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관형이만 단독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한 마디에 RNG가 더 좋은 팀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숨어 있었다.

20일 가장 달콤한 봄의 축배를 한잔 거나하게 마시고 온 두 사람을 만났다. 이번 MSI 주인 자리를 차지한 RNG의 코치진, 손대영 감독과 '하트' 이관형 코치였다. 두 사람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잠시 진정시키고 의자에 앉았다.

"저는 뭐... 잘 실감이 안 나요. 정신이 너무 멍하고,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네요. 너무 좋아가지고요. 이런 감정을 CJ 시절 IEM 때 느껴보고 오랜만에 느끼네요. 한 4년, 5년 정도 된 거 같습니다."

"대영이 형처럼 저도 우승해서 기쁘죠. 기쁜데, 우승할 때마다 생각나는 건 제 주변에서 도와줬던 분들이네요. 지금은 제가 코칭하고 있는 RNG 선수들도 고마워요. 우승을 해줘서가 아니라, 작년 일이 떠올라서요. 선수들이 같이하자고 해줬거든요. 내년도 같이 하자고요. 그 말을 듣고 우리가 다 같이 믿고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됐었어요."

"대영이 형도 오시고, 저를 믿어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참 고마워요. 한국팀들도 저희 팀과 스크림을 많이 해줬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하나하나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모두 감사해요."


이관형 코치가 손대영 감독에 앞서 1년 동안 RNG를 코칭했다. 그리고 2018년부터 손대영 감독이 RNG에 합류하면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이관형 코치는 손대영 감독이 오면서 큰 도움이 됐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성격이 완벽주의라서 일도 혼자서 하고, 책임도 혼자서 지려고 해요. 그런데 효율이 떨어지고 많이 지치고 힘들더라고요. 형이 오고 나서 저한테 서로 도와가면서 나눠서 하자고 해주셨어요. 그래야 잘 돌아간다고요. 형 말을 따르면서 일하기가 수월해졌어요.


완벽주의자라는 말에 뭔가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허물없는 사람이었다. 이관형 코치와 RNG 선수들이 대화할 때 정말 친한 사람들끼리만 나오는 표정과 말투가 보인다. 대화도 통역 없이 중국어로 한다. 이관형 코치는 인터뷰도 중국어로 할 수 있을 만큼 수준급이다.

"선수들한테 뭐라고 해야 하는 직위이다 보니까 막 친해지기는 좀 힘든 게 있거든요. 그런 거 깨고 가족처럼 지내자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서로 믿어주고, 기분 나쁜 말이 있더라도 좀 편하게 편하게 하자고요. 누가 잘못했더라도 서로 사랑해줘야지 우리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했어요."

"중국어도 사실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에요. 부끄러워요. 그냥 단지 통역사 끼고 얘기하는 거보다는 직접 얘기하는 게 서로 마음이 와닿으니까요. 그래서 노력했어요."


손대영 감독은 RNG에 감독이 아닌 코치로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감독 자리에 앉았고, 두 사람은 같이 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관형 코치와 마찰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손대영 감독은 한 발 뒤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관형이가 일하는 걸 보면서, 내가 너무 많이 개입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코치마다 색깔이 다 다른데, 관형이의 색깔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관형이와 선수들의 신뢰가 두터웠어요.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다른 사람이 관형이를 욕해도, 나만은 관형이를 믿어주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관형이도 저를 믿고 따라주니까, 서로 시너지가 잘 났던 거 같아요. 다만, 관형이가 너무 사람들을 다 만족시키려다 보니까 결정을 못해요. 그 부분에서는 제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어요."



두 사람이 만들어낸 시너지는 RNG 전체의 상승효과를 가져다줬다. 한 명은 호탕한 덕장, 한 명은 섬세한 지장. 이 조합이 강하지 않았던 역사, 소설, 만화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성장한 RNG가 이번 MSI에서 얼마나 좋은 팀이었는지, 이관형 코치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MSI에서 우리 팀이 잘하고 있다는 걸 강하게 느낀 게 이거였어요. 모든 팀들이 우리를 보고 배우는 거예요. 저희가 연습에서 뭘 하면, 매번 상대 팀도 똑같이 하더라고요. 저희가 초반에 성적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상태가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선수들이 부담감이 컸을 뿐이었죠."

"메타도 누가 우승하느냐에 따라 바뀐다고 봐요. 정해진 메타는 절대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좋다고 얘기하는 걸, 우리가 카운터 쳐내면 그게 또 메타가 아니냐는 거죠. 우승한 사람이 메타라고 봐요. 이번 MSI는 저희가 메타를 만들었어요."


우승은 값지다. 그동안의 두려움, 열망, 분노, 기대,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하나로 몰려 들어오는 최상의 격동이니.

"저한테는 오늘이 역사적인 날이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연습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제일 벅차오르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선수들이 더 잘할 수 있을까란 고민과 생각을 평소에도 관형이와 많이 의논했는데, 그 방법들이 검증된 순간이에요. 너무 기뻐요."

"좋은 팀에 들어왔어요. 서로 도와줬던 코치 관형이, 그리고 힘들지만 끝까지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 한국에서 안 좋은 이야기만 듣다가, 중국에서 이런 즐거운 일들이 생기니까... 진짜 좋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선수)들이 자라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보람을 느껴요. 애들이 정말 많이 발전했거든요.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여러 방면으로요. 물론 제가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만은 당연히 아니지만, 제가 그 친구들이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었다는 게 스스로 자랑스러워요."

"사실 선수들과 함께 저도 이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미숙한 행동과 대처를 했어요. 그냥 책임지고 묵묵히 있자는 주의였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당사자에게는 직접 사과를 다 드렸지만 이렇게는 처음이네요. 앞으로 더 발전하고 성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