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를 아시나요?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아마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대신해서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보컬로이드'는, 노래를 만들었지만 불러줄 보컬리스트를 찾기 힘든 뮤지션들에게 또 하나의 '보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수많은 노래를 '하츠네 미쿠'가 부르게 되어 많은 이들에게 들려졌고, 여기서 일러스트레이터와 동영상 제작자들이 한 차례 더 영상을 만들어 공유함으로써 점차 많은 사람들이 미쿠를 알아갔고, 이를 제작한 '크리에이터'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하츠네 미쿠'는 점점 더 많은 인지도를 갖게 됐고, 단순히 보컬리스트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츠네 미쿠는 게임에도 진출했고, 사회 곳곳에 잘 알려지면서 일본에서는 레이싱 모델(...)이나 광고 모델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유명 뮤지션인 '레이디 가가'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죠.

이런 미쿠를 만들어낸 '크립톤 퓨처미디어'가 이번 NDC를 찾았습니다. 크립톤 퓨처미디어의 '쿠마가이 유스케'씨는 '공감으로부터 태어났다! 하츠네 미쿠의 발전 이유와 크립톤의 노력에 대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해, 청중들에게 어떻게 하츠네 미쿠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공감을 얻게 된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 크립톤 퓨처미디어의 '쿠마가이 유스케'



■ "메타 크리에이터", 크립톤 퓨처미디어에 대해

크립톤 퓨처미디어는 1995년에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설립된 회사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메타 크리에이터'라고 부릅니다. 이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뮤지션이나 게임 제작자, 3D 디자이너나 영상 제작자 등 소위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창조(Create)를 하는 형태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세상에는 다양한 사운드를 제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존재하는데, 크립톤은 이런 프로그램들을 수입해서 일본 국내외 뮤지션과 방송국, 악기점과 같은 곳에서 판매를 하면서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운드를 이용해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많은 편이 아니다.

게임 시장과 비교해도 인구는 압도적으로 적은데, 일본의 인구 1억 2천만 중 사운드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약 50~100만 명 수준. 그래서 아주 적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이기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립톤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여러 방법을 모색합니다.

크립톤의 재미있는 기조 중 하나는, '직접, 스스로 하자'는 겁니다. 콘텐츠뿐 아니라 기술 측면에서도 스스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앞서 말한 여러 방법을 직접 연구해서 시행합니다. 웹사이트를 직접 개설해서 디지털로 상품을 판매하고, 모바일 비즈니스도 직접 회사에서 연구해 다양한 사운드를 제작하고요. 게임을 만들고 싶으니까 직접 게임을 연구하면서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다양한 기술을 습득해나갔습니다. 이러면서도 사운드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와 응용은 멈추지 않았고요.

모바일에서도 사운드 연구를 진행하면서 비즈니스를 전개했다고 합니다.

2015년에 VR과 MR 기술이 주목받게 되면서 이 분야에도 뛰어듭니다. VR로 체험할 수 있는 간단한 미쿠의 3D 영상부터 4D 어트랙션으로 즐길 수 있는 체험 이벤트를 통해서 테스트도 했었고, 현재는 2017년 상용화를 목표로 HTC VIVE 플랫폼의 '하츠네 미쿠'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실시간으로 3D CG 렌더링 기술을 연구하고 직접 장비를 개발해서 '하츠네 미쿠'르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대부분의 회사들은 '본업'에 충실하고 다른 부분은 협업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크립톤은 본업인 사운드를 심화하고 응용하면서도 어찌 보면 돌아가는 형태의 사업들을 직접 배워서 확장시켜 나간 겁니다. 이런 기조를 가지고 다양한 노하우가 있었기에, 크립톤이 좀 더 효과적으로 하츠네 미쿠를 전파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됐을 겁니다.

크립톤이 제작중인 하츠네미쿠VR. HTC VIVE로 시연도 진행했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의 다양한 일들을 하는 데는, 처음에는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죠. 저희는 음악, 소프트 판매에서 시작해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도 실현하고 VR과 MR, AR 등 가상현실과 게임, 그리고 콘서트까지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분업을 했다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여기 오신 분들도 게임을 만들고 싶은 분들이 많겠죠? 게임도 기획부터 개발까지 스스로 하면서 얻은 지식을 이용하면, 게임 이외의 비즈니스 분야로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직접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 "발상의 전환"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의 탄생


"여러분, 하츠네 미쿠를 아시나요?"라는 쿠마가이씨의 질문에는, 생각보다 많은 청중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머들에게 '하츠네 미쿠'는 그래도 상당히 잘 알려진 편이니까요.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는 2007년에 발매되어 올해로 약 10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현재 미쿠와 관련된 곡은 약 50만 곡 이상 존재하며,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만 해도 200만 개 이상. 하츠네 미쿠의 콘서트는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고, 일본 뮤지션 '범프 오브 치킨', 그리고 유명한 '레이디 가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죠.

하츠네 미쿠는 '보컬로이드'로서, '보컬로이드'라는 기술은 야마하에서 최초로 만들어낸 기술입니다. PC의 데이터와 음성을 합성시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죠. 이 기술을 사용해서 처음 나온 보컬로이드는 '레온'과 '로라'라고 하는 소프트입니다. 이 둘은 영어로 음성합성을 하게 됐고, 크립톤도 이 미디어를 취급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이게 전혀 안 팔리는 거였습니다. 이에 대해 크립톤은 '보컬로이드'가 타겟 유저들을 잘못 설정한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하고 분석했습니다. 또, PC로 음악을 만드는 분들은 보컬로이드가 얼마나 '실제 사람'처럼 목소리를 발성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로라와 레온은 그런 부분에서는 부족했던 거죠. 퀄리티가 매우 낮고 들으면 '기계음이구나'하는 느낌이 드는 소프트였습니다. 리얼함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는 환영받지 못 했던 거죠.

최초의 보컬로이드, '로라'와 '레온'.

그래서 일단 크립톤은 전략을 바꿔 '메이코'라는 보컬로이드를 발매했습니다. 일단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걸 목표로 했죠. 처음에는 '레온'과 '로라'처럼 좀 쿨하게 디자인을 하려고 했는데, 판매량을 마주하고 일단은 유저들에게 흥미를 끌 수 있는 디자인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패키지를 발매합니다.

어떻게 보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당시 500장이면 잘 팔렸다고 할 수 있던 시장에서 '메이코'는 약 3천 장의 판매량을 올립니다. 이렇게 잘 된 요인 중 하나는 귀여운(...) 패키지 디자인의 특징이 잘 받아들여져, 평소에 PC로 음악을 만들지 않았던 유저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귀여운(?) 패키지로 발매된 보컬로이드 메이코.

메이코를 발매한 이후, 이제 크립톤은 '하츠네 미쿠'의 기획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츠네 미쿠는 처음부터 발상을 전환하여 기획된 보컬로이드라고 합니다. 애초에 사람 목소리와 다르다는 점이 디메리트였다면, 차라리 이걸 메리트로 만들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미쿠는 '안드로이드'라는 설정을 갖게 됐고, 안드로이드는 당연히 기계니까 사람처럼 노래를 잘 할 순 없는 걸 하나의 '특징'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조금은 어눌한 노래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해하고 좋아해 주세요!"라는 느낌이죠.

두 번째 변화는 녹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애초에 보컬로이드라는 소프트웨어가 실제 사람들에게 녹음을 부탁해서 녹음한 음성을 데이터 베이스로 만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DB는 프로 가수들의 목소리를 채용했지만, 하츠네 미쿠는 좀 더 다양한 소리를 위해 '성우'들의 목소리를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하게 됩니다. 이로써 보컬로이드는 그동안 '보컬'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에서, 또 다른 '새로운 보컬' 표현 수단으로 만들어가자는 기획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죠.

초기의 '하츠네 미쿠' 디자인

마지막으로는 안드로이드와 성우 문화를 잘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메이코'의 방향을 다시 떠올려 패키지에서 기억에 남는 일러스트를 사용해 사이버아이돌이라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생각해 일러스트 도입도 결정됐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케이'씨와 연락이 되어 컨셉을 요청했고, 처음부터 멋진 디자인의 미쿠가 탄생했습니다.

쿠마가이씨는 "첫 디자인에서 미쿠는 포니테일과 트윈테일 사이에서 엄청 격한 논쟁이 벌어졌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트윈테일로 가게 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왜 그랬는지 참...(웃음)"고 미쿠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회고했죠. 이어서 디자인을 몇 차례 개선했고 마침내 그렇게 미쿠가 발매됐습니다.

DX7 신디사이저 컨셉을 추가해 최종 디자인을 마무리지었다.

"개발할 때 크게 고생했던 부분은 세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성우인데요, 여러 성우 소속사가 있는데 일단 저희 컨셉을 봐도 못 알아주시더라고요. 지금도 보컬로이드라고 하는 게 일본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알기 시작했지만 당시는 더 몰랐거든요. 그래서 뭔지도 모르는 상품에 녹음을 할 순 없다고 거절을 많이 당했어요.

두 번째는 성우 선정이에요. 어떻게 성우 소속사가 결정이 됐는데, 샘플 CD를 주시고 선택하라고 하시더군요. 수백 명의 성우들의 목소리가 들어있는 CD였어요. 이게, 수백 명 이상의 보이스가 들어있는데 다 좋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누구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고, 정말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그래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세 번째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선정이었어요. 저희의 일러스트를 맡아주신 케이씨도 우연히 찾은 거예요.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이트가 있어서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당시는 아니었죠. 그래서 그냥 무작정 '일러스트레이터', '귀여움', 멋짐' 등 몇 개의 키워드를 넣어서 검색해서 찾았어요. 일러스트레이터를 찾는 부분에서도 많이 고생했습니다/"



■ 하츠네 미쿠는 어떻게 확산이 가능했는가? - 키워드는 "공감"

자, 이제 하츠네 미쿠라는 보컬로이드가 탄생하고 소프트가 발매됐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입하는 사람들은 뮤지션이 대부분이었죠. 뮤지션들이 자신이 제작한 음악을 '니코니코동화'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니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업로드된 곡을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됐는데, 그중에는 일러스트레이터나 동영상 제작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곡은 너무 좋은데 매번 똑같은(발매 패키지에 있던) 그림만 나오니 아쉽다"라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나서는 곡에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나, 동영상을 만들어 곡을 제작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프로모션 비디오를 만들어주는 현상이 시작됐습니다. 이 현상은, 뮤지션이 제작한 노래에 공감을 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들은 노래를 직접 부르는 사람, 노래를 듣고 소설을 쓰거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유저, 코스튬 플레이어뿐 아니라 직접 곡을 연주하는 사람.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2,3차 창작활동을 해서 PV와 동영상들이 널리 전파되어 공감대가 형성된 겁니다.

크리에이터가 크리에이터를 부르는, '공감'이 미쿠를 전파시켰습니다.

동영상이 또 다른 동영상으로, 동영상이 코스프레로, 동영상이 애니메이션으로 계속해서 퍼져나가 '하츠네 미쿠'가 전파됐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만 일어난 현상이었는데, 이게 점차 퍼져나가 해외에도 알려지게 됐죠. 그래서 쿠마가이씨는 하츠네 미쿠를 표현하는 가장 큰 키워드를 '공감'으로 꼽았습니다.

음악, 일러스트, 동영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일부의 사람들만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프로'가 아니면 불가능했죠.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 하려면 CD를 만들거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개인전을 열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생기면서 거리가 짧아지고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여건이 확실히 정비되지 않으면 창작의 확산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크립톤은 직접 여건과 서비스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라이센스'입니다. 하츠네 미쿠 캐릭터를 함부로 사용해서 상품을 만들거나 일러스트를 써서 만들면 저작권법에 걸리게 됩니다. 이런 부분이 하츠네 미쿠의 전파를 어렵게 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크립톤은 라이센스를 정비하기로 결심합니다.

라이센스를 정비하고, 직접 사이트를 운영해 창작활동을 도왔다고 합니다.

'하츠네 미쿠의 이미지를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라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는 기조를 세우고, 2007년에는 직접 이들이 창작물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도 운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더욱 확산이 빨라졌고, 크립톤도 이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업로드된 작품이 게임이 되기도 하고, 장난감으로 등장하거나 특별한 케이스지만 학교의 교가로 채택이 된 경우까지.

미쿠와 관련된 상품을 직접 제작하지는 않더라도 기획에 참여해서 유저들이 좋아하는지 연구하기도 하고, 100여 개 이상의 게임과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하면서 마침내 '하츠네 미쿠'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단순한 보컬로이드 소프트웨어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크리에이터'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존재가 된 것이죠.


꾸준히 진행되어오고 있는 하츠네 미쿠 '매지컬 미라이' 콘서트


미쿠 콘서트는 전세계적으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