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관련 업무를 하나씩 맡게 되면서, 항상 VR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VR 시장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예상할 수 없었으나, 앞으로 VR이 어떤 방법으로든 영향력을 발휘할 거란 것은 알았다. 그게 부정적인 모습이든, 혹은 좋은 모습이든 결국 VR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앞에 자신을 어필할 터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건 일을 하는 내내 기자를 괴롭히는 고민 중 하나였다. 앞으로 쭉 VR에 관련된 일을 해야 할 텐데, 얼마나 커질지, 그리고 확실히 커지긴 할지조차 모르는 채 앞날을 그려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VR은 불확실했다.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며, 동시에 지금껏 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너무 비싼 가격과 완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하드웨어, 그리고 좁은 소프트웨어의 폭이 마음에 걸렸다. 소프트웨어의 수가 적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수야 늘어날 테니 말이다. VR은 '특화'된 경험을 제공했다. VR이 아니면 절대 닿을 수 없는 깊이 있는 체험을 주었지만, 아직 기자의 시선에선 그 깊이가 깊은 만큼이나 폭이 좁았다. VR을 쓸 수 있는 분야에서는 절대적으로 좋았지만, 그 분야 자체가 넓게 생각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혼자서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머리를 맞대면 낫다. 다른 사람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며, 동시에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스매싱더배틀'로 이름을 알린 '한대훈' 개발자는 기자가 생각하던 '다른 사람'으로서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하나의 완성된 게임을 만들어냈고, 다음 게임은 VR을 소재로 만들 것이라 공언했다. 아마 그는 VR에서 기자가 보지 못한 어떤 무언가를 보았을 게 분명했다. VR을 보는 여러 사람의 눈, 현직 VR 개발자는 어떨까? 급하게 잡은 약속이었지만 그는 흔쾌히 응했고, 그의 집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인 VR게임 '스매싱더배틀', 근황은?"



[▲ 한대훈 개발자]
"어때요? 생각만큼 괜찮았나요?"

첫 주제는 '스매싱더배틀'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조금 실례될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궁금하긴 했다. 1인 개발을 하는 개발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언더테일'과 같이 성공적인 1인 개발 게임들도 드물게나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1인 개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도전하는 이는 드물다. 아마 1인 개발을 시작하려면 실력, 자금, 노력 등 많은 요소가 필요하며 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한대훈 개발자는 성공적으로 1인 개발이라는 극소수의 개발자들만 달성할 수 있는 '업적'을 달성했고, 게임을 내놓았다.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궁금할 수밖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나왔어요. 걱정했는데 말이죠."

조금 걱정하긴 했다. 1인 개발이라는 이름표는 개발 단계에서 많은 이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지만, 시장에 나서는 순간 그 어떤 메리트도 되지 못한다. 그냥 개발 과정에서의 특이점 중 하나일 뿐, 게이머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게임 그 자체만을 본다. '언더테일'의 성공은 1인 개발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게임 자체가 훌륭했기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니 다행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스팀 런칭 이후 5일만에 1만장 판매. VR 스토어 판매량도 함께 오르고 있다니 한대훈 개발자의 개발기에 청신호가 들어온 것은 확실해 보였다.

"지난번에 차기작으로 VR 게임을 만들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진행 중인 건가요?

본론으로 직행했다. 4월 말에 진행된 NDC에서, 그는 다음 게임으로 VR 게임을 만들 거라고 말했던바 있다. 어떤 게임을 만들 생각인지 궁금하긴 했다. 물론 시간상으로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할 테니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겠지만, 그 사이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거나 하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 스매싱더건파이트]
"지금은 미니 게임 형태로 만들고 있어요. '스매싱더건파이트'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만들고 있죠. 이건 그냥 무료로 배포할 거에요. 애초에 상업성을 두고 만드는 미니 게임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VR에 맞는 플레이를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니까요. 제가 겪어온 개발 경험이 VR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과도기적 작품 정도일 것 같아요. 아마 스매싱더건파이트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겠죠."

한대훈 개발자의 다음 프로젝트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그 자신도 아직은 확실히 모르고 있을 테다. VR은 이제야 만들어진 플랫폼이고, 어떤 플레이가 VR에 가장 잘 맞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검증될 시간도 없었고, 검증할만한 게이머의 수도 부족하니까.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의 차기작이 나올 거라는 건 일단 확실한 것 같았다. 이제 주제를 넘길 때였다. 그의 이야기가 아닌, VR 그 자체에 대한 대화를 말이다.



"VR의 가장 큰 적은 멀미가 아니다"



[▲ 오큘러스 CTO 존 카맥]
"예전에 오큘러스의 CTO인 존 카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VR의 가장 큰 적은 멀미나 성능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이 말이 계속 와 닿는 것 같아요."

VR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한대훈 개발자는 이렇게 답했다. 일부러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가 바라보는 현재 상황이 궁금했다. 아마 기자 뿐만 아니라 VR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차트 형식이든, 추상적인 이미지인지는 몰라도, 앞으로 만들어질 VR 시장에 대한 청사진이 하나씩은 존재할 테다. 한대훈 개발자의 머릿속 그림이 궁금했다. VR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 무조건 VR의 성공을 예상한다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는 '무관심'을 걱정했다. VR이 뭔지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도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상태. 어떻게 보면 업계인이나 얼리어답터가 아닌, 대다수 대중을 생각해보면 이런 이들이 아마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 테다. 확실히 지금은 대중에게 VR을 어필할 '뭔가'가 없다. 현재 대중에게 비치는 VR의 느낌(가족이나 지인에게 물었을 때)은 "뭐라고 막 말하긴 하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다.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싶지만, 사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다. 기자가 마스카라와 파운데이션이 뭔지 감도 못 잡는 것처럼. 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 모바일로는 최고의 VR 경험을 줄 수 없다.]
"제일 아쉬운 건 오큘러스나 바이브 같은 하이엔드급 HMD가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는다는 거죠. 아마 국내에서 VR을 해본 사람 중 많은 사람이 '기어VR'이나 '폭풍마경'으로 VR을 접했을 거에요. 그다지 비싸지도 않은 가격에 VR을 해볼 수 있으니 나름 끌리긴 할거에요.

문제는 그게 역효과를 만든다는 거죠. 기어 VR이나 폭풍마경이나 둘 다 VR 체험이 가능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이게 만족스러울 정도의 VR 경험을 주느냐 하면 아니에요. 모바일 VR 기기는 VR이 가능한 정도일 뿐, VR 개발자들이 원하는 격이 다른 경험을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요. 근데 이런 기기들로 처음 VR을 접한 이들이, 부정적 여론을 만들게 되죠.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에요. 자신이 해 보니 만족스럽지 못한 거죠.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어요. '내 친구 누가 해봤더니 별로라더라', '내가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다더라' 하는 식으로요. 진짜배기 VR을 보여줄 수 있는 기계들이 선발주자로 국내에 들어오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에요.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은 다시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게 돼요. '와 신기하다! 해보고 싶다!' 하다가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금방 흥미가 식거든요. 좋은 여론을 만들려 해도 할 수가 없다면? 거기에 부정적 여론까지 생성된다면? 그다음은 뻔한 일이죠."


'오큘러스'와 '바이브'. PSVR의 발매가 아직 몇 달 남은 시점에서, 이 두 기기의 정식 발매가 성사되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뼈아픈 일이다. 소프트웨어나 가격 면을 떠나 기계를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수량이 부족해 예약구매를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구하려면 직구를 통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관세가 포함된 높은 가격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해결 방법도 없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랄 수밖에.


"VR은 간접 경험으로 알 수 없다"



[▲ VR 까페는 곳곳에 생기는 중]
"중국에 VR 방이라고 있어요. PC방이나 노래방처럼 VR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인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어요. 하드웨어는 HTC의 바이브를 사용하고요. 솔직히 VR 방에서 제공할만한 콘텐츠는 아직 제한적일 거예요. 중요한 건, 어떤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면 VR을 체험할 수 있다는 거죠."

한대훈 개발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디오 게임 개방 이후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시장이 되었다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다 제쳐놓고 인구수만 생각해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유럽과 북미가 기술과 개발을 선도한다면, 가장 뜨겁게 끓어오르는 시장은 중국이다. 다른 모든 시장에서 망해도 중국에서만 흥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거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중국의 시장 상황이 아닌, VR에 대한 중국의 자세였다. 앞서 한대훈 개발자는 VR의 가장 큰 적이 '무관심'이라는 존 카맥의 말을 인용했다. 털끝만큼의 관심이라도 생겼을 때 VR을 접할 수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나, 하고자 해도 할 방법이 없다면 그 조금의 관심마저도 무관심으로 바뀌게 된다. 그것이 현재 국내의 상황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VR 관련 행사를 직접 찾아 참관 신청을 하거나 현장 방문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지방에 사는 이들은 고작 10분 - 15분가량의 시연을 해보겠다고 몇 시간을 들여 이동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모든 산업은 충분한 소비자가 있어야 돌아가는데, 현재 국내 VR 시장은 이 소비자 확보부터가 힘든 상황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소비자의 폭을 넓혀야 한다. 어떻게? 최대한 많은 이들이 VR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 HMD의 견인차는 게임이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해 VR HMD를 견인하는 건 게임이 아닐 거에요. 영상 분야가 아무래도 VR을 선도할 가능성이 크죠. 사람들이 반 우스갯소리로 '포르노 산업이 VR을 끌고 가지 않을까?'라고 말하는데, 포르노든, 영화든, 혹은 게임이든 지금은 뭐라도 이 새로운 플랫폼을 보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보급이 되어야 개발 프로젝트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견인은 다른 산업이 하더라도, 결국 종착역은 게임이 될 거로 생각해요. 게임만이 VR이라는 세계를 100% 활용할 수 있는 미디어니까요."

한대훈 개발자는 어떻게라도 시연 기회를 늘리고, 더 많은 대중이 VR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자신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VR 시연 행사를 열고자 노력 중이라 덧붙였다. 보통 이런 말은 체면치레다. 더 나은 선, 공익을 위한 무언가를 하겠다는 말. 모두가 말로는 쉽게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루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어조에서, 그런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진짜 어떻게든 더 많은 시연 기회를 만들고 싶어했다. 글로 쓰진 않겠지만, 그는 기자에게까지 구체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말하며 의지를 보여주었다.


"VR의 물결, 어떤 게임이 나와야 하는가?"



[▲ 아직 이정도는 무리다]
"언차티드나 GTA5 같은 게임이 나오려면 아직 힘들 거에요. 아마 지금으로선 VR이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게임들이 많이 나올 거고요. 현재 개발자들은 '플레이' 그 자체에 집중해요. 어드벤쳐도 만들어보고, 슈터도 만들어보고….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하게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죠. 어떤 플레이 방식, 어떤 장르가 VR이라는 플랫폼에 가장 알맞은지 찾아가는 세계 단위의 R&D라고 보면 돼요."

지금까지 해본 VR 게임 중 어떤 게임이 가장 괜찮았냐는 질문에 그는 에픽의 '불릿 트레인'과 니트 코퍼레이션의 '버짓 컷'을 꼽았다. 둘 다 컨트롤러를 이용하는 슈팅 게임이다. 한대훈 개발자는 불릿 트레인을 통해 처음 컨트롤러를 다뤄 보았는데, 이 게임을 하면서 'FPS의 체계가 바뀔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가까이 가거나, 버튼 하나를 통해 줍는 것이 아닌, 진짜 손으로 움켜쥐듯 줍는다는 것. 슈팅 게임에서 무기 습득은 아주 기본적이고 사소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그 하나에서도 전과 다른 전율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버짓 컷'은 다른 의미에서 놀랍다. '바이브'를 이용하는 게임인 버짓 컷은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는 바이브로 어떻게 하면 이동이 가능한 레일 슈터를 만드는지 잘 보여주었다. 니트 코퍼레이션의 개발자들이 택한 방식은 '텔레포트'라는 개념이었다. 한대훈 개발자는 이 게임 자체보다,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주는 '기존과는 다른 경험'에 주목했다. 처음, 키보드와 마우스는 GUI를 더욱 편하게 다루게 할 도구로써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 키보드와 마우스는 FPS게이머들에게 최고의 장치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FPS라는 게임이 키보드와 마우스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VR 플레이에 대한 연구는 진행 중]
VR의 가능성은 감춰져 있다. 어떤 방식의 플레이, 그리고 어떤 장르의 게임이 VR에서 최고로 멋진 경험을 줄지,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써야 이용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지. 아마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수년간 이어질 숙제이겠지만, 그 해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멋진 게임, 나아가 VR을 꼭 사야만 하는 이유가 될 게임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길게 이어진 대화의 마지막, 그에게 물었다. VR의 대두가 개발자들의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주게 될까?

"모바일이 대세가 되면서, 최고급 그래픽에 대한 수요가 떨어졌어요. 동시에 최고급 그래픽을 추구하던 아티스트들에게도 혹한기가 시작되었죠. 하지만 VR 덕분에, 다시 개발 생태계는 최고급 그래픽을 원하게 될 거에요. 못생긴 것도 가까이서 보면 더 못생겨 보이잖아요? VR로 보게 되는 세계에서 최고급 그래픽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죠. 뭐 저도 아티스트 출신이라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마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시대가 열릴 것 같아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아마 게임의 디자인에 대한 접근일 거예요. 기존의 플랫폼에서 먹히던 타입의 게임들이 VR에서는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낼 거에요. VR에 더 맞는 게임, VR에 최적화된 게임을 찾기 위해 모든 게임 디자이너들이 노력하겠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보단 조금 더 복합적인 개발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대화는 길었다. 사실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대화가 끝난 이후 바라본 분침은 한 바퀴를 이미 충분히 돈 상황이었다. 기자와 개발자 둘 다 대화에 몰입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갔었나 보다. 돌아가는 한대훈 개발자를 배웅한 후,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서 혼자 또 생각에 빠졌다.

한대훈 개발자와의 만남은 흥미로웠다. 그의 시선은 내가 전부터 해오던 생각과 아주 다르지 않았지만,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그 나름대로 흥미로웠고, 개발 경험과 개발 생태계에 대한 그의 지식까지 겹쳐져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 되었다. 진심으로 VR 시장의 순항을 원하는 그의 의지가 엿보인 것은 잠깐 웃을 수 있는 보너스였다.

하지만 이 또한, 아직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예측, 그리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방책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아쉽기보다는 궁금했다.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고 싶지만, 어차피 알 수 없는 거니까. 한대훈 개발자와의 만남은 여기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다른 이들과의 대화는 남아 있었다.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VR 시장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지난 후 한대훈 개발자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또다시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계가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는 건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