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경기게임아카데미 오픈세미나’가 25일 첫 강연을 시작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경기게임아카데미 오픈세미나’는 국내외 게임 전문가를 초빙, 게임 스타트업에 필요한 게임 제작과 창업 노하우 등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자리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날 첫번째 세미나에는 AAA급 FPS시리즈 '타이탄폴'을 개발한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김원재 3D 리드 아티스트가 강단에 올라, '타이탄폴' 시리즈의 개발 과정과 3D아티스트로서 느낀 점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 하나부터 열까지, '타이탄폴'을 통해 보는 콘솔 게임 개발 과정

▲ 김원재 리스폰 엔터테인먼트 시니어 3D 아티스트

김원재 아티스트는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첫 번째 작품인 '타이탄폴'의 개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먼저, '타이탄폴' 개발에서 가장 크게 잡았던 목표는 2년 안에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 아래에서 제작 준비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당시 디자이너들의 목표는 게임의 전체적인 그림을 만들고, 레벨 별 아이디어 및 레벨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래머의 경우는 새롭게 설립된 회사였기 때문에 게임 개발에 적합한 엔진, 그리고 툴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개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스토리에 맞게 마음에 드는 콘셉트를 그리고, 서로 발표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가졌다. 동시에 이와 관련된 레퍼런스들을 수집하고, 제작 툴을 테스트하고, 각각 레벨의 분위기를 만드는 스타일 시트(Style Sheet)를 제작하는 등의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오디오팀의 경우는 회사가 FPS를 개발한다는 사실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해놓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총기 효과음을 미리 녹음해 사운드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중에는 독특한 시도 또한 이뤄졌는데, 김원재 아티스트는 개발 단계에서 '불독'이라고 명명되었던 샷건의 효과음을 제작하기 위해 어떤 개발자는 직접 불독 강아지가 짓는 소리를 레이어에 포함시켰던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밖에도 FX팀은 개발단계에서 사용할 툴에 대한 연구 개발을 진행한다든지, 애니메이션 팀은 디자이너들의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연출 등을 자연스럽게 만들 방안을 테스트해보는 등, 개발 준비단계에서는 각 분야별로 필요한 시도와 작업이 진행되었다. 김원재 아티스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FPS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핵심 멤버들이 모인 개발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개발단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더욱 구체적이고 발전된 작업이 진행되었다. 디자이너들은 구체적인 레벨 배경이나 디자인, 그리고 각 레벨 별로 추가될 특색있는 장면을 테스트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고, 프로그래머의 경우 엔진의 개발을 계속하면서 아티스트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작업을 계속했다.

이 단계에서 아티스트들은 본격적인 에셋 개발에 착수하는데, 이 때 아티스트들이 크런치 모드를 많이 시작하게 된다. 반면, FX와 애니메이션, 오디오팀은 작업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다. 이들이 개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에셋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발이 계속되면 처음으로 플레이가 가능한 '플레이어블 레벨'(Playable Level)이 제작된다. 이후 사내 테스트를 거치게 되는데, 업무시간에 테스트를 하는 경우 보통 자기 자리에서 개발자 킷으로 테스트를 진행한다. 때때로 사내 메일을 통해 동료들과 시간을 정하고, 개발 콘솔을 집으로 가져가 집에서 테스트를 하는 일이 일도 존재한다.

이 단계에서는 '클리넥스 테스트'(Kleenex Test)라고 불리는 테스트 또한 이뤄지는데, 이 테스트는 외부에서 테스터를 모집해 두세시간 정도 테스트하고, 설문지를 작성하게 한 뒤 테스터를 돌려보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사용한 테스트 빌드는 한번 사용하고 버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생겨났다고.


이렇게 수차례 비공개 테스트가 진행되고 나면, '디자인 락'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디자인 락 이후 디자이너들은 원칙적으로 어떠한 레이아웃도 변경하지 못하게 되며, 이후에는 주로 라이팅이나 텍스쳐 등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진행된다.

알파(alpha)단계에서는 디자인 레이아웃뿐 아니라 새로운 모델도 추가할 수 없고, 기능도 추가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이 시기부터는 상대적으로 늦게 작업을 시작하는 FX와 오디오, 애니메이션 팀을 배려, 개발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골드(Gold)단계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만든 빌드를 콘솔 회사에 전달하게 되며, 유통사인 EA의 컨펌이 진행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첫 번째 DVD를 '골드'라고 부르게 되며, 김원재 아티스트에 따르면 이때 개발자들은 보통 샴페인을 터뜨리고는 한다. 이후 Shelf 단계는 게임이 출시되어 각 게임샵의 선반에 올라가는 것을 일컫는다.

과거에는 이것으로 콘솔 게임에 대한 개발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작품의 개발을 마친 뒤 후속 DLC의 개발이 시작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첫 번째 '타이탄폴'의 경우 총 세 개의 DLC가 출시되었으며, DLC 하나마다 세 종류의 신규 맵이 추가됐다. 김원재 아티스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새로운 배경을 개발하기 위해 배경 아티스트들이 고생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는 '콤프타임'(COMPTIME)이 주어진다. 이는 게임 개발이 끝나고 나면 개발자들에게 부여하는 3주 정도의 휴가를 일컫는데, 그동안 크런치 모드 등으로 고생한 개발자들에게 리프레시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 가혹했던 현실, 개발 과정의 난관들


게임 개발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루어진다면 대단히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이상과 확연히 다르다.

실제로, 개발 완료까지 2년을 목표로 했던 '타이탄폴'은 3년 반이 지나고 나서야 게임 개발을 마칠 수 있었다. 회사와 액티비전 사이의 소송 문제가 있었고, 인피니티워드에서 퇴사한 38명의 멤버들도 이전 회사에서의 로열티를 받기 위한 소송을 각각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 시작 이후 1년 정도는 작업이 더디게 진행된 부분도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수정에 따라 스토리가 확립되는 데에도 지연이 생겼다. 무엇보다 다양한 주제가 한 가지로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 컸는데, 김원재 아티스트는 이러한 이유를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설립 배경에서 추측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인피니티워드에서 나왔던 38명의 인원은 팀 하나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각 파트의 핵심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서로 10년 이상 일해오면서 친한 사이였던 만큼 각자의 목소리를 냈고, 이러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던 것과 달리 '디자인 락' 이후 빈번하게 수정 요청이 들어온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뤄진 셈이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김원재 아티스트는 "'타이탄폴'에서 처음 시도되는 요소들 때문에 작업 영역이 확실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개발 도중 엔진을 변경함에 따라 새롭게 공부를 해야 하는 부분 등 복합적인 부분에서 개발에 지연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타이탄폴'에서 처음 시도되는 요소들은 디자인적으로나 아트적으로, 그리고 게임 밸런스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한 도전이 되었다. 김원재 아티스트는 그중에서도 '타이탄과 파일럿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처음에 캐치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타이탄폴'이 게임으로서 완성되기 위해서는, 사람인 파일럿을 조종하는 상태에서도 완성된 게임플레이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타이탄에 탑승한 채로도 게임성을 온전히 유지한 채 이 둘을 자연스럽게 한 공간 안에 공존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한 공간에서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임 밸런스를 맞추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무기를 예로 들면 현존하는 재래식 무기뿐 아니라 SF 세계관에 맞는 다양한 가상 무기도 필요했다. 게다가 타이탄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무기들을 추가하면서 밸런싱 작업이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리게 된 것이다. 또한 타이탄과 파일럿 사이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데에도 여러 차례 테스트가 진행되었는데, 출시 당시 파일럿의 더블 점프 기능이나 파쿠르 액션 등의 완성도로 높이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 밸런싱에 가장 어려움이 따랐던 첫 타이탄 '아틀라스'

밸런스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타이탄의 밸런스였다. 김원재 아티스트는 가장 처음 개발된 타이탄이 '아틀라스'였는데, 개발 처음부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도 이 타이탄의 밸런스를 맞출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심지어는, 초기 게임에 추가되기로 예정된 타이탄 세 종류 중 나머지 두 종류를 빼자는 의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고.

그러나, 다행히 개발 막바지에 이르러 아틀라스의 밸런스 작업을 완료하게 되었고, 해당 데이터를 기초로 나머지 두 타이탄의 밸런스는 비교적 빠르게 작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타이탄폴'은 세 종류의 타이탄과 함께 출시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끝으로 김원재 아티스트는 '타이탄폴' 개발 도중 부딪친 난관으로 당시 추구했던 게임 모드를 꼽았다. '타이탄폴'이 추구한 게임 모드는 '멀티플레이 캠페인 모드'로, 이름 그대로 싱글플레이에 들어있는 캠페인 요소를 멀티플레이에서 녹여내자는 결정이었다. 물론, 결과는 예상과 달랐고, 싱글플레이 요소는 멀티플레이에 생각처럼 잘 반영되지 않았다.



■ 난관 극복의 키워드는 '사내 문화'


이렇게 '타이탄폴' 개발과정에서 만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접근 방법으로, 김원재 아티스트는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사내 문화를 들어 설명해 나갔다. 그가 이날 설명한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사내 문화는 피라미드식 게임 개발, 수평적 조직, 긍정적인 사고 및 오너십 등이었다.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개발은 위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피라미드처럼 진행된다. 개발 초기에는 모든 부서가 각자 수많은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타이탄폴' 개발 당시에는 3년 반 중 2년 동안 아무런 레벨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테스트의 반경이 좁아지고, 개발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모든 부서의 결과물이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실감할 수 있었던 계기로 김원재 아티스트는 자신의 입사 첫날 이야기를 들었다. 입사 첫날 그는 사장으로부터 "다섯 가지 게임에 대해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을 내일 발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간 강압적인 분위기라고 느낀 것도 잠시, 다음날 회사에서는 그의 발표에 대해 모든 직원이 토론을 하는 자리가 펼쳐졌다. 그리고 김원재 아티스트는 그날 자리에 참석해 직원들의 토론 내용을 받아 적는 사장의 모습을 확인하고 '신입사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긍정적 사고에 대해서는 개발자 대부분이 디자인이 수정되고, 엔진이 바뀌는 등 난감한 상황에서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작업을 해 나가는 것을 예로 들었다. 김원재 아티스트는 이러한 맥락에 대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주인의식이 뚜렷한, 오너십과도 연관 지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원재 아티스트는 앞에서 설명한 사내 분위기와 함께, 리스폰 엔터테인먼트가 추구하는 방향을 설명하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하나는 '커뮤니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실제로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는 '타이탄폴' 개발 이후 후속작 개발 과정에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다. 싱글플레이 부분이 미약했던 전작에 대한 지적에 '타이탄폴2'에서는 싱글플레이 캠페인을 추가했으며, 보다 더 다양한 무기를 선보인 것 또한 커뮤니티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김원재 아티스트는 커뮤니티와 관련된 일화로 영국의 한 소녀 이야기를 전했다. 그 소녀에게는 '타이탄폴'을 좋아하는 동생이 한 명 있었고, 동생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소녀는 동생이 숨을 거두기 전에 '타이탄폴2'를 해볼 수 있을지 궁금했고,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에 메일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당시 안정성이 보장된 빌드를 가지고 있던 리스폰은 해당 빌드를 커뮤니티 매니저의 손에 들려 영국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동생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리스폰의 전 직원이 게임에 접속, 하루동안 게임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소녀에게서 받은 메일에는 "동생에게 추억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커뮤니티에 이어, 김원재 아티스트는 '타이탄폴' 개발 당시 6주간의 크런치를 예로 들며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사내 분위기에 대해 추구하는 방향을 설명했다. "6주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이어진 크런치는 미국 회사치고 많은 편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CEO가 직접 전 직원을 모아 "더 이상 크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물론 실제로 이후 크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경영자의 위치에 선 사람이 직접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공통 목표에 대해서 김원재 아티스트는 "어느 게임회사든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인 것은 같을 것이다. 이는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도 다르지 않지만, 그 정의가 조금 구체적이다"라며, "우리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게임의 정의는 '금요일 저녁에 퇴근한 뒤, 맥주 하나를 사서 다시 회사에 와 밤새 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다. 이 목표를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전하고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