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인터내셔널5(The International5, 이하 TI5)가 진행되고 EG가 높은 무대로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1번 캐리 '피어'의 TI 우승 여부였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피어'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미국에 살면서 유럽 팀 OK니르바나에 합류한 '피어'는 프로게이머가 된 대가로 집에서도 쫓겨나고 혼자 밤낮을 거꾸로 살아야 했으며,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이 최악의 상황에서 게이머의 꿈을 이어가야 했다.

'피어'는 TI1이 열렸던 2011년도부터 프로 활동을 시작한 노장이지만 유난히 TI 무대, 그리고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TI1 당시 '피어'는 OK니르바나 팀 소속으로 출전, 그룹 스테이지를 3전 전승으로 마감했지만 승자전 1라운드에서 iG에게 패해 패자전 2라운드로 내려갔다. 2라운드에서 MUFC를 꺾은 OK니르바나는 3라운드에서 M5에게 패배하면서 8강으로 TI1을 마쳤다.

TI1이 끝난 후 EG로 팀을 옮긴 '피어'는 TI2에도 참가, 그룹 스테이지 3위로 승자전에 갔지만 작년과 똑같이 iG에게 패하면서 패자조 2라운드로 내려갔고 거기서도 통푸에게 패해 탈락했다. 2년 연속으로 중국 팀에 발목을 잡혀버린 것이다.

TI3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데몬', '제요', '섹시뱀보' 등의 라인업을 갖춘 EG는 초청을 받지 못해 서부 예선을 통과해야 했다. EG는 조별 예선에서 큐패드 레드판다와 마우스스포츠를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록스키스에게 1:2 패배, 패자전에서 마우스스포츠에게 0:2로 패해 TI3에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절망적인 팀 상황에도 불구하고 '피어'는 EG를 떠나지 않았다. '피어'는 2012년 당시 EG에서 함께 활동했다가 디그니타스로 떠났던 '유니버스'와 다시 손을 잡고 새드보이즈를 인수했다. 새드보이즈에서 'ppd', '아티지', '자이'를 데려온 EG는 전력이 강화되면서 대회 우승컵을 따내기 시작했지만, 정작 '피어'는 손목 부상 때문에 대회에 참가하지 못해 스스로 우승컵을 들 수 없었다.


TI4에서 EG는 3위라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러나 EG가 3위라는 빛나는 성적을 기록한 자리에도 '피어'는 없었다. 손목 부상 탓에 게임을 하지 못한 '피어'는 코치로서 합류할 수 밖에 없었고, '피어'의 자리에는 '메이슨'이 대신 있었다.

TI4가 끝난 후 '피어'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다. 그 후 EG가 WEC 2014에서 C9을 꺾고 우승을 하면서 '피어'는 생애 첫 우승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나긴 암흑기가 끝나고 '피어'에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ESL One 뉴욕 준우승, 스타래더 시즌10과 드림리그 시즌2 우승을 하면서 '피어'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 전성기도 잠시, 팀의 가장 강력한 카드였던 '아티지'와 '자이'가 떠나면서 '피어'의 앞길도 다시 순탄치 않게 됐다. 둘의 빈자리에는 C9에서 활동하던 '아우이2000', '유니버스'의 추천으로 들어온 '수메일'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신인으로 채워졌다.

새파랗게 어린 16세 '수메일'을 데리고 출전한 대회는 다름아닌 도타2 아시아 챔피언쉽(이하 DAC). TI를 제외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오프라인 대회였다. '피어'가 출전한 모든 대회들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이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았던 '수메일'은 '피어'를 비롯한 다른 노장들의 리드를 받으며 역대 최고의 보석이었음이 드러났다. '피어' 역시 나이를 잊은 대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 덕분에 EG는 DAC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TI5가 시작되기 전까지 EG는 팀 시크릿에게 몇 차례 발목을 잡히며 준우승에만 만족해야 했다. TI5가 시작된 후에도 그룹 스테이지 단계에서 EG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3승 4무를 기록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DAC에서 그토록 활약했던 '피어'는 TI5에서는 이따금씩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피어'는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 흔들리고 '멘붕'하는 일이 없었다. 한 번 실수를 해도 다음 세트에서 곧바로 경기력을 회복했다. 패기의 신인 한 명과 4명의 노장이 뭉친 EG는 승자전 결승에서 중국의 CDEC에게 무기력하게 패해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곧바로 멘탈을 가다듬고 결승전에 진출, 복수전에 성공하면서 TI5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엔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집에서도 쫓겨난 채 다 쓰러져 가는 책상에 성능도 안 좋은 컴퓨터를 놓고 게임을 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였던 '피어'였지만, 꾸준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면서 어머니와도 화해하게 됐다. '피어'의 어머니는 이번 TI5 본선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EG 스위트룸에서 '피어'를 응원했고, '피어'는 어머니의 성원에 우승으로 보답했다.

모든 것을 잃고 프로게이머를 시작한 '피어'는 4년이 넘는 도전 끝에 마침내 모든 것을 이뤘다. '피어'의 나이가 이제 나이가 27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가 현역으로 활동할지, 아니면 코치로 전환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프리 투 플레이'에서 알려진 절절한 스토리로 많은 팬들을 만들어낸 '피어'. 그는 나이와 관계 없이 누구든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앞으로 '피어'가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