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을 노리는 대마왕, 그리고 빼앗긴 왕좌를 되찾으려는 폐주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글로벌 서킷 2016 스프링 챔피언십(이하 스프링 챔피언십)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지역은 바로 한국이다. 지난해 블리즈컨에서는 Team DK_KR(現 Team No Limit)가 출전했다가 북미 강호 Cloud9의 벽에 막히며 4강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비롯해 온라인 대전 게임에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한국인만큼 이번 스프링 챔피언십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팬들이 많다.




이번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게 되는 MVP 블랙Team No Limit(이하 TNL)는 이러한 기대에 부족함이 없는 팀이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두 팀은 서로의 악연도 깊은 편인데, 작년 블리즈컨 출전 기회가 걸린 슈퍼리그 결승에서 TNL은 MVP를 4:2로 꺾으며 발목을 잡은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슈퍼리그 2016 시즌 1과 파워리그 시즌 1 결승에서 합산 스코어 8:0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을 차지한 것은 MVP 블랙이다.

최근 완전무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시무시한 경기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 준비를 하는 MVP 블랙과 한때 국내 최강팀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최근에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TNL. 과연 두 팀은 스프링 챔피언십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각 팀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 캐리력 있는 플레이어, 안정감이 있는 팀이라는 한국 지역의 강자들


일반적으로 히어로즈라는 게임은 선수 한 명의 캐리가 나오기 어려운 게임이라는 평이 많다. 실제로 플레이를 해보더라도 개인 캐리보다는 정교한 팀원의 협력이 승리에 많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지역 상위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캐리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무색해지곤 한다. 단순히 적 영웅을 때려잡는 형태뿐만 아니라 빈사 상태로 살아남으면서 쫓아오는 적들을 역으로 제압하는 기회를 만든다거나, 심심하면 허공에 날아가는 공허의 감옥, 게걸아귀 등의 광역 군중 제어기를 절묘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입이 떡 벌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캐리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지원가 영웅으로 적 영웅을 견제하고, 때로는 핵심이 되는 딜러를 잘라내는 플레이를 심심찮게 보여주는 데엔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 슈퍼 리그 우승을 차지한 'MVP Black'


특히 이런 재능파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조합되었을 때의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원래부터 상대를 답답하게 만드는 운영으로 유명했던 TNL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올해 초 팀원 변경 이후 본격적으로 합이 맞춰지기 시작한 MVP 블랙의 단단함은 파워리그 무실세트 우승이라는 결과로 입증된 바 있다.

다만 이들 두 팀의 강력한 모습은 최근 국내 대회에 한정이기 때문에, 단기 결전 형태가 되는 스프링 챔피언십에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날 수도 있다.




■ 최고의 재료가 모여 만들어진 최고의 요리같은 팀, MVP 블랙






"대마왕"

MVP 블랙이 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한 단어로 요약했을 때, 이것만큼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지난해 슈퍼리그에서 TNL에 고배를 마시고 절치부심한 MVP 블랙은 월드 사이버 아레나 2015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인 파워리그까지 꾸준히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국내 원탑의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진행된 슈퍼리그 2016 시즌 1 초기만하더라도 'Rich' 이재원이 팀에 합류하면서 Young Boss와 Team Hero에게 세트를 내주는 등 다소 팀워크가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자연스럽게 손발이 맞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기존에 극강의 피지컬로 유명했던 이재원이 다른 선수들에 가려질 정도로 MVP 블랙을 구성하는 선수의 면면은 에이스 그 자체이다.

다른 팀에 비해 MVP 블랙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넓은 영웅폭과 적응력이다. 올라운더로 분류되는 포지션의 선수는 'KyoCha' 정원호 한 명이지만, 나머지 선수들도 해당 패치에서 쓸만한 영웅 5~6 종류 이상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밴이 4개로 한정되는 대회 내에서는 막강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메인딜러인 'Sake' 이중혁과 메인탱커인 'Sign' 윤지훈이 다루는 영웅을 'KyoCha' 정원호와 'Rich' 이재원이 대신 맡아줄 수 있다는 점은 밴픽 과정의 심리전에서 득점하고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을 놓고 보면 일단 주장인 이중혁은 "죽지 않고 적을 쓰러트린다"라는 암살자의 기본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선수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치고 들어오는 목표 선정과 정확한 킬각 계산, 그리고 쫓아오는 상대를 유유히 따돌리는 플레이는 파워리그에서 KDA 25.1이라는 높은 수치에서 드러난다. KDA 2위인 같은 팀의 정원호가 14.4로 절반을 조금 넘기는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중혁의 암살자 플레이는 명품이라고밖에 평할 수 없다. 최근에는 리밍이나 그레이메인처럼 순간적인 화력이 강한 영웅을 위주로 사용하긴 하지만, 레이너나 폴스타트 같이 기술 활용이 중요한 평타기반 암살자의 활용 능력도 부족함이 없기에 밴픽으로 묶기도 어렵다.

메인탱커인 윤지훈도 "불사인(不死人)"이라는 별명처럼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절대 죽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상대의 측면이나 후방에서 들어와 진형을 붕괴시키는 플레이에 능숙하다. 티리엘이나 무라딘으로 적 한복판을 휘젓고 탈출하는 식으로 상대의 기술을 빼먹고 아군이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는 판짜기 능력은 탱커라는 포지션이 단순히 피해를 받아내는 역할이 아니라 아군이 받을 피해 자체를 봉쇄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예 타우렌 족장 등 군중제어 능력이 있는 전사 영웅을 선택했을 때의 플레이는 "걸어다니는 압도적인 존재감"이라고 불리며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위축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정원호와 이재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선수는 슈퍼리그 초반에 팀의 불안요소로 보였지만, 어느새 팀의 조합을 짜임새 있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이다. 정원호의 경우 폴스타트를 활용하는 경기에서 자주 끊기며 "교차치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의 경기들에서 적절한 광풍 활용을 통한 끊어먹기와 전투 템포 조율, 다른 라인을 관리하면서 전장을 장악하는 플레이로 최상급 폴스타트 유저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태사다르나 아바투르 같은 아군 지원 영웅을 잡았을 때 발휘되는데, 빈사 상태의 아군이 가까스로 살아남거나 밀린다 싶은 레벨이 어느새 역전이 되어 있는 이면에는 머슴처럼 뛰어다니는 정원호의 활약이 있다.

이재원은 스랄과 소냐처럼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의 근접 영웅을 선호하는 편이다. 보통 근접 영웅은 아군 지원가가 확실하게 받쳐주지 않으면 쉽게 죽을 수 있는데, 적이 자신을 노린다 싶으면 동물적인 감각으로 후퇴하면서 다른 아군이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양상을 자주 만들어내는 그이다. 무라딘, 레오릭같은 탱커 역할도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윤지훈과 함께 MVP 블랙의 유동적인 전사 활용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라툴, 일리단 같은 영웅을 언제라도 깜짝 조합으로 넣을 수 있는 이재훈의 피지컬은 밴픽을 해야 하는 상대팀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merryday' 이태준은 아군을 살리는 수준을 넘어 적을 제압해내는 지원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태준이 우서나 티란데 같은 영웅을 선택하면 타이밍 적절한 군중제어 기술로 아군의 공격 연계를 완벽하게 하고, 레가르나 카라짐 같은 영웅을 사용하면 절묘한 순간에 아군을 지켜내면서 전투 양상을 뒤엎어버리는 "지원가 캐리"를 심심찮게 연출한다. 먼저 제압하자니 잘 죽지도 않고, 무시하자니 다른 아군들을 살리며 견제까지 해대니 상대하는 처지에선 손톱 밑에 박힌 가시마냥 신경 쓰이는 것이다.

이처럼 MVP 블랙은 각각의 선수가 강력하면서도 넓은 영웅폭을 바탕으로 특정한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강점이다. 마치 속성별 상성을 맞춰 싸우는 RPG 게임에서 레벨만 왕창 올려 무속성 기본 공격만으로 모든 적을 때려잡는 캐릭터 같은 느낌이다.




물론 MVP 블랙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최근까지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했기에 다른 팀이 보고 분석할 여지가 많았다는 점은 확실히 불안한 부분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인 취급을 받는 아르타니스, 길 잃은 바이킹도 활용해 승리를 거둘 정도로 MVP 블랙의 변화무쌍한 플레이는 스프링 챔피언십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다.



■ 안정성의 TNL, 하지만 단기결전에서는 과감함도 필요해...





TNL은 지난해에는 MVP 블랙을 꺾고 블리즈컨에 진출하는 등, 전통의 강호인 팀이다. 하지만 블리즈컨 이후 Team DK의 후원계약 해제 등 어수선한 분위기와 대회 공백이 겹치면서 슈퍼리그 8강 개막전에서 평소 우위를 가져가던 RAVE HOTS를 상대로 패배하는 등 경기력 저하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처럼 'Kinnu' 김병관 코치의 영입과 팀 내의 포지션 변경 등을 거쳐, 리그 중반부터는 "운영의 TNL"이라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비록 슈퍼리그와 파워리그 결승에서 MVP 블랙을 상대로 각각 4:0 패배를 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종이 한장 차이라고 할만한 경우도 많았다.

TNL이 갖는 장점이라면 역시 안정적인 운영이다. MVP 블랙처럼 선수 각각이 슈퍼 플레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인이나 오브젝트 관리를 통해 전술적으로 패배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승리하는 모습은 TNL의 주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영웅에 대해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많다는 것도 TNL의 특징인데, 살아있는 제이나의 연인이라고 불리는 메인딜러 'CrazyMoving' 한기수와 무라딘만 잡으면 망치로 적 영웅의 두개골을 박살내며 날뛰는 메인탱커 'Nobless' 채도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특정 영웅을 잘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저격밴을 하거나 맞춤 카운터를 하기도 쉬워지기에 분명히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선 주장인 한기수의 경우, 제이나를 가져갔을 때의 안정성은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절묘한 타이밍에 사용되는 눈보라는 압도적인 전투의 승리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하는 팀 입장에선 최근 제이나의 선호도가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밴카드를 소모하기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리밍이나 그레이메인처럼 주류 암살자를 선택했을 때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활약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상대의 리밍이나 그레이메인 중에서 하나를 끊고, 남은 것을 가져가는 식의 밴픽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약점으로 작용한다.




채도준은 본래 화력을 지원하는 서브탱커 역할을 했지만, 메인탱커인 'sCsC' 김승철과 포지션을 바꾸면서 메인탱커를 담당하게 되었다. 기존 포지션에서는 다소 생존이 약한 영웅을 사용하느라 끊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메인탱커로 바꾸면서 특유의 저돌성과 단단함이 조합되어 전투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라딘으로 대표되는 채도준의 전사는 확실히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지만, 최근 들어서는 지나치게 저돌적인 플레이로 팀과 연계가 맞지 않는 약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 상대가 아예 밴 카드를 소모해 무라딘을 잘라내면 남은 영웅으로는 그정도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런 부분을 두 명의 올라운더인 김승철과 'DekardCains(Sniper)' 권태훈이 보완해주고 있으나, 이 두명도 각각 소냐/제라툴와 자가라/폴스타트로 영웅 선택 경향이 제한적이라 밴픽 전략이 쉽게 노출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원래 메인탱커를 다뤘던만큼 김승철과 채도준이 특정 세트에서 서로 역할을 바꾸거나, 권태훈이 태사다르, 줄 등으로 변칙을 줄수 있다는 점은 단기간에 진행되는 대회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Jaehyun' 박재현의 지원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팀의 뒷바라지를 하는 플레이를 잘한다. 빈사 상태의 아군을 지킬 수 있는 우서와 레가르, 안정적인 대치전이 가능한 말퓨리온을 주로 선택하는 편이나 공격적인 운영이 필요할 때는 티란데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지원가가 밴으로 많이 잘린 상태에서 모랄레스, 빛나래 등을 꺼냈을 때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상대가 물고 늘어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요소다.



전체적으로 TNL은 밴픽도 그렇지만 경기 내적으로도 대규모 한타 싸움보다는 소규모 전투는 피지컬로 해결하면서 안정적인 운영을 굴리는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플레이로 재미를 보는 경우도 많지만, 한타 싸움에 강력한 팀을 상대로는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 또, 컨트롤을 중시하는 국내 AOS와 달리, 북미와 중국 등은 랫도타(도타 용어로 백도어, 스플릿 푸시 등을 활용해 전투보다 야금야금 이득을 챙기는 것에 집중한 플레이)로 대표되는 운영 플레이에 많이 익숙한 만큼 TNL의 운영 중시 플레이는 확실히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지원과 연습환경이 없었음에도 국내에서 상위권 성적을 거두었고, 영웅 폭이 좁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영웅을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던 TNL인 만큼, 남은 기간 집중 연습을 통해 스프링 챔피언십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