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역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워보이는 전투 모션을 만들 수 있을까? 애니메이터라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션 캡쳐 기술이 발전하면서 좀 더 쉽게, 동작 하나하나를 마치 사실처럼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모션 캡쳐 기술로 구현 불가능한 동작은 어떻게 현실적이면서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캐릭터의 강함을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추가해야 할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의 모토우메 코지 애니메이터, 스퀘어 에닉스의 코야마 마사아키 VFX이펙터, 야마모토 토모히토 클리크앤리버 TA는 이번 CEDEC 2019에서 중국 무술을 예로 들면서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자 중 코야마 이펙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국 현지에서 무술을 배웠으며, 고등학생 때 이연걸의 사부인 오빈 사부에게서 무술을 지도받았다. 이번 강연에서는 세 개발자가 중국 무술을 게임에 넣기 위해 어떻게 분석했으며, 그 특징들을 게임 속에 녹여내기 위해 어떤 점을 눈여겨봤는지에 대해서 코야마 이펙터의 시연과 함께 설명을 이어나갔다.

▲ (좌측부터) 코야마 마사아키 스퀘어에닉스 VFX이펙터,
야마모토 토모히코 클리크앤리버 TA,
모토우메 코지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터

모토우메 애니메이터는 단순히 포즈만 보는 것과 실제로 취하는 것,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부터 지적했다. 컷 단위로 보면 다 동일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이어나가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고 임팩트있는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동작의 특징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설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강연에서는 중국 무술 유단자인 코야마 이펙터와 함께 인터렉티브 세션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중국 무술을 예로 들었지만, 기본 방향은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 무술에 한정된 내용도 있는 만큼, 이 부분은 애니메이터들이 선별해서 들을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중국 무술을 게임 속에서 전투 모션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 무술을 알아야 했다. 애니메이터가 꼭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그 분야가 어떤 포인트를 살려야 하는지 모르면 원하는 만큼 생생하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야마 이펙터 외에도 중국 무술 협회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서 중국 무술이 어떤 것인지 개요를 짜고, 그에 맞춰서 하나하나 분석해나가는 단계를 거쳐갔다.

중국 무술을 사용하는 캐릭터의 연속동작을 만들고 싶다면 무엇부터 만들고, 어떤 것부터 조사해야 할까? 우선 모토우메 디렉터는 그 캐릭터가 어떤 무술을 쓸 것이며, 그 무술이 어떤 속성인지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태극권은 상대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 특징인 무술이다. 이처럼 무술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파악하면서 구현하고자 하는 동작의 특징을 파악해나갔다.

▲ 실제로 게임 속에 넣을 무술의 특징이 어떤지 사전에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무술은 분류 방식에 따라서 전통 무술과 경기용 무술, 내가권과 외가권, 북파와 남파 등으로 나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구분은 애니메이터에게는 크게 와닿지가 않는다. 그 동작이 경기용으로 쓰는지 안 쓰는지, 북파인지 남파인지는 캐릭터 설정을 할 때는 참고를 할 만하지만, 동작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하는 애니메이터에게는 부수적인 정보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토우메 애니메이터와 코야마 이펙터는 유권, 강권, 형가권의 세 가지로 구분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카운터 위주에, 원을 모티브로 하면서 비교적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동작을 유권, 선수필승의 테마로 직선적이고 연속적으로 공격하는 강권,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내는 상형권 이와 같은 식으로 크게 나눈 것이다.

▲ 실제로 중국 무술을 분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 동작의 특성에 맞춰서 세 가지로 재분류했다

각 분야를 큰 카테고리로 나누었지만, 그 세부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기술로 잡아서 포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기술 하나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중국 무술에서는 대체로 발을 디디는 보법과, 손기술인 수형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흔히들 기마자세라고 일컫는 마보, 그 외에 궁보나 허보, 헐보 등이 보법에 해당한다.

코야마 이펙터는 중국 무술을 시연할 때 보법을 특히 강조했다. 공격이나 방어시 어느 무술에서든 다리에서부터 힘이 발산해서 몸 전체로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보법은 그 요령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법이 엉성하면 힘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세가 엉성해진다. 그렇게 해서 만든 동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무술의 특징을 살리지 못해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특히 이동하면서 공격하는 동작을 표현할 때, 보법이 이상하면 그 무술 특유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수형에는 권, 장, 구, 지, 조의 다섯 수형을 시연을 했으며, 발차기는 탄퇴, 그것들을 보법, 점프, 여러 가지와 섞이면서 바리에이션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발경' 즉 힘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시연을 보였다. 수형과 보법의 조합은 맨손 무술뿐만 아니라 검술과 봉술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중국 무술에서 무기의 움직임은 안에서 밖으로 회전하고, 밖에서 안으로 회전하는 회전의 원리를 많이 응용한다. 그렇게 회전하는 가운데 보법과 타점, 상대방과의 거리 등에 따라 힘을 주고 빼는 그 리듬을 파악하고 반영해야 좀 더 실감나게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다.

야마모토 TA는 이와 같이 설명과 시연을 한 이유는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무술을 넣기 위해서는 그 특징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포인트를 짚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힘의 리듬,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전력을 다하는 일기후성의 자세, 끊기지 않는 움직임 등은 말로 듣는 것만으로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 말과 글로 보기보다는


▲ 직접 동작을 보면서 포인트를 짚어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이런 개념이 있다는 것을 사전정보로 알고 있으면, 애니메이터가 작업을 할 때 참고가 될 수도 있다. 흔히 통배권이라고 불리는 통비권은 서유기의 '통비원후'에서 유래한 상형권의 일종이다. 원숭이가 긴 팔을 늘여 채찍을 휘둘러 치는 모습에서 권리가 나왔으며, 따라서 상완은 직선으로 최대한 뻗으면서 전완을 마치 채찍처럼 휘감는다는 느낌으로 투로를 전개하게 된다. 애니메이터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그 무술다운 움직임을 구현할 때 핵심 포인트를 짚어나가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

야마모토 TA는 다른 무술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무술의 전통적인 투로를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캐릭터의 다양한 움직임을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기본기 하나하나를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고, 여기에서 각 동작의 중요한 포인트를 살리되 어레인지를 가미하는 식으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게 된다. 일례로 오룡반타 1회, 선풍각 1번, 남권타격 4번, 등공파련 1번 같은 식으로 기본 동작들을 조합하고, 이를 구현한 것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간다. 이때 각 동작의 포인트를 살리면서, 어떻게 유저에게 이 동작 하나하나를 좀 더 각인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실제 동작을 참고하되, 포인트를 더 강조하기 위해서 어레인지도 필요하다

코야마 이펙터는 그 팁으로 리듬을 꼽았으며, 실제의 타격과 애니메이션에서 구현된 타격의 리듬은 다소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실제로 타격할 때나 애니메이션에서 타격을 구현할 때 임팩트의 순간에 속도가 최고점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임팩트 이후 릴리즈까지 템포나 강약을 조절하는 등, 변화를 주게 된다.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제 3자에게 이 공격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강연자들은 애니메이터들이 애니메이션 구현에 필요한 모든 운동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되짚었다. 하지만 실제 동작을 참고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목적으로 그 동작들을 분석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히면서 강연을 마쳤다.





Q. 지금 만들고 있는 캐릭터 중에서 창과 언월도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캐릭터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무기도 봉술과 기본적으로 비슷하게 애니메이션을 구현하는지 궁금하다.

코야마: 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 실제 무술로 봐도 원리가 다르고, 방식이 다르다. 움직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길이가 더 길어지고 무게가 더 붙는 만큼 봉처럼 액티브하게 회전을 여러 번 주지 않는다. 기본 움직임은 자루 부분을 돌리면서 적의 공격을 막고, 빈틈을 노려서 찌르거나 베는 방식이다.

또 무게가 더 무거운 만큼, 체중의 이동폭이 더 커진다. 그래서 동작도 비교적 커지고, 빈틈도 자연히 더 커진다. 그 포인트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지 않을까.


Q. 중국 무술에서 쓰는 패검만 시연을 했는데, 일본도나 양손검은 어떤 느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좋을지 조언해주었으면 한다.

코야마: 중국 무술에서 패검을 쓰는 동작들을 살펴보면, 손목부터 축이 되어서 원을 이루며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한 손으로만 쥐기 때문에 손목이 좀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손에만 무게가 실리는 만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검지라는 동작을 취한다. 검을 휘두르고 돌릴 때 반대쪽 손에도 검이 있다는 느낌을 실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반면 일본도처럼 양손으로 쥐는 검은 손목이 비교적 덜 자유롭기 때문에, 대체로 돌려서 바로 친다는 느낌이다. 이를 호랑이처럼 날쎄고 강하게 친다고 해서 호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연상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Q. 복싱을 배웠고, 그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데몬스트레이션을 하고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넣었는데 파워풀한 느낌이 안 드는 것 같다. 이번에는 중국 무술만 예시로 들었는데, 다른 무술이나 격투기 모션을 넣을 때 그 파워풀한 느낌을 담아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코야마: 인체 구조를 살펴보면 의외로 팔이 생각보다 짧다. 그러다보니 팔이 빠르게 왔다갔다하는 것은 제 3자가 봤을 때는 인상적이지 않다. 짧은 거리를 왔다갔다하는 셈이니까. 그 순간이 잘 인식이 안 된다. 실제로 펀치를 빠르게 휘두르면 그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게임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느낌이 안 살 때가 있다.

격투기를 배웠다면 그 타격의 리듬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작정 강하고 빠르게 치는 것이 아니라 강약, 완급을 조절하지 않나. 기본은 똑같다. 다만 리듬이 약간 달라진다. 펀치를 예로 들자면, 펀치를 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팔이 뻗어나가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걸 좀 더 명확히 인식하게 하려면 팔이 타점에 도달했을 때, 즉 최대로 뻗었을 때를 집중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펀치를 회수하는 타이밍을 약간 늦추고, 회수할 때 좀 더 빠르게 하면 조금 더 빠르고, 강하게 치는 느낌이 든다. 그 외에도 VFX 등으로 그 느낌을 살리는 방법도 있다.

VFX로 그 파워풀한 느낌을 보강하고자 할 때도, 그 동작의 리듬을 파악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임팩트의 순간을 더 강하게 부각하고, 릴리즈의 순간은 조금 릴랙스하면 그 대비가 뚜렷하지 않나. 앞서 언급했지만 어떤 특정 무술의 동작을 애니메이션할 때, 그 무술의 전문가가 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지만 그 리듬, 흐름을 생각하고 그 동작이 어떤 느낌을 줘야 하는지 사전에 알고 있으면,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느낌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지시각 9월 4일부터 일본 요코하마에서 세덱(CEDEC 2019) 행사가 진행됩니다. 세덱 현장에서 기자들이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세덱 2019 뉴스센터: https://bit.ly/2lF0iRf