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일 대표. 그를 처음 만난지 벌써 4년 가까이 지났다. 그가 사무실에 방문해 짧게나마 설치해준 '오큘러스 리프트'의 초기모델, 'DK1'은 당시에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4년도 전에, '가상현실'이 조명받기 전부터 가능성을 미리 보고 산업에 뛰어 들어 활동을 했던만큼 관계자들도 대부분은 그의 이름은 한 번 정도 들어봤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강단에 선 서 대표가 이번 'VR EXPO 2017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주제는 꽤 재미있고,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였다. 이미 VR 산업은 주목받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소비자 판매량은 저조하다. 국내 투자도 해외에 비하면 뭔가 '화끈'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정말 그의 발표 주제처럼 "VR 산업, 한물갔나?"라는 의문이 들 법하다.

볼레 크리에이티브의 서동일 대표

강연의 서두에서 그 역시 이런 현상을 언급했다. 작년 3월 발표된 오큘러스 리프트 소비자 버전에 이어서 2016년 4월에 HTC가 '바이브'를 발표했고, 10월에는 'PS VR'까지 발표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판매가 많이 되지는 않았다는 시장조사가 나오며 'VR이 뜬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안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서동일 대표는 정말로 시장이 한물갔느냐를 따져보기 전에, VR 시장의 흐름부터 짚었다. 그가 짚은 VR 시장의 핵심적인 기점은 바로 '페이스북'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인수한 시점부터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하기 전에는 투자 가치가 3억 달러 정도였던 시장이, 인수 이후 약 11억 달러 이상의 투자 가치를 달성했다. 콘텐츠(C), 플랫폼(P), 디바이스를 활용한 입력장치(I). 소위 CPI 모두 투자가 세 배쯤 증가 하였으며 2016년에는 더 많은 투자가 됐다. 2015년에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었던 시장은 2016년 이후 대기업들의 투자로 훨씬 더 활발해지고,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VR이 산업적으로, 소비자의 관점에서 주목과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 대표는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눠서 분석했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인수를 기준으로 VR산업 투자 판도가 크게 달라졌다.

2015년이 주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다면,

2016년부터는 대기업들도 VR에 투자하거나 직접 뛰어들었다.



■ 산업적, 그리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VR이 관심을 받는 이유'


먼저 산업적인 관점을 살펴보자. 산업적 관점에서 '수확 체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어떤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내용들이, 너무 과하게 투자하게 되면서 투입에 따르는 한계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상. 즉 '소비자들의 최종 구매욕이 떨어지는 걸 말한다. 많은 기술 산업들이 이 수확 체감에 의해서 일정 수준만큼 발전하고 나면 소비자들이 그 이후 하이엔드 기기에는 다소 무관심하게 되고, 구매욕이 떨어진다.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를 보면, 예전에는 AMOLED라던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많이 강조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디스플레이가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실제로 광고도 거의 줄어들었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매출을 이끌어왔던 스마트폰과 TV시장 자체가 포화되고 더이상 성장 가능성이 떨어진 거다.

하지만 지금 VR을 보면, 아무리 하이엔드 그래픽의 기기를 봐도 자글자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거다. 특히 영상 콘텐츠는 해상도 자체가 고화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강하다. 만약 VR 산업이 뜨게 되면 다시 디스플레이가 주목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셈이다.

그래픽 카드 칩셋 역시 마찬가지. 지금 인기 있는 게임들을 둘러보면, PC 패키지 게임이 아닌 이상 하이엔드 그래픽 카드가 필요한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픽 카드 역시 발전에 따른 구매욕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가상 현실 게임의 경우 초당 90프레임이라는 할 가이드라인이 있다. 해상도도 높아야 하는데 영상은 4K, 1080P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른 최적화 작업도 무시무시한 편이지만, 그만큼 가상 현실이 주목되면 일반 사용자들이 사양이 높은 PC를 구매하게 된다. 상위 모델의 그래픽 카드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텔레콤 역시 마찬가지. 4G 스마트폰이 활성화된 계기는 바로 동영상 콘텐츠다. 일반적인 3G 환경에서는 고화질 영상을 시청하게 되면 버퍼링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4G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상현실은 훨씬 더 큰 화질과 용량을 요구하게 되어, 유저들에게 5G를 권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결국 가상현실 시장은 현재의 '수확 체감'이 되고 있는 산업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올랐기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의 관점에서 보는 VR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 가상현실 기술은, 어떻게 보면 인류 최초로 시간과 공간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인 셈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짐에 따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여행을 하는 것 역시 건강과 돈,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어가지만 가상현실은 이 '비용'을 크게 감소시킨다. 그리고 굳이 인간의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술이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남으로써 많은 전통적인 산업의 타개책이 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이다.

서동일 대표는 "산업을 볼 때는 하드웨어의 문제와 기기 보급을 많이 보는데, 그것보다는 이 산업이 어떻게 경험을 올리고 비용을 절감하는지, 생산성이 어떻게 증가하는지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핸드폰 역시 초기에는 벽돌 사이즈로 큰 기기가 나왔고 이에 비관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경험을 바꾸고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다는 생산성에 주목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 "VR이 한물갔다? 한국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

'그린라이트 인사이트'의 VR산업 투자 분석

서 대표는 '그린라이트 인사이트(Greenlight insights)'에서 2017년 1월 25일 자로 조사한 자료를 제시하며 2016년에만 20조 원에 가까운 돈이 VR 산업에 투자됐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대비 약 300% 이상 향상된 수치이며, 단순히 "한국만 없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VR 산업 투자 대부분이 현재는 미국 기업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

현재 대부분의 투자는 VR 초기 자금에 투자가 된 형태다. 바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투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VR 산업 시장은 대부분이 현재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기술을 발전시키고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다. 이 상황에서는 주식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 대부분의 투자금 회수는 M&A, 인수 합병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많으며, 실제로 2016년에도 26개의 거대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VR은 초기자금에 투자된 경우가 많다.

하드웨어는 기본적으로 제조단가가 높아 투자금액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콘텐츠' 분야에 투자되고 있는 총 액수를 따져보면 HMD에 투자되는 것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 인프라뿐 아니라 이제는 콘텐츠에도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서동일 대표는 "단순히 한국이 없을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VR 기기가 비싸다는 인식이 많다. 가격의 가치를 증명할만한 콘텐츠가 있다면 그건 비싸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콘텐츠가 부족해 비싸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드웨어의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이며, 이제는 그에 맞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VC들은 콘텐츠에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다. 보통 국내에서의 콘텐츠 투자는 대형 퍼블리셔에 많이 쏠렸다. 많은 국내 VC들은 창업가 위주로 투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북미에는 실제로 창업했던 사람들이 재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투자에 대한 금액과 성향, 시장의 사이즈도 다를 수밖에 없다."


HMD는 기본적으로 비싸서 투자금액이 높다.
하지만 콘텐츠 전반을 따져보면 콘텐츠 투자금도 만만치 않다.

또한 그는 앞으로의 VR 산업에 대해서 플랫폼 홀더들의 콘텐츠 투자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하드웨어 시장은 자연스럽게 강자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지막으로는 "VR 산업이 한물 갔다고 하는 분들은, 시장을 잘 모르는 분들이 하는 것 같다. 아마 투자가 잠시 주춤할 순 있다. 투자의 흐름은 보통 2~3년이나 3~4년 집중돼서 투자하다 관망하고 다시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산업적으로 성장이 안돼서 투자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의 VR 시장의 흐름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