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를 항상 받지만 이상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단계로 진출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다. 김준호(CJ)는 이번 스타리그 결승전에 진출하기 전까지 항상 4강에서 좌절했고, kt 선수들 모두가 인정하는 연습실 최고 실력자 이영호(kt)는 16강을 넘지 못했다.

이병렬(진에어) 역시 이 저주 아닌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는 이를 황당하게 할 정도로 기발한 전략을 들고 나와 저그의 등불이 되었으나, 정작 그 자신은 8강만 가면 이상하리만치 힘을 쓰지 못했다.

이병렬은 탄탄한 운영으로 대표되는 선수다. 경기가 무난한 중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면 이병렬은 웬만해서는 지지 않는다. 이병렬이 개인리그 32강, 16강을 통과할 때는 이런 운영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경기가 듀얼토너먼트가 아니라 다전제 방식으로 치러지는 8강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다전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전, 판짜기이다. 예상치 못한 필살기나 평소와 다른 스타일의 경기로 승리를 따내면 상대는 동요할 수 밖에 없다. 다전제 판짜기에서 한 번 상대를 말리게 하면 이후 경기를 풀어가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에 이런 필살기는 중요한 미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미덕이 이병렬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이병렬은 여타 선수들처럼 다전제에서 심리전을 걸기 위해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초반 공격형 빌드를 여러 차례 들고 나왔다. 그러나 평소같지 않은 스타일의 경기로 재미를 보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의 리듬만 망가지면서 스텝이 꼬이곤 했다. 억지로 무리한 공격을 퍼붓다가 막히면서 경기에서 패배하고 이후 멘탈이 무너진 이병렬은 평상시의 탄탄한 운영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8강 경기마다 나타났다.

이병렬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GSL 16강에서 정우용(CJ)과의 사투 끝에 힘겹게 8강에 올라간 이병렬은 승자 인터뷰에서 "빌드 생각은 많이 하는데 새 빌드 연습을 많이 하질 않고 경기해서 잘 안 통하는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이번엔 빌드나 판짜기 위주로 연습을 하겠다"고도 말했다.

이병렬의 8강 상대는 바로 팀원 조성주(진에어)다. 같은 팀에서 생활하는 만큼 보통 수준의 빌드, 판짜기 연습으론 전부 파훼당하기 십상이다. 이병렬이 보여주던 상대 본진 부화장 러시, 군단 숙주 등 조성주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필살기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믿고 조성주와 운영으로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이 좋아보인다. 이병렬은 '색다른 스타일, 다전제 심리전'만 신경쓰다가 8강에서 4번이나 쓴 맛을 봤다. 이번 8강에서야말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할 때다.

이병렬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그리고 WCS 글로벌 파이널 진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4강에 올라가야만 한다. 만일 이병렬이 이번에도 8강에 머물 경우, 박령우(SKT)가 드림핵에 출전해 우승하고 정명훈(데드픽셀즈)이 준우승, 백동준(삼성)이 GSL 우승을 하는 온갖 경우의 수가 겹칠 때 이병렬은 글로벌 파이널에 가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최대 커리어와 글로벌 파이널 진출 확정 여부가 걸린 조성주와의 GSL 8강전, 이병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18일 펼쳐지는 2015 핫식스 GSL 시즌3 코드S 8강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 핫식스 GSL 시즌3 8강 2일차

1경기 이병렬(Z) VS 조성주(T)
2경기 이신형(T) VS 주성욱(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