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토리텔링은 언제나 어렵다. 무엇을 전달해야할지, 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야할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신경쓸 것 투성이다. 정직하게 할말만 하자니 너무 지루하고, 그렇다고 장황한 썰을 풀자니 번잡하기만 하다. 어떤 것이 좋은 스토리텔링일까.

다양한 게임 개발 경력과 함께 현재 NHTV 유니버시티에서 교수로도 활동중인 마타 해기스. 그는 과감한 생략과 잘 짜여진 거짓말, 멋진 기만을 섞어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하는 방법에 대해 강연을 펼쳤다. 개인적으로는, 오늘의 내러티브 세션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입문자라면 꼭 들어야 할 강연이 아니었나 싶다.

스크립터, 시나리오 라이터, 아니면 소설가 등등 어떤 것이든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목하시라. 여기 간단하지만 세심한 꿀팁 세가지가 들어있다.

▲ 마타 해기스(Mata Haggis) 교수



■ Writing 'Nothing': Storytelling with Unsaid Words and Unreliable Narrators



게임은 언제나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스토리는 그저 게이머와 게임 콘텐츠 사이에 놓인 장벽에 지나지 않는다. 유저들은 이런 일방적인 스토리텔링을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에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벌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가정을 하나 해보자. 여기 테스와 젬마가 있다. 이들은 한 모텔에 갇혀있으며 좀비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이는 일반적인 슈팅 게임에서 굉장히 흔한 설정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스토리텔링이 가능할까?


첫번째는 매우 간단하다. 말 그대로 스토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협소한 경우에나 효과적이고, 게이머들에게 일정 이상의 경험을 안겨주기 힘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옵션은 일반적인 다이얼로그 방식이다. 대화나 나레이션을 통한 스크립트 등 매우 익숙한 방식으로 평범하게 스토리를 끌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좀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 방법이?


여기서 몇가지,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몇가지 기법들을 소개하겠다. 세가지 중 첫번째는 바로 '생략(Omission)'이다. 셰익스피어, 인류에게 대단한 문화유산을 남긴 그의 작품 '리어왕'을 보자. 리어왕은 세명의 딸에게 각각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라고 하고, 그러면 자신의 유산을 남겨주겠다고 한다.

이에 유산에 눈이 멀은 첫째와 둘째는 자신은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한다고 거짓을 말하지만, 아버지를 진실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는 자신은 자신의 남편,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때문에 그녀가 건넨 답변은 매우 간단하다. "전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이 대사를 듣는 이들은 이 짧고 간략한 대사 안에 그녀가 설명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은 스타워즈에도 있다. 레아 공주와 한 솔로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둘의 대화는 지극히 단순하다. "당신을 사랑해요." "나도 알아." 이게 전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당신은 나를 구하려고 수천광년의 우주를 몇 번이고 날아와 위험을 무릅썼어요. 고맙고 사랑해요." 와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연히 그런 모든 위험을 감수했던거야. 당신 또한 나를 사랑하고." 같은 복잡한 대화를 숨기고 있는, 매우 날카로운 대화다.


그래서 이제 테스와 젬마의 대화로 다시 가보자. 다음날까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테스의 질문에 젬마가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는게 효과적일 수 있다. "그건... 한 번 해보죠." 같이 말이다.


그리고 두번째 기법은, '명확히 불합리한 추론(apparent non-sequitur)'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이러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음에도 분명하게 대화가 이어지지도 않고 매우 뜬금없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이 대사 또한 그러하다. 전반부를 보면 매우 평범하게 좋은 날씨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에 추가된 한 문장, '자살해버릴 것 같은 날씨다' 라는 추론이 붙으면서 이 캐릭터의 성격을 확 전달해준다. 매우 깔끔하고, 짧고, 확실한 전달법이다.


이 기법은 매우 좋은 방법이지만, 다만 주의할 점은 이것이 매우 간접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불합리한 추론을 보고 사람들은 몇 번의 사고를 거쳐 그 의미를 파악해내야 하고, 이를 잘 설계하지 못하는 초짜 라이터라면 남용을 지양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앞서의 테스와 젬마의 케이스로 다시 가져온다면,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테스가 다시 '우리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까?' 묻고, 젬마는 대답을 하려다 말을 돌린다. "난... 네 레인 코트를 잘 챙겨. 아침에 비가 내릴 것 같아." 하고 말이다. 이 짧은 대화는 젬마가 세심한 성격이고, 또 감정적으로 남을 배려하고자 애쓰는 인물이라는걸 드러내준다.


마지막 세번째는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s)'다. 여기엔 또 세부적으로 몇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명 '정직한 실수'다. 요즘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 '프래그먼트 오브 힘'에서는 과거 회상씬이 나온다. 거기서 사라는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던 것을 떠올리는데, 유저는 사라가 기억하는 극장의 좌석 위치 같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선택은 스토리 상에 변화를 주지도 않는다. 사실 이것은 어느 선택을 고르고 맞느냐가 아니라, 선택을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사라가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화자의 또다른 방식 중 하나는 자기기만이다. 캐릭터들은 스스로에게 다양한 말을 내뱉는다. 이를테면 페르시아의 왕자에서 왕자는 초반부에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을거야." 라고. 하지만 그는 게임 내에서 조력자를 만나 서로의 협력과 감정을 키워나간다. 왕자가 어떤 시련을 겪은건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드러내주는 장치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이 기법은 '프랑켄슈타인' 같은 액자식 스토리에서 큰 힘을 발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소설은 매우 복잡한 다중 액자식 구성을 갖고 있다. 3명의 화자가 서로 다른 경험으로 기술한 것들을 보고 독자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나간다. 영화 '파이트클럽' 같은 경우도 자기기만적 화자에 대한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다만, 이 '믿을 수 없는 화자'의 경우도 세심한 사용법이 필요하다. 이 스토리를 읽는, 보는 독자들은 이 믿을 수 없는 화자를 의심해야만 진짜 스토리텔링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내용을 전하고 있는 이 화자가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어떻게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한 단서가 주어져야 비로소 게이머들, 독자들은 화자를 의심하고, 화자가 전달하는 스토리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단서'는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주어질 수 있다. 사실상 게임 내의 모든 것이 단서가 될 수 있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또 캐릭터가 움직이는 방식에 따라서도 모든 것이 단서로 제시될 수 있다. 한가지, 이런 단서를 짜는데 한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당신의 사운드 팀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서를 제공함에 있어 사운드는 굉장히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이러한 3가지 기법 '생략', '명확히 불합리한 추론',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다 갖추어졌으니 이런 도식이 가능해진다. 이런 것이 모이면, 스토리텔링에 대응하는 '능동적인 리스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전달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단순히 주어진 대사, 영상, 캐릭터 행동을 뛰어넘는 더 복잡하고 멋진 무엇을 게이머들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두 멋진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힘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