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강범현은 꾸준하게 발전한 선수입니다.

‘꾸준하게 발전해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 선수로서 ‘고릴라’ 강범현’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건, 어찌보면 꽤 잔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문장은 그가 나진 실드의 팀원에서, 돌풍을 일으킨 락스 타이거즈의 숨은 에이스로, 다시 롱주 게이밍의 맏형으로 성장하면서 느꼈던 아픔이나 고뇌를 다 담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찬사라는 생각도 듭니다. 팀을 이적하고, 최고의 돌풍을 일으켰던 팀이 급작스레 해체되고, 어렵게 자리잡은 팀이 급여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는 어려움이 생기는 와중에도 ‘고릴라’ 강범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매번 결승전에서 좌절하게 했던 SKT T1을 꺾고 매번 하위권을 맴돌던 롱주 게이밍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LCK 프로게이머 중 유일하게 롤드컵에 4회 연속 진출한 선수. ‘고릴라’ 강범현에게 꾸준하게 발전해왔다는 말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요?



“올해는 정말 울컥했어요. 제가 다시 결승에 서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올해는 정말 못 올 줄 알았는데…”

담담하게 전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알고보면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도 부스 안에서는 저나 종인이형이 떨지 않아야 아이들이 떨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사실 SKT T1은 중요한 경기마다 더 강해져서 오는 팀이잖아요. 시즌 중에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P.O 경기를 거치면서 더 완벽해지고 있더라고요.

결승에서 SKT T1을 만나는데도 팀원들은 동요를 안했어요. ‘커즈’는 조금 긴장했던데, ‘칸’은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왔었고, ‘비디디’도 자신이 해야할 플레이를 모두 보여줘서 떨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승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가장 놀랐던 건 롱주 게이밍이 SKT T1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베테랑 맏형 라인 ‘프레이’ 김종인과 ‘고릴라’ 강범현, 그리고 패기와 실력을 겸비한 ‘칸-커즈-비디디’. 그들은 정규 시즌에 보여준 성적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있었고, 상대를 의식하기보단 자신들이 해야할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우리 팀이 잘하면 이긴다는 SKT T1의 사고 방식이 ‘고릴라’ 강범현의 대답에서 느껴졌습니다.

“제가 오래 선수 생활을 한 선배로서 애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모두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해요. 정말 우리 아이들을 아끼지 않았다면 잔소리도 하지 않았겠죠. 제가 고향이 경상도라 말투가 조금 센 편인데, 종인이형이 제가 세게 말한 것을 잘 돌려말해주면서 달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줘요.



락스 타이거즈 시절에는 제가 종인이형을 우러러봤어요. 제 생각에는 종인이형도 그런 점을 신경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롱주 게이밍에 와서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게 종인이 형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고, 형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깊이 알게 되면서 돈독해지고, 믿음도 더 커졌던 것 같아요.

16년도 락스 타이거즈 시절에는 제가 큰 경기에 많이 흔들렸었거든요. 주변에서도 제 실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었어요. 이적 시즌을 앞두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는데, 종인이형과 이야기하면서 형이 아직도 날 믿어주고 있다는 걸 알게됐고 자신감도 찾을 수 있었어요.”

롱주 게이밍에서도 함께 뛰기를 원했던 ‘프레이’ 김종인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나는 답변이었습니다. ‘고릴라’ 강범현은 김종인이 먼저 롱주 게이밍과 계약했고 자신이 그 다음으로 입단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종인을 향한 그의 애정에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혹시 ‘고릴라’ 강범현은 김종인과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는 서로 갈라질 생각도 있었죠. 당시에는 SKT, kt, 삼성 모두 내로라하는 봇 듀오가 있었고, 저나 종인이형은 더 우승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서 둘 중 한 명이라도 더 좋은 곳에서 부르면 찢어질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래도 종인이형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계속 하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원거리 딜러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서포터거든요. 그 전에 함께 했던 분들이 모두 잘했지만, 종인이형이 저와 함께 하고싶어한다면 언제까지고 계속 함께 하고 싶어요.

세상일이 참 모르는게 저는 락스 타이거즈가 터질 줄도 몰랐거든요(웃음). 올해 스프링 시즌만 해도 종인이형이랑 이야기하면서 ‘이번 년도는 안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라도 종인이형이랑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야기도 더 많이 주고 받게 됐죠.

그래도 이번 섬머 시즌에는 우리 가치를 증명한 것 같아요. 스폰 문제도 있었고 팀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그 와중에 열심히 했고 결국 우승했잖아요. 자부심도 생기고 사람들이 보는 눈도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고릴라’ 강범현은 사교적이고 다른 사람 챙기기를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그에게 다른 선수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장 먼저 ‘비디디’ 곽보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곽보성은 어떻게 롱주 게이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터트릴 수 있었을까요?



“(비)디디는 올해 이적 시즌에 ‘프릴라’를 보고 롱주 게이밍에 입단했다고 할만큼 우리를 쫓아다녔어요. 보성이는 정말 열심히 해요. 스프링 시즌에도 기회를 주려고 했었는데, 여러 일이 생기면서 ‘쏭’ 김상수 코치님이 나가고, ‘플라이’ 송용준도 흔들리고 보성이도 흔들렸었죠.

다들 열심히 하려 했지만 그 때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성적이 나오는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죠. 섬머 시즌부터는 협회에서 도와주면서 팀이 안정화되고 그래서 보성이도 성적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보성이가 롱주에 와서 저랑 이야기할 때는 자신이 배운게 많이 없다고 했었어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보성이에게는 ‘페이커’처럼 하라는 말을 해줬어요.

원래 신인들은 자신이 유리하면 상대를 찢어놓으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페이커’ 선수는 라인전을 이기면서 로밍을 가요. 그게 다른 점이죠. 보성이한테 자신이 라인전을 이기면, 다른 라인에 영향을 끼치라고 말해줬어요. 그 부분을 연습하면서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커즈’ 문우찬에 대한 질문도 해봤습니다. 롱주 게이밍 최초의 로얄로더라는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 선수. ‘고릴라’ 강범현은 문우찬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문)우찬이는 정말 도화지였죠. 섬머 시즌에 갑자기 들어온 선수고, 한달 준비해서 뛰었어요. 제가 락스 타이거즈 시절에 (한)왕호랑 함께 뛰었어서 정글에 대한 눈이 높았었거든요. 우찬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것 같아 미안해요.

서포터는 정글과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쓴소리도 더 많이 했는데, 우찬이가 멘탈이 정말 좋아서 제가 해주는 말을 잔소리로 듣지 않고 잘 따라와줬어요. 종인이형도 제가 한 말을 다시 잘 돌려말해줬고요.

우찬이는 피지컬이 정말 뛰어나요. 그런데 탑 라인에 ‘칸’ (김)동하도 베테랑이고, 봇 라인도 베테랑이다보니 중간에서 많이 힘들었을거예요. 제가 정글에 대해 조금만 더 잘 알았다면, 왕호랑 함께 했을 때 그런 부분들을 좀 더 잘 인지했다면 우찬이에게 더 도움이 됐을텐데, 그 부분이 많이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섬머 시즌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칸’ 김동하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고릴라’ 강범현은 김동하 선수에 대한 칭찬과 함께 염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했습니다.



“동하는 승부욕이 정말 엄청나요. 채팅 논란이 있듯이, 자기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팀원들이 따라와주지 않으면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 친구는 자기만의 게임 철학이 있고, 무조건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패배하면 복기도 정말 많이하고, 그만큼 열심히 하는 친구에요. 왜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는지 안타깝죠.

제가 동하를 위해 해줘야 할 건 갑자기 발끈하면서 채팅으로 발산하는 그런 부분들, 그 부분만 잘 조절해주면 대성할 선수라고 생각해요. 나이도 스물 세살이면 적지 않은데, 자신감이 넘치거든요. 자신감이 넘치니까 채팅도 그렇게 하는 거고요.

결승전 3경기 패배했을 때도 자신은 진게 아니래요(웃음). 똑같은 걸 해도 이길 수 있다면서요. 자신감이 있어도 될만큼 노력을 해요. 지금 메타도 탱커 메타인데, 그 메타를 뚫을 수 있을만큼 연습을 한거에요. 단순히 피지컬로만 이긴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상황을 만들어낸거죠.

동하가 탑 라인을 뚫어낸 것도 대단하지만, 우리 팀이 그걸 버틸 수 있을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원래 탱커vs딜러 구도에서는 탱커가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시나리오가 나오거든요. 탑 라인이 주도권을 잡는 동안 상대 공격을 흡수할 라인이 필요한데, 우리 팀이 그걸 버텨줬고, 동하도 그만큼 잘해준거죠.”


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답을 들으며 ‘고릴라’ 강범현이 달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마지막 한 계단이 남아있습니다. 롤드컵. 그의 계속된 노력은 마지막 한 계단을 딛는 것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롤드컵은 참 변수가 많죠.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팀원들이 결승을 맛 봤다고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아직 롤드컵 결승이 남았으니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로열로더였다면, 혹은 처음으로 우승을 경험했다면 방심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런 부분만 조심하면 우승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가 4년 연속으로 롤드컵을 가게 됐고, 한국에서는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이제 저는 정말 롤드컵 우승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해서 꼭 우승할 거예요. 작년에는 손목 부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멀쩡하니까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