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0년 만에 느껴본 감정, "그래, 이런 게 게임이지"
박태학 기자 (desk@inven.co.kr)
이걸 지금 써야 하나 고민했다. 외국에선 나온 지 한참 됐고, 한국에서도 할 사람은 이미 다 해봤다. 원래 메타 평점 높은 시리즈다. 이번 작품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고. 아니, 게임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기사로 쓰기엔 시기도 지났고, 굳이 더 평가할 것도 없는 그런 게임.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그런데도 쓴다.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여러 감정이 든 게 약 10년 만이라서. 게임 기자로 살면서는 처음 느꼈다. 재미있었고, 신기했고, 놀라웠다. 몇몇 부분에선 소름까지 돋았다. 가장 많이 느낀 건 놀라움이었다. 완전히 반해버린 채로, 홀리듯 쓴다.
사과가 필요해 나무를 베고 있었다. 하나 떨어지더니 언덕 아래로 굴러갔다. 그 아래에 피워둔 화톳불까지 가더니 '구운 사과'가 됐다. 몬스터와 싸우다 칼이 망가져 폭탄을 두고 유인했는데, 그 폭탄을 발로 차서 내게 되돌려줬다. 냇가에 전기 화살을 쐈더니,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올랐다. 짐승 고기 얻는 소재일 뿐이라 생각한 곰이나 사슴 같은 야생 동물도 탈것으로 조련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에 놀랐다. 머릿속으론 가능해도 그간 게임에서 보이지 않았던, 하도 안 보이니 '이런거 까진 바라지도 않았던 게' 되니까 놀랐다.
'이것도 되네, 허허 참 신기하다.' 정도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요소들은 기존의 퍼즐을 좀 더 쉽게 푸는 장치로도 활용됐다. 미로 안에 떨어진 구슬을 정해진 장소로 보내야 하는 퍼즐이 있었다. 몇 번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 순간 짜증이 나서 패드를 비틀었는데, 미로가 뒤집혔다(조이콘의 동작 센서를 써서 푸는 퍼즐이었다). 뒷면은 평평하길래, 그냥 거기에 구슬 받아서 골인시켰다. 정식 공략법이 아닌, 유저의 잔머리까지도 최대한 허락해준 셈이다. 아무리 오픈 월드라도, 아무리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도 이 정도까지 온 게임은 없었다. 또, 과거 몇몇 온라인 게임들이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비로소 '진짜'를 본 느낌이다.
락스타 게임즈나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같은 오픈 월드 명가에서 나와도 혁신 소리 들을만한 완성도. 이걸 닌텐도가, 그것도 젤다같은 세계 최고의 게임 IP로 도전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젤다가 어떤 게임인가. 누구보다도 눈 높은 팬들을 가진 IP 아닌가. 조금이라도 '덜' 재밌다가는 '젤다'라서 욕먹을 게 뻔한 상황. 그냥 안전하게 젤다는 기존 스타일대로 가고, 아예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닌텐도는 도전했다. 그 결과, 콘솔 게임 시장의 큰 축이면서도 동시에 정체되었다고 평가받는 오픈 월드 시스템이 그다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주역은 시간의 오카리나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젤다의 전설'이었다.
물론, 완벽에 가깝다는 이번 젤다의 전설도 몇몇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는 했다. 시리즈의 대표적인 특징인 퍼즐 던전이 작은 단위로 쪼개졌는데, 덕분에 하나하나의 깊이가 얕아졌다는 말이 나왔다. 무기는 너무 잘 부서져서 내구도 관리가 짜증 난다는 평가도 있었다(이건 좀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 언급한 사항들은 게임의 단점이라기보다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취향 문제에 가깝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핵심은 전투가 아닌 탐험이고, 잘게 분산된 던전 역시 하이랄을 구석구석 탐험한다는 기준으로 본다면 오히려 플러스 요소라는 것이 주된 평가다. 즉, 개발팀이 의도한 방향과 그 결과물을 두고 게임을 평한다면, 이번 젤다의 전설은 정말이지 단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가장 큰 단점은, 닌텐도 스위치를 사야만 할 수 있다는 거다. 뭐, 농담에 가까운 말이지만, 게임업계 종사자라면 취향과는 별개로 반드시 한 번쯤은 해보길 바란다. 지난달 31일에 세상을 떠나신 황병기 선생님의 '미궁'처럼, 장인의 위치에서도 고민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개발팀의 새로운 클래식이므로.
아오누마 에이지가 일선에서 물러나면 젤다는 어쩌나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디렉터를 맡은 후지바야시 히데마로의 능력을 보니, 앞으로도 젤다는 큰 걱정 안 해도 될 듯하다.
박태학 기자 desk@inv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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