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과 종이, 주사위만 있다면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은 오랜 시간 유지되며 현재의 게임에 영향을 미쳤다. 게임의 메커니즘이 탄생하기도 했고, 기본적인 시스템과 메커니즘이 보드게임으로부터 유래되기도 했다. 게임개발과 플레이까지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쳤던 보드게임은 현대적인 게임의 근원이자, 지금까지 살아있고 발전하는 장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보드게임 카페가 생기면서 관심이 일었던 보드게임은, 이제는 한물간 아이템으로 인식되는 상태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성공하는 사례가 점차 나오기 시작했다.

NDC2017에서 마이크를 잡은 겜블로의 오준원 대표는 보드게임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게임인들이 보드게임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던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 보드게임을 활용하게 되는지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 겜블로 오준원 대표



■ 이유1 - 디지털 게임과 보드게임 간의 플랫폼 전환이 늘어난다.

오준원 대표는 먼저, 보드게임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전환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PC, 콘솔, 모바일 게임이 보드게임으로 만들어지는 한편, 성공한 보드게임들이 게임과 영화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어디까지나 성공했기에 플랫폼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자유로운 플랫폼 전환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원작 보드게임들은 이제 캐주얼 모바일 게임으로 재탄생되었으며, 템플런과 같이 성공을 거둔 모바일 게임들이 반대로 보드게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미 기획력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보드게임으로의 진출도 쉽다는 것이 강연자의 설명이다.

또한, 하나의 IP가 성공을 거둠으로써 다양한 플랫폼과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 판단했다.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보드게임이 출시된 것도 IP를 활용한 형태로 볼 수 있었다.





■ 이유2 - 게임을 활용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보드게임은 필수다.

해외에서는 보드게임을 가지고 교육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회도 많으며 관련된 논문과 도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교육과정에서 보드게임의 활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초등학교는 방과 후 수업에서 보드게임을 적용하여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교사들 또한 보드게임 개발에 뛰어들어, 개발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자사의 시스템이나 시뮬레이션을 위한 보드게임을 제작하여 활용하고 있다. SK에서는 경영 전략 시뮬레이션의 형태로 회사의 규칙과 시스템, 신제품 개발 과정 등을 자연스레 익히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네오플에서는 보드게임을 이용하여 직무연수 커리큘럼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보드게임은 게임인들의 교육과 업무에도 활용할 수 있다.





■ 이유3 - 다양한 분야와의 결합이 활발하다.

보드게임은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TvN의 방송 프로그램인 '더 지니어스'는 방송을 제작하면서 오준원 대표에게 아이디어를 요청하기도 했다. 방송을 봤던 사람은 알 수 있었겠지만, 승부를 겨루는 게임 대부분이 보드게임에서 나왔던 아이디어들을 활용했다.

룰과 형태를 조금씩 수정한다면, 레크리에이션에도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100명, 200명이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까지 발전하게 된다. 실제로 200명이 할 수 있는 보드게임도 있으며, 아이디어를 활용하려는 방법들을 레크리에이션 협회에서 연구하고 있는 상태다.


PC와 콘솔로 플랫폼이 전환된 것처럼, 보드게임에서 영화화가 성공한 사례와 영화 IP가 보드 게임으로 만들어진 사례들도 존재한다. 동화 또는 소셜테마와 결합하는 보드게임들도 있다. 영화 '쥬만지'가 보드게임에서 영화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 이슈가 된 VR과 AR에서도 적용된다. 셸게임즈의 CEO인 제시 셸은 지난 GDC에서 가상현실의 미래에 대해 "2025년 정도면 VR과 AR 보드게임 시장이 1억 달러 규모의 사업이 될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매체들과 결합할 수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 이유4 - 보드게임 시장에는 8만 가지의 유용한 아이디어가 있다.

강연자는 네 번째 이유로 '약 8만 가지의 유용한 공공 저작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저작물(Public domain, 퍼블릭 도메인)이 된 보드게임 아이디어들을 모아놓은 '보드게임긱닷컴'의 자료들을 게임 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1년에 등록되는 공공 저작물만 2천~2천 500개. 도합 8만 가지의 보드게임 아이디어 중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골라, 조금만 변형한다면 재미있는 캐주얼 게임이 탄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저작물을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들도 이미 존재한다.

훌라와 유사한 '러미(RUMMY)'는 1887년 출시된 고전 보드게임이다. 여기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하여 등장한 게임이 바로 '루미큐브'다. 이외에도 오셀로를 4명이서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Rolit'이나, 그림을 그리고 이을 맞추는 'Eat poop You Cat'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 모두 다 공공 저작물에 아이디어를 더함으로써 나오는 결과물들이다.





■ 이유5 - 보드게임 매커니즘은 게임인에게 좋은 무기가 된다.

다섯 번째로 보드게임에 사용되는 게임 매커니즘은 게임 기획에서 있어 활용할 수 있다. 지금의 디지털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메커니즘과 규칙 등은 보드게임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다. 게임이 작동되는 원리 구현부터 역사까지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수록 게임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주사위의 랜덤성을 바탕으로 선택의 재미를 준 '다이스 롤링 메커니즘'에서는 운의 전략적 통제 방법을 찾아볼 수 있고, 행동의 기회를 한정한 '액션 포인트 시스템'은 지금의 게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 이유6 - 많은 게임인이 기획에 보드게임 프로토타입을 활용한다.

강연자는 다음으로 해외의 게임개발에서 보드게임 프로토타입 제작이 활용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라이엇게임즈의 선임 디자이너는 크리스티나 노먼은 "물리적 프로토타입을 구축하는 것도 매우 좋아한다.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이 코딩하는 것보다 더 빠를 때가 있다"고 보드게임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예를 들기도 했다.

제시 셸 또한 "전통적인 게임을 만들고 분석하는 것이 완전하게 작동하는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본인의 저서를 통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개발 초기 보드게임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실험하는 과정은 아이디어의 빠른 시각화와 공유에서 장점이 있다.

이렇듯 해외게임 기획자들은 보드게임 형태로 기획하고,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변형하고 게임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유7 - 보드게임은 아이디어를 강탈하는 사람이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또한, 보드게임은 소위 말하는 해적판과 카피캣이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보드게임 시장에서는 이런 유사제품이 시장에 출시되면 알아서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다른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러므로 약간의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

사건이나 사실을 순서대로 배치하는 게임 '타임라인'이 대표적인 예다. 간단한 게임이지만 광범위한 확장성으로 카드라인, 지오라인 등 후속작들을 전세계에 내놓아 성공을 거뒀다. 이외에도 한글을 활용한 퍼즐 게임 등 아이디어를 선점해서 출시하고 성공까지 이어진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 이유8 - 소셜펀딩으로 출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보드게임은 개발 자금 부분에서도 대규모 게임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갖는다. 이는 결국 아이디어를 적은 자본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소셜펀딩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의 투자를 받기 쉬워졌고, 펀딩으로 모을 수 있는 금액과 보드게임 개발에 드는 금액이 비슷하다는 것도 영향을 줬다.

대표적인 소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는 보드게임 펀딩이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며, 2015년에는 한화 1,000억 정도의 자금이 보드게임에 투자되기도 했다. 보드게임의 전체 캠페인 내에서의 점유율은 3%에 불과하지만, 성공한 캠페인 1,000개 중 보드게임의 비중은 25%를 차지하고 있다.




■ 이유9 - 성공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강연자는 마지막 이유로 대표적인 성공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언급하며 보드게임을 통해서 성공을 거둔 사례들을 전달했다. 매직 더 게더링을 만들어낸 리차드 가필드나, 젠가를 만든 레슬리 스콧, 카탄을 만든 클라우스 토이버 등 외국의 대표적인 보드게임 작가들을 소개했다.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성공을 거두는 인물들도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인들이 올라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프로토타입 개발에 보드게임이 활용될 수 있는 사례가 많다고 언급한 뒤,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