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날씨가 풀려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던 패딩의 두께를 조금 포기해도 괜찮았던 어느 날. 합정역 부근에 위치한 카페에 e스포츠 관계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e스포츠 기자 둘이었죠. 한 명은 사진기를 들고, 다른 한 명은 의문의 취재 장비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이윽고 책상 여러 개를 한데 붙여 자리를 세팅,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죠.

이들보다 조금 더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눈에 봐도 '어? 누구다!'라고 단박에 알아볼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죠. 이들은 LoL 프로게이머로 활동 중이지만 매 경기 출전하는 선수들은 아니니까요.

연말을 앞두고 어떤 특집기사를 낼 것인지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팬들에게 덜 친숙한 인물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고심 끝에 세 명의 프로게이머를 섭외했습니다. 바로 각 팀에서 출전 기회를 자주 얻지는 못했던 선수들, '식스맨' 특집. 정말 많은 선수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그 중에서 롱주 게이밍의 '라스칼' 김광희와 아프리카 프릭스의 '모글리' 이재하, 그리고 전 진에어 그린윙스, 현 콩두 몬스터의 '레이즈' 오지환이 인터뷰 요청에 응해줬습니다.

▲ '모글리' 이재하, '라스칼' 김광희, '레이즈' 오지환(왼쪽부터)


이들과 나눈 대화는 표현 그대로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생활과 생각을 모조리 들어볼 수 있었거든요. 세 명의 선수는 때론 유쾌하게, 또 어떤 경우에는 진지하게 질문에 답했습니다. 기자 역시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죠.

※ '식스맨'이라는 단어를 잘 활용하지 않는 것이 추세지만, 기사 내 의미전달에 용이하도록 선수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Q. '라스칼' 김광희 선수와 '모글리' 이재하 선수는 비시즌 동안 기존 팀에 남았어요. 팀 숙소에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모글리' 이재하(이하 모글리) : 비시즌 동안 계약하고 나서 다음 시즌 준비에만 신경쓰고 있었어요.

기자 : 아프리카 프릭스가 엄청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모글리 : 다른 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모르지만, 저희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라스칼' 김광희(이하 라스칼) : 저희는 그냥 쉬면서? 그런데 생각보다 쉬는 기간이 길진 않았어요.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도 다녀오고 KeSPA 컵도 준비했죠.

기자 : '프레이' 김종인 선수와 '고릴라' 강범현 선수가 LoL 올스타전에 다녀왔잖아요. 그동안 조금 쉬지 않았나요?

라스칼 : 그때도 주말만 쉬고 랭크게임을 주로 하고 있었어요.


Q. '레이즈' 오지환 선수는 이적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얼마 전에 콩두 몬스터에 입단했어요. 그럼 그 전까지 뭐하고 지냈나요?

'레이즈' 오지환(이하 레이즈) : 해외 진출 생각도 하는 등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전 자리를 꿰차고 싶어서 욕심을 조금 냈죠. 그러다가 예전에 진에어 그린윙스에 같이 있었던 천정희 코치님이 이번에 콩두 몬스터로 가셨잖아요. 천 코치님이 콩두 몬스터에서 정글러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셔서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게 됐어요. 흐름에 맞게 딱 됐죠.

기자 : 콩두 몬스터 분위기는 어떤가요?

레이즈 : 제가 워낙 콩두 몬스터 선수들이랑 친하다 보니깐 불편한 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다른 선수들도 모두 착해요.


Q. 그럼 비시즌 동안 다른 게임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라스칼 : 다른 게임 조금 해봤죠. 배틀그라운드.

모글리 : 저도 배틀그라운드.

레이즈 : 저도(웃음).

기자 : 다들 배틀그라운드군요. 솔로나 듀오, 스쿼드 레이팅은 어때요?

라스칼 : 저 듀오는 마스터 찍었어요. (김)종인이 형이랑 같이 했거든요. 롤드컵 다녀와서 1주일 동안 숙소에서 같이 배틀그라운드만 했던 적이 있었어요. 연습 쉬는 동안.

기자 : '프레이' 선수 배틀그라운드도 잘해요?

라스칼 : 나쁘진 않게 하는 것 같아요. 오래 하진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 화면을 못 보니까 잘하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어요. 운으로 마스터를 찍었는지, 실력이었는지(웃음).

모글리 : 저 레이팅 확인할 줄도 몰라요. 그냥 몇 판 해봤어요. 현재 유행하는 FPS 장르 중에는 가장 재미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다들 하길래 저도 해봤는데, 조금 어지럽더라고요. 'FPS 멀미'는 원래 없었는데 이상하게 배틀그라운드를 하면 조금 그렇더라고요.

레이즈 : 처음할 때 조금 어지럽던데. 하다 보면 점점 괜찮아져요. 저는 솔로나 듀오 말고 스쿼드만 했어요. 처음에 낙하산 펴고 내렸는데 팀원들 중에 몇 명 죽으면 바로 나가고(웃음). 콩두 몬스터 친구들이랑 하거나 아는 형들이랑 같이 했어요. 솔직히 배틀그라운드는 요새 웬만한 사람들은 다 하니까 연습 쉴 때 누가 부르면 가끔 하죠.



Q. '항아리 게임'도 많이들 하던데, 해봤어요?

모글리 : 해봤죠. 개인 방송으로도 잠깐 했던 기억이 나요. 물론, 엔딩은 못봤죠(웃음). 게임 하다가 너무 화가 나서 그만 뒀어요.

라스칼 : 전 안해봤어요.

레이즈 : 저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니까 화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안했어요(웃음).


Q. 이제 '식스맨' 특집에 어울리는 질문들을 해볼게요. 각자 식스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준다면 어떨까요?

레이즈 : 글쎄요... 경기장에서 장 봐오는 사람들이죠 뭐(웃음). 코치님이 편의점 가실 때 같이 가요. 혼자 먹을 것들을 다 들고 오시기 힘드니까. 서울 OGN e스타디움에서는 건물 15층이나 1층 편의점에 가거나, 강남 넥슨 아레나로 가는 날엔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봐서 거기로 가고요.

모글리 : 상암 경기장 길 건너에 있는 카페로도 가죠. 전 조금 정석적인 답변으로, 팀에 기복이 있을 때 분위기 전환이나 이런 것을 하는? 아니면 서로의 실력에 따라 식스맨은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라스칼 : 저는 살짝... 보살펴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스크림 끝나고 뭔가에 서로 불만이 생겼을 때 직접적으로 말을 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잖아요. 그때 저를 통해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동생들 같은 경우에는 하소연을 할 때도 있고요. 그걸 들어주는거죠. 팀 분위기 같은 것도 우울하거나 다운되어 있을 때는 먼저 장난 치면서 풀어주기도 하고.


Q. 식스맨 그리고 주전 선수들, 이 두 그룹은 서로 스케줄이 동일한가요? 팀별로도 다를 것 같은데요?

라스칼 : 섬머 스플릿 때 저는 랭크게임만 했어요. '칸' (김)동하 형이 경기 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최근에는 다른 선수들이랑 똑같은 일정으로 지내요. 스크림 참여도 하고 관전도 하고.

기자 : 섬머 스플릿 때 공식전에 데뷔했잖아요. 그럼 그때는 랭크게임으로만 연습하다가 출전했던 거예요?

라스칼 : 네. 그땐 동하 형 몸이 안좋았어서 1세트 끝나고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토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출전하게 됐죠. 더 긴장했던 것 같아요.

레이즈 : 그게 진에어 그린윙스전 아니었어요?

라스칼 : 네, 맞아요.

기자 : 그때 레이즈 선수는 뭐하고 있었어요?

레이즈 : 저요? 장 봐왔죠(웃음).

일동 : (웃음)



모글리 : 아프리카 프릭스는 일정이 거의 같아요. 스크림 횟수는 그날 오전에 정해주세요. 물론, 예정된 부분에서 많은 것이 변동되긴 하죠. 스크림 참여 횟수랑 상관없이 선발이 아닐 경우에는 제가 언제 출전할 수 있다는 걸 미리 말씀 안해주세요. 그러다가 1세트나 2세트 끝나고 '준비해라' 라고 하시죠.

기자 : 아, 그러면 경기장 도착 전에 미리 '넌 몇 세트에 출전한다'고 듣는게 아니네요?

레이즈 : 보통 경기 중에 말해주시는 것 같아요. 만약에 1세트 진행 중이라고 하면, 1세트 도중에 통보를 해주실 때도 있고, 아니면 다음 세트에 출전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진에어 그린윙스는 경기 일정에 따라 달랐던 것 같아요. 일정 사이에 어느 정도 비는 구간이 있잖아요. 그때 저희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든요. 종례 하듯이. 경기 준비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미리 말씀도 해주시고. 물론, 바뀌는 것도 생기죠, 어쩔 수 없이. 예정에 없다가도 갑자기 스크림 하다가 '너가 들어와야 할 것 같다'고 하세요. 그때 잘하면 한 경기 더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주전 선수가 컨디션이 별로일 때 출전하기도 하고, 이전 세트가 너무 쉬웠기 때문에 출전할 수도 있어요.


Q.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시간을 가져볼까요? 각자 포지션 경쟁을 하고 있는, 아니면 했던 선수를 소개해 보실래요? 어떤 거라도 좋아요.

라스칼 : 동하 형과는 롱주 게이밍에 입단하기 전부터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성격이 진짜 잘 맞아요. 정말 많이 친하고, 팀원들 중에 가장 자주 같이 노는 형이죠. 1년 반 정도 친분이 이어졌어요. 예전에 무슨 스카이프 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 알게 됐어요. 아마 그때 모글리 선수도 있었을 걸요?

기자 : 프로게이머들 모임인가요?

모글리 : 그건 아니고 자주 통화하는 사람들 모임이라고 해야되나.

라스칼 : 네, 거기 제가 어쩌다가 초대됐어요. 거기서 목소리로 처음 알게 됐죠.

모글리 : 저도 동하 형을 처음 알게 된 게, 원래 그 형이랑 '블랭크' (강)선구랑 알고 지냈거든요. 그러다가 그 스카이프 방을 통해 친해졌죠. 지금은 디스코드 많이 해요.

기자 : 그렇군요. 아! 라스칼 선수, 계속 소개해주세요.

라스칼 : 게임 내적으로는 정말 잘하죠. 피지컬도 좋고.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저는 그렇게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하진 못해요. 그런데 그 형은 그게 있어요. 자기 실력이 저기 한참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플레이가 나오는 거죠. 실제 실력도 좋고 자신감도 넘쳐서 좋은 플레이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실제 성격도 방송에서 공개된 거랑 많이 비슷해요. '췍!' 이런 건 부스 안에서 긴장 풀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숙소에서는... 막 혼자 그러진 않고(웃음) 저희끼리 장난을 서로 많이 치죠. 트집 엄청 잡고.



모글리 : '스피릿' (이)다윤이 형은 게임 내적이나 외적으로 착하고 잘해줘요. 저한테 게임 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정말 많죠. 보통 정글러는 스스로 게임 중에 못보는 걸 뒤에서 다른 정글러가 봐주면 좋거든요. 서로 그런 걸 잘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게임 중에 다윤이 형이 하는 세세한 콜이 정말 좋아요. 그런 걸 많이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누가 봐도 자상하고 톤도 높고, 기분이 항상 '하이'하죠. 그런데 그 형이 스스로 말하는 게 있어요. 자기는 가끔씩 의도치 않았는데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있대요. 처음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해줬어요. 만약에 자기가 기분을 나쁘게 했으면 의도한 것이 아니라서 자신이 잘 모를 수 있으니까 바로 이야기해달라고도 했어요. 그걸 들으면 자기가 바로 고치겠다고.

기자 : 본인이 직접 스피릿 선수한테 그런거 말해준 적 있어요?

모글리 : 아이고, 그런 거 못하죠(웃음).

레이즈 : 제 차례인가요. 일단 '엄티' (엄)성현이는 자기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심하게 관심받는 걸 좋아해요. 자기가 프로게이머를 하는 이유는 관심을 좋아해서 하는 거라고 매일 말해요.

기자 : 오, 이거 '칸' 선수랑 비슷한 성향 아닌가요?

라스칼 : 그 형도 좀 심해요.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레이즈 : 개인 방송도 정말 열심히 해요. 처음에는 너무 시끄럽길래 뭐하나 싶어서 가보거든요. "스카이프 하니?" 물어보면 안한대요. 그럼 그걸 혼자 그러고 있는거죠. 개인 방송하면서. 아무도 대답을 안해주는데 MC처럼 굴어요. 옆에 있는 사람은 힘들어하죠. 자리가 계속 바뀌어도 그때마다 옆자리 사람은 멘탈이 나가요. 만약 랭크 게임에서 지고 있는데, 성현이가 옆에서 그러고 있다, 그러면 솔직히 화가 나죠(웃음). 숙소 내에서는 잘 안그러는데 외부의 누군가가 본다고 생각하면 그래요. 자기가 관심 받는 걸 좋아한다는 걸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는거, 조금 멋진거 같아요.

그리고 막내인 걸 모르는 막내예요. 성현이가 내년에 스물 되거든요. 뭐랄까, 말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나와요. 정말 당황스러웠죠. 저 말이 여기서 나올 타이밍인가 싶기도 하고. 그 친구가 외국에서 살다 왔거든요. 그걸 안 다음부터는 뭔가 가르쳐줘야겠다 생각했죠. 교육 많이 시켜놨어요. 이제 밥 먹다가 "목마르다..." 하면 바로 물 뜨러 가죠(웃음).

보통 제가 나서서 교육시킨 편이죠. 저보다 형들이 또 있잖아요. 나이가 저, '테디' (박)진성이, (엄)성현이 이렇게 순서거든요. 그럼 만약에 제가 진성이한테 뭘 시켜요. 그럼 이제 진성이가 "성현아, 뭐하냐~" 해요.


Q. 그럼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내 경쟁자이긴 하지만, 이것 만큼은 내가 인정한다' 뭐 이런 건 없을까요?

레이즈 : 성현이가 기복이 좀 있을 때가 있어요. 잘할 때랑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만약 망해도 게임 내에서 콜해주는 게 똑같아요. 콜이나 오더 같은 거. 한타하다가 자기가 가장 먼저 죽어도 콜을 계속 열심히 해요. 마치 자기가 캐리하는 것처럼(웃음). 보통 내가 먼저 끊기거나 하면 미안하고 창피해서 가만히 있잖아요. 그 친구는 안 그래요. 그게 장점이죠. 우리는 프로게이머니까. 팀이 이기는 방향으로 계속 콜을 해주고 피드백을 하죠. 주눅들지 않는 점?

기자 : 예전에 '엄티' 선수가 워윅 고르고 망했을 때도요?

레이즈 : 나중에 피드백을 위해서 저희 팀 차원에서 따로 부스 콜 녹음본을 받았어요. 그때도 똑같았죠. 사실 워윅을 성현이가 평소에 정말 자주 어필했어요. 진짜 하고 싶다고. 그런데 스크림을 해보면 아무리 봐도 아니었거든요. 그때 경기에서는 정글 밴을 너무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어요. 그리고 망했잖아요. 그게 팀에서는 '너 원하는 거 한 번 시켜줬으니까 이젠 팀에서 필요한 걸 하자'는 느낌도 있었던 거 같아요(웃음).



모글리 : 다윤이 형은 연습을 정말 많이 해요. 팀원들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체력이 좋기도 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있죠. '피곤할텐데 연습을 어떻게 저렇게 늦은 시간까지 하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해요. 저희 팀이 연습실까지 오전 11시 50분까지 집합하거든요. 다윤이 형은 평균적으로 새벽 5시까지 연습해요. 잠 줄여 가면서 연습하는 걸 보고 정말 신기했어요. 보통 늦게까지 다들 하고 싶어도 눈도 풀리고 피곤해서 그렇게 못하거든요.

라스칼 : 동하 형은 일단 제이스를 세상에서 제일 잘하고요. 연습량도 정말 많아요. 저희는 스크림 한 타임이 끝나면 다들 쉬러 가요. 피곤하거든요. 근데 그 형은 안 쉬어요. 휴가 때도 대부분 쉬러 가는데 안 쉬어요.

기자 : 그렇죠. 프로게이머들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쉴 때 가족들이나 친구들 오랜만에 보고, 다른 게임 하면서 머리도 식히고 하잖아요.

라스칼 : 그런데 그 형은 집이 제주도인 것도 있고... 휴가 때 안 쉬는 건 솔직히 만날 사람이 없어서 안 쉬는 것 아닐까요(웃음). 매번 저한테 같이 놀아달라고 해요.

그리고 그 형 멘탈이 잘 나가거든요. 누구나 화가 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동하 형은 다시 기분이 평상시처럼 안정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엄청 짧아요. 저랑 그 형이 서로 장난을 정말 심하게 쳐요. 예를 들어서 형이 씻고 나오자마자 제가 "아 형, 왜 안 씻고 다녀, 냄새 난다"고 놀릴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시비를 걸어요. 그런데 랭크 게임에서 가끔 멘탈이 나가 있는데, 제가 그걸 모르고 평소처럼 시비를 걸면 엄청 화를 내요. 그럼 저는 일단 자리를 피하죠(웃음). 그리고 한 10분? 그 정도 지나면 바로 형이 먼저 와서 미안하다고 해요.

모글리 : 동하 형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한 번씩 다 겪어봤죠.

라스칼 : 모글리 선수가 당하는(?) 것도 봤어요. 두 분이 같이 듀오를 돌렸는데, 모글리 선수가 조금 못했나봐요. 그러자마자 동하 형이 "재하야, 너 진짜 너무 못한다"면서 뭐라고 막 하더라고요. 디스코드로. 그런 걸 옆에서 가끔 보고 있으면 재밌어요.

모글리 : 그때도 화 엄청 내더니 조금 후에 바로 메신저로 "재하야... 미안해..." 이런 식으로 왔어요(웃음). 그럼 저는 이제 "아 몰라 조용히 해~" 하면서 또 친하게 지내죠.

라스칼 :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조금 헷갈리긴 하는데, 그래도 뒤끝이 없잖아요. 엄청난 장점이죠.

▲ 두둥


Q. 사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한 가지 깜짝 코너를 준비했어요. 조금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질문들이 조금 짓궃을 수도 있는데, 잘 부탁해요. 첫 번째 질문은... 솔직히 포지션 경쟁자의 경기를 보면서 '지금 내가 출전했으면 저거보단 더 잘했겠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레이즈 : 있다.

(거짓)

레이즈 : 으악!



기자 : 어! 그럼 무조건 '엄티' 선수가 더 잘한다고 생각했네요?

레이즈 : 질문처럼 생각한 적 엄청 많았는데... 전기 안 맞으려고 정말 솔직히 말했거든요. 뭔가 거짓말로 처리될 수도 있다는 느낌 때문에 무서워서 그랬나봐요.

기자 : 자, 그럼 이제 모글리 선수 차례.

모글리 : 다들 한 번씩이라도 있지 않나? 저도 있다.

(진실)

기자 : 이거 그런데 진실 나오면 '스피릿' 선수가 서운해하는거 아녜요?(웃음)

모글리 : 그런데 다윤이 형도 만약 자기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대기실 들어오면서 "재하야, 미안하다" 라고 해요. 몇 번 그랬어요.

라스칼 : 전 왠지 전기 올라도 참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원래 답변은 '있다' 인데,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없다' 라고 할게요.

(진실)

라스칼 : 이게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공개하고 답변해서 전기를 안 주나봐요(웃음).


Q.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럼 반대로, 대기실에서 지켜 보면서 '와, 지금 저 플레이는 나였으면 절대 못했을 것 같다'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레이즈 : 있다. '엄티킥!'

(거짓)

레이즈 : 어? 뭐지... 진짜 '엄티킥'할 때는 직전까지 '이 친구가 뭘 하려고 들어가지' 싶었거든요. 그리고 보고 나니까 진짜 정교하게 차더라고요. 그걸 보고 놀랐죠. 그런데 이거 왜 자꾸 이래요? 전 진짜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웃음).

모글리 : 그런 플레이가 있었다!

(진실)

모글리 : 저는 누군가가 제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플레이를 했을 때 저런 걸 느끼거든요. 내가 못본 '각'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예전에 롤드컵 선발전에서 삼성 갤럭시전 1, 2세트 때 다윤이 형이 갱킹이나 역갱킹을 시도했잖아요, 가끔 '어라, 지금은 아닌 거 같은데'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다 성공시키더라고요. 정말 놀랐죠. '네임드'라거나 경력이라는 게 엄청 대단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라스칼 : 저도 있죠.

(진실)

라스칼 : 그런 것들이 정말 많아요. 자신감이 워낙 넘치는 형이라서.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형은 자기 자신을 믿은 거죠. 제가 저 정도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몇몇 챔피언들이 있어요. 그렇지 않은 건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못하죠. 그 형은 상대 세 명 있어도 소위 안 쫄고 플레이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 신기하고, 절대 못하겠다 생각했죠.


Q. 다음 질문, 난 출전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 기회를 주지 않았던 코치진이 미웠던 적 있었다!

레이즈 : 있다.

(거짓)

레이즈 : 으아악!

모글리 : 그 정도로 아파요?

레이즈 : 아픈 건 아닌데, 무조건 놀랄 수밖에 없어요(웃음). 이거 왜 이러죠? 아플까봐 겁내서 그런가... 사실 미운 적이 있긴 한데 내색을 못하죠. 그동안의 연습 결과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하시는 거니까.

모글리 : 저도 '있다'로 할게요.

(진실)



모글리 : 랭크 게임이랑 스크림 성적도 정말 좋은데 출전하지 못할 때 '나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기회를 못 잡으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도 드는 것 같아요. 사실 밉다기 보다는 아쉬움이죠. 감독님하고 코치님들이 상의를 거듭해서 결정하시는 거라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거니까요.

라스칼 : 저는... 없다!

(진실)

기자 : 의외네요. 모든 프로게이머가 경쟁심과 자신을 증명해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라스칼 : 저는 계속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랭크 게임 최상위권을 찍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랭크 게임이랑 팀 게임은 아예 다른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스크림할 때 긴장되더라고요. 앞으로 스크림에 지금보다 더 자주 참여하게 되면 자신감도 생기고 욕심도 생길 테니까 괜찮아지겠죠. 그동안 동하 형이 저보다 한참 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그때는 질문과 같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죠.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랜만에 잡았던 출전 기회가 오히려 너무 부담으로 다가왔던 적 있었다!

레이즈 : 없다.

(거짓)

기자 : 후... 완전 거짓말쟁이네요.

레이즈 : 이게... 답변하고 기다린지 얼마 안됐을 때는 괜찮다가, 측정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 저도 모르게 긴장되서 그런가봐요. 첫 경기는 부담스럽다기 보다는 긴장됐죠. 교체로 나갔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기자 : 그런데 대부분 갑자기 교체 출전하게 된다면서요. 그럼 패배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요?

레이즈 : 이미 한 세트를 지고 난 다음이라서 전 오히려 부담이 안되더라고요. 반대로 한 세트 이겨놨는데 제가 교체됐다가 진다면? 그건 너무 무섭잖아요. 그리고 교체돼서 들어가면 부스 분위기도 추스르고 해야 해서 부담감을 느낄 시간도 없죠.

모글리 : 전... 있다.

(진실)

모글리 : 대회에 자주 못 나가다가 강팀 상대로 갑자기 출전할 때? SKT T1이나 kt 롤스터 상대할 때 그랬어요. 아니면 첫 세트에 다윤이 형이 출전했다가 패배했을 때도 부담감을 느꼈어요. '레이즈' 선수처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교체되서도 지면 그날 진짜 패배잖아요. 그 날은 더 여지가 없으니까.

라스칼 : 저도 있다.

(진실)

라스칼 : 아무래도 아까 말했던 데뷔전 때 그랬죠. 예정됐던 것도 아니었고, 너무도 갑작스러웠으니까. 부담이 너무 많이 되더라고요. 생각이라도 좀 하고 갔으면 긴장만 했을 것 같은데, 동하 형의 빈 자리를 채울 자신이 없었어요. 이 정도 플레이는 나한테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 연습이 되어있는 상태도 아니었고요.

레이즈 : 그래도 그 경기 잘하셨던 것 같은데.

라스칼 : 제가 그때 '이퀄라이저 미사일'을 너무 못 써가지고.

레이즈 : 저희랑 경기였잖아요 그때 저희 쪽에서는 피드백할 때 '상대 럼블은 무죄' 이런 느낌이었어요.

모글리 : 저도 라인전 진짜 잘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아, 미드 라인에서 '이퀄라이저 미사일' 실수 하는 걸 봤던 기억은 나네요(웃음).

라스칼 : 전 제 나름대로 저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있거든요. 그런데 전 지금까지 했던 경기 중에 그걸 충족시켰던 적이 없었어요. 남들이 롤드컵 경기 때 쉔을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Q. 어느덧 한 시간 정도 웃고 떠들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네요. 이제 슬슬 마칠 시간이 됐어요. 다가올 2018년에는 출전 기회를 지금보다 더 잡을 수도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2018년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미리 들려주세요.

레이즈 : 아직 주전 확정, 이런 건 아니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주전 자리부터 잘 확보하게 목표죠. 정글러들은 보통 한 가지씩 약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최대한 줄여서 욕을 먹지 않는 정글러가 되는 것이 내년 목표예요.

모글리 : 제가 올해 데뷔해서 이제 내년이면 2년 차가 되네요. 부족한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은 2017년이었어요. 내년에는 더 잘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2017년보다 2018년에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스칼 : 이번 2017년에는 목표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욕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혼자 게임하는 거랑 좋은 사람들과 숙소 생활 하는 것에 만족했어요. 지금은 욕심도 많이 생기고 자신감도 많이 붙었거든요. 그래서 2018년에는 훨씬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응원 많이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