외국 커뮤니티에 플레이 영상 올렸더니 'WTF'이란 댓글이 많이 달렸다.

- 결국 또 갈아엎고 현재 버전으로 만들었다. 직원들이 처음으로 '오, 이번에는 괜찮네'라고 하더라.



- 그런데 2% 부족해 보였다. 슬라임 생김새랑 능력치만 다르니 게임이 단순해 보였다. 그래서 공격 패턴의 변화를 주니 그제야 좀 게임다워졌다. 아무리 작게 만들더라도 숫자 변화보다는 움직임 변화를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게임이 풍성해진다.

- 슬라임 공격 패턴이 늘어나니 그만큼 데이터 관리를 많이 해야 하더라. 슬라임 패턴이 400종이나 됐다.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하려니 염두가 안 나서 테이블을 수식으로 변경했다.

- 수식으로 바꾸니 생각보다 너무 편했다. 그래서 나머지 데이터도 모두 수식으로 변경했다. 개발 시간도 대폭 줄어들었다. 그런데 수학 포기자의 경우 그래프 만드는 게 매우 어렵다. 그럴 땐 주변의 프로그래머에게 부탁하면 된다. 아예 바로 붙여 넣을 수 있도록 써서 주더라.



■ 던전999F 출시 후 : "개발자님, 뭔 버그가 이리 많아요?"

- 2015년 4월에는 무조건 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4월 중순에는 유나이트가 있어서 바빴다. 일단 출시부터 했다. 페이스북으로 쪽지가 왔다. '버그 있어요', '버그 뭐 이따위야', '버그' '버그...'

- 버그 터지고 나서 4.5점에서 3.8점으로 평점 깎였다.

- 문제는 버그 터진 다음날 일본 출장이 잡혀 있었다는 거다. 다음 주는 유나이트,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10일 장기 휴가를 와이프가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유저들은 내가 회사 다니는 걸 모르니 막 욕했다. 내 일이라면 모를까, 회사 일은 미룰 수가 없으니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 결국 일본 출장 가서 버그 고쳤다. 와이프에게 집에 있는 컴퓨터 켜달라고 해서 원격으로 작업했다. 집에 원격 제어 프로그램 꼭 설치하는 게 좋다. 진짜 중요하다.

- 버그는 조작 문제로 터졌다. 조작감이 안 좋다고 해서 터치 방식으로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안정성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버그가 수정되고 순항 중이다.


■ 1인 게임 개발자? "버는 돈 내가 다 갖는 게 최고 장점!"

- 1인 개발자의 문제점...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24시간도 모자란다. 회사 업무 8시간, 자는 시간 8시간 빼면 8시간 남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출퇴근 시간, 밥 먹는 시간 빼면 약 4시간 남는다.

- 제일 좋은 방법은 금요일 저녁 8시부터 일요일 저녁 8시까지 잠 안 자고 몰아서 작업하는 거다. 그냥 이때 집중해서 개발하는 게 속 편한다.

- 게임을 출시하면 손이 더 부족하다. 듣도 보도 못한 유저들도 나타난다. 우리 어머니 안부를 묻는 유저도 잔뜩 나온다. 대비를 충분히 하는 게 좋다. 다크서클이 네크로맨서 수준으로 내려온다.

- 개발하다 보면 내 생각이 최고라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생각 당장 접고 주위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게임을 보여주는 게 좋다. 돌직구 피드백을 잘 수렴해라. 진짜 별로라고 하면 꼭 고치고.



- 사람이니 멘탈 붕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게임에 대해 최대한 떠벌리고 약속도 많이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창피해서라도 일하게 된다. 1인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도 많이 해보는 걸 추천한다. '나도 만들겠다'라는 생각이 불타오를 때까지.

- 1인 개발의 장점도 많다. 버는 돈을 내가 다 먹는다는 게 제일 좋다. 망해도 죄책감이 크게 안 든다. 부담감도 적다. 2인 개발해서 두 배 벌어들일 자신 없으면 혼자 만드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게 1인 개발의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