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영훈 기획자


그는 웹젠, 위메이드, 엔씨소프트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당장은) 게임회사에서 근무 중입니다. '방영훈' 기획자 이야기입니다.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기획 강연은 아니었습니다. 숱한 시행착오와 고통을 겪으며 '보다 나은' 기획자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솔직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았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조금 깁니다.





아,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여기 하라다 PD님 강연장 아닙니다. 그 분은 지금 메인홀에서 강연 중이세요.
시간이 똑같은데 혹시 착각하셨을까봐...
제 강연 들으러 와 주신 분들이라면...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강연할 내용입니다.
얘가 이런 거 준비했구나 정도로 봐 주셨으면 해요.



혹시 빅3라는 거 들어보셨나요.
요즘은 다른 타이틀로 대체되었는데,
제가 처음 게임업계 빅3라는 말 들었을 때는
그라나도에스파다, 제라, 썬까지 해서 3개의 MMORPG가 빅3라고 불렀어요.



저는 이중에서도 W사의 작품 '썬'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어요.
한 5년 간.



저는 사실, 게임 기획으로 시작한 게 아니예요.
보통 QA라고 부르는, 품질관리 일을 했었는데요.



어떤 일을 하는 건지는 다들 간략하게 알고 계시겠지만, 설명을 드리자면
테스트 플랜, 그러니까 테스트 계획을 짜고
테스트 하는 방법을 열심히 디자인 하고
그 다음에 직접 테스트를 하고
테스트한 것을 보고하는... 이런 일들을 하는 게 QA예요.
단순하게, 그냥 떠오르는 것 같이, '게임만 하다 집에 가시는 분들' 이런 게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라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업계 들어오자마자 큰 위기가 닥쳤어요.
QA 팀이 해체가 됐는데요.
입사 3개월 됐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 이런 봉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게,
원래 팀이 해체되면 다른 팀 QA들은 기획팀 산하의 QA 파트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기획팀이 QA의 방향성을 좌지우지하는 방향으로 팀이 세팅이 되곤 했죠.
그런데 '썬' 같은 경우에는 다행히 PD님이 직속 파트로 데려가주셔서
좀 독립적인 성격을 띄고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저는 테스크 포스라는 분야의 일을 하게 됐어요.
거기서 어떤 일을 했냐면,
게임 밸런스 TF... 이게 되게 모호한 단어인데
그러니까... QA를 하다보니까 '이 게임에서 제가 잘 알고 있는 게 이 분야일 거다'라는,
PD님의 감지덕지한 기대가 있었어요.
덕분에 게임 전반적인 밸런스 관련한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요.
그리고 게임 내 유료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도 참여했습니다.



했던 일을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의견을 개진하고, 그리고 다른 분들하고 조율하고, 회의록을 작성해 공유하고,
실제로 작업하는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이었어요.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신입 기획자 때 했던 업무랑 되게 비슷한거예요.



그러다 두 번째 위기가 왔어요.
계약직으로 일했거든요, 그 땐.
시간이 지나고 계약이 끝났어요.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또 그때 운이 좋게도 당시 회사가 인수합병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조직이 합쳐지고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 그 때 고용 전환이 됐어요. 행운이었죠.
당시 팀장님이 '얘는 정규직이니 뭐 좀 시켜야하지 않을까' 해서 파트장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고요.
이건 사실... 제 흑역사라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를 심하게 말아먹었거든요.
'아, 매니지먼트는 내가 할 게 아니구나' 느끼고 지금은 실무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A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어떻게 전환을 하게 됐는지 설명드릴게요.



사실 분야를 변경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QA는 안정적인 결과를 우선하거든요.
그런데, 제 개인적인 성향이...
빌드가 안정적이지 않더라도 좀 더 재밌는 요소를 넣는 걸 선호하거든요.
이것 때문에 팀 내에서도 좀 마찰이 있었고
스스로 생각할 때 '아, 이건 QA가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닌데'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같이 일하던 PD님이나 다른 분들께서
'그러면 너가 기획자 일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 하고 제안하셨어요.
여러가지 상황도 맞물렸고, 결국 기획자로 보직 변경을 결심하게 됐죠.
기획자가 된 후 처음으로 한 일이 빌드 마스터라는 건데,
라이브 서비스 하시는 분들은 이 단어를 아실 거예요.



어떤 일을 하냐면,
일단 게임 리소스를 관리해요. 그래픽 팀이 만든 아트 에셋, 프로그래머가 만든 빌드,
그리고 기획자가 만든 데이터를 다 모아서 완성된 하나의 폼 안에 넣는 거죠.
또 사람들이 우후죽순 업로드를 하다 보면 데이터가 정리가 안 되는데,
그걸 잘 다듬는 일도 담당하게 됩니다.
로컬라이제이션도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해외서비스 담당을 했어요.
빌드를 갖고 사업부와 논의를 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리고 업데이트와 패치 등을 만들어서 배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널럴리스트'라고 알고 계시는,
잡부, 소방수 등의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일도 같이 하게 됐는데요.



쉽게 말해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하기 애매한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라고 전 생각해요. 왜냐면 제가 그렇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 제너럴리스트가 하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콘텐츠도 만들고 퀘스트, 시스템 시나리오.... 등 굉장히 많은 것들을 했어요.
일하는 분야가 하도 다양하다보니, 잡캐, 소방수 이런 별명이 생긴 거겠죠.



제너럴리스트이다 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일을 하게 되는데, 또 반대로 말하면...
하나를 만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만드는 거예요.
PvP 모드 리뉴얼을 가장 처음에 담당했었는데
일단 시나리오를 써요. 왜냐면 게임 시나리오는 있는데,
내가 만들 콘텐츠 시나리오는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시스템 디자인을 해요.
몇판 하면 몇점을 얻고 뭐 이런 식으로 열심히 구조를 짜요.



다음에는 퀘스트를 만들어요.
그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퀘스트가 있잖아요. 뭐, 몇번 갔다오세요 라던지, 몇번 이기세요라던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주고요.



관련 업적도 만들어요.
총 몇번을 하면 뭘 주고 이런식으로.



다음에는 보상 밸런싱을 해줘요.
이 경우에는... 포인팅을 얼마를 줄 건지, 얼마를 쓰면 어떤 보상을 줄 건지와 같은 거죠.



그 보상들을 모아서 살 장비도 제가 밸런싱을 해요.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이 다른 콘텐츠에 영향을 주는지 검토를 해야 합니다.
왜냐면 라이브 서비스다보니, 이미 많은 시스템이 게임 안에 들어가있어요.
이것들이 서로 영향, 혹은 간섭을 주지 않게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라이브 프로젝트의 특징을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장점은... 조직 규모가 굉장히 최적화 되어있어요.
실제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해 열심히 변화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기에
이 자체로도 효율이 뛰어나다는 거죠. 군더더기가 없어요.
제일 큰 장점은 그거죠.
내가 뭘 만들었는데, 게임에 들어간 유저들의 피드백을 최대한 빨리 볼 수 있어요.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예요. 단점도 명확한데요.
일단 조직구조가 좀 경직되어 있어요.
어떤 큰 변화가 필요할 때 수용하는 게 좀 어렵기도 합니다.



라이브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유용한 능력이 몇 개 있어요.
유연함, 기민함, 그리고 대범함인데요.
일단 유연함부터.
나는 레벨 디자이너니 레벨만 만들래요. 혹은 콘텐츠 디자이너니 콘텐츠만 담당하겠습니다.
뭐,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있어요. 사람이니까.
한데 전담이라는 개념이 사라져요. 라이브 프로젝트에서는. 좀 유연하게 대응하는 사고가 필요하죠.
또, 패치 일정도 그렇고, 버그 수정도 그렇고 일단 빨라야 돼요.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고요.
대범함, 이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실수를 안 할수는 없어요. 그래도 잘 고치면 됩니다.
기죽어서 안 나오고 그런 것보다는, 실수 인정하고 빨리빨리 고치는 게 낫죠.



다음으로 넘어가서... 등대, 등대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볼게요.



이 쪽으로 넘어온 건, 이런 이유였어요.
회사가 좀 오래 됐고 안정적이다보니, 오래 근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도 한 5년 일했고.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 일을 평생 해야되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드니 좀 무섭더라고요. 전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안정적인 게 최고같아요.
운이 좋아서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거죠. 저는.



이전 회사 프로그래머 분들이 한 프로젝트에 계셨고 제게 이직 제안을 하셨어요.
새로운 거 하신다길래 저도 갔죠. 뭔가 좀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초록색 W사 가서 1년동안 이런 일을 했어요.
주력이 모바일이다보니 좀 이것저것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하나씩 설명을 드릴게요.



일단 제일 처음 콜을 받고 간 조직이 MMORPG 만드는 조직이었어요.
그 때 모토는 깊은 스토리와 유기적 환경을 가진 MMORPG 만들기였고,
레퍼런스는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이었죠.
스카이림을 MMO로 만든다... 굉장하잖아요. 엄청난 꿈을 갖고 이직을 했거든요.



그런데 봉변을 맞았어요. 모바일로 만들래요.
사실 저는 데스크탑 게임을 만들기 위해 간 건데...
굉장히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는데, 심지어 장르가 그대로예요.
이 게임을 그대로 모바일로 만들래요.
굉장한 도전이 되겠구나 했죠.



전 레벨 디자인을 했어요. 이전에 제너럴리스트였고, 손그림을 좀 그린다고 증명하니,
면접자리에서 PD님이 '너 레벨 디자이너 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했어요.
물에 젖으면 화염 면역이 되고, 그러면 관련 속성 데미지가 감소하고
뭐 이런 상호작용을 많이 보완했었는데...



접혔어요.
뭐... 뭐 이걸... 뭐랄까. 높으신 분들의 의지로 그냥 접힌 것 같아요.
왜 접혔는지 사실 전 잘 모르고 있고요.
접혔어요. 그냥. 통보 받았습니다.



그 때 깨달은 점이,
장르를 유지하면서 플랫폼만 바꾸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거죠.



이 프로젝트가 중단된 게 또 입사 3개월만이었어요. 징크스같은 게 아닌가 싶은데,
제가 지금 직장에서 3개월째라 한창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운이 또 따라줬어요. 신작 제안이 한 번 더 들어왔는데요.



어떤 거 할래? 라고 물으시길래 '이거 하고 싶어요'하고 선택한 게 카드배틀이었어요.
레퍼런스는 이 분야의 양대산맥이면서도
게임플레이는 다른 '확밀아'와 '퍼즐앤드래곤'으로 잡았어요.



전 여기서도 제너럴리스트 일을 했어요.
팀 구성을 보니 순수하게 글만 쓰는 디자이너 위주로 세팅되었더라고요.
친한 개발자끼리 모여서 만드는, 동아리같은 느낌의 조직이다보니
저만 시스템을 맡게 되더라고요. 제가 전담하다시피 했고.
콘텐츠와 UI도 덤으로 했어요.



이런 작업을 했습니다.
시스템 테이블을 만들고 제작하는 것도 했어요.
이게 가능했던 건, 이전 직장에서 데이타를 만지다보니...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실제 UI도 제가 했고요.



그런데 접혔어요. 종이학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네요.
이전 게임은 프로토타입 만들기 전에 접혀서 게임이 없지만,
얘는 그나마 프로토타입 만들고 난 후에 접혀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APK나 남아서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깨달은 게 있어요.
모바일 CCG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장난 아니라는 거죠.
일러스트 많이 들어가잖아요. 일러스트 비용이 어마어마해요.
저는 아트팀이 다 그려주시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 양이 다 안 나온대요.



결국 팀은 해산됐어요. 아까처럼 재정비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조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어요.
내 등대 생활도 여기서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또 신작 제안을 받았어요.
누가 자꾸 건져주시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예전에 빨간 W사의 PM분이 여기에 계셨고요.
스카이림 온라인같은 걸 만들던 실장님이 다른 조직을 꾸리셨더라고요.
나가지 말고 한 번 더 같이 해보자 하셔서 가게 되었죠.



게임을 이미 만들고 있더라고요. 보드 게임이었고요.
모두의 마블을 능가할 온가족의 말판 게임을 만들자는 굉장한 모토를 갖고 있었어요.
뭐랄까... 그냥 뱀주사위였어요.
프로토타입 테스트를 마쳤다고 들어서 해봤는데,
깜짝 놀란게... 정말... 정말... 정말 굉장히
게임이 재미가 없었어요.



결국 여기에서도 제너럴리스트로 일하게 됐어요.
튜닝을 했죠. 저를 포함한 기획팀 멤버가 셋 뿐이었어요. 굉장히 소규모 조직이었죠.



이런 일을 했었어요. 손그림을 그릴 줄 알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렸듯,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런 걸 넣으면 재밌지 않을까 해서 열심히 했는데.


접혔어요.



이번에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 그냥 뱀주사위를 갖다 놓으니...
그냥 뱀주사위였고 딱히 재밌지도 뭣도 아니었거든요.
규칙 자체가 단순하다보니 그만큼 게임 디자인이 어렵더라고요.



룰즈 오브 플레이를 주제로 작년인가 세미나를 했었는데,
이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상당히 추천 도서입니다.
굉장히 유익한 책이예요.
그런데... 재미는 없어요.



다음에는 캐주얼 골프 게임을 디자인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골프가 대세라길래 PD님이 받아오신 건데,
레퍼런스는 '플립 골프'라고 손가락으로 치면 날아가는, 되게 심플한 게임 있어요.



여기선 UI 디자이너를 했어요.
왜냐면, 실제 게임디자인은 이미 플립 골프가 다 갖고 있었고, PD님이 리드를 하시기 때문에.



이런 걸 만들었어요. 끌고 놓고, 튀어나가고.



접혔어요. 만들다보니 골프 게임 유행이 지나서 그런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도 깨달은 게 있어요.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원래 저는 게임이 하고 싶으면 찾아서 하는, 올드 게이머 스타일이라
사람들이 모바일 게임을 왜 하지? 라는 입장이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분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모바일 게이머들이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했는데,
그냥 시간 죽이기... 였어요.
친구들이랑 하는 카톡이나 페이스북과 같이 그냥 친근하게 접근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죠.



이후에 '솔로몬즈 본야드' 같은 게임을 만들어라! 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새로 오신 상무님이 이걸 굉장히 재미있게 즐겼대요.
그런데 국내에서 흥행에 참패했으니 게임 외형을 좀 더 예쁘게 다듬어서 출시하면
대박이 날 거야! 라는 강한 믿음이 있으셨고, 모두가 매료됐죠.
당시 회사의 히트상품이었던 '윈드러너'의 요소를 접목시키면
모바일 짱짱 게임이 될 거야 라는 생각이 있으셨죠.



또 제너럴리스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상무님이 제안을 하셨는데, 기획자가 2명 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렵다 어렵다 라고 제가 회의 때 자꾸 상무님을 디스했더니
어느샌가 제가 리드 디자이너가 되어있더라고요.
후회하고 있습니다. UI깠다가 UI 디자이너 된 거랑 같다고 보고요.



이런 것들을 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 시나리오를 썼고요.
대사도 넣고, 프롤로그도 만들어보고, 순환 구조도 잡아 보고...



시스템 설계하고 테이블도 짜보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했고요.



UI도 했어요.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누르고...



접혔어요! 다 접혔습니다.



그래도 깨달은 건 있어요.
레퍼런스도, 퓨전도 어렵다는 거죠.
모 동물 나오는 게임이 2편이 나왔다. 그런데 다른 게임이랑 똑같다 이런 얘기 있잖아요.
그 게임 나왔을 때 전 가만히 있었어요.
왜냐면, 레퍼런스가 엄청 만들기 어려운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냥 카피캣이었는데, 그걸 프로토타이핑하는 것 자체도 상당히 힘들었어요.
정말 코드를 복사해오지 않는 이상 어려운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모바일 프로젝트의 특징... 일단 조직 구조가 굉장히 작아요.
이렇게 되면 장점은, 개인이 정말 이것저것 다 하게 됩니다.
난 게임 개발자야 라는 마인드로 하나하나 꼼꼼히 봐야 하니까.
하지만, 이게 단점이기도 한데, 단일화된 업무가 아니다보니
개인의 전문성 향상을 보장할 수가 없어요.
레벨 디자인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은데,
시나리오 써 이럴 수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유행, 이게 뭘 말하는 거냐면...
위에서 말한 프로젝트 하고 접히고 한게,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예요.
짧은 시간에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분명한 장점이예요.
이게 온라인에서 몇 년간 하시던 분들이 모바일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단점은... 아까 사례들에서 보셨다시피
워낙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다보니 그냥 '모방'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히트 게임 나오면
'저거 최대한 베끼면 돼'라고 방향성 잡히고
창의적인 고민을 할 여지가 생각보다 많이 줄어들어요.
게임 디자이너 평사원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죠. 개인 역량을 펼칠 기회가 줄어드니까.



여기에선 이런 능력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전체 개발 사이클이 굉장히 짧기에 기민함이 필요하고요.
원만함이 왜 중요하냐면
모바일 프로젝트는 문서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개발속도가 빠르다보니 만들고 넣어보고 옆사람한테 '이거 어때'라고 묻고 수정하고
이렇게 대화로 진행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는 일이 많은 만큼 원만한 성격이 좋을 것 같고요.
통찰력은 레퍼런스 게임의 의도를 빨리 캐치하는 데 필요해요.
그냥 그 게임을 다 따올 게 아니면, 그 게임의 재미를 100% 살리기 어려워요.
이러이러한 게임을 만들자 하고 뭉치는 경우도 많다보니,
디자인 작업 없이 만드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아요.
무작정 카피를 하지 않으려면 그 게임의 코어를 찾고 어떻게 적용할지 보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배경에 뭔가 보이는 거 같은데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1년동안 일하면서 어떻게 프로젝트가 좌지우지 되는지 깊이 깨달았어요.



3장입니다.
AAA게임이 무엇일까 물었을 때,
A급 게임 3번 만들면 AAA게임이다... 라는 이야길 했었거든요.
우린 네 번 엎었으니 쿼드 A 게임 만드는건가 이런 생각도 했었고
실제 대작 게임들 보면 만들다 엎고 하는 과정을 엄청 반복하거든요.
좀 자조적인 농담으로 제목을 정해봤고요.



등대를 나오게 된 이유는 이거였어요.
레퍼런스 게임만 너무 많이 하다보니 무서웠어요.
하나를 만들더라도 좀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요.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모바일게임이 진국이 아니라는 이야긴 아니예요.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이런 게 아닌데'와 같은 취향의 문제였어요.
내가 잘 만들 것 같은 게임을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에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이후 이 게임 만드는 회사에 갔어요.
작년 지스타 때 현장가서 이것저것 설명하기도 했고요.



네,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가 이 게임에서 '이걸 만들었다'라고 할 부분이 없어요.



전 직장에서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 리니지 이터널의 엔드 콘텐츠 디자이너.
여러분 생각하시는 것과 같이 엔드콘텐츠만 만드는 사람이예요.
이 프로젝트는 인원이 많이 투입되었다보니
콘텐츠 디자이너도 세분화되어있다는 것만 봐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 제너럴리스트가 되더라고요.
게임이 아직 개발중이다보니 엔드 콘텐츠를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기반, 그러니까 게임이 어느 정도 개발이 되야, 이후 엔드콘텐츠를 디자인 하는건데
게임이 개발 중이니까... '넌 이거라도 해'라고 됐고,
결국 예전과 하는 일이 비슷했어요. 불 끄는 사람 되서, 이것저것 급한 일들 처리하고 그랬죠.



어쨌든 한 일들을 나열하면 이런 겁니다.
PvE, RvR 콘텐츠와 보스몬스터 만들었고. 던전 시스템도 만들었어요.
여전히 제너럴리스트죠. 보시다시피.
이게 아직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프로젝트다보니, 설명드릴게 많지는 않아요.



대규모 프로젝트 하면서 느낀 특징들 설명을 바로 드리면...
팀 속에 팀이 있어요. 굉장히 깜짝 놀랐던 거예요.
팀장님들이 굉장히 많아요. 아래 팀도 팀장님이고, 위에 팀도 팀장님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일단 좋은 점부터 말할게요.
아래 위가 딱딱 나뉘면 굉장히 효율이 좋아요.
하지만, 역할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어디서부터가 네 일이고, 또 어디서부터가 내 일인지 구분이 어렵죠.
그래서 역할을 나누는 것 자체에서 비용이 발생해요.
잘 다루면 굉장한 시너지가 나지만, 잘 다루기가 까다롭다는 겁니다.
전문성은 라이브 조직이나 모바일 조직과 상반되는 특징인데,
단일화되다보니까 능력이 굉장히 극대화되거든요.
레벨 디자인을 예로 두면, '몹 배치 1미터 바꾸니 어떤 효과 나더라' 이런 것 처럼
굉장히 미세하게 작업을 하게 됩니다. 퀄리티를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거죠.
단점은... 업무마다 전용 인력이 들어가요. 할당된 업무의 종류가 늘어나면
전문성을 전환하는 데 비용이 들잖아요. 워밍업도 필요하고.
와우에서 전사가 태세변환하면 분노 리셋되는 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문서화도 정말 잘 해야 됩니다. 개인이 갖고 있는 역량이 생각보다 큰 업계거든요.
조직이 노하우를 축적해야된다... 는 면에서는 문서화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문서화를 많이, 또 잘 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비었을 때 오는 리스크가 굉장히 줄어들어요.
단점은 뭐냐면, 문서화 할 게 너무 많아서 여기서도 비용이 또 들어가요.



유용한 능력은, 전문성과 문서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단일 업무에도 굉장히 많은 퍼포먼스가 요구되거든요.
적당히 하던 일들도 확실한 목표를 갖고 일해야되니까. 제반지식이 많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이 팀에 스펙 높은 분들이 특히 많아요.



네,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한 번쯤 다 겪어보셨을 것 같은데.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어요. 이 때.
사전을 찾았어요.
이렇게 알려주더라고요. 마나도 없고 HP도 없다는 말 같아요.



왜 이렇게 됐나, 열심히 생각을 해 봤는데
바쁘게 이것저것 만지는 스타일로 일하다가, 정적이고 거대한 조직에 들어오니
제가 적응을 못한 것 같았어요.
어떤 업무의 부분만 만지는 것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거예요. 전 다 알고 싶은데.
분명 비전은 공유되고 있었지만, 전 좀 더 구체적인 결과물을 알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리고 이건 배 부른 소리인데... 프로젝트 방향이 제 취향과 다른 쪽으로 가고 있었어요.



전 레벨 디자인을 못 하는데,
시키니까 하긴 하지만, 저도 만족 못하는 결과물이 나왔어요.
자연히 회사의 평가도 떨어졌겠죠.
이게 누적되다보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한강물을 찾았겠죠...? 굉장히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 때는.



힘들 땐 동료한테 푸념이라도 해야 하는데,
전 회사에서는 가깝다고 할만 한 동료가 없었어요.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닌데, 회사에 하이 스펙 스페셜리스트가 많아요.
그런데 전 스펙도 낮고 다방면을 하다보니 전문성 면에서도 그 분들만큼 뛰어나지 않았죠.
자격지심이 컸어요. 혼자 마음에 AT필드같은 거 세우고 거리를 두고...



뒤가 없었어요. 그냥 나가고 싶었어요. 업무를 마무리 해야되니 주어지는 일이 줄어들더라고요.
시스템 디자인만 했는데, 적성에 맞더라고요. 이거 하면서 자존감이 좀 회복이 됐어요.
일로 받은 번아웃이 일로 케어되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의 생활이죠.



표류는 지금도 진행 중이예요.
원래는 이 자리에서 지금 회사 일을 막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제 소속을 뺀 것과 같은 사유로... 공개할 수 없는 회사 내부 사정이 있어서
PT에서만 드러냈고요.
전 지금 행복하게 잘 일하고 있어요.



이직을 한 이유는 이거예요.
예전 동료들이 있는 팀이고... 인정 받고 싶은 욕구도 다시 막 생겼고요.



그리고 굉장히 동경하던 회사였거든요. 지금 회사가.



전 직장인 N사가 갖고 있는 비전인데, 전 이게 참 마음에 들어요.
여기 퇴사할 때 면담해주시던 팀장님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썩은 기획자가 되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썩어요.
되게 큰 자극이 됐죠.



모바일 프로젝트 대형 온라인 게임도 개발해보고... 다음엔 뭘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할 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꿈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평생 인디 게임을 개발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최종장인데요. 전설의 동료... 라는 걸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해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게임 기획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있는데 제가 못 찾은 걸수도 있겠지만요.



사람마다 맞는 환경이 있어요.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냐로 그 사람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죠.
예시를 들어볼게요.



둘 중에서 누가 괜찮은 기획자일까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에 따라 다르겠죠. 속도 중요한 곳에서는 B씨가 중요한 인물이겠고, 반대일 수도 있겠죠.



이 예시도 마찬가지겠죠. 상황에 따라 평가가 갈릴 것이란 말이에요.



원피스 많이 아실거예요. 게임 좋아하시는 분 중에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분 많으니까.



전 원피스를 이렇게 정의를 해요. 그리고 게임 기획은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원피스같은 일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