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 페이크다이스 ⊙장르 : 턴제 전략 ⊙플랫폼 :PC ⊙발매일 :2015.10.23 스팀 얼리액세스


지난 2015년 10월, 어딘가 수상한(?) 게임이 얼리 액세스로 출시되었습니다. 얼마나 수상한 게임인지 궁금하시다면, 일단 위에 있는 트레일러부터 한 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네, 바로 저렇게 수상한 게임이었습니다.

거친 폰트의 직역체 한글자막 때문에 얼핏 보면 외국인 개발자가 구글 번역기를 돌려 만든 것 같은 이 게임은, 사실 한국 소재의 인디 개발사 '페이크다이스'에서 개발 중인 국산 게임입니다. 2014년 말 킥스타터를 통해 개발비를 모금했고, 앞서 말씀드렸듯 작년 10월 스팀 얼리액세스로 출시되어 지금도 즐겨 보실 수 있습니다. (참, 아직 한국어를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한국어를 아직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스팀에 얼리액세스로 출시된 국산 게임" 이 타이틀 만으로도 도전해볼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저 수상한 트레일러도 썩 마음에 들었구요. 하지만,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첫 스테이지에서 쓰라린 패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의 전략 게임에 별로 익숙하지 않기도 했지만, 상대방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도전해보기를 수차례, 결국 스테이지마다 상대방을 공략해야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점점 게임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느 보드게임보다 치열하고, 여느 카드 게임보다 운이 필요했던 카드보일드 게임 '다이스티니', 과연 어떤 게임인지 한번 살펴봤습니다.



보드와 주사위는 거들 뿐!

▲ 보드와 카드가 공존하는 게임 화면

보드게임과 TCG가 조합을 이루면 어떤 모습일까요? 생각보다 상상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일단, 플레이어들이 대결을 펼칠 수 있는 '보드'가 필요할 테고, 보드에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주사위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각 플레이어의 특징을 나타내줄 클래스와, 클래스 별 기술, 그리고 상대를 괴롭힐 '카드'들이 포함되겠네요.

'주사위의 신'이나 '모두의 마블'같은 모바일 게임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모두가 잘 아는 '부루마불'이지만, 카드 같은 요소를 통해 게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더욱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게 되었죠.

'다이스티니'는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보다는 더 TCG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게임에도 보드와 주사위가 있지만, 이들은 그저 플레이어와 상대방이 싸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역할이 다입니다. 그 외에는 영웅(플레이어)이 가진 생명력과 공격력, 스킬, 카드, 하수인 등을 이용해 전략적으로 적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죠.

TCG가 보드게임과 주사위를 만나 가장 많이 변하게 된 것은 바로 '하수인'입니다. 여느 TCG에서는 하수인을 소환함과 동시에 상대방을 공격할 수가 있지만, '다이스티니'에서는 마치 부루마불에서 호텔을 짓듯이 한 칸에 하수인을 하나씩 배치하게 됩니다. 하수인에게는 각자 숫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숫자가 하수인의 레벨이면서 동시에 공격력과 방어력을 모두 책임지게 됩니다. 즉, 5레벨 하수인은 공격력과 체력이 5인 것이죠.

▲ 통행료 그런 거 없이 바로 주먹다짐을!

상대방의 하수인이 서있는 발판을 밟게 되면 전투가 시작됩니다. 전투는 여느 TCG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공격력과 체력에 비례해 승패가 결정됩니다. 운이 좋다면, 상대방의 하수인을 돈으로 매수할 수도 있죠.

플레이어와 상대방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한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자신이 시계방향으로 진행을 한다면, 상대방은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서 상대방과 마주칠 확률이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싸우는 것보다 '대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가 쉬웠습니다.

이런 특징에서 볼 때, 다이스티니는 말하자면 '부루마불'보다는 '하스스톤' 쪽에 더욱 가까운 느낌입니다. 보드와 주사위가 진행을 좀 더 색다르게 하는 데 도움을 준 셈이죠.



군데군데 녹아있는 패러디의 재미

▲ 오프닝은 스타워즈인데, 스토리는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 오프닝을 그대로 재현한 오프닝부터 느낌이 왔지만, 다이스티니에는 이런 패러디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인터넷에서 꾸준히 쓰이는 일명 합성요소들부터, '반지의 제왕', '닥터 후' 등 상당한(?) 서브컬처 팬덤을 가지고 있는 콘텐츠들도 등장하죠. 이런 요소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건 어디서 봤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게 합니다.

먼저, 처음 스타워즈 오프닝 장면과 함께 진행되는 스토리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직 한국어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대충 해석하면 주인공은 모든 주사위를 거느리는 한가지 '주사위'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구요? 맞습니다. '반지의 제왕' 스토리의 패러디입니다. 하긴, 부제목부터 '주사위의 제왕'이네요.

▲ 짤방부터 말장난까지, 다양한 카드가 있다


▲ 이 사람은 누가 봐도 어쌔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대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패러디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북두의 권'에 나올 것 같은 녀석부터, 누가 봐도 암살 잘하게 생긴 도적, 생긴 건 다르지만 '닥터 후'에 등장하는 달렉 종족의 대사를 읊는 로봇까지... 어떤 캐릭터가 어디서 등장하는지 다 알려면 아마도 상당한 덕력(?)이 없이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직 한국어화가 완전히 진행되지 않아 스토리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전체적인 줄거리 외에도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유머를 집어넣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한국어화 이후에도 웃음을 줄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네요.



카드? 스킬? 그보다는 '운'이 필요해

▲ 상점 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카드도 랜덤

보드게임과 TCG, 두 게임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운'은 필수적입니다. 하물며 이 둘의 특징을 조심씩 섞은 게임이라면 어떨까요? '다이스티니'에는 운으로 결정되는 요소가 게임 둘을 합칠 만큼 많아 보였습니다.

일단은 어떤 요소들이 '운'에 의해 결정되는지 한번 확인해봤습니다. 우선, 주사위가 있습니다. 스테이지마다 랜덤하게 결정되는 보드의 칸도 확률적이니 '운'의 영향이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드로잉 되는 각종 스킬 카드들의 순서 역시 운에 의해서 결정되죠. 또한, 상대방 하수인을 매수하는 것 또한 하수인마다 각각 성공 확률이 다르니 대부분의 경우 운에 맡기게 됩니다.

▲ 매 판마다 새롭게 적용되는 룰, 이것도 랜덤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이스티니의 각 게임에는 해당 게임 동안 한가지 룰이 지속적으로 적용됩니다. 예를 들면 이번 게임 동안은 주사위에 나온 숫자보다 한 칸 더 전진한다든지, 아니면 이번 게임에 한해 매 턴마다 랜덤한 지역에 번개가 내리친다든지 하는 식이죠. 이 또한 어떤 룰이 언제 적용될지 알 수가 없으니 운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운이 좋다면 상대의 하수인도 매수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중 대부분은 승패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주사위를 가지고 하는 게임은 오히려 그 '랜덤함'이 재미로 다가오곤 하죠. 또한, 매 게임마다 새로워지는 룰 때문에 같은 스테이지라도 색다른 전략으로 플레이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대가 처음부터 월등히 높은 체력과 많은 하수인을 거느리고 시작하기 때문에 운이 조금만 나빠도 쉽게 승리를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랜덤함', 다시 말하면 운에 의존해야 하는 게임 시스템은 그만큼 게임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도 만듭니다. 앞으로 더 많은 카드와 맵, 룰이 추가된다면 그 랜덤한 부분의 폭 또한 더욱 커질 테고, 이런 것들을 보완해줄 만한 핵심 시스템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유머와 패러디, '공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 '닥터 후'를 모른다면 그냥 깡통로봇일 뿐

한국어화와 멀티플레이 추가 등, 아직 '다이스티니'가 정식으로 출시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게임의 기본 콘셉트인 보드게임과 TCG의 조화는 생각보다도 많이 신선했고, 플레이하는 동안 여러 번 울컥하게 만들었던 난이도 또한 꾸준히 도전하면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현재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클래스 별 전용 카드의 수도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도적과 전사, 마법사를 각각 플레이해봤는데, 각자 클래스에 맞는 스킬 카드와 성능을 가지고 있어 똑같은 상대와 싸울 때도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카드의 종류와 클래스별 밸런스 같은 문제는 정식 출시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보완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얼리 액세스인 지금에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 게임이 자랑하는 '유머' 코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머 코드가 재미있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이를 플레이하는 유저들과 어느 정도 '공감'이 필요한 법이고, 또 유행하는 유머 코드일수록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과연, 현재 '다이스티니'가 가지고 있는 '유머' 요소는 어느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또 얼마만큼의 유통기한을 갖게 될까요? 이러한 패러디 요소들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다이스티니'만의 색깔과 재미가 더해진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전략 보드게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