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S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은 역시 북미와 유럽입니다.

수많은 FPS 스타들이 탄생하는 북미와 유럽, 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 세계 최강의 오버워치 플레이어란 찬사를 받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루미너시티 소속의 메인 딜러 '시걸'이죠. 방송만 켰다 하면 시청자들을 갈퀴로 모으고, 보고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실력까지!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녔음에도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시걸'에게서 자만하는 모습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상당한 수준의 e스포츠 판도 분석까지! 한국에도 팬이 있다는 사실을 안 '시걸'에게서는 매우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 본인 얼굴은 아닙니다!



Q. 안녕하세요, '시걸' 선수! 한국의 팬 여러분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한국 팬 여러분! 루미너시티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미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시걸'입니다. 주로 쓰는 영웅은 파라, 정크랫, 한조, 겐지에요!


Q. 오버워치를 하기 전에는 어떤 게임들을 하셨나요?

팀 포트리스2를 7년 정도 한 것 같아요. 그냥 게임만 한 게 아니라 대회에도 참가하곤 했었죠. 팀포2는 제가 대충 15살 정도 됐을 때였으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한 것 같네요. 그 외에도 많은 게임을 했었는데, 보통 제일 많이 했던 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같은 MMORPG류 게임이었어요.


Q. 그렇다면 오버워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게 있어서 중요한 기점 중 하나였어요. 팀포2는 저한테 굉장히 좋은 게임이었고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e스포츠로 삼기엔 조금 어색한 종목이기도 했고, 판이 그다지 크지도 않았거든요. 팀포2에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게이머는 없었어요. 그냥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대회에 출전하는 정도였죠. 그에 비해 오버워치는 그보다 더 판이 커질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제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아닌 다른 FPS 대작의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된 거죠.

▲ 출처 : 팀리퀴드

Q. 말씀하신 FPS 대작의 위치는 이미 CS:GO가 갖고 있었는데, 왜 CS:GO로 시작하지 않았나요?

제가 게임을 할 때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CS:GO는 굉장한 전략적 깊이가 있는 게임이지만 게임 템포가 느리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템포가 빠른 FPS 게임을 정말 좋아했고, 그런 게임들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아졌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CS:GO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았어요. CS:GO가 인기를 한참 올리기 시작했을 때 제가 대학생이었는데, 제가 해왔던 것과 다른 스타일의 FPS 게임을 배우느라 공부할 시간을 너무 많이 희생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Q. 소속팀 루미너시티가 아직까지는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진 못하고 있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버워치는 평범한 FPS 게임이 아니에요. 팀에 재능 있는 선수들은 많지만 아직 우리 실력을 제대로 다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죠.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서포터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상대 타겟팅을 누굴 먼저 잡을지를 잘 모르는 등 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제가 보기에 우리가 팀포2같은 다른 FPS 게임들을 했던 경험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약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린 그냥... 상대방을 잘 죽일 줄만 아는 '눕(noob)'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을 더 배울수록 우리도 성장할 겁니다.

오늘(27일) 있었던 OG 인비테이셔널에서 우리가 C9을 이기고 결승에서 엔비어스에게 졌는데, 이미 우리 실력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죠. 엔비어스가 서구권에서 유일하게 합숙 생활을 하고 있는 팀이기 때문에 그 팀의 수준을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그만큼 우리 팀도 연습에 시간을 더 투자할 것이고 저 역시 일정 부분 희생을 감수할 예정이에요. 요즘은 개인 방송을 5시간 정도 하고 남은 5-6시간은 다른 팀과의 스크림을 하는 데 쓰고 있는데, 개인 방송을 하다보면 꽤 지치기 때문에 조만간 제 일정을 조절해서 팀 연습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쓸 생각이에요.

지금 당장 얼마나 잘하는지는 따지기보다 앞으로 어떤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남들보다 특출나게 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는 선수들을 분명히 보셨을 거예요. 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아요.

▲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루미너시티는 성장 중!

Q. 프로 마인드가 굉장하시네요. 합숙을 시작하면 1위도 하실 수 있겠어요.

그럴지도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미 합숙 생활을 하는 팀들이 있지 않나요? 아마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서구권 팀들이 한국 팀을 이기려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Q. 재밌군요. 사실 한국에서는 FPS에서 북미, 유럽을 이기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이 퍼져 있거든요. 그런데도 한국 팀이 오버워치에서 강팀이 될 거라고 보시나요?

한국이 한 종류의 FPS 게임을 파고든 적이 있던가요? 제 말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인기가 많은 FPS에 집중적으로 몰려드는 그런 적이요.


Q. 음, 아무래도 스타크래프트나 LoL 수준의 인기몰이는 한 적이 없었죠.

전 실력있는 선수는 재능과 헌신이 합쳐졌을 때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 팀은 굉장한 노력을 기울일 거고요. 게임이 한국에서 흥행했기 때문에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팀에 들어가겠죠. 시간이 지나면 국제 대회에서 꽤 많은 한국 팀들이 보일 거예요. 북미, 유럽 지역이 지금은 FPS 장르에서 일종의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지만 오버워치가 평범한 FPS가 아니라 팀파이트를 지향하고 쿨타임 개념이 존재하는, 파고들 거리가 많은 게임이기 때문에 한국이 충분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북미, 유럽에서 플레이하는 FPS가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CS:GO가 아니라 서든어택을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요. 유저풀이 많지 않으면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요.

예를 들어 한국에 CS:GO 팀이 있고 국제 대회에서 유럽과 맞붙게 돼서 연습을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연습을 하겠어요? 그들이 누구랑 연습을 할 수 있을까요? 핑 때문에 타 지역의 탑급 팀과는 연습할 수가 없고, 자국내에서 연습할 팀도 거의 없다면 상황이 정말 어려워지죠. 제가 한국 CS:GO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에 이건 순전히 제 추측일 뿐이지만요.

하지만 오버워치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죠. 게임이 굉장히 흥행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되면 재능 있고 의욕 충만한 유저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더더욱 연습에 박차를 가할 테니까요.

▲ 이제는 오버워치에서 한국인의 명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Q. 한국 사정도 잘 알고 분석력도 대단하시네요. 한국 선수들과도 잘 알고 계신 건가요?

UW, LW, MiG 팀은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도 챙겨보려고 하고 있고요. 특히 MiG가 쏟는 열정에는 존경을 표하고 있어요. UW의 '라임' 선수를 포함해서 저 세 팀에 속한 선수들은 북미, 유럽 선수들이 쓰는 디스코드 채널에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한국 팀들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해요.


Q. 영웅 얘기를 좀 해 볼까요? 맥크리가 너프 후에도 쓸 만하단 얘기를 하셨는데, 그 생각에는 아직 변함이 없나요?

물론이죠. 오늘 우리 팀이 엔비어스와 경기를 했을 때 제가 파라로 경기를 굉장히 잘 풀어나가고 있었거든요. 상대 파라와 맞상대를 해서 대부분 승리하기도 했고요. 그랬더니 상대 팀에서 절 잡으려고 곧바로 솔저:76과 맥크리로 영웅을 바꾸더라고요. 결국 우리가 완전히 박살났죠. 둘 중 하나만 있다면 궁극기 타이밍만 조심하면 파라가 쉽게 생존할 수 있는데 둘 다 있으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파라나 메르시를 끊을 궁극기를 장전해두고 있으니까요. 특히 메르시가 죽으면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을 정도였고요.

맥크리의 피스키퍼 난사가 너프된 후 맥크리를 하기 위해선 굉장히 뛰어난 좌클릭 에임이 필수적이에요. 맥크리로 지속적인 헤드샷을 넣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솔저:76을 하는 게 훨씬 낫다고 봐요. 한타에서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궁극기 게이지도 금방 차니까요.

맥크리의 너프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탱커들의 강화죠. 상대 팀에 리퍼가 없다는 것만 확인한다면 3탱커로 적을 쉽게 몰아붙일 수 있게 됐으니까요.

▲ '시걸'에게 이런 플레이는 흔한 것이라는 게 더 무섭습니다 (출처 : 유튜브)

Q. 거기다 한국에서는 최근 일련의 사건 이후로 자리야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정말 굉장한 영웅이죠, 자리야는. 제가 보기엔 모든 서구권 팀이 쟁탈전 맵에서 자리야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외 거의 모든 맵도 마찬가지고요. 자리야가 힘을 쓰기 힘든 구조는 맵에 고지대나 언덕이 많은 곳인데, 썩 뛰어나진 않지만 그런 맵에서도 여전히 괜찮은 영웅이고요.

게다가 현재 서구권 대회들의 포맷도 한 몫하고 있어요. 지금 북미, 유럽 대회는 중복 영웅을 쓰지 못하게 제한을 두고 있거든요. 아마 다음 주에 시작하는 ESL 예선에서는 중복 제한 없이 대회가 치뤄질 것 같은데, 그때는 아마 우리가 자주 쓰던 2윈스턴 전략을 보여줄 수도 있겠죠.


Q. 즐겨 쓴다고 말씀하신 파라나 정크랫은 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영웅들인데, 그런 영웅들로 상대를 더 잘 맞추는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요?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대부분은 그냥 감에 의존해서 쏘는 거거든요. 그냥 많이 하다보면 에임은 늘어날 것 같아요. 파라나 정크랫 같은 투사체 발사 영웅은 예측샷이 에임의 일부거든요. 예를 들어 정크랫은 많이 쏴 봐야 해요. 연습용 방을 하나 파서 폭탄의 반사각이 잘 나오는 위치를 찾아낸다면 무방비 상태의 적을 여럿 맞출 수 있죠. 그렇지만 이건 그냥 내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반사각을 찾아 상대를 때리는 거니까 팁이라고 보기엔 애매하네요.


Q.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플레이를 좋아하는 한국 팬분들께 한 마디 해 주세요!

저와 제 방송을 좋아해주시는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한테 한국 팬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한국 팬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와서 정말 좋네요. 언어가 달라서 서로 소통하긴 꽤 힘들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