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가 종료되면서 약 일주일 간의 프리 시즌이 시작됐다. 본래라면 세 달 가까이 유지해온 소위 '빡겜 모드'를 잠시 풀고 프리 시즌을 즐겨야 할 테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직전 시즌의 성적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물론, 다가오는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연 핵을 이용한 부정행위의 범람이다. 최근 경쟁전에선 누군가 '슈퍼 플레이'를 보여주면 잘한다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핵이 아닌지부터 의심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곤 한다. 멋진 플레이를 보고, 자신도 그 플레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매력인 게임에서, '잘한다 = 혹시 핵?'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방송 중 핵 유저를 상대하게 된 EFFECT
※ 출처 : 유튜브 EFFECT 채널


물론 블리자드가 이 문제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버워치 공식 포럼을 통해 주기적으로 불량이용자 제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유저 입장에선 당장 경쟁전 상위권 목록에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핵 사용자에게 먼저 눈이 간다. '핵을 잡았다면서 쟤는 왜 아직도 게임 중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니 불량이용자 제재 결과가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오버워치 출시 이후 약 6개월. 다행히도 아직은 유저들이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유명 게임도 핵을 원천봉쇄하지 못하고 있음을 예로 들면서 차선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상위 1~3% 내의 유저들만 집중 모니터링해서 적어도 경쟁전 상위권 목록에는 핵이 없도록 하자는 의견이 그렇다. 현실적으로 모든 핵을 100% 가려내는 것이 어렵다면, 핵 사용의 주 목적인 평점 상승에 부담을 느끼도록 상위권 핵 검거율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 기사에 순위표 일부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한 영구제재를 두려워 하지 않고 핵 사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계정' 접속을 원천봉쇄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블리자드는 1인 1계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오버워치는 패키지 게임이므로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은 게임을 구매하지 않았더라도 PC방을 통해 오버워치를 플레이할 수 있어서 외국보다 핵 악용이 쉽다. IP 우회를 통해 북미나 유럽 계정을 생성하면, 본계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핵이든 대리든 PC방을 통해 게임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답을 내놨다. 해외에서 생성된 계정의 PC방 무료 이용을 금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만들어온 부계정은 핵뿐만 아니라 대리 플레이나 소위 '양학' 행위에도 이용되고 있기에 이러한 방안들은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하다.

자,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다른 게임들은 핵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 해외 계정의 국내 PC방 이용을 차단하자는 의견이 상당수 있다



■ 더 디비전 : 유저 직접 제보 시스템

유비소프트에서 올해 3월 출시한 '더 디비전'은 5일만에 4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전염병 확산으로 무법지대가 된 도시에 특수요원으로 투입된다는 배경 설정, 그리고 타 플레이어 강탈이 가능한 '다크존' 등은 전세계 유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오픈 초기부터 불안정한 서버 문제는 물론, 닫혀 있는 문을 강제로 뚫고 들어가거나, 퀘스트 지역 밖에서 보스를 저격할 수 있는 등의 크고 작은 버그가 너무 많아 문제가 됐다. 종래엔 버그를 이용한 파밍이 유행하면서 '버그를 안 쓰면 손해'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준에 이르렀다.


▲ 수많은 버그 파밍 중 하나였던 일명 호넷런. 디비전이 재건축 시뮬레이터일 줄은..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캐릭터 정보가 서버가 아닌 클라이언트에 저장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총알이 벽을 뚫거나 순간이동, 연사속도 증가 기능이 있는 핵 프로그램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 핵들은 PvP존인 '다크존'에서 주로 쓰여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유비소프트는 수시로 게임 내 핵 사용자를 적발하고 있으며, 조만간 핵을 차단할 보안 프로그램을 적용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게임 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가 지날 수록 핵 사용자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다크존 내에서 공격 당할 것에 대비해, 보복을 위한 핵 계정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정도였다.


▲ 벽을 등지고 충격 포탑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핵과 싸우기도 했다


그러자 유비소프트는 핵 사용자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핵을 사용한 플레이어의 닉네임과 당시 플레이 중이던 맵, 시간, 그리고 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인 플레이 영상을 첨부해서 메일로 발송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발 즉시 영구 정지가 아닌 14일 정지부터 시작됐기에 예방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물론 일부 유명 핵 사용자의 경우 여러 플레이어들이 수 차례 제보를 한 덕분에 결국 계정 정지가 되는 소득이 있었다. 그러나 핵 반 사람 반인 상황에서 수많은 핵 사용자를 전부 신고하는 건 무리였다. 특히 핵 특성상 순간이동으로 갑자기 나타났다가 도로 사라지므로 영상을 찍거나 그 시간을 기억해두려는 플레이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복잡한 신고 양식에 맞춰 핵을 '저격'하는 것보다 게임을 접어버리거나 PvP 지역인 다크존에 아예 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핵은 파티 퀘스트에도 출몰해 게임 밸런스 자체를 망쳐버렸기에 결국엔 더 디비전 자체를 몰락의 길로 이끌고 말았다.


▲ 현재는 핵 악용자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게임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 CS:GO : 유저 감시부대 운영

현재 오버워치 해외 프로들의 주요 출신지이기도 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이하 CS:GO)에도 오버워치와 마찬가지로 에임핵은 물론 월핵까지 있다. 특히나 캐릭터들이 갖가지 생존기를 보유한 오버워치와 달리 CS:GO는 에임 실력만으로 싸우는 게임이기에 핵 프로그램의 위력은 대단하다.

CS:GO는 두 가지 핵 방지책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개발사 밸브에서 제공하는 VAC라는 방어 프로그램이다. VAC는 특정 사용자가 클라이언트를 실행할 때 파일 변조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핵 사용자로 판단하여 영구 정지 처리한다. 한 번 계정을 정지하면 절대 해제해주지 않는 탓에 악명이 높은 편인데, VAC도 모든 핵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팀포트리스2 역시 VAC를 도입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CS:GO는 두 번째 방지책인 유저 감시부대를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영문 명칭은 'Overwatch'다. 게임 내에 핵 사용자가 있다고 의심되면, 플레이어들은 신고하기 버튼을 눌러 핵 사용자의 플레이 영상을 서버에 전송할 수 있다.

이렇게 저장된 플레이 영상은 실제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감시부대에게 넘겨지고, 감시부대원들은 핵 의심자 시점의 영상을 살펴보며 유죄 또는 무죄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오버워치에서 POTG 영상을 여러 유저들이 돌려보면서 핵 유무를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CS:GO의 감시부대 제도는 시스템적으로 공식 제공된다는 점, 그리고 감시부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시간과 랭크를 일정 수준 만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핵 의심자 플레이 영상이 감시부대원에게 전달될 때, 핵 의심자 닉네임이 '용의자'로 변경된다는 점도 인상깊다. 혹시 모를 '마녀 사냥'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 닉네임 대신 용의자로 필터해서 보여주는 세심함
※ 출처 : 유튜브 ChaBoyyHD 채널


물론 감시부대 제도에도 맹점은 있다. 핵이야 쉽게 걸러낼 수 있겠지만, 너무나도 게임을 잘해서 핵으로 잘못 신고된 케이스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CS:GO에서는 하나의 사건에 다수의 감시부대원을 배정해서 최대한 공정한 판단이 내려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 홀로 다섯 명을 상대하는 용의자의 위엄



■ 오버워치,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앞서 살펴봤듯이 타 게임도 핵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상황이다. 디비전같은 경우는 핵 때문에 주요 콘텐츠 하나가 완전히 사장됐으며, 수많은 팬들을 잃은 것은 물론 IP의 가치마저 훼손될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초기에 핵 사용자에 대한 강경대응을 하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 문제를 더 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CS:GO는 훨씬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핵에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스트리머들의 방송 콘텐츠 중 '감시부대 활동 중계'가 있을 정도로 핵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직접 핵을 '처단'한다는 분위기의 CS:GO와 핵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오버워치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물론 FPS 특성상 보안 솔루션을 계속해서 추가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무거워져 게임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다. 또한 새로운 핵 프로그램이 나올 경우, 공격을 받고 나서야 대응할 수 있는 개발사 입장에선 항상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블리자드의 대응은 아쉽다. 적어도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의지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데, 그저 보안 프로그램에 핵 사용자들이 걸려들길 바라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는 맵핵 사용이 만연한데도 뒤늦은 대응으로 유저들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고, 와우의 두더지 핵같은 경우도 신고 처리가 무척 더뎌 사실상 작업장 매물이 시장을 점거하기도 했다.

오버워치 역시 뒤늦게 외양간만 고치는 격으로 대응한다면 앞서 살펴본 디비전처럼 고유의 IP 가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위기감을 갖고,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 관련 기사 : 1등 만능주의 그릇된 욕망 '게임 핵'

▲ 공정한 경쟁 환경.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