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정말 최선을 다해 완성한 일을 거절당해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간만의 제대로 된 일 처리에 한껏 들떠있는 상황에, 차가운 부정의 소리를 들으면 그 상실감은 차마 이루 말할 수 없죠. 일반 학생부터 직장인은 물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 것은 일상다반사입니다.

하물며 게임 기획에선 더 나은,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잦은 기획 변경이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는데요. 게임 개발사 '아라소판단'의 김성욱 대표는 금일(2일) 열린 '인벤 게임 컨퍼런스 2015(이하 IGC 2015)'에서 이러한 게임 기획 변경이 발생하게 되는 요인들과 이에 따른 대처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아라소판단 김성욱 대표




◆ 먼저 작업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쭉 진행해온 결과물이 있는데, 상위 단계 요소들의 변경이 결정되어 결과물이 한순간에 전부 날아갑니다. 그럴 때 작업자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물론, 대표를 처단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대표를 제거하게 되면 월급을 받을 수 없으니, 참는 거죠.

이처럼 기획 변경을 자주 하는 것은 개발자의 미움을 사는 행동이므로, 가능하다면 지양해야 합니다. 하지만,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변경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정에 반대하는 것과 싫은 것은 엄연히 다르거든요. '게임'은 어쨌든 재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때 필요한 것은 물론 정중한 사과입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깨닫는 과정도 함께 하지만, 그 점을 인지했다고 해서 게임 개발이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꼭 해소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경' 자체가 디렉터나 기획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한 번에 개발이 성공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변경 전의 그 이전 단계의 변경이 잘못된 경우도 있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미리미리 대응하는 것 정도는 기획자로서 필요한 자질일 것입니다.

오늘 강연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 단서를 미리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에 대한 방법을 이야기할까 했지만, 대응 방안은 각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므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현재 저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기획 변경 과정과 그 배경을 같이 확인하려고 합니다.

▲ 언제나 '역지사지'의 마음가짐 부터 시작해야 한다.


◆ 변경의 '기준'을 알자.

기획 변경 이전, 디렉터는 게임의 방향성과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고려하게 됩니다. 게임의 이러한 사양 변경 이유로는 1) 의도하는 방향성으로 구현은 됐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 2)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 3) 개발 진행 중 다양한 '이벤트 발생'으로 인해 불가피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의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벤트 발생'이라 함은, 대표적으로 팀 구성원의 입사와 퇴사를 들 수 있죠. 대규모 회사 같은 경우에는 이런 문제로 인한 트러블이 적을 수 있지만, 인원수가 적은 스타트업에서는 매우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문제로 작용합니다. 이외에는 퍼블리셔와의 협업 중 발생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겠죠.


◆ 그렇다면 무엇이 변경되는가?

변화의 3대 요소는 장르의 변화, 조작 체계의 변화, 프로젝트 규모의 변화의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장르의 변화'에서는 국내 시장에는 통할지, 다루게 될 메시지가 너무 심오하지는 않은지, 개발을 함께하는 인원들이 다 함께 만족할 만한 장르이며 핵심 시스템에 어울릴지 등을 고려하는 소재 장르와 시스템 장르의 변화로 구분됩니다.

현재 개발 중인 Z-Rush의 경우에는 SF에서 디스토피아로, 여기서 또 '좀비'물로 소재 장르의 변화를 거쳤고, RTS에서 'RTS + 방어'로, 여기서 또 '공격적인 진행'을 살리기 위해 'RTS + 소탕'의 형태로 시스템 장르의 변화를 거쳤습니다.

다음으로 조작 체계의 경우에는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조작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쳤습니다. 결국 개별 조작에서 대형 조작으로, 수동 스킬 지정에서 자동 스킬 지정으로 변화했죠.

프로젝트 규모 또한 초반과 비교해 모드 추가, 판매 모델 다각화 등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는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변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경들의 결정에 대해 어떤 분들은 공감하실 수도 있고, 어떤 분은 반대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도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획 변경이라는 게 원래 그렇거든요.

▲ 초반보다 비대해진 장바구니. 결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계획 변경의 전제를 말씀드리면, 넓게 보면 '기존 계획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패 이후에는 실패를 분석하여 다음 계획에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분석마저 실패하면 아무런 의미가 남지 않거든요.

실패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음 계획에 활용할 수 있는 피드백뿐이지만, 잃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습니다. 계획 진행 중 발생하는 비용은 물론, 사용하지 못하는 결과물도 발생하고, 기존 계획 실패 분석과 변경 계획 수립에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죠.

그렇기에 더욱 실패 분석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는데, 이때 정말 아무런 교훈이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때는 다음 개발을 이어가기 위해 억지로라도 소득을 짜내 '정신 승리'를 시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생각하는 식이죠. 괴로운 일입니다.


◆ 그러니, 게임을 확인하자.

기본적으로 게임을 확인하는 데 있어 자주 활용하는 3단계의 기준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본 상호 작용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두 번째로 반복을 해소하고, 세 번째로 사용자가 연구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죠.

마지막 3단계인 '연구할 거리 제공'은 제가 게이머로서 즐겼고, 저희 게임에서도 성취하고 싶은, 개발자로서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가 게임에 적용되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작용하지만,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찾아내기 힘든 경향이 있죠.

▲ 어찌 보면 '악용'이지만, 이런 요소가 게임에 재미를 더한다고도 볼 수 있다.


◆ 소통이 전제가 된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난 뒤엔 정신적 데미지를 줄일 필요성이 있는데, 그를 위해선 우선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소통을 위한 전제로는 보수적인 소통이 전제가 될 것을 인지하고, 변경을 원하는 사람은 '설득'을 할 필요가 있으며, 설득이 힘들다면 '인지'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이해시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더불어 필요 이상의 감정 대립은 소모의 연속으로 이어지기에 빠른 해소가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해소의 시발점이 상사나 관리자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무의미한 소모를 계속 원하는 게 상사나 관리자의 의견이라면, 빠르게 짐 싸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게 좋겠죠.


◆ 개발자도 사람이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게임 개발자도 사람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설득이 힘들더라도 소통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실패가 두렵습니다. 프로젝트의 실패는 물론, 인간적인 실패도 두렵습니다. 이것을 피하고자 계속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이고요. 당장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더라도 계속 살펴가며 찾아갈 생각입니다.

"변경은 그만하고 싶지만, 필요하다면 계속될 것입니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고, 시장은 만만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