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게임즈 박영식 개발자

비디오 게임, 우리가 흔히 '게임'하면 떠오르는 유형의 게임이 만들어진 지도 어느 덧 40여 년이 지났다. 최초의 게임은 기술적 한계로 간단한 구조와 규칙을 가졌으며, 게임 내에서 많은 콘텐츠를 다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게임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 자연히 게임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도 늘어나게 됐다. 그에 따라 최초의 게임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세계관'이라는 단어도 어느 덧 게임에 사용해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게임의 세계관에 대해서 일부는 게임의 서사나 몰입을 위한 하나의 장치 정도로만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관이 단순히 콘텐츠 내적인 서사나 몰입을 위한 장치의 의미만을 갖지는 않는다. SF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나왔던 것들에 영감을 받아 그것들을 실제로 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일부는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넷게임즈의 박영식 개발자는 게임 세계관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환기한다. 아울러, 게임 세계관의 트렌드도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박영식 개발자는 이번 KGC 2017 강연을 통해서 게임 세계관이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위한 기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박영식 개발자는 게임 세계관에 대해서 언급하기에 앞서서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했다. 기술적 특이점은 기술이 드라마틱한 발전을 이루어내는 한 지점을 일컫는 말로, 최근 여러 영역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현 시대에서 오게 될 기술적 특이점을 유전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의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기술적 특이점에 대해 게임들은 이미 조명해왔으며, 특히 최근 들어서 이런 특이점과 연관해서 게임 속 세계관과 상상력을 통해 유저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박영식 개발자는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논의는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지는 화두라고도 덧붙였다.


기술적 특이점이 장기적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과연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이 앞으로도 유효한 직업인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는 점이었다. 아직 실용화가 되진 않았지만 몇몇 연구소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으로 작곡하거나 시나리오를 쓰는 기술에 대해서 연구 중에 있으며, 쇼케이스 등을 통해서 세상에 공개하기도 했다. 박영식 개발자는 현 단계에서 보다 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복합적인 콘텐츠, 즉 게임 같은 분야의 창작에 도전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이는 한 편, 앞으로의 게임 개발이 어떤 식으로 변화될 지에 대해서 차츰 생각해봐야 할 단계가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기술적 특이점은 단기적으로는 사회문화 전반에 미친다. 이런 현상은 현재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등이 들어서면서 단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콘텐츠 창작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때, 콘텐츠를 누가 창작하느냐의 문제와 창작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조명했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 특이점은 콘텐츠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작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九단의 바둑 대국은 바둑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큰 여파를 불러왔다. 비록 한 분야이지만, 기계가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던 분야에서 기계가 이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문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해서 재조명하게 했다.


사실 이러한 기술적 특이점이 콘텐츠 트렌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56년부터 진행된 미국과 구 소련의 우주과학기술 경쟁, 즉 스페이스 레이스는 대중문화에서 SF붐, 특히 우주를 소재로 한 SF붐을 이끌면서 이 분야가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했다. 우주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스푸트니크 발사, 달 착륙 등 어느 한 특이점이 올 때마다 대중들이 우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고, 그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전까지 상상으로만 여겼던 것을 현실로 가능하게 한 경험은 콘텐츠 창작자들을 고취시키며, 또 다른 상상을 이끌어낸다고 강조했다.

▲ 우주개발 경쟁 중에 발생한 스푸트니크 발사 등 기술적 특이점은

▲ 콘텐츠 창작자들을 고취시키고 이전에 없던 것을 상상하게 했다

아울러 박영식 개발자는 현재 언급되고 있는 기술적 특이점 또한 게임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는 전작보다 게임 속에서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사라진 고대 문명, 그리고 그 결과물인 AI들의 등장 빈도가 높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호라이즌 제로 던의 경우, 노골적으로 기술 문명의 멸망과 그 이후의 인간과 기계 간의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 이 두 게임의 예를 통해 박영식 개발자는 인간과 인공지능, 진보된 문명의 멸망, 인간과 기계의 대결 등의 소재는 이전에도 자리 잡고 있던 소재였지만, 현대 기술의 특이점을 통해서 이러한 세계관들에 대해 유저들이 보다 호응하게 되었으며,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조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유저나 독자층에서는 이미 시장에 포화상태라고 꺼리는 장르지만, 그만큼 많이 등장한 '이계물'이나 게임 소설은 기술 발전과 새로운 경험, 그리고 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거나 그려내고 싶어하는 열망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열망이 최근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VR의 근간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현실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경험에 대한 열망, 혹은 또 다른 현실을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을 이루고자 하는 방법 중 하나로 나온 것이 VR을 통한 간접체험이기 때문이다.

게임 세계관은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임 세계관은 게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규칙, 룰의 집합이면서 게임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단순히 서사나 몰입을 위한 일부 세계가 아니라, 마치 현실처럼 게임 속의 정치체계, 문화기반, 자산, 커뮤니케이션, 이동수단 등 사회. 정치, 경제 및 인문적인 것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다.


박영식 개발자는 요 근래 두드러지는 트렌드를 믹스드 월드라고 규정했다. 믹스드 월드란 전통적인 판타지, 즉 검과 마법으로 대변되는 세계관에 기계, 과학 기술 기반의 세계관이 뒤섞인 세계관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들이 국내에 출시되고 있으며, 업데이트 등을 통해서 그렇지 않던 게임들도 세계관에 변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게임은 게임인 만큼, 이런 세계관이 어떻게 게임 플레이에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하는가 조명할 필요도 있음을 강조했다. 세계관을 설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게임플레이를 통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이며 유저에게 어떤 경험을 주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SF, 혹은 믹스드 월드라면 방대한 우주 공간에서의 정보 지연 문제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세계관이 만들어질지 생각해봐야 한다. 혹은 정보 지연이 발생했다면 이것이 게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세계관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외계인 등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설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대해서도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며, 커뮤니케이션의 가능 여부에 따라 그에 맞는 세계관 및 기술 적용을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 세계관은 단순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여타 서사 매체처럼 게임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로 제공하고, 콘텐츠로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유저에게 어필하게 된다. 아울러 여기에 담긴 상상력이 다른 매체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박영식 개발자는 조명했다. 그간 SF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다루었던 소형 통신기기, 가상현실기기, 혹은 휴대용 기기 등은 이후에 스마트폰, VR기기, 태블릿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 등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 영화나 상상에서만 존재한 것들이 어느 덧 현실로 다가온 사례들

이러한 일련의 사례 때문에 박영식 개발자는 게임 속 세계관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적 상상력의 결과물이 실제로 나온 사례들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데에는 SF소설이나 영화 속의 세계관과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게임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게임 속 세계관도 단순히 게임을 보다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기재만으로 두기보다는 기술적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특이점으로서 조명하고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