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이론 저자 라프 코스터(Raph Koster)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된 'GDC 2017'의 마지막 날, 울티마 온라인의 리드 디자이너이자 '재미이론'의 저자 라프 코스터(Raph Koster)는 사회적 VR 환경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강단에 섰다.

오늘날, 가상현실(VR)의 하드웨어적인 발전은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도 가상 공간 내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시선은 먼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VR게임을 즐기던 여성이 성추행을 당하는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다시금 이러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 당시 해당 VR게임의 개발자들의 말처럼 '가상 현실' 안에서라면 성추행은 물론, 살인도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이미 '울티마 온라인'에서 비슷한 사례를 수없이 봤다는 라프 코스터는 VR이 MMORPG로부터 배울 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회적 공간은 단지 '게임'이 아니다. 울티마 온라인을 만들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창조한 것은 특정한 세계관을 가진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사회였다. '게임'은 가상 사회의 일부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소셜 기반 VR/AR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때때로 온라인 사회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소셜 VR/AR 구조를 확장하려는 여러 회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사들이 가상 현실 속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기본 배경을 지니지 못한 채 접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VR 게임 'QuiVR'을 플레이하던 여성이 가상현실 속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여성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 로그인하자마자 자신의 가슴 부위를 만지는 남성을 마주해야 했다. 손과 활만 떠다니는 형태의 그래픽이었지만, 성추행을 당하는 기분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이후 'QuiVR'을 개발한 이들이 취한 행동에 대한 것이다. 이 여성이 게임 속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 동안, 이 게임에는 어떠한 관리자도 접속해 있지 않았다. 이들은 사건이 기사화가 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고, 결국 캐릭터의 손이 신체 근처에 갈 경우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추후 성추행을 방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은, 게임 속에 상주하고 있는 '권위 있는' 누군가가 공격자를 확실히 처벌하고, 다시는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고자 한다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누군가가 공격당하는 것을 막을 만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지 말아야 한다.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규칙 조항을 만들고, 이를 어기는 플레이어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을 준비해야 한다. 규칙을 어긴 플레이어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해선, 모든 클라이언트의 상호작용을 녹화하고, 보이스 로그를 기록하고, 제스처 데이터를 모두 녹화하는 등 '뒤집을 수 없는 증거'를 사전에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QuiVR이 성추행 사건 이후 취한 제스처는 빨랐지만, 공격자를 추방(Ban)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도 지적하고 싶다. 가상 공간에서 상습 범행은 아주 일반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가장 악질들은 실제로 수천 명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울티마 온라인'을 예로 들면 한 명의 살인마가 약 4천 명을 죽인 적도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VR에서 더 위험하게 다가올 것이다.

공격자들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블락을 먹이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음소거 시키는 방법은 대단히 불충분하다. 그건 마치 "트위터를 막았으니 이제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방법인데, 한번 생각해보자.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가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1993년에 줄리안 디벨(Julian Dibbell)이 작성한 "사이버 세상에서의 강간"이라는 기사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당시 텍스트 기반 MUD게임인 '람다무(LambdaMOO)' 안에서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부두 인형'을 사용해 거실에서 여성 두 명을 말 그대로 '강간' 했던 사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93년 당시에는 이 사건이 진짜 강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만이 일어났을 뿐이지만, 지금은 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소셜 VR이 UGC(유저가 창작한 콘텐츠)를 따르고 있는 만큼, 위 사례와 비슷한 일이 조만간 발생할 것이다.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TTP"라고들 부르는 측정 단위가 있는데, 한 게임에서 유저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남성의 성기를 표현해내는 데 걸리는 시간(Time-to-Penis)을 말한다. 가상 현실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실제로 한 여성이 날아다니는 성기 떼에 의해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상 공간을 창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공간에서 사용 가능한 기능들을 모두 일종의 '무기'라고 생각해야 한다.

관리자(Admin)의 어뷰징 또한 사전에 방지해야 할 요소다. MMO 초창기에는 게임 마스터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일반 플레이어와 목욕탕에서 성적 행위를 일삼은 적도 있다. 그리고 항상 디지털 재화가 현금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관리자들은 어쩌면 이런 재화들을 현금을 위해 팔거나, 간혹 성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이 담긴 법제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면 가상 세계를 열지 않는 것을 추천하다.

또, 당신이 만든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상 현실을 자기 치료의 일환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을 위해 ▲ 경찰을 부를 준비, ▲ 자살 방지 핫라인, ▲ 탈출구를 추적할 준비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중에는 가상 현실에서 만난 누군가가 유일한 친구일 수 있으며, 이들은 거기에 목숨을 걸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