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복합적인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다양한 콘텐츠들이 게임 안에서 어우러지면서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죠. 전투, 스토리, 컷씬 연출 등의 그래픽적 요소까지.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콘텐츠 중 하나는 사운드, 바로 '음악'도 있고요.

콘텐츠마다 역할이 있고 중요도가 있지만, 냉정히 말해서 게임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음악의 중요성은 비중에 비해 저평가되는 편입니다. 약간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기능'으로서의 음악은 거의 모두가 중요시하지만, '콘텐츠'로 즐길 수 있을 만큼 노력하는 개발사는 상당히 드뭅니다. 음악을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서는 게임의 기획, 게임의 전체적인 콘텐츠 구성과 스토리 등등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아주 많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음악이 붕 뜬 느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게임 음악은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입니다. 유저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제공하고, 음악으로 유저들이 노는 문화가 생겨날 수도 있으면서 게임에 더욱 많은 애정을 쏟을 수 있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거든요. 오늘 열린 강연에서는 '콘텐츠'로서의 게임 음악을 살펴보는 시간이 마련됐습니다.

올해로 17년 차, '샤이닝로어'부터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영웅전' 등등 다양한 게임의 음악을 제작한 '스튜디오 EIM'의 신동혁 대표의 강연을 옮겨봅니다. 다만 강연에 쓰인 음악이나 영상들은 첨부가 어려워 조금 각색한 부분이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스튜디오EIM의 신동혁 대표

Part.1 소모되지 않는 꿀 콘텐츠 '게임 음악'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서는 처음으로 강연을 해보는데, 홀이 넓고 좋네요. 저는 '스튜디오EIM'의 대표로 있는 신동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제가 컨텐츠로서 게임 음악을 연구한 내용을 들려 드리려고 해요.

강연 제목을 보시면 제가 '꿀'이라는 표현을 썼죠. 꿀. 우리는 흔히 '꿀을 빤다'는 표현을 쓰죠. 아마 군대 다녀오신 분들을 쉽게 들을 수 있는 표현이겠네요. 흔히 투입하는 자원이나 수고보다 얻는 것이 많을 때, 큰 투자를 하지는 않지만 얻는 게 많을 때 우리는 흔히 꿀을 빤다는 표현을 씁니다.

다른 콘텐츠에 비해 왜 게임 음악이 꿀을 빨 수 있을까요? 만들 수 있는 어떤 콘텐츠보다 적은 노력과 시간, 자원으로도 얻는 게 많은 콘텐츠이기 때문이죠. 다만, 게임 음악은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객관적으로 수치화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럼 어떤 면에서 게임 음악이 좋은 콘텐츠가 될까요? 먼저 좋은 게임 음악은 유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고, 그 관심을 호감으로 바꿀 수 있죠. 그다음에는 호감이 생겨 여러분의 게임으로 유입된 유저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고요.

이 몰입감을 바탕으로 게임에 대한 충성도를 이끌어 낼 수 있어요. 더 나아가 충성도가 높은 유저들은 그들의 친구들에게 게임을 전파하겠죠. 그때 음악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뭐, 더 나아가면 여러분은 그렇게 만든 게임으로 부자가 되겠네요.

여러분의 게임이 성공을 해서 라이브 프로젝트로 전환하게 됐을 때. 아무리 처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 잘 되는 게임이라고 이탈하는 유저분들은 있을 거에요. 그때 음악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어요. 마치 연어처럼. 이러니까 제가 좀 약 파는 것 같군요. 전 약장수는 아니고요, 일단 사례로 먼저 보여 드리도록 할게요. 이게 게임 음악은 아닌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 겨울왕국 - Let it go (일본어 더빙버전) ]

솔직히 저도 아직 겨울 왕국을 못 봤어요. 물론 여기 오신 분들 중에서도 못 보신 분들도 꽤 있겠죠? 그렇지만 이 노래를 알고 있고, 언젠가는 이 영화를 꼭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사실 어떤 작품에 몰입감을 느끼고 애정을 갖게 되는 이유는 굉장히 많이 있죠. 꼭 음악 때문에 좋아졌다고 단언하자는 건 아닙니다. 단지 음악은 많은 요소 중에서 한가지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겨울왕국'을 알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요소 중 하나가 'Let it Go'를 좋아한 사람들이고요. 그 사람들의 관심을 언론이 조명했기 때문에 더 많이 퍼지게 됐죠.



Part.2 문화 콘텐츠와 음악, 그리고 게임 음악
문화콘텐츠와 음악. 이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드릴까 해요. 제가 방금 'Let it go'를 보여 드렸는데, 이건 애니메이션의 틀을 넘어서 '문화 현상'으로 이어졌거든요. 영화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죠. 단순히 음악만 가지고는 이렇게 인기를 끌기 어려워요. 음악이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모태 콘텐츠가 훌륭하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게임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게임 음악은 크게 두 가지 성질을 지닙니다. 기능성과 콘텐츠 성이죠. 기능성이라니까 좀 뭔가 안 와 닿으시죠. 이런 거에요. 흔히 분위기에 맞아야 한다. 게임하고 어울려야 한다고 말하는 게 게임 음악의 기능성이에요. 미디어를 관람하거나 즐기는 사람에게 감정을 나타내주거나 정보를 전달해주는 게 음악의 기능이거든요.

대부분 우리나라 게임 업계에서는 기능까지만 선택합니다. 음악을 컨트롤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이 단계에서 콘텐츠성을 포함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좋게 들리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음악을 컨트롤 하는 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어렵죠. 그래서 기획자분들이 손을 놓는 경우가 많아요.

감정. 이건 간단합니다. 보스전에서는 긴장감이 있어야겠죠. 마을에서는 좀 편안한 분위기를 주어야 하고요. 초보 던전에서는 약간의 긴장감만 주고요. 그런 감정을 음악이 전달하고요.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건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장소에 따라서 그 장소에 테마를 제작하는 거죠. 음악적인 차이를 줌으로써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는 거죠.


※ 강연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이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효과의 예시로 보여드릴만한 음악을 하나 첨부합니다.
'마비노기영웅전'의 레이드 보스 몬스터, '글라스기브넨'의 테마입니다.



그렇다면 콘텐츠 기능은 무엇일까요. 이게 좀 애매한데, 비유로 표현해볼게요. 아마 기획하는 분들은 경험했을 거에요. 방금 말씀드린 두 가지 기능적인 측면은 만족하지 못했는데, 콘텐츠적인 부분을 만족했을 때는 이런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정말 좋은데, 뭔가 우리 게임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게임 음악은 기능적인 측면과 정보 전달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면서 매력적이어야 해요. 이게 좋은 게임 음악의 조건이랄 수 있죠.

기능성은 정말 기본적인 조건이에요. 여기서 더 나아가야 콘텐츠성을 얻을 수 있죠. 하지만 이 단계에서 많이 포기하세요. "음악은 그냥 우리 게임에만 맞으면 돼. 굳이 뭐하러 음악적인 매력을 챙겨야 하나"하고요. 이런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콘텐츠적인 부분을 충족하려면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해야 하거든요. 콘텐츠성을 갖췄을 때의 효과를 잘 모르시면 왜 여기에 리소스를 투입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콘텐츠성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의 '문화 현상'이 생겨나죠. 이런 현상을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뭐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대표적으로 이게 있어요.



Part.3 사회적인 문화현상과 발전 단계
다들 잘 아시죠? 저 이거 아직 못 먹어봤어요. 아마 그런 분들이 많을 거에요. 솔직히 과연 이 과자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분명히 파는 것 같은데 맨날 찾아보면 없어요. 솔직히 너무 붐이 일어서 얼마나 광고를 잘했길래 이 정도인가 유튜브에서 찾아봤죠.

그런데, 광고가 없어요. 이거 전부 다 유저분들이 만들어낸 콘텐츠더라고요. 한낱 과자일 뿐인데, 이걸 소재로 삼아서 놀고 있는 거죠. 팔지 않으니까 만드는 영상도 있었습니다. 이런 콘텐츠들을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생산합니다. 이걸 보고 언론이 보도하고, 또 유저들은 다시 이걸 가지고 놀죠.

이런 걸 보면서 느낀건데, 문화 현상은 발전 단계가 있더라고요.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먼저 좋은 음악을 들으면, MP3에 담거나 링크를 저장해두고요. 그 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됩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니까, 너도 봐줘. 뭐 이런 의미로 공유하게 되거든요.

'나 혼자 보겠다'가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봤으면 좋겠다'는거죠. 더 나아가면 2차 저작물을 제작하게 됩니다. 제가 볼 때 2차 저작물을 만드는 단계는 거의 그 콘텐츠가 성공적이었느냐, 아니었느냐를 결정하는 바로 밑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더욱 커지면 사회적인 문화현상으로 발전하겠죠.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건 많지는 않을 거에요. 수면위로 드러나는 건 많지 않겠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진행되는 사례가 많아요.


코트라(KOTRA)(에서 보여준 자료에서도 겨울 왕국이 당시에 약 2천여 개의 2차 저작물이 등록됐다고 나와 있어요. 니코니코동화에서 정규 뮤직비디오의 재생 수는 260만밖에 안 돼요. 사실 이 정도는 유튜브에서는 아주 흔하거든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퍼 나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공유하면서 마치 다단계처럼. 코트라에서도 사회 전반적인 문화현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결론을 내고 있어요. 물론 전제 조건은 겨울 왕국 자체가 재미있었고, 음악도 좋았고요. 모든 게 잘 떨어졌는데 유저들이 2차 창작물을 만들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게 큰 효과를 본 거죠.



Part.4 사회 현상은 '기폭제'가 필요하다.
이건 단순히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은 아닐 거에요. 게임은 여러 가지 콘텐츠적인면이 있죠. 그래픽요소라던가. 스토리, 영상, 음악. 이것들은 개별적으로는 큰 힘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2가지 이상이 조합되면 시너지가 나타나 효과가 아주 뛰어납니다.

문화현상은 기폭제가 필요해요. 그 기폭제의 역할을 음악이 할 수도 있고, 스토리나 영상, 그래픽도 가능하겠죠. 하지만 유독 국내에서는 음악이 이런 기폭제의 역할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의 겨울 왕국도 니코동보다는 유튜브가 2차 창작물이 많았어요. 하지만 기폭제는 니코동이었죠.

음악이 만능인 건 아니에요. 단점이 있죠. 접근성과 전파성이 다른 콘텐츠들에 비해서 낮아요. 별로 안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지도 않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호감이 없는 음악을 들려주면 솔직히 귀찮죠. 이런 건 그래픽이나 비주얼적인 것들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한 번 음악을 접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면 어디서나 음악을 듣죠. 운동하면서, 일하면서, 문서작성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고요. 휴대가 쉽고 반복해도 질리지 않아요. 뭐, 언젠간 질리긴 하겠지만, 그 페이스를 보면 다른 콘텐츠들보다는 훨씬 느려요. 호감이 가게 된 음악은 수십, 수백 번을 들어도 잘 안 질리죠. 그만큼 음악의 장점이 많아요. 이걸 잘 활용해야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자주 봐 와서 조금 아쉽습니다.

제가 이번 발표를 위해서 설문 조사를 좀 했어요. 응답자 수는 620명 정도 되고요. 19~24세분들이 51%, 13~18세분들이 34%, 25~29세분들이 10%, 30세 이상분들이 5%정도 참여해주셨어요. 성별은 남성분들이 약 90%정도 됩니다. 게임 플레이 경력은 7년 이상이 77.6%, 3~7년이 17.5%, 1~3년은 4.3%. 그리고 1년 미만이신 분들이 0.5% 정도의 분포로 나타난 자료입니다.



여기서 좀 많이 놀랐어요. '게임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과 '게임을 잘 이해하고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응답이 많았거든요. 유저들도 아는거죠. 이 음악이 게임을 알고 만든건지 모르고 만든건지요. 저도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고, 게임을 하면서 어떤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2차 창작물을 보고 드는 생각들.
여기서 흔히 '연어'라고 불리는 회귀 현상이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fin.
제가 맡은 메이플스토리와 마비노기영웅전이 국민적인 문화현상까지는 안됐지만, 그전까지는 많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에 대해서 공유도 많이들 하시고, 나아가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잠수를 탈 때 시그너스 전당의 테마가 좋아서 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나아가서 2차 창작물을 만들어내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도 많이 봤어요. 직접 연주를 하시기도 하고, 게임 내에서 연주를 하시기도 해요. 해외에서는 졸업 연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했죠.


게임 음악으로 리듬게임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방송으로 메이플스토리의 BGM을 연주해보시고 호응이 좋아 돈을 버신 분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악기를 구입하시고 또 연주를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게임은 문화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의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픽과 스토리가 못하는 역할을 사운드가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문화 예술로서 성숙하고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게임이라는 문화가 사회에서 대중예술로, 대중문화로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는 강연이 끝나고 진행된 두개의 QnA입니다.

Q. 지금까지 만든 음악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과 반응이 좋았던 건 무엇인가요?

=사실 오늘 보여드렸던 곡의 반응이 제일 좋았어요. 메이플스토리의 '시그너스 가든'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루머가 돌기도 했고요(웃음). 많이들 좋아해주셨어요. 마비노기영웅전에서는 '티이'의 테마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티이의 테마속에는 나중에 티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은 초반부만 듣고 넘시기더라고요.

Q. 마비노기영웅전 BGM의 경우에는 제작할 때 어떻게 영감을 받으시나요?

=영감이라는 게, 게임 제작도 마찬가지고 일러스트도 마찬가지겠지요. 모두 자기만의 방식이 있잖아요? 전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이런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몰입을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위해서 해당 게임을 많이 플레이합니다. 마영전도 만렙을 찍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유저들이 어떤 걸 원하실지, 어떤 걸 좋아하실지 상상을 하면서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