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출시한 '하스스톤'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비난도 받았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운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카드로 서로 경쟁하는 게임에서 실력, 노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운 때문에 비난을 받은 거였을까? 그렇다면 운이란 요소는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인 걸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넥슨의 하지훈 개발자가 나섰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할까? 그리고 실력, 노력, 운은 게임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에 그러는 걸까? 이번 세션에서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실력, 노력, 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 넥슨 코리아 하지훈 개발자



■ 우리는 왜 게임을 할까?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할까? 하지훈 개발자는 게임을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게임의 어떤 점이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걸까. 답은 바로 경쟁이었다. 사람들은 경쟁할 수 있어서 게임을 즐긴다. '철권'같은 대전 게임은 물론이고 단순한 오락실 게임도 점수로 사람들과 경쟁한다. 얼핏 경쟁 요소가 없어보이는 '마인크래프트'같은 게임조차 누가 더 잘 짓나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게임을 통해 경쟁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게임을, 경쟁 끝에 이겼다는 우월감, 쾌감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한다. 하지훈 개발자는 "사람이 승리를 통해 쾌감을 받아들이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랄 수 있다. 게임은 경쟁을 통해 쾌감을 얻기 위한 요소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게임을 통해 어떻게 쾌감을 얻을까? 실력, 노력, 운 세 가지 요소로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얻는 쾌감을 나눠봤다.



■ 게임 속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요소 - 실력, 노력, 운



게임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요소로 실력, 노력, 운을 들 수 있다. 우선 실력을 근간으로 하는 게임은 '강한 사람이 이긴다'고 얘기한다. 우사인 볼트와 달리기를 해도 일반인들은 이길 수 없다. 실력 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이기기 위해선 실력을 쌓아야 한다. 재미있게도 사람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실력이 늘수록 기분이 좋아지도록 진화했다. 이를테면 헬스장에서 덤벨을 들 때 무게가 점차 늘면 일종에 만족감과 쾌감을 얻는 식이다.

헬스장에서 덤벨 무게가 느는 것처럼 실력은 하다 보면 조금씩 늘게 돼 있다. 그리고 실력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를 얻고 이에 대한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이게 바로 실력 게임이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재미요소다. 처음에는 못해도 점차 실력이 좋아지면 게임이 재밌어지고 계속 게임을 하게 되는 식이다.

▲ 'LoL' 랭겜에서 승급할 때의 쾌감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운을 기반으로 한 게임은 '운이 좋은 사람이 이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슬롯머신을 할 때 당첨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냥 운에 의존해야 한다. 여기에는 실력도 노력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운에만 의존하는 운 게임을 왜 하냐고 반문한다.

운 게임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운을 증명하는 순간을 사람들은 스릴(쾌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스릴을 느끼고 이김으로써 극한의 쾌감을 얻는다. 당연히 운 게임에서 스릴을 느끼기 위해선 반드시 보상이 필요하고, 그 보상이 클수록 스릴 역시 커진다. '하스스톤'에서 카드팩을 뜯을 때의 뭐가 나올지 기대감을 품는 것에도 이런 운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 운 게임의 스릴은 보상이 클수록 극대화된다

세 번째로 노력 게임은 자산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 경우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곧 재미의, 승리의 척도로 작용한다. 이에 하지훈 개발자는 "작년에 화제가 된 방치형 게임들의 사례의 경우 사람들이 자산이 늘어나는데 뿌듯함을 느끼는, 본능적인 부분을 자극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인간의 본능에 대해 실력을 쌓는 것처럼, 자산이 늘어나는데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에 유리해 이런 쪽으로 진화한 거로 생각한다고 하지훈 개발자는 덧붙였다.




■ 그럼 실력, 노력, 운 요소를 넣으면 무조건 잘되나요?


그렇다면 이 요소들을 넣으면 무조건 잘 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각각의 요소는 명확한 특징이 있는 것처럼 단점 역시 있다. 실력 게임의 경우 초기엔 실력이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정체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훈 개발자는 자신이 대학생때 'EZ2DJ 3rd'를 즐겼는데 조금씩 실력이 늘었지만 끝내 서브스탠스라는 곡만큼은 클리어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또한,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 실력 게임의 유저 분포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부분도 있다. 최종적으로 경쟁 구조를 보면 정규 분포를 따르긴 하겠지만, 사람마다 실력 편차가 다른 만큼 실제로 그 분포가 어떻게 형성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거기에 더해 자기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저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게임을 접는 경향이 크단 것도 특징이다.

다른 게임들은 어떨까? 운 게임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운이 좋아지던가 하진 않는다. 또한, 개발자가 아이템이 나올 확률 등의 수치를 원하는 대로 입력할 수 있기에 최종적으로 분포표를 보면 개발자가 예측한 대로 나오기 쉽다.


끝으로 노력 게임은 평이한 성장 곡선을 그린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노력 게임들은 성장치의 끝에 콘텐츠 소진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경우 사람마다 콘텐츠를 소모하는 속도는 다를지라도 그 끝은 모두 같다는 특징이 있다. 대척점에 있는 듯한 실력과 노력 요소는 재밌게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유저들의 콘텐츠 소모 속도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유저 분포가 안정을 찾는 실력, 운 게임과는 달리 노력 게임의 경쟁 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모든 유저가 시간이 지나면 상위에 위치하는 만큼 경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력 게임에서는 특정 시점에서 콘텐츠의 상한선을 높여주는 확장팩 같은 업데이트가 필수다.




■ 실력, 노력, 운 요소에 대해 게임 개발자가 알아야 할 사실들



그럼 게임 개발자들이 실력, 노력, 운 요소를 게임에 적용할 때 알아야 할 건 뭘까? 우선 실력 게임은 수명이 짧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성장이 더뎌지는 시기가 오면 유저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실력 게임은 어느 시점이 되면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그 게임의 수명은 다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실력 게임인데 수명이 긴 게임이 있다. 'LoL'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아예 실력 요소를 여러 가지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처음 'LoL'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챔피언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다양한 챔피언을 통해 실력을 기를 방향을 여러 개로 줬다. 즉, 특정 챔피언에서 더 이상 실력을 쌓기 어려우면 다른 챔피언으로 도전하는 식이다.

아니면 아예 노력이나 운 요소를 첨가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다. 'LoL'의 대표적인 운 요소는 바로 팀이다. 실력 못지않게 팀 역시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런 요소를 다양하게 첨가함으로써 실력 게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 'LoL'은 실력 게임이지만 팀이라는 운 요소를 넣음으로써 실력 게임의 단점을 보완했다

두 번째로 실력 게임은 선점이 중요하다. 실력 게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비슷한 장르라면 더 그렇다. 하지훈 개발자는 '스타크래프트2'를 사례로 들었다.

"'스타크래프트2'가 단순히 재미가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다. 그 전에 '스타크래프트'가 있어서 실패한 거다. 유저들은 이미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해당 장르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충분히 느꼈다. 그래서 유저들은 '스타크래프트2'에 흥미를 느끼지 않은 거다."

물론 다른 게임으로 다시 처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노력 게임은 선점 효과가 적다. 따라서 실력 게임이라 할지라도 시장에 후발주라로 진입하는 게임은 노력이나 운 요소를 통해 기존 게임과는 다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끝으로 운 게임은 실력 게임이나 노력 게임과는 달리 반드시 보상이 필요하다. 보통 보상은 금전적인 부분이 큰데 컴퓨터 게임이 현실에서 금전으로 보상을 주면 사행성이라 안 된다. 이런 점으로 인해 순수한 운 게임은 성립하기 어렵다. 이런 운 요소는 게임 속에서 보상과 연계하는 편이 좋다.

여태껏 각 요소에 대해 얘기들을 했는데 사실 게임에 엔딩이 있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 면에서 엔딩이 있으면서 실력, 노력, 운 각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게임은 가장 이상적인 게임이랄 수 있다.

▲ 게임에 엔딩이 있으면 실력, 노력, 운 각각의 단점이 일거에 해결된다

실력 요소를 보완하는 요소로 운 요소를 넣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사실 운과 실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건 어렵기에 유저가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LoL'을 하면서도 팀을 잘 만나 이겼다고 했을 때도 무조건 팀을 잘 만나 이긴 건 아니다. 실력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운에 의한 요소를 실력으로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운에 따른 요소를 첨가해 유저들의 착각을 유발하는 건 유효한 게임 개발 수단이랄 수 있다. 운이 좋아서 이겼지만 그걸 교묘히 숨겨 유저가 자신의 실력이 좋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게임에 즐거움을 얻게 하는 거다.

▲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게 하는 건 유효한 개발 수단이다

하지만 개발자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운 요소와 실력을 잘 섞어 유저가 실력에 대한 착각을 일으키게 해야 하지 운을 넣고 심리전이라고 포장해서 이게 실력 게임이 될 거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순수 운 게임은 성립되기 어렵다.



■ 마치며...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건 본능이라고 하지훈 개발자는 말했다. 실력을 키우는 건 즐겁고, '하스스톤'에서 카드팩을 뜯을 때 뭐가 나올지 스릴이 넘치기도 한다. 아이템이나 자산이 늘어나는 걸 보는 것도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역경이 존재한다. 실력을 키우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에서 결과가 결정되는 운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기 역시 쉽지 않다.

▲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노력, 운, 실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게임을 한다. 하지훈 개발자는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건 이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배우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게임을 열심히 하길 바란다"며 강연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