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사이드의 황상훈 기획자는 오늘 '지속 가능한 개발팀의 구축... 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황상훈 기획자는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를 비롯, 네오위즈, 소프트맥스, 게임하이 등의 회사에서 '블레스', '창세기전4', '서든어택' 등의 게임의 개발에 참여한 베테랑 게임 개발자다. 현재는 블루사이드에서 '킹덤언더파이어2'의 기획자로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과연 황상훈 기획자가 그린 이상적인 게임 개발팀은 어떤 모습이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을 위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 매우 중요하고, 어렵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이야기다. 베테랑 개발자가 말하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들어보자.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강연 내용 전체를 가감없이 정리했다.

▲ 블루사이드 황상훈 기획자





■ 지속 가능한 개발팀의 구축... 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 단순히 숙련자가 모인다고 해서 좋은 게임 개발팀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

어느덧 10년 넘게 게임 개발을 하게 됐다. 게임 개발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면서 얻게 된 것들은 지식, 신뢰, 넓은 시야, 그리고 고집, 잃은 것은 체력, 다른 가능성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의 집합이다. 사실 이 강연은 윗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들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한마디로 팀을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다.


팀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한 연구가 있다. 게임 개발 팀 중에서 어느 팀이 성과를 내고 어느 팀이 성과를 못내느냐에 대한 것이다. 우선 맨 처음 나온 것은 경력이다. 숙련자가 많을 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는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저런 사례는 미국의 것이고, 한국의 경우 게임 제작의 사이클이 더 길다. 과거 '블레스'를 2009년도에 개발했는데, 현재 2015년에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사실 저도 '리니지2'와 '서든어택'을 빼면 이렇다할 런칭작이 없다. 그만큼 개발 기간에 비해 결과물이 적다는 것인데, 이 말을 바꾸면 '게임을 개발하는데 참여했다고 그 게임을 자기가 만들었다 할 수 있는걸까?' 하는 질문까지 오게 된다.


'리니지2'를 만들 때 누군가는 개발 기간 내내 나무를 만들어 심는 일만 했다. 그때는 스피드트리 같은게 없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이 공성전과 수많은 PVE 콘텐츠가 들어있는 게임에서 얼마나 역할을 했고, 이 게임을 '내가 만들었다' 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숙련은 쌓인다. 숙련자는 왜 만드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누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다. 그 때문에 숙련자를 뽑고 게임을 만드는데 참여시키게 된다. 하지만 팀마다 방법이 다르다. 그래도 오래 하다보면 감이 잡히고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원하는 결과물이 비슷하기 때문에 과정의 차이가 있어도 일단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각자 잘하는 부분이 다르지만 각자 그 도구를 오래 쓰고 손에 익었다면 큰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숙련자들이 더 일을 잘하는데, 그만큼 숙련된 사람들만 모으면 당연히 잘만들지 않을까 싶게 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알 수가 없다. 게임을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는 매우 다양한데, 각 팀마다 잘되는 것이 다르다. 물론 그래도 한 팀이 오래간다면 그만큼 잘 될 가능성은 올라간다.





◆ 그렇다면 좋은 게임 개발 팀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단순히 숙련도가 높은게 아닌 지속 가능한 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먼저 팀이 왜 깨지는가를 봐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번아웃,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고, 지치면 이동하게 된다. 매일 똑같은 것을 하게되니 지치고, 다른 것을 해보자, 다른 걸 잘 할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다닌다. 그런데 그렇게 게임을 만드는데도 이동하면서 런칭작은 없다면, 그 때문에 또 지치게 된다.


팀마다 사용하는 방법론도 다르고, 그만큼 적응기간은 부족하고 힘들다. 그렇다고 성과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소속 멤버가 잦은 이동을 하게 되면 개발자 개개인에게는 어떤 실력이 남을지 몰라도 팀 단위의 노하우는 전혀 쌓이지 못한다.



물론 회사는 이동을 막으려 한다. 인센티브를 주는 것으로 회유를 한다. 예전에는 인센티브가 그만큼 작용을 하긴 했다. 그런데 그게 10년 전 이야기다. 높은 보상을 얻기 위해선 희생을 해야 한다. 야근도 하고 특근도 하고 주말은 없다. 그렇게 고생을 한만큼 성공을 해야 보상을 받는데, 그러려면 또 더 고생을 해야한다. 이런 무한한 굴레가 돌아간다. 여기에 출시 일정이 밀리기 시작하면 정말로 심각해진다. 더불어 요즘은 인센티브도 쉽게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한가지, 붉은 여왕의 딜레마라는게 있다. 지금 위치에 있으려면 계속해서 달려야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두배로 빨리 달려야한단 소리다. 게임업계가 그렇다. 개발팀이 게임을 만들고 퀄리티를 높이는 속도보다 업계가 발전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유저의 눈에는 당 시대에 가장 높은 퀄리티를 가진 게임이 기준이 되고, 거기에 맞추고자 하니 점점 더 개발 기간이 늘어진다.


하지만 게임의 퀄리티 업은 한계가 있다. 10년 전의 서든어택과 현재의 서든어택을 비교하면, 분명 많이 발전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이 업계는 뒤쳐짐에 대한 공포가 매우 크다. 게임 자체의 퀄리티가 낮지 않아도, 시대에 뒤쳐진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하지만 새로 만들면 따라잡을 수 있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최신 요소를 넣고 속도를 맞추어 나가면 되니까. 하지만 새로운 게임의 개발이란 더욱 어려운 문제다.


개발자의 이직은 결국 노하우가 착취당하고, 성공에 대한 요구는 크나 인센티브 같은 보상은 낮고, 붉은 여왕의 딜레마로 인해 일어난다. 그리고 그만큼, 반대로 그 부분을 개선하면 안정적인 팀, 안정적인 개발이 가능하다는건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 좋은 게임 개발 팀이 되기 위한 험난한 과제들, 그리고 게임 개발자들의 삶

개발자의 노하우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려면 개발자에게 학습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지식습득의 과정은 단순히 한 번 주입받는걸로 끝나지 않는다. 이를 실용가능한 수준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선 중요한 것은 육하원칙이다. 하지만 프로토타입만으로는 어디서와 언제를 충족시킬 수 없다. 완성하고 런칭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토타입으로는 게임을 완성할 수 없다. 완결을 내 본 소설 작가와 그걸 못하는 소설 작가는 천지 차이고, 게임 또한 그렇다. 게임을 런칭하고 직접 결실을 얻어 보아야 학습이 된다는 거다.


게임 개발의 학습은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게임을 출시하고 결과를 보는 것을 통해 붉은 여왕의 딜레마도 해결 할 수 있다.


게임을 만드는데 무엇을 기대하고 만드는가? 엄청난 부귀영화를 위해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경력이 쌓이는 만큼 잃는 것이 생긴다. 엄청난 부귀영화가 아니라 그저 재미있게 살고, 원하는 것을 소소하게 하면서 사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안정적인 보상이 아닌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면 돌봐줄 수 있고, 필요하면 병원에도 한 번 갈 수 있고, 몸이 피곤하면 쉴 수 있고, 새롭게 경험해보고 싶은 게임, 영화가 있으면 해볼 수 있는 것. 연봉을 깎더라도 얻고 싶은 삶이다.



물론 회사는 이익을 내야 한다. 왜 팀원이 자리에 없나, 다른 팀 안보이나.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결국 믿어달라는 것 밖에는 없다. 대다수의 게임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이 있어서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때에는 지치는, 그런 번아웃을 겪은 적이 없다. 이걸 만들면 유저가 좋아할거고 이걸 만들면 내가 뿌듯하고 그렇게 열심히 만들다가도, 외부적 요인이 지나치게 많이 끼어들면 그런 지침이 찾아온다. 언제까지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 방학이니 팔아야 하니까. 이러면 힘이 빠진다.


이직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다. 물론 이것이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돈이 오가는 사업인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 그런 팀을 실제로 만들어도 산재한 문제들


이전에도 이런 팀을 만들고자 했었으나, 이렇게 만들어진 팀은 몇가지 문제가 생겼다. 결국 좌천을 시키는 곳이 되거나, 애매한 B급 인재를 넣어두고 테스트하는 곳이 되곤 했다. 하지만 B급 인재라는 것은 사실 그런 능력을 발휘할 환경을 주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학습이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B급 인재가 A급 인재가 되고, 팀 자체의 노하우가 늘고 발전하게 된다.

원래 만들고자 했던 팀은 이렇다. 시니어급 5~10인으로 만들되, 조건은 1년에 무조건 하나의 게임을 완성해 출시할 것, 인센티브는 야근한 만큼, 출시 조건은 개발사에 전적으로 맡긴다. 이런 조건이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 그러다 이 개발 팀이 자리를 잡고 대박을 내게 되면 결국 '오딘스피어'의 바닐라웨어 같은 팀이 만들어지는 거다. 브랜드랄까.



하지만 이 팀은 게임이 출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결국 게임 개발을 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이직하기 전에 1년 간의 유예를 주고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게 하자는 거다. 그 사이에 잘하면 A급 개발자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게임 개발 인력 인큐베이팅 시스템들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팀에는 문제가 생긴다. 연봉에서 접고 게임 개발을 시작한 개발자인데, 게임을 출시해 성공을 해도 연봉을 높여 받지는 못한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헤드헌터들에게 타겟이 된다. 연봉은 낮은데, 게임을 개발할 줄 알고, 출시할 줄도 안다. 최적의 개발자가 아닌가.

이 외에도 여러가지 팀 구상이 있지만 이런 팀들은 다 문제요소가 하나씩 있다. 런칭을 못해보고 지쳐버린 사람들을 위한 팀, 자기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팀, 이런 사람들은 그걸 이루고 나면 모두 나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험요소가 있는 것이다.




◆ 시니어 개발자들의 미래, 그 밝은 면을 위한 반전이 필요하다


숙련된 개발자는 늙어간다. 경력 1년은 나이 1살이다. 남자가 27살에 업계에 들어와서 과장 정도 달 때되면 37살이다. 그동안 런칭 타이틀이 하나 정도 될까 한다. 결국 게임 하나,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것인지 모르는 게임을 만들고 치킨집 사장이 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고치고 싶다. 이것은 해외에서도 동일한 문제다.

열정이 있어도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가 아프고 아내가 아프면 야근을 할 수 있을까? 근무태도가 나쁘다고 열정이 없을까? 그런 사람들도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고, 이런 이들은 매우 많다. 시니어 개발자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닌텐도 등지에서는 QA로 활동하며 게임 개발을 지속하기도 한다.


산업이 되려면 안정적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안정적으로 사람을 키우고, 지속해서 일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안정적으로 은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업이 될 수 있다. 또 게임은 엔터테인먼트다. 장난기와 농담이 중요하고,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재미를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런 것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때부터 게임은 산업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