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투수 권혁의 행보가 날이 갈수록 뜨겁다. 연일 불꽃 투혼을 보여주며, 경기에 출장해 이미 선발이 아닌 투수로서 정규 이닝에 가까운 40.1을 던졌고, 경기 출장 수도 전체 경기수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26경기를 기록했다.

규정이닝에는 1.2 이닝이 부족하여 투수 순위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현재 전문 마무리 투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40이닝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런 투혼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팬들이 많다. 전체적으로 투수가 부족한 한화 팀 사정상 이런 투혼은 일부 팬들에게 다소 미화되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봤을때는 혹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 확실한 마무리 상황이 아니더라도 등판, 롱릴리프 역할부터 셋업, 마무리까지 소화해내며 '중무리' 투수라는 알 수 없는 보직을 수행하고 있어 혹사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 5월 22일 현재 가장 뜨거운 불꽃 투혼의 사나이 권혁(사진출처 : 한화이글스)



중무리 투수란 중계+마무리의 합성어로서 팀의 마무리를 담당하고 있으나, 본래 마무리 투수라면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 마지막 1이닝을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무리의 경우 9회뿐만 아니라 8회, 7회 등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여 중계 투수의 역할은 물론 마무리까지 겸임한다고 해서 붙여진 용어다.

프로야구 매니저에도 이러한 중무리 특성의 투수가 있다. 보직은 마무리로 되어 있으나, 100이닝 이상을 던졌으며, 프랜차이즈 효과의 이름마저 중무리 투수, 바로 구대성이다.


▲ 프렌차이즈 효과 이름부터가 '중무리 투수'다.



한화의 레전드 선수라고 할 수 있는 구대성은 데뷔 년도를 제외하고 꾸준히 100이닝 이상을 소화했으며, 특히 96년에는 마무리 투수 중 유일한 시즌 MVP를 달성했다.

이후에도 한화의 우승 시즌인 99년에는 한국 시리즈의 모든 경기에 등판하여 팀의 뒷문을 확실히 걸어 잠그며, 한국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권혁과 비교한다면 선발 출장 기록이 있긴하지만, 엄연히 마무리 투수로서 뛴 경기가 대부분이었으며, 선발이 짧은 이닝을 소화하고 강판당한 이후 등판하여 남은 이닝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선발을 뛸 선수가 없으면 대신 선발마저 뛰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권혁과 비교하면 연투 횟수도 더욱 많았고 이닝 역시 많은 이닝을 소화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적인 이면도 화려한데, 한국 유일 9년 연속 두자릿수 세이브와 역대 이닝당 삼진 비율 1위, 다승왕/구원왕을 동시에 차지한 투수 등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라 할 만하다.


▲ 한국 좌완 투수 중 레전드라 할 수 있는 대성불패



또한, 이런 중무리 투수의 대표로서 삼성의 임창용이 있다. 임창용 역시 별명이 '애니콜'일 정도로 언제 어느 때건 등판하여 삼성의 수호신 역할을 해냈다.

중무리로서 가장 유명했던 99년에는 마무리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규정 이닝을 채운것은 물론, 팀 내 다승 2위까지 기록하며, 평균 자책점은 리그에서 1위를 기록했다.


▲ 삼성의 휴대폰 광고를 빗대어 '애니콜'로 불렸던 시기



하지만 당시 중무리 투수들이 성행했었던 이유는 아직 투수의 분업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시기였기에, 다양한 보직을 맡거나 이닝과 관계없이 연투 하는 일이 적지만 아예 없진 않았다.

이미 한국 야구의 현대화가 많이 이뤄진 현재 과거 임창용, 구대성과 같은 중무리 투수를 연상케 하는 권혁의 페이스는 매우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의 등판 간격이라면 전년도에 비해 늘어난 경기수 탓에 100이닝을 넘는 것은 물론 150이닝까지 노려볼 수 있는 속도다. 어쩌면 구원 투수 중 최다 이닝 기록을 보유한 김현욱의 157이닝을 넘을지도 모른다.

연일 뜨거운 불꽃투를 던지며 한화의 승리에 기여하고 있는 권혁의 시즌 말 성적이 어떨지, 그리고 무사히 시즌 끝까지 완주하여 혹사 여부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권혁 선수의 투혼은 어디까지일까?(사진출처:한화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