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더웠다.

7월 27일 오후 세 시. 상하이 푸동 공항에 발을 디디면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GDC부터 시작해 지스타로 마무리되는 게임웹진 1년의 사이클을 그래프로 그리면 차이나조이는 언제나 가장 높은 꼭짓점을 찍게 된다. 업무 강도? 아니다. 게임쇼로서의 가치? 그것도 아니다. 1년간의 일정 중에서도 차이나조이가 가장 으뜸인 점은 현장의 열악함이다.

40도를 넘나드는 고온과 변화무쌍한 날씨는 기본이다. 무지막지하게 넓은 행사장과 그 넓은 행사장을 가득 채우는 인파, 그리고 물에 던진 알칼리 금속처럼 터져나가는 무선 인터넷. 그리고 지금 당장에라도 꺼질 듯 물을 뚝뚝 흘리며 덜덜거리는 에어컨까지. 다른 게임쇼가 업무의 양으로 스트레스를 만든다면, 차이나조이는 업무의 환경으로 스트레스를 만든다. 물론 말이 그렇다. 나에게 차이나조이는 아직 미지의 무대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중국에 도착한 이후 첫 행보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다행이라면 우리 중 중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기자(앞으로 '중국어맨'이라 부르겠다)가 있다는 것. 물론 통역을 전담하느라 취재 인력으로 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객지에 있다는 느낌은 덜 수 있었다. 근데 그땐 몰랐다. 이 기자가 마음까지도 반쯤은 중국인에 가깝다는 것을.

▲ 일행의 횃불인 중국어맨 김병호 기자(선금을 낸 후 불안해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우리의 첫 행보는 무허가 택시와 함께 시작되었다. 사실 무허가인지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눈치도 채지 못했다. 택시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상황에 어떤 중국인 아줌마가 와서 우리 중국어맨과 뭐라고 말을 하더니 으슥한 곳으로 우릴 끌고 가서 밴에 태웠을 뿐이다. 중국어맨은 돈을 선금으로 냈다는 사실에 불안해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숙소까지 올 수 있었다.

상해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꽤 많이 달랐다. 잘 닦인 도로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세워져 있는 마천루. 옛 건물과 현대 건물의 자연스러운 이어짐까지. 그때까지 중국에 갖고 있던 편견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인구 2,300만의 대도시. 서울의 열 배에 해당하는 면적은 폼이 아니었다. 중국의 미래를 보려면 상해를 보라고 했던가. 그 미래가 내 눈앞에 있었다.

▲ 중국의 미래를 살짝이나마 보았다.

하지만 찌는 더위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중국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위도 자체가 문제였다. 제주도보다도 훨씬 낮은 위도를 증명하듯, 상해의 햇살은 따듯하다 못해 뜨거웠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인지 습도도 무지막지했다. 옷깃만 스쳐도 불쾌함이 올라가는 날씨. 이제 그 인파 속으로 뛰어들 차례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차이나조이가 열리는 국제 엑스포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전철을 타자니 미지의 영역이라 두렵고, 택시를 타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다. 분명히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음에도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무서웠지만, 이미 한 사람의 현지인으로 분한 중국어맨이 빨간불에도 걸어가는 패기와 함께 길을 열었다. 그리고 30분쯤 걷자 드디어 보인다. 차이나조이 2016의 무대가.

▲ 처음 봤을때 진짜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넓었다.

사실 조금 기대도 했다. 먼저 차이나조이를 다녀온 기자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몸은 힘든데 눈요기는 괜찮아요". 구글에 차이나조이를 검색해보면, 수없이 많은 미녀들의 사진이 바로 나타난다. 차이나조이가 가장 유명한 이유 중 하나다. 압도적인 규모와 퀄리티의 부스걸. 엑스포 전체에 일개 사단급의 부스걸이 참여하는 행사가 바로 차이나조이다. 눈만 돌려도 미녀가 보인다고 하던가. 하지만 첫 느낌은 "잉 그정도는 아닌데?"였다.

아침이라 그런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번에 부스걸 수를 줄인다고 했으니 진짜 줄였나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부터 차이나조이는 부스걸의 수를 줄이고, 게임쇼로서의 본질로 다가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올해 비로소 그 결과물이 드러나는가 싶었다. 남자로서는 아쉽지만, 게임 기자로서는 좋은 일이 아닌가.

하지만 딱 한 시간 후,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침이라 그런가 싶었던 그 생각이 맞았다.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분노의 도로'에 준할 정도로 이글거리는 벌판을 가로질러 도착한 B2C관은 그야말로 별세계를 방불케 했다. 오늘 이후로 고장나겠다 싶을 정도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에어컨 바람은 그렇다 쳐도, 내 눈앞에 펼쳐진 저 수많은 미인들은 또 뭐란 말인가. 아 이제 알겠다. 명불허전 차이나조이.

▲ 찾아다닌것도 아니다. 한 공간에서 고개만 돌려도 들어오는 광경

모델들이 출근을 마친 점심즘 이후부터, 사실상 게임은 뒤로 밀려버렸다. 옆을 봐도 부스걸, 뒤를 봐도 부스걸이다. 차이나조이가 무슨 모델들의 등용문이라도 된 것 같았다. 동료 기자들, 그리고 오가며 만난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게임은 잘 안보여요", "차이나조이 메인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조금 실망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상상했던 차이나조이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실망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러 부스를 돌 때마다. 그리고 게임을 하기 위해(혹은 부스걸을 보기 위해) 줄을 선 이들의 옆을 스칠 때마다. 이 모든 공간을 만들어내고 이뤄내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고, 또한 다른 게임쇼의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 쇼를 대하는 자세만큼은 다른 게임쇼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냥 다를 뿐이었다. 차이나조이가 다소 경박해 보이는 이유도. 게임보다 부스걸들이 더 잘 보인다는 시선도. 어쩌면 다른 게임쇼에 익숙해진 이들이 바라보기에 나온 결론일지도 모른다. 차이나조이를 찾는 관객들도, 그리고 무대를 만들고 관리하는 스텝들도, 그 무대에 올라 찬란히 빛나는 부스걸들도 모두 그 순간에 충실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관 사이를 이동할 때도, B2C 못지않게 커다란 B2B로 진입할 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비즈니스를 위해 B2B관을 방문한 업계 관계자들의 표정 또한 다른 게임쇼의 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차이나조이 역시 게임쇼일 뿐이다. 다른 게임쇼와 다르다는 것이 틀렸다곤 말할 수 없었다. 적어도 '외부자'일 뿐인 나로서는 말이다.

▲ 일단은 굉장히 진지한 상황이었다. 저놈의 문구가 분위기를 다 망쳤다.

일정을 마친 후, 업체의 초대를 받아 사천 요릿집에 방문했다. 근방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식당임에도, 음식을 먹은 한국 기자들의 평은 엇갈렸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강한 향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입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음식 하나에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 그리고 품은 생각에 따라 평이 엇갈렸다. 어떻게 보면 차이나조이 또한 우리 앞에 놓인 하나의 음식이 아니런가.

아직 첫 날이 지났을 뿐이었다. 차이나조이의 모든 면을 보았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짧았던 체험. 앞으로의 3일이 더욱 기대되었다. 내일, 그리고 모레와 글피까지 이어질 이 행사가 나에게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