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 리프트 시판용 버전을 E3 2015에서 체험해봤습니다. 전문가들은 VR이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이끌 미래 기술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물론 평가는 대중들이 하는 거겠죠.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DK1부터 DK2, 크레센트베이까지 모두 써봤지만 스티브잡스가 뒷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냈을 때만큼 큰 충격을 받진 않았어요. 그래서 시판용 오큘러스 체험 기회가 왔을 때도 좀 덤덤했어요. 오큘러스가 VR 시장을 이끌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몇 개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체험기는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써봤습니다.




1. 디자인

올블랙입니다. 가차 없죠. 소니가 개발 중인 VR '모피어스'가 대놓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면 오큘러스는 튀기 싫고 그렇다고 촌스럽기도 싫은 도시 인간의 감성을 담았습니다. 나쁘지 않은 디자인이에요. 세련된 느낌도 있고요. 직접 눈으로 보면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2. 착용감

역시 우수합니다. 꽉 끼게 착용해도 딱히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고요. 고개를 흔들어도 덜렁거리지 않는 게 괜찮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오큘러스가 간과한 게 있다면 머리를 고정해주는 상단 지지끈입니다. 제품이 흘러내리지 않기 위한 효율적인 선택인데요. 막상 착용하고 나면 디자인적으로 추구한 세련된 감성이 산산이 무너져 내립니다.

동료 기자에게 물어보니 "이건 딱 기술자 마인드에요. 디자인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냥 효율만 생각한 거죠 "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모피어스와 비교해보니 크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뭐 근데 "쓰고 밖에 나갈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면 사실 별게 아니긴 하죠. 저도 사실 별로 신경 쓰진 않았습니다.

▲오큘러스 착용 이미지

▲모피어스 착용 이미지


3. 인터페이스

오큘러스를 쓰고 실행하니 곧바로 대기화면이 떴습니다. 로비처럼 생긴 스테이지에 약 8개 정도의 게임이 떠 있었는데 원하는 게임으로 시선을 돌리면 포인트가 그대로 따라가 게임을 선택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이면 실행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게임 실행은 XBOX패드로 했어요.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라곤 할 수 없었어요.


4. 게임 플레이

게임은 인섬니악에서 개발한 'edge of nowhere'와 CCP게임즈에서 개발한 '이브 발키리'를 해봤습니다. 모두 처음 해본 게임이었어요. 정말 놀랐습니다. 두 번 놀랐어요. 먼저 'edge of nowhere' 설원 배경의 게임이었는데 남성 주인공이 괴생물체를 피해 탈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얼음으로된 계곡을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바닥을 살짝 내려다보니 아찔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더군요. 괴물을 피해 동굴로 들어갔을 땐 정말 굉장했습니다. 횃불을 들고 동굴을 지나가는데 저도 모르게 목이 움츠러들더군요. 엄청난 공간감이에요.

이브 발키리는 그야말로 VR게임의 미래라고 봐도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실행하면 우주선 콕핏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고개를 내리면 자신의 가슴부터 하반신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진짜 내 몸 같아서 한번은 만져보게 됩니다. 증강현실기기는 아니기에 손이 움직이거나 하진 않아요. 그 뒤엔 자연스럽게 콕핏 내부를 훑어보게 되는데 디테일이 정말 감탄하게 됩니다. 우주선에 타고 있다는 그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했어요. 그대로 우주로 나가게 되면 거대한 함선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압도된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거에요. 한가지 아쉬운 건 역시 해상도였는데 화면이 그리 깔끔하진 못해요. 뭔가 짠한 화면을 기대했다면 실망하실 겁니다.


5. 멀미 현상

오큘러스 뿐만 아니라 모든 VR기기의 공통적인 문제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합니다. 게임 장르에 따라 달라질 텐데요. 이브 발키리처럼 VR의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는 게임일수록 멀미가 생깁니다. 스펙이 올라가면서 DK1보다는 확실히 개선된 느낌이 들긴 하는데 제가 느낀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VR기기에게 멀미란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 같다고 생각해요. 일단 맞으면 살살 맞든 세게 맞든 속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멀미가 일단 생기면 그 뒤엔 장시간 플레이가 힘들기 때문에 기계를 끄게 됩니다. 실제로 저는 제한된 30분의 시간을 다 쓰지도 못하고 멀미 때문에 20분 만에 관두고 말았어요.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처음엔 5분도 못 썼는데 확실히 계속 써보니 적응하긴 하더군요.


6. 결론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VR을 꾸준히 써봤던 입장에서도 이번 시연은 굉장히 쇼킹했어요. 저는 VR기기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너무 호들갑 떠는 게 아니냐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대중화는 기술로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직접 시판용 버전을 접해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물론, 오큘러스를 비롯한 VR기기들이 대중화에 성공하리라는 확신은 아직 없어요. 일단 상용화가 되면 다음 스텝은 기계의 성능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니까요. 그래도 출시하게 되면 빌려서라도 꼭 써보세요. 머리로만 생각했던 그 경험의 시야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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