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훈 | 넥슨 코리아 / 테일즈위버팀 부장, 게임 음악 아티스트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박지훈 게임 음악 아티스트는 테일즈위버의 OST인 '화이트 판타지아' 및 다수의 배경음악을 비롯해 카트라이더, 아스가르드, 바람의나라 등 다양한 게임 음악과 사운드 작업에 참여한 바 있는 베테랑 작곡가이다.


게임을 즐기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비주얼의 시각적 콘텐츠. 또 하나는 조작이나 인터페이스와 같은 촉각 요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악과 효과음 등의 청각 요소다. 이들은 게임을 구성하는 일부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게임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하나의 요소가 게임을 부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도 한다. PC를 업그레이드해서라도 즐기고 싶게 만드는 빼어난 그래픽이라던가 찰진 타격감을 잊지 못하고 십수 년 전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사람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매력이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게임의 모든 것을 한 곡에 담아내는 표현력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게임 음악 작곡가에게는 게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 박지훈 아티스트. 그는 그동안 강단에서 보여주었던 세션 강의 대신 게임 업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지망생들이 나아가야 할 직접적인 방향을 이번 IGC를 통해 제시했다.


■ 강연주제: 게임 음악 아티스트(artist)에 도전하려면?


⊙ 왜 그때, 그 장소에서? '음악의 필연성과 해석'

한눈에 보기에 비슷한 두 개의 게임이 있다. 만약 이 게임들의 배틀 장면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다른 느낌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주인공이 세계를 구한다는 느낌이라면 용기라는 색을 입힌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주인공의 세계의 일부라는 느낌이라면 경건한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 판단의 토대는 무엇인가? 두 개의 다른 느낌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인가? 이렇게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어낸 음악은 필연성을 기반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 음악이 왜, 그 게임에, 그 장소에서, 그런 느낌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그것이 바로 필연성이다. 이를 위해 게임 음악 아티스트는 게임 콘텐츠에 대한 분석을 충분히 해야 한다.

보통 게임 음악을 만들 때 제일 먼저 접하는 것은 기획자로부터 받는 기획 문서다. 여기에는 음악의 사용 목적이나 러닝 타임, 음악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쓰이는지, 어떤 장르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전문적이지 않고 일상 언어로 표현된 음악의 분위기 등이 적혀있다.

하지만 이런 문서에는 큰 함정이 있다. 어떤 느낌의 음악을 원하고 있지만, '왜' 그런 음악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단지 사용 목적만을 담고 있는데 이런 문서가 대부분이다. 전문적인 음악적 소통 없이 문서 한 장으로 만들어진 게임 음악은 문서를 작성한 기획자를 만족하게 할 뿐이다. 정작 게임의 분위기와 맞지 않을 여지가 다분하다.

앞선 문서와 같이 기획자가 전달한 비전문적인 사항이 나무의 잎이라면 아티스트의 해석은 그 기저에 있는 뿌리를 봐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뿌리란 개발자의 의도나 스토리, 비주얼, 게임 시스템 등 게임의 근본적인 부분이다.

▲ 나무의 뿌리가 되는 게임의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극 탐험 vs 몽대륙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든 이유


코나미의 '남극 탐험'과 '몽대륙 어드벤처'는 주인공 펭귄이 세상을 모험하는 비슷한 게임이다. 하지만 이 두 게임의 음악은 전혀 다르다.

▲ 남극 탐험.(유튜브 @World of Longplays)


▲ 몽대륙 어드벤처. (유튜브 @World of Longplays)


'남극 탐험'은 단조롭고 반복되는 동요가 사용했고 '몽대륙 어드벤처'는 전형적인 모험 활극 스타일에 스테이지에 따라 다양한 음악이 사용했다. 그렇다면 '남극 탐험'의 선택은 잘못 된 것일까? 사실 두 게임 다 아주 적절한 게임 음악을 사용한 예이다.

'몽대륙 어드벤처'는 공주를 구하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으로 다양한 대륙을 플레이하고 강력한 보스와의 대결도 그리고 있다. 반면 '남극 탐험'은 똑같은 스테이지가 반복되고 진행도 별다른 스토리 없이 설원을 나아갈 뿐이다. 그래서 음악도 반복되는 배경음악 하나를 사용했다. 몇 스테이지를 가도 똑같은 배경이 나올 뿐이니 하나의 배경 음악 사용은 얼마나 적절한가!

물론 이런 선택에 '남극 탐험'의 기획자는 크게 반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획자가 다양한 음악을 요구했어도 그것에 반대하고 하나의 음악을 선택하는 것. 그 바탕에 게임 음악 제작의 필연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완다와 거상
정적이 만든 장엄함


'완다와 거상'은 게임 음악에서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완다와 거상'은 귀를 꽉 채우는 장엄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는 보스전에서일 뿐이다. 보스를 만나기 전이나 보스전이 끝나면 모든 배경 음악은 소거되고 필드 위는 주인공이 탄 말발굽 소리, 스산하게 울리는 바람 소리만 남게 된다.

▲ '완다와 거상' 5분 5초경부터 (유튜브 @Livershot187)


음악이 사라진 고요함. 이는 음악의 소멸이 아니라 나름의 해석과 맥락에 따라 만들어진 의도된 연출이다. 한 화면에는 다 잡히지 않는 거대한 보스 전투는 긴박하고 웅장하지만, 회색빛 세상을 거니는 모습은 정적이다. 말을 타고 들판 위를 달리는 주인공의 모습도 역동적이기보다는 멀리서 관조하는 감상을 전한다. 그리고 마땅한 텍스트 하나 없이 게임에 깊게 퍼져있는 고요함.

'완다와 거상'은 음악을 제거함으로서 이런 게임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했다.

콘솔 기반이고 필드 이동이 잦은 게임에서 음악을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 기획자를 설득하기도 했을 듯하다.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게임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파이널 판타지 13-2
시간, 장르를 초월한 모호함


'파이널 판타지 13-2'의 월드 선택 음악인 'Historia Crux'는 극단적이다. 게임 음악 외에는 어떤 장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음악이며 구성도 일반적인 음악적인 형식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 후반 부에는 기본 화성만 유지한 채 비트가 완전히 틀어지는 극단적인 변화를 주기도 했다.

▲ 파이널 판타지 13-2의 테마곡 'Historia Crux'(유튜브 @PlayJammerUK)


'파이널 판타지 13-2'는 모든 것을 초월한 채 섞이고 뒤틀린 세계를 그리고 있다. 'Historia Crux'의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구성은 이러한 게임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어쿠스틱과 일렉 사운드, 중반 이후부터 그려지는 불협도 시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계를 느끼게 한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Historia Crux'를 듣고 게임의 분위기가 어떨 것이라고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의 해석과 필연성이 깊게 녹아있는 게임 음악이다.


박지훈 아티스트가 작업한 '테일즈위버'의 세 번째 에피소드의 메인 테마, 'Third Run'은 필연성을 부여하는 해석을 어떻게 진행했을까?

'테일즈위버'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룬의 아이들'과 같은 세계에 붙어있는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일종의 평행세계를 그려냈다. 당시 디렉터도 원작과는 다른 청춘물을 의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피소드3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고 기존 분위기와 크게 달라지는 시기였다.

박지훈 아티스트는 게임에 반영된 원작 '룬의 아이들'을 읽은 후 기존의 밝고 경쾌한 청춘물 느낌의 게임 음악이 어울리지 않게 바뀌었다고 느꼈다. '비극적인 엔딩과 힘든 경험을 한 동료들이 떠나는 성숙한 모험'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박지훈 작곡가는 경쾌한 원작의 음악 대신 피아노로 시작하는 잔잔한 선율에 드럼 비트를 오케스트라로 대신하는 변화를 주었다.

이미 훌륭한 작곡가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와 탄탄한 팬층을 뒤집어야 하는 결정이었기에 많은 고민이 있기도 했지만, 자신의 판단을 믿고 에피소드3의 개발의도에 맞춘 게임 음악을 작곡했다. 과연 그의 해석이 담긴 음악은 잘 전달됐을까?

▲ 테일즈위버 EP3 공명 'Main Theme : Third Run'(유튜브 넥슨 클래식)


어느 날 박지훈 아티스트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음악을 듣게 됐다. 지난 시즌에 준비가 미흡해 떨어진 참가자가 다음 시즌에 재도전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Third Run'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장면 외에도 'Third Run'은 자주 사용됬는데 쓰이는 장면은 한결같았다. 줄곧 빼어난 실력을 뽐냈던 참가자가 아니라, 꾸준한 연습과 훈련으로 실력이 크게 늘어난 참가자가 등장할 때 쓰였다. 박지훈 아티스트가 '테일즈위버' 에피소드3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어려움을 딛고 성숙해진 모험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을 선정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해진 셈이다.

▲ 참가자의 실력이 많이 늘어났을 때 선곡된 'Third Run' (이미지: SBS 케이팝스타 中)



⊙ 해석에 살을 더하다, '독특한 콘셉트와 대중성'

아티스트의 판단에 따라서 원작에 대한 해석이 잘 됐다면 그 위에 살을 얹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살이 바로 작곡하고자 하는 게임 음악의 특별한 콘셉트다. 게임 음악은 게임 콘텐츠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콘셉트를 담긴 음악적 아이디어 게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콘셉트가 유저를 자극하게 되면 음악에 끌려서 게임을 하게 된다.

유저들은 아티스트가 만든 콘셉트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수용한다. 이때 이 피드백으로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진다. 소위 '음악에 꽂힌 후'에 즐기는 게임이 그 전에 즐기던 게임과 다른 재미를 주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게임에 대한 필연성을 부여한 후 음악에 독창성을 만드는 단계에는 유저가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대중성의 첨가가 꼭 필요하다. 단, 서비스 중인 게임은 게임 안팎의 유저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신규 개발 게임이라면 대중성은 오롯이 아티스트의 역량에 달려있다.




저니
게임의 모든 것을 음악에 담다


'저니'의 게임 음악 아티스트 오스틴 윈토리는 깨달음의 수행이라는 동양적인 게임 구성을 재해석했다. 여기에 음악으로 게임 전체를 이해시키기로 한 특별함을 더했다.

▲ OST만으로 게임의 모든 내용을 담아낸 오스틴 윈토리.


사막에 홀로 떨어진 '저니'의 주인공은 무기력한 존재로 시작한다. 축 처진 몸과 느릿한 움직임. 게임의 첫 배경음악은 'Second Confluence'는 이런 무력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Second Confluence'(유튜브 저니 사운드트랙)


하지만 곧 주인공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빛나는 망토가 생기는 계기를 맞는다. 여기서 자신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초월적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하며 'Threshold', 임계점이 흘러나온다.

▲ 'Threshold'(유튜브 저니 사운드트랙)


그리고 주인공이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넘는 순간 경쾌한 선율의 'Road of Trials'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게임 전개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음악 선곡임 셈이다. 여기에 사막 여행과 인간적 존재의 초월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뉴에이지라는 대중적인 장르로 녹여내며 독창적 콘셉트와 대중성을 동시에 챙겼다.

▲ 'Road of Trials'(유튜브 저니 사운드트랙)


'테일즈위버' 에피소드3의 콘셉트는 '레조넌스'다. 이는 '공명'이라는 단어로 조화를 이루며 울림이 커지는 것을 말하는데 박지훈 아티스트는 에피소드3에서 전하고 싶었던 '성숙한 모험'과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명'은 OST에 일관되게 사용됐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루나가 부른 보컬 곡에 심장 박동이 울리는 효과를 주었고 의도적으로 리버브(음의 잔향으로 여운을 주는 효과)를 5, 6초이상 넣기도 했다. 대중 음악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박지훈 아티스트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 콘셉트를 더욱 살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설정한 콘셉트의 틀은 같은 작품이라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콘셉트의 반복이 지루하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곡을 만들기보다는 콘셉트 내에서의 차별성을 찾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 해석과 콘셉트의 완성은 '퀄리티'

아티스트는 실현하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앞서 해석과 구상한 독특한 콘셉트를 구현해야 하며 그 퀄리티 상승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발자의 퀄리티 상승은 비용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 역량과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게임 음악 아티스트는 4가지 핵심 사항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 첫 번째는 디지털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선호하는 아티스트가 많지만,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아진다. 게임 음악은 자신이 설계한 것을 청취 결과물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디지털 프로그램, MIDI, 그리고 메인 악기 하나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감성적 퀄리티는 중고역에 있고 기술적인 퀄리티는 저역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점이다. 작곡을 할 때 멜로디에 신경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멜로디에만 신경 쓰면 애초 설정한 전달력이 낮아질 수 있다. 멜로디 외에 음악의 전달력을 구성하는 다이내믹(킥과 베이스의 샘 여림), 중심화성, 그리고 청감적 라우드니스가 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기에 음향적으로 저역은 마지막까지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

한편 저역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는 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게임 음악 아티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저역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스피커로 작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세 번째는 세션 사용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세션은 대부분 대중음악을 하기에 게임 음악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이에 세션으로 작업할 경우 대중 음악화된 결과물이 나오고 애초 게임 음악 아티스트가 담고자 했던 해석이 사라질 수 있다.

네 번째는 믹스나 마스터링 능력이다. 믹스와 마스터링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에 맡기면 음악적 결과물은 좋음 품질을 보인다. 하지만 세션에서의 문제처럼 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달라 애초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게임 음악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을 요약하면 게임 콘텐츠에 대한 필연성을 갖는 해석을 내리고 판단할 수 있는 것. 여기에 게임을 부각할 수 있는 음악적 콘셉트를 더하기. 그리고 설계에 그치지 않고 완성된 결과물을 얻기 위한 퀄리티 유지에 힘쓰는 것이다.

또한, 이런 핵심 요소가 게임 음악에 종사자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가 확인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