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안다는 것'

모두가 한 번쯤은 원하지만, 절대로 이뤄질수 없는 일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미래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우리는 미래를 말할때, 미래를 안다고 말하지 않고 '예측'한다고 말하지 않던가. 제한적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과거에 빗대어 미래를 논할 수도 있고, 주변 환경의 흐름이나 동향 등을 통한 논리적인 사고로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예측'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맞으면 좋지만 아니면 어쩔수 없고. 미래 예측은 언제나 위안이 될 뿐, 확신이 되지 못한다.

'게임'의 미래는 어떠할까? 어떤 산업이든, 그 산업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항상 이뤄진다. 언제나 그렇듯, 업계의 흐름을 읽는 사람은 성공을 거두고, 그 흐름을 쫓아가는 이들은 그저 그런 성과를 거둔다. 물론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한다고 해도,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이니까.

CEDEC 2016의 3일 차. 이번 행사에서 진행된 많은 강연 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주제의 강연의 막이 올랐다. 정확히 다섯 글자. '게임의 미래가 이 강연을 나타내는 말의 전부였다. 하지만 간단한 강연 주제에 비해, 강연자는 전혀 가벼운 인물이 아니었다. '에리카와 요이치'. 삼국지와 신장의 야망을 비롯한 역사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 테크모 홀딩스'의 사장이자 진정한 1세대 게임 개발자중 한 명이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전설적인 개발자가 말하는 '게임의 미래'.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에리카와 요이치

▲ 코에이 테크모 홀딩스 '에리카와 요이치' 사장

코에이 테크모 홀딩스의 사장이자 일본 시뮬레이션 & 게이밍 학회의 이사. 코에이의 창업자. 대표작으로 '신장의 야망', '삼국지 시리즈', '진 삼국무쌍', '대항해시대', '삼국지 영걸전 시리즈' 등이 있다.

어릴적 아버지의 사업인 염료 사업을 물려받았으나, 경영난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컴퓨터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후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게임 산업으로 나아가게 된다. 1950년 생으로 일본 내에서도 최고령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히며('미야모토 시게루'보다 연상이다) '시부사와 코우', '후쿠자와 에이지'와 같은 이름을 쓰기도 한다.(게임 장르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쓰곤 한다)

일본 내에서는 전설적인 개발자 중 한 명(시드 마이어나 피터 몰리뉴와 비견되는)으로 꼽힌다.


에리카와 요이치의 강연은 게임의 미래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과거'로부터 시작했다. 카세트 테이프에 게임을 넣어 팔던 시대의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한 그는 '신장의 야망'부터 '삼국무쌍'에 이르기까지 그간 만들어온 게임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간단히 시작했다. 1980년대의 중반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2000년대에 이르고, 2016년까지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쏟아지는 폭포와 같이 쌓이고 쌓인 30년을 말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2016년 오늘날의 시선에서 '코에이 테크모'의 방향을 말하기 시작했다.

"코에이 테크모의 방침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창립 이래로, 코에이 테크모의 신념은 언제나 '제작과 공헌'이었어요.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회사에 공헌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고, 그 수단은 최고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죠.

오늘날 우리는, 코에이 테크모가 보유한 IP를 활용한 다섯 가지 방향을 기준으로 콘텐츠를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플랫폼'의 전개, '장르'의 전개,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전개, '미디어 믹스'를 통한 전개, 마지막으로 '글로벌'을 향한 전개가 바로 다섯 가지 방향이죠."


▲ 코에이 테크모의 전략, IP의 전개

'플랫폼'의 전개는 말 그대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잇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PC와 양대 콘솔인 PS4, Xbox One을 비롯해 닌텐도 DS, Wii U 등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면 가리지 않고 코에이 테크모의 게임을 즐길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장르'의 전개는 하나의 장르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닌, 하나의 IP를 다양한 장르로 다변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신장의 야망'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지만, 온라인 대응 게임으로도 만들어진 바 있고, MMORPG로도 존재한다. 하나의 IP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전개는 기존의 게임을 다른 유명 IP와 함께 섞는 것이다. 예로 들기 가장 쉬운 것이 '북두의 권'과 '무쌍 시리즈'가 합쳐진 '북두무쌍'. 이 외에도 '원피스 해적무쌍'이나 '젤다 무쌍', 'AKB48의 야망(...)' 등이 이에 해당된다.

▲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은 상생의 근간

'미디어 믹스(타이 업)'를 통한 전개는 게임이 아닌, 다른 소재와 기존 게임의 IP를 결합해 IP의 영향력을 넓히는 방법을 말한다. 애니메이션, 만화와 같은 형태는 매우 흔하며, 술(사케, 쥰마이 다이긴죠)이나 음료 등에도 IP를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전개는 말 그대로 일본 내수 시장만이 아닌, 해외 각국의 시장에 맞춰 로컬라이징과 서비스를 동반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모든 '전개'는 기본적으로 코에이 테크모가 가진 IP를 더 많은 이들에게, 더 폭넓게 알리고, 제공하기 위한 방법들이다.

▲ 글로벌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지만, 에리카와 요이치의 강연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게임의 '미래'. 사실상 앞서 한 모든 내용은 지금부터 말할 내용의 준비에 가까우며, '코에이 테크모'가 미지의 미래에 대응해 세운 전략의 일면에 불과했다.



■ 에리카와 요이치가 말하는 게임의 미래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에리카와 요이치는 '게임의 미래'를 논하는 첫 시작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를 말했다. 그는 앞으로 게임업계의 수익 창출이 단순히 하나의 타이틀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게임 소프트'의 개발과 판매에서 'IP의 창조와 활용'으로 넘어갈 것이라 말했다.

앞서 말한 코에이의 현 방침 또한 이 변화의 흐름에 맞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회사의 IP와 꾸준히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미디어 믹스와 원소스 멀티 유즈를 통해 IP의 가치를 계속 올리는 것을 통해 물질로서의 가치가 아닌, IP라는 무형의 가치 요소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 소프트웨어 개발 < IP의 가치 창출

동시에 '과금'의 체계도 점차 다양해진다. 현재만 해도, 10년 전의 게임 구매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여전히 사람들은 직접 돈을 들고 매장에 가서 게임을 구매하곤 하지만, 요즘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다. 과금과 결제 수단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콘텐츠 제공자들은 항상 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세계 각국의 과금 서비스를 관리해주는 서비스 업체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이니까.

'개발'은 이제 오랜 기간 하나의 타이틀을 붙잡고 정성을 쏟는 것 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의 타이틀에 몇 년을 매달리기에는 유행의 흐름이나 유저의 니즈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때문에 게임 개발의 핵심은 '디테일'을 다소 희생하더라고 코스트를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변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저의 니즈를 분석하고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그간 게임을 만들며 쌓아온 노하우와 시스템들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CG와 비주얼은 개발 예산을 좌우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데, 예전과 같이 밑도 끝도 없이 '하이엔드'를 목표로 돌진하는 연구 방향보다는 눈에 편한 그래픽을 추구하고 2D와 3D를 적절히 배합하는 형태가 각광받고 있다. 코에이 테크모의 게임 또한 2D와 3D를 융합한 그래픽 형태를 연구하는 한편, 북미 스타일의 그래픽을 추구하는 '인왕(Ni-oh)'과 같은 타이틀도 준비하고 있다.

▲ 비주얼 분야에서도 화려함보다 '효율'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가장 큰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실황(스트리밍)'이다.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닌, 게임을 하는 것을 보는 것도 가치 창출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거다. 이를 통해 새로운 마케팅의 활로가 열리고, 더 다양한 산업적 선택지가 만들어졌다. 과거 게임센터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을 뒤에서 쳐다보던 즐거움이 인터넷을 통해 다시 부활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게임 콘솔의 융합,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진 '플랫폼'의 융화 또한 주목할만한 포인트다. 콘솔용 게임이 모바일로 컨버전되고, 모바일 게임은 또 콘솔로 컨버전된다. 앞서 말한 IP의 활용 가능성이 더 커짐은 물론, 게임 시장 내부에 위치한 보이지 않는 '벽'이 걷히는 효과까지 보게 된다.

VR과 AR의 대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특히 AR 게임인 '포켓몬 고'는 많은 개발자들의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렸다. 누가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고 생각했을까? AR 게임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 만큼, GPS 기술이 더욱 좋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는 곧 GPS를 이용한 게임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AI 분야 또한 놓치면 안된다. 아직까지도 AI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분야는 체스와 장기, 그리고 바둑이다. 지금이야 분야가 나뉜 것 같지만, AI의 발전은 곧 게임의 시스템에 영향을 주게 되고, 나아가 미래의 게임환경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축이 될 것이다.

▲ '포켓몬 고'의 성공은 생각해봐야 할 사안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이자,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주안점은 '게임'이라는 문화가 만든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다. 이제 게임은 '매니아'만의 전유물이 아닌, 인간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베이스' 중 하나가 되었다. 게임을 개발함에 앞서 더 이상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가 아닌, 사람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산정하고 개발에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에리카와 요이치의 강연 템포는 모범적인 기승전결을 그리며 정점을 맞이했다. 잔잔하게 시작한 30년 전의 이야기로 시작해 가파른 경사를 타고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순간, 막힘없이 '미래'를 말한 그는 짧은 시간동안 침묵한 채 관객을 쳐다보았다. 그가 말하는 '게임의 미래'는 추상적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30년의 내공은 헛되이 쌓인 게 아니었던가? 그의 주장 하나하나는 모두 일정한 근거와 현실 상황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도출된 결론이었고, 구체적인 답안을 담고 있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 탓인지 그의 눈매는 밑으로 내려와 마치 감긴 듯 보였고, 눈빛을 알아보긴 힘들었음에도 여전히 냉철하게 현상을 보고 있었다. 1세대 중에서도 최고령에 속하는 그로서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했어도 괜찮은 강연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유들유들한 살덩이만을 던지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도 뼈가 있었고, '프로듀서는 게임을 만드는 동시에 이익을 창출할 방법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관객으로 가득 들어찬 객석. 강연을 마치며 그는 자신의 눈 앞에 모인 관객들을 훑어 보았다. 모두가 어떻게 보면 그의 후배이며, 동시에 그의 뒤를 쫓는 이들이리라. 마지막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크리에이터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지금까지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살아온, 나만의 신조는 세 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것. 마음껏 업계에서 일하는 것.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여러분이 어떤 삶을 바라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에게 내가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야망을 가지고 좋은 프로듀서와 개발자가 되길 바라고, 나중에 '충실한 인생'을 살았노라고 회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이지요. 지금까지 제 말을 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 그의 마지막 조언은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