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스컴2015'의 열기가 절정에 이르던 8월 6일 목요일. B2B 관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업계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바쁠 터였다. 자신들의 게임을 홍보하고, 새로운 시장으로의 활로를 개척할 기회로 이만큼 좋은 행사가 어디 있겠나.

서류가방을 든 채, 혹은 개발 빌드의 게임 샘플이 담긴 스마트폰을 들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관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주스 바로 향했다. 2년 전 잠깐 스쳐 가며 만난 인연을 독일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파하 슐츠'는 상당히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온 업계인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를 둔 그는, 한국계 게임사에서 첫 경력을 시작했다. '조이온'을 거쳐 '엔씨소프트'에서 6년을 근무한 그는, 이후 EA를 거쳐 '크라이텍'에 자리를 잡았다. 재작년 진행되었던 '게임스컴2013' 당시, 크라이텍 본사를 탐방한 인벤 기자들을 에스코트해준 그는, 말 잘하는 한국인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했다. 어렵지 않게 탐방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그런 그가, 크라이텍을 나와 작은 회사를 차렸다고 알려왔다. 게임업계에서 잔뼈가 굵었고, 다년간의 해외 관련 업무로 경력을 쌓아온 '파하 슐츠'. 그는 어떤 비전을 보고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게 되었을까.

▲ 2013년, 크라이텍 본사 탐방 당시의 '파하 슐츠'




Q.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 좀 해줄 수 있나?

외모는 서양인이지만, 엄연히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가 독일 분이라 외국인 학교에 다녔고, 게임업계에 들어와 조이온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이후 엔씨소프트에서 6년을 근무했는데, 3년을 본사에서 일하고 3년은 유럽 지사에서 일했다. 당시 '길드워2' 관련해서도 잠깐 일했던 것 같다.

엔씨소프트를 나온 후엔 EA에서 조금 있다가 '크라이텍'으로 오게 되었고, 올해 5월경에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Q.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새로 창업을 한다는 것이 충동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을 텐데, 계기가 무엇인가?

전부터 창업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크라이텍 본사에서 일하던 당시, 사장에게도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할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일을 하면서 틈틈이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경영학 석사) 공부를 해왔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새롭게 창업을 하게 되었다.


Q. MBA 준비까지 했다면 다른 업계로의 이직도 알아봤을 것 같은데, 게임업계에 계속 매진하는 이유가 있나?

그냥 게임업계가 너무 좋다. 다른 업계도 알아보고 공부도 했지만, 이 업계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업계도 게임업계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긍정적인 열정을 품지 않는다.



Q. 그럼 정확히 어떤 목표로 회사를 만들게 된 건가?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시아 쪽의 모바일 게임들을 유럽 시장으로 갖고 오는 문제이다. 특히 중소규모의 모바일 게임 개발사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이런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시아 시장 내에서는 콘텐츠 수출이 크게 어렵지 않다. 중국은 이미 많은 업체들이 진출한 상태이고, 일본 시장도 이미 사례가 많이 쌓여 있다.

하지만 유럽으로 나가려고 생각을 해 보면 이렇다 할 통로가 없다. 거대 퍼블리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레퍼런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성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진출 방법이 애매한 거다. 대형 회사는 자체적으로 지사를 차리지만, 중소규모 기업들은 그게 쉽지 않다.


Q. 유럽의 모바일 게임 시장도 규모가 있는 편인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규모는 이제 커가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서머너즈 워'같은 경우 유럽시장에서 히트를 하지 않았나. 현재 아시아 시장의 트렌드는 액션 RPG라고 할 수 있다. 차기작으로 발표되고 있는 모바일 게임들도 비슷한 흐름을 타는 중이고 말이다.

유럽 시장은 아직 건설 게임이나 캐주얼 게임, 전략 게임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만, 조만간 아시아와 비슷한 트렌드를 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동시에 아시아 게임들이 유럽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 같은데, 내 생각엔 그중에서도 한국 게임이 더욱 경쟁력을 갖게 될 것 같다.

유럽 개발사들이 만든 게임이 가장 성공적으로 서비스되는 곳이 한국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나름 흥행하는 유럽 모바일 게임들이 있지만, 게이머들의 공감대는 한국과 가장 비슷하다는 뜻이다.


Q. 그럼 어떤 종류의 작품들을 주목하고 있는가?

몇몇 작품들이 있다. 눈여겨보는 작품들은 캐릭터를 축약하거나, SD 화해서 표현하지 않은 리얼한 그래픽을 가지면서 동시에 액션과 RPG를 녹여낸 작품들이다.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대세'를 이루고 있는 모바일 액션 RPG


Q. 최근 국내 액션 RPG 모바일 게임들은 '자동 진행'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 '자동' 시스템에 대해 유럽인들의 시각은 어떤가?

딱히 자동 시스템을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유럽 게이머들은 편견이랄게 없다. 여러 가지 시스템 중 가리는 것 없이 오픈 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사실상 벌써 걱정을 한다든가, 혹은 적극적으로 자동 시스템을 채택한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다. 런칭 이후 피드백을 보아 대응할 수는 있지만, 미리 계획을 짜기는 어려울 것 같다.


Q. 국산 액션 RPG가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 것 같나?

일단 게임 내 수치나 레벨업 속도 등에 대한 테스트와 조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게이머들은 굉장히 하드코어 하게 게임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굳이 PC 온라인과 모바일을 가리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작정하는 유저들은 정말 진득하게 플레이하지 않나.

하지만 유럽 시장에서는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게이머들이야 비슷한 게임을 많이 접해 왔고, 인터페이스나 게임 진행 면에서 굉장히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 게이머들은 아직 가상 패드를 이용한 움직임 등에 대한 이해도가 모자라는 면이 없잖아 있다.

유입된 게이머들을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면, 한국보다는 조금 더 쉬운 수준으로 조절하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시장에 액션 RPG류 게임이 익숙하게 자리 잡으면 조절 폭이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Q. 이번에 창업한 '플레이스낵'에 대해 조금 소개해줄 수 있나?

아직은 굉장히 작은 규모의 회사다. 나까지 네 명인데, 날 빼면 다른 멤버들 중엔 게임 쪽에서 일하다 온 멤버들이 없다. 경영학이나 금융 쪽에서 일하던 이들을 게임업계로 끌고 왔다. 사람을 모은 이후 베를린에 사무실을 얻어 회사를 차렸다. 베를린에는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있고 다양한 스타트업이 존재하지만, 실리콘밸리와 같이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게임 쪽으로 특화되어 있는 벤처캐피털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일단 베를린의 사정에 맞춘 레퍼런스를 마련할 생각이다.

우리의 목표는 아시아권의 모바일 게임들을 유럽 시장으로 가져오는 거지만, 성급하게 시작할 생각은 없다. 그 때문에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습득과 흐름을 보기 위해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 이 게임을 통해 표준적인 유통 경로를 구축한 후, 외부의 게임들을 가져올 예정이다.


Q. 어떤 게임을 만들었는지 볼 수 있나?

'퍼즐 카페'라는 게임이다. 방법은 간단한 퍼즐 게임인데, 판을 가로, 세로로 움직여 원두나 우유, 물, 커피잔 등을 합쳐(2048, Threes와 비슷한 조작) 커피를 만들 때마다 점수를 얻는다. 만들 수 있는 커피의 종류는 매우 많고, 실제로 존재하는 커피들이다.

▲ '퍼즐 카페'의 플레이 화면


아직 출시는 하지 않았고 발표만 한 상황인데, 아마 몇 주 후면 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글로벌로도 서비스할 예정이다.


Q. 한국에 직접 와서 업체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있나?

조만간 한국에 갈 예정이다. 예상보다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바일' 게임은 글로벌로 출시하기 가장 쉬운 구조임에도, 유럽 시장은 뭐랄까 '교두보'의 역할을 해주는 무언가가 없었다.

유럽 진출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드리거나, 유럽 현지 상황에 알맞게 로컬라이징하는 과정 등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 의도는 중소기업들이 유럽에 성공적으로 게임을 출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는데, 예상 외로 대규모 기업들도 관심을 자주 보이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플레이스낵'의 비전을 말해줄 수 있나?

북미보다 유럽 쪽에서 한국 모바일 게임들은 더욱 잠재력을 발휘할 거라 확신하고 있다. 과거 한국형 온라인 게임들이 유럽과 독일 시장에서는 굉장한 흥행세를 이뤄낸 바 있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 한국 온라인 게임들이 전성기를 이뤄냈던 만큼, 한국 모바일 게임들이 유럽에서 흥행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