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e' 송재경이 다시 아키에이지에 돌아왔다. 흰머리만 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쩐지 더 겸손해졌고 생각도 과거보다 많이 유연해졌다. 파격과 혁신이 아니라 안정과 대중적인 것을 더 이야기하는 송재경의 모습은 어쩐지 아직 어색하다. 송재경이 이끄는 아키에이지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오랜만에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엑스엘게임즈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설립 16년...송재경 "애써준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
요즘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하면 '가수 송재경'이 더 많이 노출된다. 그만큼 외부 노출이 없었다.
송재경: 놀지 않고 사무실에서 꾸준히 일하고 있었다(웃음). 문명 온라인 이후 그동안 별로 회사나 게임 쪽에서 내가 PR할 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종종 나오겠다.
엑스엘게임즈를 2003년 설립했으니 올해로 16년째가 된다.
송재경: 오래됐다. 엑스엘게임즈도 이제 연식이 있는 기업이다(웃음). 소회는 뭐라고 해야 할까.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뭔가 그렇게 기대만큼 잘 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같이 애써 준 직원분들에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좀 더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다. 저를 믿고 투자해주신 투자자분들과, 회사에서 같이 고생하는 직원분들과, 그리고 아키에이지를 하고 계신 유저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혹시 회사 차원에서 목표로 삼고 이룬 것, 그리고 못 이룬 것이 있다면.
송재경: 회사는 어쨌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어느 정도 먹고살고는 있지만, 다른 회사처럼 확 흥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같이 고생했던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성공해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도 많이 주고 싶고,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싶은데 아직 그럴 상황은 아니니까. 방금 말씀드렸듯,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좀 더 노력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아키에이지는 지금도 그럭저럭 괜찮지만, 문명 온라인처럼 좀 심하게 망한 게임도 있다. 우리한테는 뼈 아픈 시간이었다.
문명 온라인은 어쩌면 엑스엘게임즈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던 도전이었던 것 같다. 분기마다 수천억씩 버는 회사는 늘었지만 그런 도전 정신을 찾기 힘들다.
송재경: 원래 게임 개발이 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문명 온라인은 기존 문법을 따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였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 덕분에 회사도 크게 휘청거렸는데 앞으로는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먼저 제대로 짚고 개발을 할 것 같다.
다 지났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문명 온라인의 결정적 실패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송재경: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일단 사람들의 심리가 몇백 대 몇백으로 대규모 전투가 한 두 번까진 재미있다. 그런데 이걸 3개월, 6개월, 일 년 씩 하기에는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을 거다. 그게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만약 새로 만든다고 하면 아예 호흡을 더 길게 가져가서 좀 더 MMO스럽게 만들거나, 차라리 호흡을 훨씬 짧게 해서 한 시간이나 한나절 안에 끝나게 할 것 같다. 만약 시간을 돌린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송재경, 다시 아키에이지 PD 맡는다
좀 더 대중적인 시각으로 개발, 경제, 게임 밸런스 안정화에 초점
아키에이지 PD를 다시 맡았다고 들었다.
송재경: PD를 맡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그동안에 전혀 아키에이지에 관여 안 한 건 아니다. 불규칙적으로 보고를 받고 이러던 것을 레귤러하게 일주일에 세 번 같이 개발팀과 회의를 하고, 그런 체제로 다시 돌아간 거다. 타이틀도 다시 PD로 달고. 아무래도 아키에이지가 좀 커다란 '배'다보니, 게임의 방향성이나 이런 걸 크게 바꾸려면 꽤 많은 외력을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피셜하게 PD 직책을 맡아서 노력하려고 한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전임 PD들이 작업한 것은 어떻게 바라보는가?
송재경: 모두 애를 많이 쓰셨고, 당장 성적이 안 좋다고 그걸 딱히 누구 탓을 할 수 없다. 아무래도 그런 건 있는 것 같다. 프로덕트 오너십이나 이런 면에서 나는 어쨌거나 회사 대표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과감한 결정 같은 걸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임 PD분들은 사실 그러기는 좀 힘들지 않나. 이런 거 해도 괜찮을까? 물어봐야 하고, 위에 승인도 받아야 하고. 모든 걸 걸고 과감하게 드라이브 넣기 힘든 여러 에러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다들 각자의 시간과 영역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키에이지는 출시 초기에도 아직 미완성인 부분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많은 부분이 업데이트되었는데 전체 그림으로 보면 완성도가 높아진 게 아닌가?
송재경: 출시 때와 비교하면 이런저런 콘텐츠가 더 많이 추가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출시 당시, 초심에 비해서 이것저것 달라진 부분도 많이 있는 것 같긴 하다.
현재 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나?
송재경: 먼저 과금 정책에 대한 밸런스를 바로 잡고 싶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돈이면 다 해결되는 쪽으로 너무 흘러간 면이 있다. 과금 요소도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유저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되는 쪽으로 개발 방향을 잡는 것이 먼 미래를 위해서 모두에게 이익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확 바꿀 순 없다. 라이브 서비스 중이고, 지난 5년간 쌓인 콘텐츠도 있고, 무엇보다 그동안 즐겨온 유저들이 있다. 그래서 조금씩 개편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아이템 체계나 밸런스 부분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지난 3월서부터 시작한 그런 업데이트도 그런 방향이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업데이트 주기가 굉장히 빨라지긴 했다.
송재경: 개발팀은 좀 힘들겠지만 당분간 계속 그렇게 갈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은 한정적인데 업무량을 늘려서 업데이트 주기를 당기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봄 가을에 중소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3개월, 6개월 몰아서, 주로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에 대규모 업데이트를 했었다. 이 방식을 바꿔 매달 무엇이든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도록 개발 프로세스를 바꿨다.
그래서 업데이트 양 자체는 좀 적을 수 있다. 그 대신 빠른 사이클. 그래서 유저들의 반응을 보고, 반응이 안 좋으면 우리 고집을 세우지 않겠다. '아, 이건 아니구나' 하는건 빠르게 접고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미고를 통해서 우리의 장기적인 계획도 좀 일찍 알려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농작물을 많이 사뒀던 유저가 급작스러운 업데이트로 A의 가격이 확 떨어지면 얼마나 화나겠나. 그런 부분을 아미고를 통해서 되도록 빠르게 개발 방향을 알리고 있다. 5년 전에는 우리가 '이게 무조건 맛있는 음식입니다, 드세요' 이런 식이었다면, 이제는 '혹시 이건 어떠세요?' 정도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다.
아키에이지는 경제 시스템도 무척 중요한데 아직 안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개인적인 질문인데 '검은사막'의 폐쇄형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송재경: 솔직히 그런 부분이 이른바 '신박'하게 느껴졌다. 난 올드스쿨이라 차마 그 생각은 못했는데,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게 느껴지더라. 그렇다고 이제와서 아키에이지의 거래를 다 막을 순 없지만, 경매장이나 이런 부분은 그런 쪽으로 약간 개편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아키에이지는 라이브한 지 좀 되었고, 그래서 그런 급진적 변화를 진행하면 기존 유저분들이 좀 많이 실망하실 거다.
그래도 다른 게임에서도 배울 수 있는 건 배우고, 그래서 재미있는 요소는 가져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경제 밸런스나 이런 게 잘 맞아야 게임이 롱런하고, 과금한 사람도 즐겁게 오래 즐길 수 있고, 과금 안 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다. 경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시기에 반짝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만 게임을 오래 끌고 갈 순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요즘 하는 업데이트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저분들이 당장은 좀 안 좋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게임이 롱런하고 공정하게 돌아갈 수 있게끔 노력하는 의도로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거다. 당장은 부족해 보이더라도 너른 이해와 성원을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기존 유저들은 아이템의 가치 때문에 급작스러운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지금 아키에이지의 변화에 당황하는 유저들도 있을 것 같다.
송재경: 적절한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근데 과거에는 너무 한쪽으로 쏠려있긴 했다. 이제 그걸 평평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실행 중에 좀 러프한 면이 있을 순 있는데, 그런 부분은 사랑과 애정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아키에이지는 다양한 성향의 유저들이 함께 게임을 해야 전체적으로 더 즐겁게 게임을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서버 렉은 왜 갑자기 심해진 건가?
송재경: 현재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우리도 매일 회의하면서 원인을 파악하고 조금씩 고치고 있다. 특히 새로 오픈한 오키드나 서버에서는 그 현상이 좀 덜한데, 통합한 하제 서버에서는 조금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그쪽으로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오래된 코드가 많은 게임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해결되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키에이지는 경제 활동만 하는 일명 '초식유저'가 있다. 초식유저들을 위한 업데이트는 계획에 있나.
송재경: 어떻게 보면 초식 유저와 육식 유저, 전쟁과 전투를 좋아하는 유저들이 좀 분리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올해의 업데이트가 주로 전투 밸런스, 아이템 체계 등을 개편하는 쪽으로, 과금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게끔 하는 방향으로 집중했었다. 이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초식 유저들에 대한 업데이트도 나갈 예정이다. 일단 너무 노가다스러운 것은 좀 편하게, 예를 들어 줄 맞춰 심는 기능이라든지 이런 건 업데이트를 했다. 앞으로도 무역을 포함해 그쪽도 전체적인 경제 밸런스와 맞춰서 진행할 것 같다.
히라마 업데이트가 적용되었는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송재경: 이번 업데이트 내용 중 찬란한 고대 장비가 있다. 고대 장비 3티어라고 볼 수 있는데, 각성 재료가 드랍되는 지역이 히라마 산맥 서부 지역이다. 그 지역에서 사냥을 하면 몬스터들이 '고대의 각성 주문서'를 드랍한다.
기존에는 제작 아이템이 아키에이지 최고의 탑티어 아이템이었다. 원래 우리의 의도는 농사를 잘 지어서 기초 재료를 얻고, 그를 통해 무역을 하고 제작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완성 아이템을 경매장을 통해 구입해서 빨리 강해지는 부류도 있었다. 그 부분을 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열심히하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고대 무기를 집어넣은 거다.
그것 때문에 불만이 있지 않았나. 이미 어렵게 얻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갑자기 단계가 축소되니 박탈감도 있을 것 같다.
송재경: 진짜 노력해서 어렵게 얻은 유저분들이 아이템이 너무 쉽게 풀린다는 생각을 하시는데, 사실 쉽지는 않다. 그 부분에 대해 오해가 있었는데, 실제 업데이트되면 그 오해는 풀릴 것이다. 같은 급의 장비를 얻으려면 이미 얻은 분들만큼의,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우리가 의도한 바는 심하게 과금을 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오래 노력하면, 탑티어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런 쪽으로 업데이트 방향을 잡은 거다.
앞으로 송재경 PD가 그릴 아키에이지의 큰 그림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송재경: 구체적인 업데이트 내용보다 전체적인 방향성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고르게 피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에는 너무 과금 쪽에 몰려있었다. 이제 유저의 노력과 시간이 투입되어야지만 해결할 수 있도록 조정할 예정이다. 물론 과금이 그 과정을 좀 편하게 해줄 순 있지만 돈만으로는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게, 무과금 유저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쪽으로 노력해보려 한다.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방향성 자체는 그쪽으로 잡았다.
MMORPG의 미래
송재경 대표 "세상이 바뀐 만큼 개발 문법도 바뀌어야 한다"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PC MMORPG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줄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송재경: 이런 것 같다. MMORPG의 재미나 요소도 많이 있는데, 이른바 노가다라고 하는 반복적 플레이를 강요하는 것들도 많이 있다. 세계 최고의 MMORPG이라 불리는 WOW도, 그런 요소가 있지 않나. 지금 다시 와우 오리지널을 플레이하라고 하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당시엔 만레벨 다는 데 한 두 달은 플레이해야하고, 퀘스트를 어디서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공략을 찾아봐야 하고.
그래서 그런 반복적인 플레이는 다 모바일로 넘어간 것 같다. 모바일은 보통 항상 두 손을 모두 사용해서 플레이하기 힘드니까 자동 요소를 넣었는데, 그게 굳어져서 기본이 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문득 깨달은 거다. 다 자동으로 할 수 있었던 거구나, 왜 사람에게 시켰지?
모바일이 흡수한 MMO는 어떻게 보면 그런 반복적인 플레이 요소를 기계가 자동으로 하고, 재미있는 요소들, 아이템을 뽑거나 얻거나 강화하거나, 누굴 가서 죽인다거나 이런 것만 사람이 하게 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같은 문법의 반복 플레이를 PC에서 강요하면 유저들이 아마 회의감과 함께 '이럴 거면 그냥 모바일에서 하지'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까. 결국 시장이 바뀐 거라고 생각된다. 개발자들도 이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MMORPG는 그런 고통과 인내의 과정이 게임의 재미가 아닌가?
송재경: 우리 세대는 고생이나 희생, 이런 것 뒤에 오는 만족감을 좋아했던 건 있다. 친구가 와우를 시작한다고 하면 "두달 후에 만렙 달면 즐거워, 게임은 만렙부터야, 꾹 참고 만렙이나 찍어" 이런 것 있지 않나. 한 10골드쯤 정착금 주고, 가방 주고 "두달 후에 보자. 고생해" 이런 건데, 요즘은 안 통할 것 같다.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
역으로 젊은 세대들을 만족시킬만한 게임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송재경: 그 시절에는 다른 게 없어서 그런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요즘은 10달러 결제하면 다 스킵한다. 이런 시스템이 있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미 바뀐 거라. 물론 과정이 있는 게임 역시 굉장히 좋은 즐거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뭔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12년 동안 학교 열심히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멋진 세상이 기다린다는 말 있지 않나. 내가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거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안 속는다. 대학 가면 취업 준비 해야하고, 취업하면 또 공부해야 하고, 이런 걸 초등학생 때부터 다 깨우치니까. 야 너 중학교 가면, 고등학교 가면, 대학교 가면 뭐 해라 이런 이야기에 더는 속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다시 옛날 방식의 게임이 좋은 시절은 다시 안 올 것 같다. 엄청난 반복, 고생의 과정 끝에 처음 에픽 무기를 먹었을 때 그 느낌을 이제는 느낄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추억을 주는 게임을 만든다는 건 정말 엄청난 것 같다.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자동 사냥을 돌리다 보면 "이게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송재경: 이제는 자동 반복적인 플레이가 아닌, 창의적인 '무엇'이 필요한 MMO가 나올 때가 됐다. 자동 반복이나 단순한 것은 모바일로 넘기고 PC는 불필요한 요소를 좀 줄이고, 그런 방향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요즘 메이저 개발사라고 부르는 회사들 보면 그런 시도조차 없어 보인다. 무엇이 문제일까? 창의적인 개발자가 부족해서? 회사가 의지가 없어서?
송재경: 물고 물리긴 한다. 총대를 메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미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리고 오너의 의지도 있어야 한다. 그래도 MMORPG가 침체기일 뿐이지 업계 전체로 보면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도 나오지 않았나.
아키에이지도 그런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령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편하게 바꾸는 형태로?
송재경: 아미고에 나갔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계획에 있긴 하다. 지금 땅이 없는 유저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땅은 있지만, 농사를 일일이 수동으로 하기 귀찮은 분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NPC에게 의뢰해서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그런 시스템을 계획 중이다. 농사를 짓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과를 주는 거다. 그래서 땅이 없는 유저들도 이를 통해 기초 재료를 수급하고,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다. 물론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좀 더 효율이 높을 것이다.
모바일게임 시대가 되면서 다양한 유료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 PC 온라인게임은 보수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고
송재경: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다른 것 같다. 서구권 유저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관대, 합리적이라고 할까. 어차피 팔 건데 직접 팔아라, 이런 느낌이다. 약간 기준이나 관점이 좀 다른데, 그쪽은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OK, 하지만 아이템을 직접 파는 건 NO, 하지만 또 골드를 충전하는 건 OK, 이런 식이다. 우리가 아무래도 전 세계를 커버해야 하니까 가능하면 여러 버전을 만들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개발팀의 여력도 있고. 그런 면에서 좀 미묘한 밸런스가 있는 것 같다.
번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키에이지의 개발 뒷 이야기
블소, 테라, 아키에이지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MMO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아키에이지의 콘텐츠 볼륨은 지금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만큼 기대도 컸고 많은 시도를 했다.
송재경: 이제 와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욕심이 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조금 절제해 가면서, 양을 좀 줄여도 높은 완성도를 보였어야 했는데. 그때는 어디서 좋은 아이디어만 들어도 '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집어넣자' 이럴 때였다. 다들 자신감이 넘쳤으니까.
물론, 그게 결국 아키에이지의 특징이 되긴 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던전, 레이드, 농사, 무역, 해상전, 전투, 제작, 감옥 등 할 수 있는 건 다 들어있다. 나무 위에 올라가고, 베고, 집을 짓고, 커스터마이제이션, 배 도색 등등, 전반적으로 좀 반짝반짝 윤이 나게 잘 닦이진 않아서 그렇지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게임이다. 그렇게 다 만들다 보니 개별 완성도가 좀 떨어진 면이 있고 이걸 끌어 안고 다음 업데이트를 해야하니깐 다른 온라인게임보다 힘든 부분이 있었다(웃음).
전투 전반적인 구조가 많이 바뀌는 업데이트가 있었다. 증오 능력도 추가되고. 이 과정에서 진통이 많았는데 개발 과정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고 갔나.
송재경: 그 부분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초반에 좀 욕심이 과했다. 너무 새로운 것만 찾다 보니 전통적인 클래스 시스템을 폐기하고 능력치 열 개 중 세 개를 골라서 직업을 만들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결국 특정 능력 조합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작년 즈음 유저의 40%가 직업이 '첩자'였다. 120개 조합이 나오는 게임인데 그 중 한 직업이 40%라니... 차라리 전사, 마법사, 궁수 같은 기존의 클래식 시스템을 한 것보다 못하다 보니, 유저분들에게 엄청난 폐를 끼치게 되었다.
그래서 정리가 좀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처음에 고를 수 있는 능력을 4개, 10레벨 전후로 더 고르고, 물론 원하는 유저는 120개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아주 막힌 건 아니다. 대략 가이드 시스템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한 12개 정도 안에서 일반적인 클래스 시스템과 비슷하게 정리를 했다.
그러다가 거기 능력을 하나 더 추가해서 상위 능력 비슷하게 증오를 넣었었는데, 이걸 아예 독립된 나머지 10개의 능력과 동등하게 11번째 능력으로 유저가 고를 수 있도록 개편을 했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마치 클래스를 새로 추가하듯이 해보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도 너무 자주는 아니겠지만 새 능력을 추가할 계획이다.
120개 직업 조합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뻔한 결과지 않았을까? 결국 유저들이 최적의 조합을 찾을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
송재경: 자만했다(웃음). 그때의 우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밸런스를 다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20개 모두는 아니겠지만, 열 몇 개, 스물 몇 개는 유저들이 골고루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이런 헛된 자만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유저들이 최고로 효율적인 직업을 너무 빠르게 찾아냈고 우리의 대응은 너무 늦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효율과 상관없이 골고루 사용되는 국가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처음 기획할 때는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 12개 정도는 그래도 맞출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자 의도와 상관없이 유저들은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낸다. 그게 MMORPG의 매력 아닌가
송재경: 말하자면 소통이다. 개발자가 뭔가를 내놓으면 유저들이 또 맞춰서 다른 것을 내놓고, 이런 게 잘 되는 게임이 바로 흥하는 온라인게임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제품이라기보다는 서비스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도 향후 그런 방향으로 잘 노력해서 유저들에게 호응하는, 말 뿐인 호응이 아니라 정말 잘 해보고 싶다. 연애하는 것과 비슷하게 유저와 개발사 사이에 밀당이 있어야 재밌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사고가 좀 유연해진 느낌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확고한 고집 같은 게 있었다.
송재경: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내 생각과 방향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걸 유저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평범하더라도 대중적인 걸 만드는 게 게임사의 할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세월의 풍파를 맞고 나니 '아 내가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구나'를 먼저 깨달았고(웃음). 요즘엔 진심으로 대중적인 노선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0년 전쯤 아키에이지를 만들고 있을 때, 밖에서 "대표가 요즘 예술을 하고 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당시엔 그게 좀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칭찬이었구나 싶다. 그 당시 생각은 대한민국 게임산업이 10조 규모인데 우리 정도 회사에서 그런 시도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다.
그동안 아키에이지를 아껴준 유저분들에게 보답도 해야하고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부분들을 하나씩 다듬어 괜찮은 콘텐츠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앞으로 변화되는 모습이 많을 것이다. 유저 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