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별로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상하이에 방문한 지 4일 차. 아침에 일어나 온도를 체크하니 36도라는 숫자가 읽힌다. 그래 이 정도면 버틸 만 하지.

장비를 챙겨 셔틀버스에 올랐다. 엑스포 현장까지는 차로 5분이면 가는 거리. 5분 후면 불지옥의 한 부분에 발을 디디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훅 밀려 들어온다. 찬 공기가 뜨거운 공기를 밀어낸다는 법칙은 압도적인 뜨거움 앞에 무시되었다. 헌데 문제는 날씨가 아니다. '인의 장막'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저 엄청난 수의 사람이 문제다.

▲ 허으...

이쯤 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날, 그리고 이튿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상한 점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일단 처음으로 보게 된 상하이와 차이나조이의 위엄이 아찔했고, 산더미처럼 잡아 온 일정이 신경 쓰였다. 근데 이 일정들이 하나씩 해결되다 보니 이제 시선이 조금 넓어졌다.

정말 신기한 광경이 너무 많았다. 중국어맨이 보여준 빨간불 질주나 무신호 좌회전은 이제 익숙해져 버렸다. 트렁크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질주하는 반대머리 아저씨나 이 날씨에 롱코트를 입고 다니는 신사분들은 눈길 한번 가는 정도다. 차이나조이에서의 4일. 중국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유롭다. 그리고 상식을 깬다.

가장 놀라웠던 건 코스프레 관이었다. 사람들 다 지나다니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도 여성 코스어들은 어디 구석에라도 들어가서 갈아입긴 했지만, 남자들은 그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한복판에서 팬티를 자랑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 자리에 당황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

▲ 이래도 되나 싶었다

상식이 깨지는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차이나조이 입장을 위해선 매일 패스를 갱신하고,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야 한다. 근데 보안 게이트까지 가기 전에 울타리를 터 놓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결국, 패스 없이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지만 멋진 점도 있었다. 현장에서 난 수없이 많은 중국인과 대화했다. 그리고 난 할 수 있는 중국어가 단 한 마디도 없다. 아니 하나는 있다. 고맙다는 뜻의 '셰셰'. 하지만 말이 막히는 경우는 생각보다 없었다. 그들은 내 어색한 영어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었다.

사실 중국인을 대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다소 부족한 준법정신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시민의식 탓일 터였다. 하지만 그전부터 귀에 박히게 듣던 중국인들의 기행이나 거친 면모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머릿속에 일종의 편견을 심어 두었다. 중국인들은 불친절하고 거칠며, 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따로 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항상 한결같이 좋았다. 영어를 모르면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스텝을 데려왔고, 그들은 내 부족한 영어를 끝까지 들어주었으며,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주었다. 한 번은 패스를 갱신하고도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어 도움을 청했는데, 직원이 직접 내 손목을 잡고 보안 검색대까지 가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중에라도 안되면 다시 찾아오라며 웃어주는 것은 덤.

▲ 도움을 준 분들의 외모 때문은 아니다. 진짜로...

부끄러웠다. 차이나조이 출장이 확정되고 난 후, 나와 동료는 드물지 않게 중국에 대한 농담을 나눴고, 대부분은 중국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이 결국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채, 남의 말만 듣고 판단했던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이 이런 거였다.

물론 내가 갖고 있던 편견의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중국인도 존재할 거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도 똑같이 있다. 인간은 다양하고, 모두가 다르니까. 하나의 인종을 똑같은 기준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 한국에서 만나는 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은, 서울에서 알고 지내는 중국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 사람들과 가까운 생활 방식과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인인 것 같다. 사실상 언어만 아니면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거다. 그러니 나에게 그렇게 익숙하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겠지.

처음에만 해도 막막하기 이를 데 없던 차이나조이도 이제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첫인상, 그리고 주체가 되는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까지 했으니 아마 다음 순서는 차이나조이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중국 관계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게임은 무엇이고, 그들이 새로운 흐름에 대처하는 자세. 차이나조이가 끝나는 그날까지 정리할 생각거리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