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스의 세계관 창세부터 상고시대까지 (각 항목을 선택하시면 해당 정보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창세 시대
  ㄴ 다이몬 신족의 최초 창세 
  ㄴ 섭리의 탄생과 신들의 황혼 

신화 시대
  ㄴ 세계의 수호자 용과 거신족의 탄생 
  ㄴ 용과 거인의 전쟁

상고 시대
  ㄴ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혼돈의 씨앗 
  ㄴ 마룡의 광란과 에시르의 분열



☞ 세계관 2편, 발전과 번성 등 역사적 황금기 고대 루멘 시대 [바로가기]

☞ 세계관 3편, 암흑 시기에 이어 남북국 시대의 개막 현세까지 [바로가기]


■ 다이몬 신족의 최초 창세

태초에 세계는 형상 없는 질료로 이루어진 혼돈의 바다였다.

시간이 흐르자 혼돈 속에서 무수한 관념, 즉 이데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관념과 관념이 모여 수많은 의지, 즉 텔레마가 생겨났다. 오늘날 고대신이라 일컫는 다이몬 신족(神族)의 탄생이었다.

혼돈에서 태어난 다이몬 신들이 창세 의지로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자, 세계의 모든 영역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이몬 신족은 혼돈을 재료 삼아 하늘을 세우고 땅을 펼쳤으니, 바로 최초 창세 게네시스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세 시대의 세계와 그 안의 모든 형상들은 지금보다 훨씬 무르고 약했다. 하늘과 땅의 구분이나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분명하지 않던 때였다. 그래서 다이몬 신족이 원하는 바는 무엇이든 그대로 이루어졌다. 다이몬 신들이 행한 창조의 절정은 의지로서 의지를, 즉 생명을 낳는 일이었다.

이 당시 태어난 오래된 종족들, 대표적으로 수인(獸人)이나 환수(幻獸)들은 신비하거나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법칙도 없는 세상에서 오로지 다이몬 신들이 바라는 대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 섭리의 탄생과 신들의 황혼

창세 시대의 다이몬 신족은 그 수가 적지 않았고, 각각 다른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몬 신들의 의지와 의지가 충돌할 때마다 세계의 형상이 일그러지거나 뒤틀렸다. 어떤 다이몬 신도 세계의 소멸을 바라지는 않았으므로, 이런 사고는 곧 수습되곤 했다. 파괴될 위기에서 벗어날 때마다 형상들은 그 이전보다 견고해졌고,세계를 수복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복수의 의지들이 한 데 모여 강력한 법칙을 이루었다.

이런 법칙들이 늘어나면서 섭리라고 하는 거대한 의지, 혹은 의지의 흐름이 생겨났다. 섭리는 곧 피지스Physis라는 이름의 본질(本質)을 낳았다.

피지스는 모든 존재를 규정하는 근원이 되었고, 세계의 형상에 지속성과 본래성을 부여했다. 섭리는 다이몬 신들이 지닌 의지의 총합이며, 따라서 다이몬 신족으로부터 비롯한 질서였다. 그러나 섭리가 낳은 본질, 피지스는 우유(偶有)한 속성을 지닌 다이몬 신족을 강력하게 배척했다. 피지스는 세계를 점차 완성태(完成態)로 규정하며 다이몬 신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대다수 다이몬 신들은 피지스에 굴복해 섭리의 일부가 되었고, 의지를 잃어버렸다. 이를 신들의 황혼이라 한다. 신들의 황혼 당시 멸망을 피한 일부 다이몬 신들은 점차 견고하게 변하는 세계의 바깥으로 달아났다. 이들은 억겁의 시간 동안 세계와 세계 사이에 놓인 심연을 떠돌 운명이었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다이몬 신족이 사라지자, 온갖 신비와 기적으로 가득했던 창세 시대는 끝이 났다. 그리고 창세 이후, 피지스의 섭리가 세계의 유일한 의지, 즉 일원(一元)이 되어 세계의 모든 현상과 모든 변화를 주관했다.






■ 세계의 수호자 용과 거신족의 탄생

창세 시대가 끝날 무렵, 섭리는 다섯 마리 용을 빚어 세계의 수호자로 삼았다.

다섯 마리 용들은 다이몬 신족의 피조물과 달리 완전 무결한 존재였고, 각각 물의 바실라스, 불의 벤투스, 바람의 푸스, 땅의 멜라카지우스, 빛의 이리아코포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한편 다이몬 신들이 섭리의 일부로 화할 때, 그들이 품고 있던 창조 권능은 혼돈의 씨앗이 되어 세상에 흩어졌다. 다섯 마리 용들이 섭리의 명을 받아 대부분의 씨앗을 회수했지만 일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 중 하나로부터 거신족이라고도 하는 기가스의 무리 기간테스가 태어났다.

다이몬 신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기간테스는 혼돈의 기운을 타고났기 때문에, 섭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처음부터 존재를 부정당했다. 끔찍한 고통과 절망에 시달리던 거신족은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미쳐 날뛰었고, 이를 막으려는 용들과 전쟁을 벌였다.

용들은 거신족을 차례로 물리쳐, 마침내 최초의 기가스인 이미르만 홀로 남았다. 이미르는 용들에게 죽기를 거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미르의 피가 대지에 스며들자 그로부터 거인족 티나네스와 소인족 나노스가 생겨났다. 거인족과 소인족은 그 조상인 기간테스와 마찬가지로 혼돈을 타고났으나, 대지의 속성이 그들의 본질을 규정해 섭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 용과 거인의 전쟁

거인족은 스스로 요툰이라 이름 짓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갔다.

티탄들 중 일부는 다른 장소를 택해 주르트나 에기르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소인족 나노스는 드베르그라는 이름을 받아 요툰의 노예로 일했다. 드베르그 종족은 거인에게 밟혀 죽지 않기 위해 땅 밑에 굴을 파고 거처로 삼았다. 그런데 이 난장이 드베르그들이 어느 날 깊은 지하에서 혼돈의 씨앗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난장이들은 곡괭이로 혼돈의 씨앗을 내리쳤다.

그러자 세계의 형상이 일시 무너지며, 그 자리에 차원의 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최초로 열린 차원의 문을 통해 게헨나의 악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악마들은 사실 신들의 황혼을 피해 세계 바깥으로 달아난 다이몬 신족의 권속이었다. 다이몬 신들은 억겁의 시간 동안 바닥 없는 음부를 헤매며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게헨나라 불리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게헨나의 원주 종족인 이블리스는 강대한 힘을 얻기 위해 차원의 문을 열고 심연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었다.

다이몬 신족은 이 차원의 문을 통해, 혼돈의 파도를 타고 게헨나 세계로 난입했다. 다이몬 신들은 순식간에 게헨나를 정복하고 혼돈의 세계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블리스 종족을 타락시켜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다.


게헨나의 악마들은 바로 이들 타락한 이블리스였다.

난장이 족에 의해 현세에 차원의 문이 열리자, 다이몬 신족은 자신들이 부리는 악마를 보냈다. 섭리의 눈을 피해 차원의 문을 통과한 악마들은 난장이 드베르그에게 다이몬 신들의 지식과 기술을 전했다.

이때부터 난장이들은 마지막 거신 이미르의 피에서 비롯한 창조의 권능을 깨달았고, 거대한 성채와 정교한 물건을 만드는 재주를 익혔다.

그러나 다이몬 신족은 난장이들이 미력한 종족임을 알고 곧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악마들을 시켜 보다 강대한 거인족 요툰과 접촉하게 했다. 악마들은 거인족의 귀에 창세의 비밀을 속삭였다. 그리고 세계가 다시 혼돈의 바다로 돌아가면, 거인들이 태초의 다이몬 신족과 같은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다이몬 신족의 꾐에 넘어간 거인들은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려 들었고, 수호자 용들이 다시 나타났다. 용들은 피지스가 부여한 힘으로 거인족을 공격했다. 그러나 거인들은 난장이를 시켜 만든 강력한 무구를 장비하고, 이미르로부터 물려받은 혼돈의 힘을 발휘하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결국 용들과 거인들 사이에 길고 처절한 전쟁이 벌어졌다.

수천 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결국 거인족의 멸망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용들 또한 이 싸움으로 수많은 권속을 잃고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그렇게 다섯 마리 용들은 다시 힘을 회복할 때까지 기나긴 잠에 빠져들었다.

용과 거인의 전쟁을 끝으로, 신화 시대가 막을 내렸다.






■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혼돈의 씨앗

다섯 용들에 대항한 전쟁을 벌이면서, 티나네스 거인족은 세계 각지에 숨겨진 혼돈의 씨앗을 찾아내 파괴했다.

씨앗 안에 봉인된 혼돈의 기운, 즉 다이몬 신족의 권능을 꺼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혼돈이 세상에 만연하게 되었고, 섭리는 세계의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혼돈의 기운을 수습했다.

그 결과 마침내 질서와 혼돈이 조화를 이루고, 유일 의지는 그 존재와 그 본질에 구별이 없는 진정한 일원으로 완성되었다.

혼돈을 받아들인 피지스는 자신이 규정한 세계 본질의 완성과 영속을 위해서는 파괴와 재생의 순환이 불가피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일원으로부터 독립적인 의지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피지스는 혼돈의 씨앗들 중 하나를 대지에 심었다. 피지스가 심은 씨앗으로부터 생명 나무 릴리안테스가 자라났다.


이 릴리안테스의 열매로부터 태어난 종족이 최초의 안트로포스인 에시르, 즉 엘프였다.

질서와 혼돈을 모두 타고난 에시르 종족은 조화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에시르들은 수가 늘어나자 생명 나무 주변의 울창한 삼림 지대에 엘 그라디스라는 이름의 나라를 세우고 문명을 건설했다.

한편 거인족 티나네스가 용과의 전쟁으로 멸망하자, 노예로 일하던 드베르그 종족은 옛 주인의 영토를 떠나 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왔다. 난장이들은 창조의 권능이 깃든 손재주로 회르젤 산 내부에 거대한 지하 도시를 건설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돌 왕국 우르간드라 명명했다. 이렇게 엘프와 드워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대륙에는 엘프와 드워프 외에도 판테라, 루푸스, 사우론, 나가 등 다이몬 신족이 창조한 여러 지적인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선주 종족의 문명은 발생 단계부터 다이몬 신족의 권능에 의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신들의 황혼 이후 대다수 선주 종족들은 이지를 잃어버리고 야수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다만 정령을 통해 섭리에 귀의한 루푸스와, 같은 다이몬 신들에 의해 봉인된 아쉬-루하의 피조물 판테라만 예외였다.

선주 종족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에시르와 드베르그를 적대하고 증오했다. 일부는 다이몬 신족이 보낸 악마들과 손을 잡고 고왕국이나 우르간드를 침략하기도 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에시르와 주위 환경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드베르그는 원래 서로를 경원시 했다.

그러나 선주 종족들의 위협이 점점 더 거세지자, 엘 그라디스와 우르간드는 동맹을 체결했다. 어느 한 쪽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한 쪽도 나서서 싸우기로 한 이 약속은, 가장 오래된 맹세로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에시르와 드베르그 문명은 서로 교류하며 더욱 발전했고, 두 왕국은 날로 강대해졌다. 결국 에시르와 드베르그 동맹은 선주 종족을 오지와 변경으로 몰아내고 대륙을 지배했다. 그러나 두 왕국의 황금 시대는 천 년을 이어가지 못하고 종언을 맞이했다.

바로 마룡의 광란 이라 불리는 사건 때문이었다.






■ 마룡의 광란과 에시르의 분열

피지스가 세계의 수호자로 삼기 위해 창조한 다섯 용들은, 기나긴 악몽 속에 갇혀 있었다.

용들은 원래 유일하고 정명한 법칙 안에서 완전 무결한 존재로 지어진 섭리의 화신(化身)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존재의 근원으로 삼았던 섭리 자체가 혼돈을 포용하며 변화하자, 다섯 마리 용들은 완전성을 상실하고 미망(迷妄) 속에 빠져들었다.


그들 중 화룡(火龍) 벤투스가 가장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변해버린 세계에서 벤투스는 마치 과거의 기가스나 타이탄처럼 이질적인 존재였다. 세계의 본질과 연결점을 잃어버린 벤투스는 피지스의 선례를 따르기 위해 혼돈의 씨앗을 삼켰다. 그러나 벤투스는 홀로 완전한 존재인 용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 없었고, 조화를 이루는 대신 광기에 사로잡혀 타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마룡(魔龍)이 되어버린 벤투스는 피지스의 총애를 받는 에시르와 혼돈의 씨앗을 깨뜨려 세계가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낸 드베르그에 대한 맹렬한 증오에 사로잡혔다.

하필 벤투스가 잠들어 있던 장소는 돌 왕국 우르간드 바로 아래였다. 벤투스는 자신의 권속을 부려 우르간드를 공격했다. 선주 종족이나 악마들과 싸우며 잔뼈가 굵었던 드베르그 전사들은 벤투스가 내뱉는 불길 앞에 속절없이 죽어갔다. 우르간드의 드워프 12지파 중 절반이 벤투스에게 항복하고, 거인에게 봉사했던 과거처럼 마룡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다.

나머지 여섯 지파는 끝까지 싸우기를 결의하고, 동맹인 에시르를 기다리며 항전했다. 그러나 엘 그라디스의 병력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 중 네 지파는 멸망하고 말았다.

마침내 엘 그라디스의 여왕 에를리오네가 이끄는 에시르 군세가 남아 있는 드베르그 두 지파의 전사들과 합류했다.

그러나 마룡 벤투스와 그의 권속들은 너무나 강력했고, 변절한 여섯 지파의 드베르그도 거센 공세를 펼쳤다. 두 종족의 연합 전선은 엘 그라디스까지 후퇴했고, 벤투스의 불길에 생명 나무 릴리안테스마저 큰 타격을 입었다.

절망의 문턱 앞에서, 에시르와 드베르그의 명예로운 동맹은 전설로 남을 만한 분전(奮戰)을 펼쳤다. 엘 그라디스에서 펼쳐진 이레 낮 이레 밤 동안의 혈전 끝에, 두 왕국의 동맹군은 마침내 승기를 잡았다.

드베르그 전사 발드락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쇠뇌를 발사해 벤투스의 날개를 찢었던 것이다. 에시르와 드베르그는 땅에 떨어진 벤투스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크게 다친 벤투스는 마지막 힘을 다해 도망쳤다. 동맹군은 회르젤 산 지하, 벤투스의 소굴까지 추격해 들어갔고 마침내 여섯 개의 기둥으로 마룡을 봉인하는데 성공했다.

에시르와 드베르그 동맹은 마룡을 물리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두 왕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단 두 지파만 남아 있는 드베르그는 겨우 멸망을 피한 정도였고, 아름답던 엘 그라디스 또한 폐허나 다름없는 지경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또한 생명 나무 릴리안테스는 벤투스가 남긴 상처 때문에 시들어 죽어가면서, 더 이상 온전한 에시르가 태어나지 않게 되었다.

마룡 전쟁 직후의 절망과 비탄 속에서, 엘 그라디스의 마지막 여왕 에를리오네는 혼돈의 씨앗을 찾아 종족의 운명을 구하고자 했다. 티나네스 거인들의 최후를 기억하는 많은 에시르가 여왕의 시도에 반대했지만, 에를리오네는 이를 묵살했다. 결국 에시르 장로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엘 그라디스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벤투스가 남긴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벌어진 이 비극적인 전쟁은 결국 에를리오네 여왕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여왕의 심복이자 엘 그라디스의 대마법사였던 아르키엘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나면서, 에시르 종족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이렇게 화룡 전쟁과 뒤이어 벌어진 엘 그라디스 내전으로, 에시르와 드베르그의 두 왕국이 번성했던 고대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