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리그 경기는 쉽게 방심할 수 없다. 개인리그 성적과 기세가 아무리 좋아도 언제든지 단판제 승부수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리그의 다전제에서는 운영과 판짜기 능력을 바탕으로 최종 승리를 거두지만, 단판제의 경우 상대에 대한 분석과 철저한 준비로 예상을 뒤엎는 경기가 나온다. 우승자 출신 선수들이 무너지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며, 기세가 좋지 않은 선수도 이변을 만들어낸 경우가 많았다.



■ 저그전 최강 김준호를 노린다! 전략적인 카드로 저격에 성공한 저그



김준호는 2015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2015 스베누 스타리그 시즌3에서 한지원(CJ), 2015 KeSPA컵 시즌1에서 박령우(SKT)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프로리그에서도 다승왕에 오르며 누구도 두렵지 않은 WCS 포인트 랭킹 1위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개인리그 상위 라운드에서 수차례 저그를 만났던 김준호이기에 누구보다 저그전에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승자 김준호도 프로리그에서 저그의 매서운 전략에 좌절했다. 저그 선수들은 김준호가 안정적으로 운영하면 승리한다는 생각을 집요하게 노렸고, 단판제에서 작은 방심이 패배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협하는 어둠의 그림자, 현성민-강민수의 잠복 바퀴

▲ 파수기에게 다가가는 '어둠의 그림자' 잠복 바퀴

MVP와 CJ 엔투스의 5월 25일 프로리그 경기에서 현성민(MVP)와 김준호가 만났다. 그 당시 김준호는 2015 GSL 시즌1 4강에서 이승현(kt)과 접전을 펼쳤고, 시즌2에서는 양대 리그에 진출하며 순조로운 기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가 개인리그에서 뚜렷한 성적이 없었던 현성민이기에 김준호의 승리를 예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성민은 과감한 빌드 선택으로 김준호의 '안정감'을 무너뜨렸다. 김준호는 3관문에서 파수기를 모으며 안정적으로 제 2멀티까지 가져갔다. 역장 위주의 수비로 저그의 지상 병력을 막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현성민은 바퀴 소굴을 의도적으로 2개를 건설해 한발 빠른 잠복 바퀴를 준비했다. 김준호의 관측선이 있었지만, 역장을 모두 소모시키고 다수의 바퀴로 불멸자를 일점사해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후, 김준호는 최용화(MVP)에게 에이스 결정전에서 패배하고 슬럼프에 빠졌다. 현성민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공식전에서 2승 11패를 기록하며 이번 시즌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프로리그 2, 3라운드에서 7연패를 기록했던 강민수(삼성) 역시 이변을 일으켰다. 8월 10일 열렸던 경기에서 한지원을 꺾고 에이스 결정전에서 김준호와 만났다. 연패를 기록했던 강민수였기에 김준호에게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민수 역시 잠복 바퀴로 진입해 김준호의 파수기를 모두 제압하며 경기의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김준호의 병력이 진출한 타이밍에 저글링과 뮤탈리스크로 빈 집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승기를 굳혔다. 결국, 강민수가 CJ 엔투스의 에이스 한지원과 김준호를 모두 격파하고 팀 승리를 이끌었다.


"재미있겠다" 이병렬, 김준호를 위한 특별한 선물


이병렬은 모두의 편견을 깨는 전략적인 플레이로 주목받고 있다. 모두가 군단 숙주를 활용하기 힘들며, 프로토스를 상대로 맹독충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철저하게 빌드를 준비해 보란 듯이 승리했다. 특히, 프로리그에서 CJ 엔투스의 에이스 김준호를 만날 때마다 특별한 빌드로 값진 승리를 이어왔다.

이병렬은 철저한 연구 끝에 패치 후 군단 숙주를 프로리그 무대에서 선보였다. 값비싼 군단 숙주를 사용할 수 있는 타이밍을 벌기 위해 완벽한 가시 촉수 라인을 건설했고, 맵의 특정 지형까지 활용해 멋지게 승리할 수 있었다.

통합 포스트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도 김준호를 격파했다. 당시 1차전 승부를 가를 에이스 결정전으로 에이스 조성주와 포스트 시즌 연승을 이어가는 김유진(이상 진에어)의 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이병렬이 등장해 프로토스에게 잘 활용하지 않는 맹독충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맹독충은 프로토스의 주 병력인 점멸 추적자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가까이 붙기도 힘들고 상성상 대형 유닛에게 추가 대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 상성과 편견을 부숴버렸던 맹독충 폭탄 드랍!

그런데 이병렬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대군주 드랍으로 김준호의 병력 머리 위로 맹독충을 투하했고, 생각보다 많은 양으로 상성을 무시하는 스플래시 대미지로 점멸 추적자마저 압도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홀로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경기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많은 팬들에게 알리게 됐다.



■ 동족전 절대자였던 조성주를 넘은 테란들



시즌 초, 중반의 조성주는 무적의 포스를 자랑했다. 엄청난 피지컬로 상대를 압살하며 2015 네이버 스타리그 시즌1 우승과 프로리그 라운드 포스트 시즌에서 팀을 세 번이나 결승에 올려놨다. 많은 팀들이 조성주를 저격하기 위한 다양한 카드를 준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과 달리 프로리그 동족전 경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조성주에게 프로리그 동족전 첫 패배를 안겨준 노준규

▲ 조성주를 완벽히 속인 노준규의 연기력

조성주는 3라운드까지 동족전 5승 0패를 기록하며 최고의 기세를 달리고 있었다. 상대보다 한 박자 빠른 공격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고 당대 대표 테란들을 모두 꺾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노준규(삼성)가 조성주에게 프로리그 동족전 첫 패배를 안겨줬다. 노준규는 철저한 연구로 조성주의 스캔 타이밍에 맞게 불곰의 충격탄 업그레이드를 돌리며 바이오닉 테란인 척 연기를 했고, 재빠르게 메카닉 체제로 변환했다. 정면 교전에서는 조성주에게 밀리는 모습도 보였으나 지독한 화염 기갑병 견제와 노련한 밴시 운영으로 승리를 차지했다.


조중혁은 큰 무대에 약하다? 완벽한 스타일 변환으로 승리한 조중혁


조중혁 역시 이변을 만들어냈다. 최근 조중혁은 2015 GSL과 스타리그 시즌3에서 모두 탈락하며 기세가 좋지 않았고, 팀 역시 빠르게 결승에 진출해 한동안 공식 경기가 없었다. 게다가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매번 아쉽게 준우승을 기록했던 조중혁이라 조성주와의 통합 포스트 시즌 결승 대결에서도 승리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조중혁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장기였던 바이오닉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매번 패배를 기록했던 메카닉으로 체제를 변환했다. 한 때 조성주와 함께 바이오닉 테란의 선두주자였지만, 조성주는 기존 스타일을 고수하고 조중혁은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결과는 조중혁의 압승이었다. 지독한 화염 기갑병 드랍으로 조성주를 견제하며 단단한 메카닉 병력을 준비했다. 조성주의 빠른 공격보다 조중혁의 안정적인 운영이 눈에 띄는 경기였다. 최근 조성주의 부진도 있었지만, 스타일을 바꾼 조중혁의 노력이 더 빛났다.

프로리그에서 절대 강자는 없었다. 단판제 경기인 만큼 어떤 선수가 더 전략적인 카드를 준비해오느냐가 승부의 관건이었다. 이변과 변수가 많아서 예측하기 힘든 경기가 있었기에 프로리그가 한층 더 재미있었던 것이 아닐까? 강한 선수도 평범하게 할 수 없었고, 강팀이 아니어도 치열한 노력으로 멋진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